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무실에 앉아있는 동안 계속 가까운 곳에서 꺼-억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여운이 남아, 목구멍 언저리와 귓전이 불쾌하도록 간지러웠다. 저녁 식탁에 시래기 된장국이 떡 하니 올라와 있는 것을 보자 신물이 가득 섞인 굵은 트림이 참 오랫동안 참아줬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올라왔다. -.

도대체 사흘 째 시래기야? 시래기에 걸신 들렸냐?”

아니, 이틀 동안 아무 말 없이 잘만 먹더니 왜 그래? 오늘 게 제일 맛있는데, 괜히 시비야!”

아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이 된장국은 최악이었다. 시래기는 너무 질겼고 된장국에서는 왠지 시큼한 냄새가 났다. 억지로나마 밥 한 공기를 비우긴 했지만 훈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시래기를 씻을 때 손이 좀 많이 가더라도 껍질을 한 번 벗겨내. 그리고 된장에다가 미리부터 마늘, 고춧가루, 청량고추, 멸치 가루를 죄다 넣어서 버무려 놓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어? 귀찮아도 국 끓일 때마다 재료를 다듬으란 말이야. 잠만 9시간으로 줄여도 시간이 철철 남겠다.”

아니, 여기서 잠 얘기가 왜 나와? 다음부턴 네가 끓여! 요렇게 말할 줄 알았지?”

그러면서 아내는 잠깐 킥킥거리다가 혼잣말처럼 웅얼댔다.

어째 된장 맛이 좀 이상하더라. 그래도 설마 된장이 쉴 줄은 몰랐네. 허브도 맛이 가는 것 같던데.”

 

아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베란다로 가봤다. 역시나 로즈마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 어지간히 오랫동안 방치해둔 모양이었다.

이봐, 마누라, 또 죽였어?”

? 죽었어?”

빛이야 하늘에서 오는 거고 물만 제대로 줘도 절대 안 죽는데, 벌써 몇 개째야? 라벤더도 말려 죽였잖아? 이제 그만 좀 사! 시체 치우기 힘들어.”

나는 베란다 쪽으로 걸어오는 아내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깔깔 웃으며 딴청을 피웠다.

좀 따뜻해지면 봉숭아 씨를 뿌려야겠다.”

싹도 안 날 걸.”

, 서방님아, 뭘 죽이려고 해도 일단 싹은 나야 할 거 아냐.”

 

아내의 말에 나는 혀를 끌끌 차면서 로즈마리 화분을 처리했다. 화분을 치우는 김에 베란다도 한 번 쓸어내고 거실 청소도 했다. 5층짜리 빌라 건물의 4층에 위치한 우리 집은 전망이 좋았다. 오늘 따라 남한산 기슭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이며 무성하게 싹을 틔운 나무들이 아름다웠다. 신록의 푸른 냄새도 유쾌했다. 하지만 아직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 들어와, 아내가 털갈이를 하는 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떨어뜨려놓은 머리카락이 검은 잠자리처럼 날리곤 했다. 나는 아내의 머리카락들을 주워 올렸다. 그것은 몸뚱어리에서 막 떨어져 나온 팔다리가 꿈틀대듯 아직도 윤기를 뽐내며 하늘거렸다.

 

혜민아, 요즘 밤마다 이상한 꿈을 꿔.”

이상한 꿈? 전에 말했던 그거?”

, 내가 언제 말한 적이 있던가?”

시체 어쩌고 하는 꿈 아니야?”

아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내는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커다란 눈알을 굴렸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너도 참 큰일이다. 정말 생각 안 나? 나름 첫날밤이었는데. 아침에 눈 떴을 때 네가 헛소리를 했잖아. 혹시 트림 했냐고.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시체가 배를 누르는 꿈을 꿨다고 했잖아. 그 아르바이트 얘기도 해줬고.”

, 그랬나?”

아내의 말에도 기억은 영 되살아날 생각을 안 했다.

그뿐인 줄 알아? 그날이 4월 초순이었잖아. 다음 주말엔 봄놀이를 가야 된다고 박박 우겼더니 아르바이트 하러 가자는 거야.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이없는 일이지 뭐야. 대체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물었더니 네가 무뚝뚝한 얼굴로,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 이래도 생각 안나?”

, 그건 생각난다. 네가 그렇게 무서웠다면서 가서 뭐하게?’라고 물었고 나는 둘이 꼭 부둥켜안고 엉엉 울자라고 했었어. 그래, 그러고선 정말로 갔던가?”

당연히 안 갔지! 미쳤어? 영안실에서 데이트하는 커플이 어디 있어? 아니, 그 꿈은 또 왜 꾼 거야?”

몰라. 그냥 결혼한 뒤로 계속 그래. 1년 됐나.”

! 그럼 나 때문이란 소리야?”

아내는 순간 버럭 화를 냈지만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 친구의 존재를 나한테 상기시키기도 했다. 한 번 연락을 해보라는 거였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사실 이젠 이름조차 가물가물한데 친구는 무슨.

 

그날 밤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다. 평소에는 몹시 수다스러운 아내도 관계를 가질 때는 벙어리가 됐는데, 오늘은 웬일로 혼잣말처럼 뭐라고 웅얼댔다. 우리 아이 만들까.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지만 아내는 곧장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얼마 뒤 나는 잠이 들었다. 눈앞으로 진분홍빛의 진달래가 어른거렸다. 그것은 아까 베란다를 쓸면서 본 그 진달래꽃이면서 동시에, 당시엔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낸 뒤 기괴한 제안을 했던 그날 몽산포의 어느 펜션 앞마당에 보았던 그 진달래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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