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영안실에 도착했을 때 안내인은 우리 앞에 소주 두 병을 내놓았다. 쉰 살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일단 좀 마셔.”

에이, 안주도 없어요?”

나중에 치우기 힘들어.”

우리의 투덜거림에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대답만 했다.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어조였다. 우리는 잠깐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친구는 소주 세 잔에 이미 얼굴이 시뻘게지고 해롱해롱한 상태가 되었다. 반면에 나는 한 병을 다 마시고도 꼭 각성제를 복용한 듯 정신이 또렷했다.

 

다 마셨으면 냉큼 들어갈 것이지 왜 이리 빌빌거려?”

지금껏 묵묵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던 아저씨가 우리를 재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툴툴대면서 우리는 아저씨의 뒤를 따랐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육중한 소리가 들리며 영안실’, ‘시체와 같은 청각영상이 떠올랐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하지만 발길을 돌릴 틈도 없이 등이 떠밀려졌다.

교통사고 치고도 별로 안 망가졌더라고.”

?”

우리가 거의 동시에 반문했다.

시체 말이다, 시체. 배 좀 조심하고 시체 위에 토하지 마.”

마지막 말은 두터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곧이어 빗장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는 꼬인 혀를 놀리며 제법 호탕하게, 농담조로 소리쳤다.

에이, 아저씨, 우리가 겁쟁이인 줄 아세요?”

 

하지만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푸르스름한 빛이 내린 비좁고 갑갑한 방 안에 남겨졌다. 시퍼런 불빛 아래 하얀 천으로 뒤덮인 시체가 누워 있었다. 그 옆으로 물수건이 담긴 세숫대야, 고무장갑 몇 켤레가 보였고, 초등학교시절 교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양동이도 눈에 띄었다. 친구가 나를 툭 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의 얼굴에 번진, 알코올 기운에 반쯤 짓눌린 것 같은 공포의 표정이 나의 공포를 더 부채질했다. 우리는 벌벌 떨면서 시체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섰다. 친구가 시체를 덮고 있는 하얀 천을 걷어 올렸다. 시퍼런 빛을 받은 탓인지, 시체는 살색과 회청색이 뒤섞인 기묘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힐끔 보기에도 서른을 넘겼을까 싶은 젊은 남자였다. 친구가 또 나를 툭 쳤다.

, 시작하자!”

.”

그러면서도 나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술기가 감도는 웃음을 흘리면서 친구는 고무장갑을 꼈다. 나에게 시체의 발을 가리키며 저 쪽을 담당하라고 말한 다음 자기는 손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기계적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물수건을 들었다. 빗장을 거는 둔중한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내 피부를 얼어붙게 만든 기분 나쁜 소름이, 자잘한 벌레들이 혈관 속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닦은 것 같은 데도 이제 겨우 무릎께였다. 하지만 친구는 술기운 덕분인지 어느새 두 팔을 다 끝내고 어깨에지 이르렀다. 친구의 입에서 농담 아닌 농담이 나왔다.

, 이 사람 눈 뜨고 있어!”

, 그래?”

나는 여전히 무릎께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엉거주춤 대꾸를 했다.

아까는 왜 못 봤지? 반쯤만 뜨고 있어서 그랬나?”

입을 한 번 떼자 친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술기운에, 또 자기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고무되어 친구의 손에는 더욱더 힘이 들어갔다. 어깨, 가슴팍은 금세 끝났다. 그때도 나는 다리 하나도 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 이 남자 운동 좀 했나 봐. 복부 근육이 장난 아닌데.”

친구가 감탄 비슷한 너스레를 떠는데 갑자기 괴상한 소리가 났다.

-.

, 너 트림했냐?”

친구가 흠칫 놀라며 내 쪽을 향해 거의 악을 쓰다시피 물었다. 침착해지려는 노력 때문에 목소리는 더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친구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으악, 비명을 지르면서 벽 쪽으로 달아났다. 그걸 보자 친구도 내 쪽으로 달려왔다. 벽 쪽에 붙어서 보니, 아뿔싸, 시체의 입 주위로 토사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눈물을 쏟아내며 조금 전에 마신 소주를 마구 게워냈다. 마른 멸치 하나 먹지 않았기 때문에 시큼한 물 뿐이었다. 구토가 진정되자 문을 잡아당겼다. 열릴 턱이 없었다. 우리는 두꺼운 철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배를 조심하라는 말이 상기됐다. 시체의 뱃속에서 꺼-억 소리가 날 거라는, 아니, 시체트림과 오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이후, 우리가 어떻게 진정을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고 우리는 다시 시체 앞에 섰다. 나는 거의 눈을 감다시피 한 상태에서 다리와 발, 골반 부분을 간신히 닦았다. 친구는 완전히 실성을 해버렸는지 빠른 속도로 상체는 물론이고 목, 얼굴까지 다 닦았다. 친구가 시체의 뒷부분을 닦을 때는 내가 몸을 받쳐주었다. 그때도 나는 시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 등 뒤에 번져 있는 반점들만이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일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함께 철문을 두드렸다. 철문이 열리자 냉큼 밖으로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바깥의 하얀 빛이 서슬 퍼런 방안을 비스듬히 비추었다. 아무래도 죽기엔 너무 젊고 또 너무 건강해 보이는 몸이었다. 가늘게 뜨인 눈도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냥 눈일 뿐, 시선은 아니었다. 어떤 우수나 미련이랄지, 아니면 서러움이나 분함이랄지(저렇게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하는 것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가 안을 둘러보곤 금방 나왔다.

왜 아쉬워? 그럼 나중에 또 와.”

이렇게 말하며 우리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시선은 아까처럼 무뚝뚝하고 사무적이었다.

처음이라면서 시체 위에 토를 하지도 않고.”

기특하다는 칭찬 뒤에 돈 봉투가 우리 손에 쥐어졌다. 병원 밖을 나와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러곤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돈은 그날로 다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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