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삼남매는 밥벌이 문제를 두고서 제각기 고군분투했다. 해수는 3년 동안 학문의 상아탑 안에서 원 없이 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봤다. 그렇게 덜커덩 교대에 입학했고, 뭘 잘못 먹었는지 머리에 물도 안 들이고 화장도 전혀 안 하고 4년 동안 공부만 했다. 결국 해수는 우리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서 교사가 되었다.

 

형우는 경찰서와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부모 속을 태우다가 급기야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코뼈와 이빨을 부러뜨리고 남의 차를 부수고 남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스물다섯을 넘기면서 그나마도 잠잠해졌다. 그렇게 간신히 철이 들었을 때 형우는 이미 환갑을 코앞에 둔 아빠의 사업을 슬슬 물려받는 중이었다. 명함도 따로 팠다. 빨간 사과와 보라색 포도 그림이 촌스럽게 들어간 명함엔 <성득상회 사장 김형우>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이건 사실 엄마와 아빠가 형우의 미래를 상상하며 가장 바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형우는 바싹 여윈 몸을 트럭에 실은 채 연일 산지를 오갔다. 갈 때는 말짱해도 부산으로 내려올 때는 술에 절어 있었다. 그렇게 트럭 안에서 잠을 잔 뒤에는 밤새도록 과일 선별을 했다. 형우의 얼굴은 뙤약볕에 시커멓게 그을린데다가 늘 푸석푸석했다.

 

형우가 안쓰러웠던 엄마는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오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이래 시장 바닥에서 살았어도 우리 아들만은 몸 쓰는 일 안 하고 펜대 굴리며 살았으면 싶었는데. 그게 참 뜻대로 안 되네요.”

아이고, 변변찮은 직장보다 장사가 훨씬 낫다. 그라고 아 착하면 됐지, 또 뭘 바라노? 이제 참한 딸아 구해서 장가만 잘 보내면 되겠구먼. 진수 엄마가 애 셋 데리고 이리로 이사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봐라, 얼마나 좋노. 옛날엔 우리가 와도 이래 앉아서 노닥거릴 여가도 없었다 아이가. 진수 엄마가 그만큼 마음이 편하다는 기라. 시장도 그냥 놀기 삼아 오면 안 되나.”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그만 일어났다. 별로 크지 않은 토마토 상자였지만 두 노인이 들기엔 꽤나 무거워보였다. 형우가 좀 있다가 직접 갖다 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마다했다. 두 노인이 사라졌을 때 엄마가 형우를 보며 말했다.

팔아줘서 고맙긴 하지만 저 많은 걸 노인 둘이서 우째 다 묵을라노? 요새는 <훈이네>도 한산하던데.”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의 큰아들 내외가 부산으로 전근을 오긴 했지만 먹을 입이 크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덧 중학생, 고등학생이 돼 버린 손자들은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어쩌다 거실에 함께 있게 돼도 다들 텔레비전에 코를 박아두었다. 친구들은 늙고 죽어서 떠나버리고 그 많던 동네 아이들은 자라서 떠나버렸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간판에 붙은 두 글자 을 어떻게든 나눠주려고 고심했다. ‘은 무릇 음식의 양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줌마는 요즘도 음식을 하면 옛날처럼 가득이었다. 손자들한테 냉대를 받아도 꿋꿋했다. 남은 음식은 대개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노숙자나 길거리 점쟁이들 차지가 됐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 아니 음식을 만들 명분을 찾기 위해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수시로 서면 일대를 순례했다. <성득상회>에서 사온 토마토도 하나씩 끼어 넣었다. 그러는 동안 유리문을 모자이크 벽지처럼 뒤덮은 종잇장들은 빛이 바래갔다. 아저씨가 펜으로 멋을 부려가며 써놓은 전세, 월세, 매매 등의 문구와 숫자도 고색창연하기만 했다.

 

건조하고 쌀쌀한 탓에 투명한 햇살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겨울날이었다.

남자 친구는 <부전역>을 나오자마자 완전히 시골이라더니 있을 거 다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전철역 근처에 닥지닥지 붙어있던 추레한 가게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형 마트, 유명 제과점, 유명 음식점이 들어섰다. 학창 시절 고무신 공장이 있던 자리엔 아파트 단지가 터줏대감 마냥 버티고 있었다. 남루한 차림의 노동자나 노점상들 대신 말쑥한 회사원들이 거리를 채웠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조그만 정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눈에 익은 파출소가 나왔다. 각종 범죄자의 몽타주나 사진이 붙어 있는 건 여전했다. 그 맞은편엔 기어코 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자리를 잡았다. 그와 함께 편의점, 사설 학원, 피트니스 클럽 등도 잔뜩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 3미터 떨어진 곳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오직 <익돌이 피아노>만이 <예쁘제 머리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익돌이 피아노>의 주인공인 익돌이, 즉 해수의 초등학교 동창 가족이 얼마 전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탓이었다.

 

골목 어귀, <훈이네 복덕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 두어 걸음을 떼자 골목 안쪽에 전에 없던 검정색 가죽 소파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소파 한 쪽에 복덕방 아줌마, 아니 할머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조그만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책장이 노랗게 바란, 활자가 세로로 이어지는 오래된 책이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나의 인사에 할머니는 묵묵부답에 무표정이었다. 주름과 백발로 덮인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눈동자가 몹시 영롱했지만, 예전처럼 다정다감한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진수요, 기억 안 나세요?”

할머니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딘가에 고정된 채 꿈쩍도 안 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벼운 겨울바람에 낡은 책장이 팔랑거리자, 할머니는 책을 쥔 손에 아주 약간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맛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어린애의 욕심 같은 것이 어리었다. 내 시선은 다시 할머니의 손으로 향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두 손에 충격처럼 내려앉았던 굵은 주름과 누르스름한 반점이 이제는 어엿한 주인처럼 보였다. 저 두 손이 형우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해수와 친구들에게 수박을 잘라주고 먼 길 떠나는 내게 계란을 삶아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내 등 뒤로 나타났다. 백발도 이제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았다.

, 이게 누구고?”

할아버지가 반색을 표하자 나도 숨통이 좀 트였다. 할머니의 표정에도 미약하나마 떨림이 일었다.

안녕하셨어요?”

그래, 그래. 훈이 엄마한테는 인사해도 소용없다. 노망이거든, 허허, 내 여편네가 노망이 들다니, . 닭개장이 먹고 싶어 죽겠는데, 여편네가 이 모양이니 원. 그래, 니는 결혼 안 하나? 올해 몇 살인고?”

서른 셋요. 올 봄에 이 사람이랑 결혼하려고요.”

남자 친구가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 그래, 아들딸 낳고 잘 살아야제. 요즘 세상에 위아래가 따로 있나, 어데. 언니가 못 가면 동생이라도 얼렁 가야제.”

이 말에 나는 곧장 웃음을 터뜨렸다. 아저씨한테 걸핏하면 동생보다 작은 언니라며 놀림 받던 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성장기로 돌아갔다.

에이, 아저씨, 제가 언니고 해수가 동생이라니까요! 키 작다고 무시하지 마세요!”

무시는 무슨!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시집은 언니가 먼저 가야 되는 법이다. 오빠는 요새 뭐 하노?”

오빠요?”

이쯤 되자 자연스레 할아버지의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너거들 오빠가 맨날 추리닝 입고 안 다닜나. 고놈 참, 딱지 주머니를 들고 여 와서 점심 먹고 그랬는데 요새는 통 안 보이네. 그래, 니 시집은 언제 가는고?”

지금 가려고요. 이 사람한테요.”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 그래, 니라도 여 이래 있으니 안 좋나. 진수 서울 간 뒤로 너거 엄마, 아빠가 그래 허전해하는데. 하긴 니도 언니가 없어서 심심하제? 근데 진수는 대학은 졸업했는가?”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이제는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도 곁눈질을 하게 되었다. 이제 할아버지도 조용히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훈이 엄마, 저어기 <성득상회>네는 이제 호강할 일만 남았어. 진수는 졸업을 하고 해수는 시집을 간다네. 아참, 가들 오빠 소식을 못 들었다. 글마 이름이 뭐였더라? 형우는 저어기 <천상선녀>네 집 손자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종알종알 수다를 떨었고, 할머니는 멀뚱멀뚱 눈알을 굴렸다. 아무래도 겨울치곤 햇볕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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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졸업반이 됐을 때 해수가 대학에 들어갔다. 드디어 해수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에 덧붙여 해운대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친구들이 또 새로 생겼다. 그 사이에 해수의 주량은 웬만한 남자를 능가할 정도가 됐다. 엄마 말대로 조상의 핏속에 술독이 들어있는지 해수는 수시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한 번은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가 아빠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여름 방학 때는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기어코 쌍꺼풀 수술을 하고 덤으로 머리까지 갈색으로 물들였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아빠는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외치며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고, 해수는 애써 눈물까지 짜내며 깊이 반성하는 척 했다. “아빠, 다시는 안 할게요!” 이렇게 말해서 일단 사태를 수습한 뒤, 나중에 또 제 뜻대로 하는 게 해수의 깜찍한 처세술이기도 했다. 반년 뒤 해수의 머리카락은 짙은 밤색이 되었고 집안이 또 뒤집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발칵이 아니라 그냥 살짝이었다. 해수의 깜찍한 말썽은 형우가 벌인 소동에 비하면 콩국수 위에 얹힌 풋풋한 오이 채 같은 것이었다.

 

형우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명실상부한 문제아로 거듭났다. 일단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긴 갔지만, 그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편한 곳이 학교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파한 뒤에는 친구들과 함께 유흥가를 전전했다. 엄마 아빠가 새벽에 책상 위에 얹어두는 용돈은 담뱃값, 술값으로 나갔다. 오다가다 <훈이네 복덕방> 내외와 마주쳐도 인사만 할뿐, 얼른 어디론가 내빼버렸다. 밥을 준다 해도, 바나나 한 송이를 통째로 다 준다 해도 머리가 굵어진 형우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던 해,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가 칠순을 맞이했다. 설 연휴를 맞아 집에 내려갔더니 해수가 아줌마한테 목도리라도 사드리자는 말을 꺼냈다. 연일 용돈 타령을 하며 완전히 개념을 놓고 사는 것 같던 형우도 웬일인지 5천원이라는 거금을 내놓았다. 아줌마는 목도리를 목에 둘러보며 수줍게 웃었다.

아이고, 코 묻은 돈으로 이런 걸 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집엔 사람이 들끓어야 되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해서 병이 날 정도라며 가볍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실 <훈이네 복덕방>의 쓸쓸함은 누구나 다 알만한 것이었다. 결혼 초에는 그래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부모를 찾던 자식들도 이젠 명절이나 되어야 얼굴을 봤다. 어쩌다 두 내외가 함께 거제도의 큰아들 집, 서울의 작은아들 집을 찾기도 했지만 길어야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방학이면 더러 손자손녀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하지만 서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부산의 누추한 달동네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큰아들 내외도 거제도의 번화가에 살았으므로, 그 아이들의 눈에 이곳은 촌구석이나 다름없었다.

 

<훈이네 복덕방> 앞의 <뭉치 슈퍼>는 아이들이 가장 경멸하는 곳이 되었다. 과자라곤 새우깡 밖에 없고 아이스크림이라곤 돼지바가 전부였다. 도무지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게 없었다. “아저씨, 빈츠 없어요?” “에이, 아이스크림이 다 찌그러졌잖아! 아저씨, 월드콘 없어요?” 아이들은 <뭉치 슈퍼> 아저씨를 골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없는 것만 찾았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정성껏 만든 콩국수도 손자손녀들에게는 냉대를 받았다. 아이들은 차라리 해수 이모의 손을 잡고 서면 구경 가는 걸 더 좋아했다. 시끌벅적한 시내에서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아이들은 또 <뭉치 슈퍼>를 비웃었다.

 

손자손녀들이 떠나면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한동안 허함에 시달렸다. 그 허함을 잊으려는지 아줌마는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뽀얗고 곱던 자그마한 손에 굵은 주름과 거뭇거뭇한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음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그런데 아줌마의 음식은 뭔가가 이상했다. 부침개는 너무 짰고 고구마는 덜 익었고 김치에서는 풋내가 났다. 부침개와 함께 나온 간장에는 총총 썬 쪽파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노, 맛있나?”

그럼요. 그런데 조금 짠 거 같아요, 헤헤.”

해수의 말에 아줌마는 기다렸다는 듯 자아비판을 시작했다.

짜다고? 요새 내 혀가 미쳤는 갑다. 통 간을 못 보네.”

아니에요, 맛있어요, 아줌마. 원래 해수가 좀 싱겁게 먹어요. 건강에 예민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는 나도 좀처럼 부침개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 건강은 젊었을 때 지켜야지. 우린 이제 늙어서.”

안 그래도 여 훈이 엄마가 요즘 노망났다 아이가. 잠바에다가 다리를 집어넣질 않나.”

아저씨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에 없던 돋보기안경이 아저씨 코 위에 걸쳐져 있었다.

이 양반도 참, 그냥 웃자고 장난 친 걸 갖고 괜히 또 이란다.”

생로병사 두려울 거 뭐 있나, 자연의 이치지.”

아저씨는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옛날과 다를 바 없는 몸짓, 표정이었지만 어느 새인가 아저씨의 머리가 하얗게 새버렸다. 전에 없이 말수도 많아진 것 같았다.

아직 내 발로 변소도 가고, 이래 살 집 있고, 또 이래 죽을 집도 있고. 그래, 진수 니는 인자 돈을 번다고?”

 

나와 해수는 우리의 근황에 대해 좀 더 얘기한 뒤 <훈이네 복덕방>을 나왔다. 소금에다 밀가루반죽을 섞어 넣은 것 같은 파전과 설익은 고구마가 우리가 그곳에서 먹은 마지막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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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구라고는 단 둘 뿐이었지만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여전히 손이 컸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만들어도 온 동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육개장을 끓여도 한 솥 가득이었다.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도 부전시장에 갖다놓고 하루 종일 팔아도 될 만큼 잔뜩 쪘다. 두 내외의 수입과 두 아들이 주는 용돈이 모두 식비로, 그것도 남의 식비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낙이기도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왁자지껄 떠들면서 <훈이네 복덕방> 앞을 지나가는 해수와 친구들을 보자 아줌마는 또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해수야, 여 들어와서 수박 좀 먹고 가래이.”

야들은요?”

아이고, 딸아들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다 들어와라!”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아줌마는 선풍기를 그쪽으로 돌려주었다.

이거 너거 집에서 산 수박이니까 실컷 먹으래이. 너거 아빠가 너거 먹여 살리려고 그래 고생을 한다 아이가. 날도 이리 더운데.”

 

형우라면 모를까 해수는 아빠가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게 딱히 부끄럽지 않았다. 더러 2반 반장은 과일장수 딸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생선이나 연탄을 파는 것보다는 과일을 파는 것이 낫다는 게 해수 생각이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달달한 수박이 해수의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 같았다.

좀 있으면 쌍꺼풀도 만들어준다던데.”

해수 니, 나중에 진짜로 할 기가?”

아이고, 야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이리 하노? 해수 니 눈이 어떻다고?”

아줌마, 나 못 생겼죠? 언니도, 형우도 다 쌍꺼풀 있는데 나만 없어요.”

아이고, 야 좀 봐라, 니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데.”

사람들은 보통 안 예쁜 여자한테 귀엽다고 말해요.”

해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 와중에도 입안에서 맴도는 수박씨를 혀를 놀려 추려선 톡톡 뱉어냈다.

아이고, 훈이 아빠, 야 말하는 것 좀 봐요. 이것들은 지금 자기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니까요.”

치이, 아줌마는 아줌마니까 그렇죠.”

진영이가 끼어들었고 다른 소녀들도 깔깔댔다. 기미로 뒤덮인 누리끼리한 얼굴에 뱃살이 두툼하게 찐 아줌마도 한 시절엔 열다섯 살 소녀였다는 걸 알기엔 다들 너무 어렸던 거다.

아이고, 요것들아, 옛말에, 머리 좋은 여자 얼굴 예쁜 여자 못 따라 가고, 얼굴 예쁜 여자 팔자 좋은 여자 못 따라 간다고 했다. 사람은 다 타고난 복으로 사는 기다.”

그래도 예뻤으면 좋겠다!”

, 지금은 얼굴이 문제가 아니고 공부를 할 때 아이가? 중학생이 이래 놀아서 쓰겠나, ?”

아저씨가 양손에 들린 신문을 살짝 내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소녀들이 떠나자 아줌마는 수박 껍질을 치웠다.

저녁엔 콩국수 어떻노?”

아저씨가 양쪽으로 펼쳐진 신문 뒤에서 말했다.

그거 좋겠네요, 손도 많이 가고.”

니도 참, 손이 많이 가서 좋을 건 또 뭐 있노?”

그게 말이에요, 요새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딱 죽겠어요.”

그래도 조금만 해라. 인자 먹을 사람도 없는데.”

방금 왔던 얼라들은 뭐예요? 어차피 콩만 좀 많이 갈면 되는데.”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훈이네 복덕방>의 콩국수를 먹었다. 쫄깃쫄깃한 면이야 흔하지만 입안에서 아작아작 씹히는 고소한 콩가루가 이렇게 많이 든 콩국수는 돈 주고 사 먹으려 해도 힘든 거였다.

 

*

 

다음 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동생들도 다 한살씩 먹고 한 학년씩 올라갔다. 키도 조금씩 컸고 체중도 늘었다. 아니, 조금씩이 아니었다. 해수는 언제부터인가 나랑 키가 비슷해지더니 요 일 년 사이에 부쩍 커버려서 누가 봐도 언니처럼 보였다. 나는 기어코 150센티조차 넘지 못한 키를 원망했고, 해수는 키가 크면서 덩달아 불어버린 체중을 원망했다. 밤마다 <아이참>을 붙여도 도무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 쌍꺼풀을 또 원망했다. 형우는 공부에 통 취미를 붙이지 못해 밖으로만 나돌았다. 마땅히 이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주기적으로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엄마는 바가지를 긁었다. 변변찮은 가재도구가 날아 다녔고 엄마가 울부짖었고 아빠가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는 나이를 잊고 엉엉 울었다. 집안은 늘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 집과 겨우 몇 발짝을 사이에 둔 <훈이네 복덕방>은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했다. 그곳은 숫제 시간을 먹지 않은 공간 같았다. 수험생이 된 나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게 여겨졌다. 엄마와 아빠는 새벽별을 보며 시장에 나갔고, 나는 그 새벽별이 사라지고 해가 뜰락 말락 할 때 아직도 자고 있는 두 동생을 버려두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학교에서 보내고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친 뒤 집에 오면 거의 자정이었다. 나와 친구들이 세 낸 봉고차는 정확히 <훈이네 복덕방> 앞에 섰다. 그 시각이면 복덕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9시면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훈이네 복덕방>이 슬슬 문 닫을 채비를 했다. 아줌마는 안쓰러운 듯 혀를 끌끌 찼다. “인자 오나? 아이고, 공부가 뭐라고, 아를 잡네 잡아.” 내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아저씨에게 속닥댔다. “이래 캄캄한데 딸아 마중도 안 나오고 진수 엄마는 잠이 오는가. 나는 저런 딸 있으면 밖에도 못 내놨을 거 같아요.” “오죽 피곤하면 그렇겠나?” “하긴.” 두 내외는 서글픈 눈길을 주고받으며 느릿느릿 집으로 들어갔다.

 

서울 가서 학력고사를 보고 돌아온 날, 나를 맞아준 것도 <훈이네 복덕방>이었다. 코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날씨가 매서웠다.

진수야, 야야, 시험 잘 봤나? 여 들어 와서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먹고 가래이. 엄마는? 엄마가 같이 안 갔더나?”

아줌마는 나를 안으로 들이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복덕방 안의 훈훈한 공기 때문에 안경에 뽀얗게 서리가 끼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소맷자락으로 렌즈를 닦았다.

같이 갔었는데요, 역에서 곧장 시장으로 갔어요.”

그래, 너거 엄마가 억척이다, 억척. 몸보다도 마음이 더 피곤할 긴데. 우리 훈이 시험 볼 때도 내가 서울까지 안 갔나. 시험 보는 날은 해마다 와 이리 춥노! 택일을 영 잘 못하는 기라.”

, 여편네, 미신하곤. 어차피 다 끝난 거니까 진수 니도 오늘은 고마 푹 쉬래이.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그만큼 공부했으면 결과도 안 좋겠나.”

아저씨, 그만큼 공부 안 한 아이들이 어디 있어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지만 커피만 꿀꺽 삼켰다. 열아홉 살의 겨울은 그런 거였다. 어차피 아직 내 것도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애가 끓었다.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조그만 배낭을 짊어진 채 집을 나섰다. ‘상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 짐도, 집안도 썰렁했다. 아빠는 사과를 사러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 가 있었고 엄마는 시장에서 어제 떼 온 과일을 팔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동생들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놀러 가버렸다. 골목을 나와 큰길로 들어섰을 때 <훈이네 복덕방>의 유리문이 열렸다.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 조그만 꾸러미 하나를 들고 튀어나왔다.

오늘 가제? 어제 저녁에 너거 가게에 갔었다 아이가.”

오지랖 넓고 인정 많은 아줌마는 꾸러미를 건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줌마의 뽀얗고 작은 손은 마냥 따뜻했다. 하지만 정작 아줌마는 스웨터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잔뜩 움츠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집 떠나는 게 애초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지, 나는 어젯밤부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어색하게 고맙다는, 어서 들어가시라는 말만 하고서 얼른 몸을 돌렸다. 봄이 언제 오려는지 바람은 차기만 했다.

 

통일호가 밀양을 지났을 때 꾸러미를 풀어보았다. 삶은 계란 세 개, 종이에 곱게 싼 소금,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과 하나. 말로는 싱싱한 과일을 싸게 사려고 우리 가게에 간다고 했지만, 그 역시도 같은 동네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돈벌이를 해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음식과 술 냄새를 풍기는 시끌벅적한 객실 안에서 나는 계란을 까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세 개를 연거푸 먹고 나자 목이 메서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빠가 김천인지 상주인지 어디 산골에서 사온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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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손이 컸다

 

 

   

 

1988, 우리 가족은 월세 단칸방에서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 우리 동네에는 <뭉치 슈퍼>, <구슬동자>, <승리반점>, <대포 마을>, <익돌이 피아노> 등 없는 게 없었다. 하나같이 우리 삼남매에게, 아니면 엄마 아빠에게 꼭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골목 어귀에 있는 <훈이네 복덕방>은 아무리 봐도 뭘 하는 곳인지 통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사고팔지 않고 뭘 가르쳐주지도 않는 이상한 가게였다. 그 집 큰아들은 이미 직장에 다녔고 작은아들도 내년에 제대하면 얼마 안 있어 졸업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크면 어른들은 저렇게 놀아도 되는 모양이고 <훈이네 복덕방>은 어른들의 놀이터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의 아줌마와 아저씨는 아침 9시면 2층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지고 손님들이 일어나는 시간이 곧 하루 일과를 접는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늘 한두 명, 많으면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낡은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오구작작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아무 말 없이 장기를 두거나 각자 신문이나 잡지를 읽기도 했다. 탁자 위에는 늘 요깃거리가 있었고 때로는 밥상이 차려져 있기도 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가 손이 큰 것은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 때문에 아예 작당을 하고 배를 채우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줌마는 아주 추울 때가 아니면 미닫이 유리문을 항상 반쯤 열어 두고 손님을 기다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삼남매도 <훈이네 복덕방>의 손님 아닌 손님이 되었다. 아들딸이라고 하기엔 많이 어리고 손자손녀라고 하기엔 제법 큰 우리를 <훈이네 복덕방>은 참 예뻐해 주었다. 우리 부모가 부전시장에서 과일도매상을 한다는 걸, 그 때문에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난 뒤에는 더 그랬다. 부전시장 갈 일이 있으면 꼭 <성득상회>, 즉 우리 가게에도 들러주었다.

 

*

 

새 학년이 시작된 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훈이네 복덕방> 아줌마는 봄볕을 쬐며 복덕방 앞을 서성였다. 저쪽에서 낡아빠진 추리닝에 면 티셔츠를 입은 형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방 끈이 양쪽 모두 거의 팔꿈치까지 내려와 있었지만 바로 잡을 마음도 없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텅 빈 집안으로 들어설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쫙쫙 빠졌다.

형우야, 인자 오나?”

.”

점심은?”

형우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큰누나는 아직 안 왔제?”

중학생이 지금 집에 오면 쓰나? 작은누나는?”

가게 안에 있던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작은누나도 6학년이라서 늦게 와요.”

놀아도 밥은 먹고 놀아야제.”

 

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형우는 <훈이네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온기가 느껴지는 고등어조림이 놓여 있었다. 붉은 양념을 머금은 탓에 고등어의 푸른 빛깔이 더 선연해 보였다.

야한테는 좀 매울라나.”

계란이라도 하나 부쳐주지 그라나?”

아저씨가 신문 너머에서 한마디 했다.

, 맞네. 형우 니 일단 먹고 있으래이.”

아줌마는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더니 금방 노른자에 따뜻한 윤기가 흐르는 계란 프라이를 갖고 내려왔다. 형우는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걸신들린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댔다. 아줌마는 형우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창 클 때라서 엄청 먹네, 엄청! 어여, 훈이 아빠, 우리 정훈이랑 성훈이도 저 나이 때는 이래 잘 먹었는데. 갈라고? , 물 마셔라.”

아줌마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뽀얗고 고운 손으로 형우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형우는 물 한 컵을 또 벌컥벌컥 들이켰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래. 아가 인사성이 참 밝대이.”

꾸벅 절을 하고 나가는 형우를 보며 아줌마가 말했다.

 

형우는 가방을 한 손에 들고 후다닥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5분도 안 돼, 딱지 주머니를 든 형우가 <훈이네 복덕방>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형우야, 니 숙제 안 하고 어딜 가노?”

아줌마가 소리쳤다.

딱지요!”

그러고는 대답을 해주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얼른 내빼버렸다.

 

자가 착하긴 착한데 공부를 너무 안 하는 거 같네요.”

아줌마의 말에 아저씨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아직 어린데 착하면 됐지, . 저녁때는 두루치기 좀 해봐라.”

왜요? 돼지 먹고 싶어요?”

뭐 그것도 그렇고 소주 한 잔 할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아저씨의 기대대로 오랜 벗들이 찾아왔다. 그날 <훈이네 복덕방>11시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집 앞에는 오랜만에 소주병 몇 개가 얌전히 서 있었다. <뭉치 슈퍼>보다 더 신이 난 건 고물장수 할아버지였다.

 

 

형우가 5학년이 되고 해수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여름, <훈이네 복덕방>에는 경사가 났다. 지난봄에 결혼한 작은아들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손바닥만 한 동네엔 일찌감치 작은아들이 속도위반을 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소문이 돌았더랬다. 하지만 <훈이네 복덕방>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듣는 둥 마는 둥 마냥 즐거워했다. 나이 찬 아이들이 둘이 좋아 애부터 만들었는데 그게 뭐 그리 흉이냐는 투였다. 이게 또 옳은 소리여서 동네 사람들도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했다. 다만, 맞은편에 있는 <구슬동자> 아줌마만은 끝까지 눈을 흘겼다. <훈이네 복덕방>이 날을 잡기 위해 이웃 동네에 있는 <천상선녀>를 찾은 탓이었다.

 

작은아들 내외가 갓난애를 안고 부산에 온 날, <훈이네 복덕방>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끌벅적했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형우가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 벌레 같다!”

형우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형우 니 갓난아 처음 보제? 니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는 딱 요렇게 생겼을 긴데.”

이 말에 형우는 인상을 팍 썼다. 얼굴이 불그죽죽하고 쭈글쭈글한 것이 영락없이 벌레였다. 벌레는 팔다리 같지도 않은 몰랑몰랑한 살덩어리를 치켜 올리는 시늉을 하고 마디도 보이지 않은 작은 손발을 희한하게 꼼지락거렸다. 형우는 이 벌레가 신기해 오랫동안 그 옆에 붙어 있었다. 그 사이에 젊은 아줌마가 건네준 노랗고 길고 몰랑몰랑하고 부드러운 과일을 씹어 먹었다. 왜 아빠는 이런 건 사오지 않는 걸까. 이렇게 귀한 걸 남한테 선뜻 주는 걸 보면 이 벌레의 엄마 아빠는 참 부자일 것이라고 형우는 생각했다.

얘가 바나나를 처음 먹나 봐요, 어머니. 하나 더 먹을래?”

형우는 또 다시 냉큼 바나나를 거머쥐며 생각했다. 부자는 예쁘고 착한데다가 서울말을 쓴다고.

 

<훈이네 복덕방>의 작은아들 내외는 다음날 오전에 서울로 올라갔다. 멸치젓, 명란젓, 깻잎과 콩잎 장아찌, 고들빼기김치 등 차 안의 트렁크로도 모자라 많은 짐들이 차의 뒷좌석에 실렸다.

매실즙은 배 아플 때 물에 타서 먹으래이. 그게 위에 그리 좋다 안 하나.”

얼른 다 먹을 테니까 다음에 오면 또 주세요.”

그래, 그래. 조심해서 가고.”

<훈이네 복덕방> 내외는 웃으며 아들 내외와 손녀를 배웅했다. 차가 동네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줌마는 여전히 작고 뽀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마저 글썽였다. 아저씨가 아줌마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나지막하게 훈수를 두었다.

암탉도 병아리가 꽁지가 나면 옆에 오지 말라고 부리질을 안 하나. 원래 자식은 나이 들면 다 저래 떠나는 기다.”

물론 아저씨도 가슴 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큰아들도 경상남도를 떠돌며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다가 작은아들마저 멀리 있으니 말이다.

(-- 계속)

 

-- <웹진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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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는 비바람에 쓸린 물건들로 인해 졸지에 쓰레기바다가 됐다. 시큼한 냄새가 빗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개 등에 얹힌 장바구니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풍겨 나왔다. 하지만 개의 눈에 광채가 나고 빗물에 젖은 털이 곧추 서는 것은 비린내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계절을 잊은 세상이라지만, 한여름도 아닌데 태풍이 온다는 것도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센 비바람이 <모텔 수>의 간판을 휙 날려버렸다. 간판은 쏜살같이 날아 저쪽 다세대주택의 화분에 가서 꽂혔다. 만개의 조짐을 보였던 분꽃이 순식간에 뭉개져버렸다. 어찌나 원통했는지, 복수를 하려는 듯 그 자리에서 번쩍 빛이 일었고, 그 빛이 곧 번개가 되어 사방으로 번졌다. 하늘에선 또 천둥이 치면서 번개와 조우했다.

 

아줌마, 마법을 써, 제발! 우리 다 날아가겠다!”

소영이는 마녀를 부여잡고 애원했다. 마녀는 장바구니를 개의 배 밑에 매달았다. 그리고 소영이를 한 손으로 거머쥔 채 커다란 개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마녀는 모두의 상태를 점검한 뒤, 지휘를 하듯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양 손을 약간 떨어뜨렸다. 그 자세로 고개를 정면으로 향한 채 소영이가 알 수 없는 말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우아, 주문이다! 마법이다!”

소영이는 이 경건한 장면에 완전히 감화되었다.

글쎄, 이건 마법이 아니라니까.”

마녀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하지만 개는 땅바닥에 발이 닿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보드라운 털이 바늘처럼 뻗쳤다.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그들은 빗줄기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갔다.

 

그들 옆으로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최근의 괴상한 날씨 변동을 의식한 탓에, 비옷도 단단히 차려 입고 있었다. 눈썹까지 덮어버린 커다란 모자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제 그는 집으로 돌아가 집채만한 아들과 함께, 밤톨만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을 것이다. 소영이도 떡붕어 아저씨가 차려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 식탁을 꿈꾸었다.

 

성문 앞에는 떡붕어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우아, 아저씨! 대체 어디 갔었어? 마을을 다 뒤졌잖아! 맞아 볼 테야?”

소영이의 채근에 그는 멍한 눈만 멀뚱거렸다. 최근에 살이 너무 많이 쪄버려서, 덩치는 한없이 크고 팔다리는 무척 짧은 큰 곰처럼 보였다. 그 옆에는 흡사 곰을 지키는 듯 문지기가 서 있었다. 그는 땅바닥으로 내려서는 마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성탑에 있었던 거야? 문지기 아저씨랑 같이?”

떡붕어 아저씨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마녀 아줌마를 닦달했다.

이런 날씨에 애를. 요새 개 독감이 유행인 거 몰라요?”

그는 며칠 동안 아이를 혼자 방치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껏 하룻밤도 제대로 자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 개는 건강하니까 걱정 마세요!”

마녀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소영이를 떡붕어 아저씨에게 넘겨주고서, 개와 고양이를 거느린 채 성 안으로 들어갔다. 문지기는 그녀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문지기는 하루 종일 성탑 한 구석에 앉아 있었고, 마녀는 자기 방에 칩거했다. 정녕 서로에게 할 말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서로를 응시하는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로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아량도 여전했다. 이런 적막한 관계를 마녀와 문지기는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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