3.

 

그날 일은 묵직한 추처럼 어딘가 내 기억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버렸는지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방학이 끝나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 너 그 뒤로 괜찮았어?”

친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난 기분 되게 더럽더라. 자꾸 이상한 꿈을 꾸는 거야. 그 사람이 나타나서 내 배를 닦아준답시고 배꼽 주위를 꾹 누르더라고. 나도 모르게 뱃속에서 꺼-억 소리가 들리는 거야. 나 참, 그런 일은 왜 했는지, . 자고 일어나면 밤새도록 오바이트를 한 기분이야.”

입을 다무는 친구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바로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시체 꿈을 꾸었다. 흡사 탈난 배를 만져주듯 내가 시체의 배를 꼭꼭 눌러가며 주물러주는가 하면 반대로 시체가 내 배를 손가락으로 사정없이 쿡쿡 찌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디선가는 꼭 꺼-억 소리가 났다. 이후 꿈은 조금씩 변주됐다.

 

나 혼자 햇빛이 환히 드는 방안에서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시체를 닦고 있었다. 시체는 팔다리를 들어가며 내 일을 거들었고 말동무 역할까지 해주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과외비는 늘 30만원이에요.” 내 말에 시체는 곧장 대꾸를 했다. “그래? 요즘은 40만원씩 받는 애들도 있던데. -, . 아이고, 아까 먹은 김치찌개가 소화가 덜 됐나.” “내가 아저씨 배를 너무 세게 눌렀나 봐요. 어떻게 하면 40만원을 받아요? , 나도 몸값을 좀 올려야 되는데.”

 

한 번은 도서관에 앉아 있는데 누가 내 등을 톡톡 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내가 닦았던 알몸의 시체였다. 나는 아닌 게 아니라 반갑기도 해서 들뜬 목소리로 대뜸 물었다. “아저씨 벌써 깨셨어요?” “, 푹 잤어. 그런데 털도 좀 닦아주지 그랬냐? 아직도 뭐가 묻어 있잖아.” 그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심지어 거웃에 붙어 있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희뿌연 액을 손으로 가리키기까지 했다. 꿈속의 나는 간밤의 자위행위를 생각하며 괜히 민망해했다. 하지만 시체 아저씨는 내 표정을 다른 뜻으로 이해했던 모양이다. “에이, 그런 표정 짓지 마.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그러곤 무엇 때문인지 내 배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내 입에서 나온 꺼-억 소리가 도서관을 가득 메웠다. 그는 부끄러워하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꿈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또 한 번은 체중이 70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거구의 여자 시체가 나왔다. 내가 영안실 안으로 발을 내딛었고 뒤에선 두꺼운 철문의 빗장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서슬 퍼런 빛이 깔려있는 가운데, 긴 탁자 위에는 이제 막 주문한 피자와 스파게티, 족발과 보쌈, 자장면과 탕수육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시체는 두툼한 뱃살을 몇 겹으로 접은 채 그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상대가 식사 중이라 좀 주저됐지만 투철한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어기 지금 저어기 뭐냐, 닦아야 되는데요.” 그러자 시체는 입에 커다란 족발을 문 채로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아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 몰라요?” 결국엔 식사를 다 끝낸 뒤에야 내게 몸을 내주었다. “, 이제 닦든 밀든 맘대로 하세요. , 배불러!” 그러고서 시체는 만사가 딱 귀찮은 듯 대자로 뻗어버렸다. 10인분도 훨씬 넘는 음식물이 막 들어간 시체의 배는 어린아이의 무덤만큼 부풀어 있었다.

 

나는 친구와 만나 이런 꿈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뭉그적대는 중에 친구가 입대하는 바람에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딱히 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시나브로 다시 영안실을 찾게 됐다. 술이 너무 셌기 때문에 그 친구보다 갑절로 느껴야 했던 공포감을 이번에는 꼭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어떻든 공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간혹 공포감이 잦아들거나 감각 자체가 무뎌질 때는 있었지만, 그건 구토가 날 만큼 불쾌한 혐오감이 다른 감정을 압도한 탓이었다. 부검 이후에 얼기설기 봉해놓은 몸, 가재수건만 닿아도 살갗이 찢어질 만큼 혹독한 화상을 입은 몸, 하체가 몽땅 분쇄된 몸, 그 어떤 몸에도 고귀한 생명이니 숭고한 죽음이니 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긴 눈, 반쯤만 열린 눈, 동그랗게 열린 눈 등에서 시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체가 조금 전까지도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는 표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랬기에 얼굴, 아니 머리통이 거의 다 뭉개진 시체를 본 순간, 나는 문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응급실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도 맨 먼저 보인 건 내 위로 드리워져 있는 어머니의 근심에 찬 얼굴이 아니라 끔찍한 사고로 얼굴이 아예 사라진, 얼굴 아닌 얼굴이었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시체의 얼굴이기도 했다.

 

대체로 여기엔, 시작이 그러했듯,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제 맘대로 흘러 나한테 억지로 나이를 먹였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말이다. 더 이상 군 입대를 미룰 수 없었다. 전역한 뒤엔 곧바로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1년 뒤에 돌아와 복학했다. 그때 연애에 빠져들었다가 이별을 경험했고, 이와는 무관하게 졸업하고 취직했다. 다시금 이와는 거의 무관하게 시체 꿈은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무의식의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역시나 이와는 완전히 무관한데, 헤어졌던 옛 애인과 이제는 사회인으로 다시 만났다. 우리는 5년씩이나 헤어져 있다가 다시 사귀게 된, 드물면서도 은근히 흔한 일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의 운명적인 사랑과 상호적인 신뢰의 근거를 여기서 찾기도 했다. 이십대 때 현실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이 순수하게 연애에만 몰두했던 만큼, 이번엔 결혼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돌진했다. 이것만이 우리의 해후를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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