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기가 참 좋아하는 단어들이 있다. 소통, 공감, 생각, 꿈, 상상, 창조...
난 그 단어들의 의미를 알라딘 서재를 통해 종종 느낀다.
난 이곳에서 한 순배 이상 위의 어르신을 감히 '親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곳곳의 지명은 항시 알라딘의 누구와 함께 떠올려진다.
불교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를 거쳐 꽤 오랜 기간 무신론자를 자처했다가
이제는 범신론에 귀의했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며, 난 그 공을 알라디너들에게 돌린다.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과 세계관이 이리저리 넘나드는 이 공간에서,
난 한때 내 주장을 펼치느라 목이 쉬었지만, 이제는 'why not?'이라는 말이 참 멋지게 들린다.
물론 아직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모로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이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꺼워해야 함을 여기서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 어쩌면 이 사람은 내 영혼의 쌍둥이일지 모른다 느낄 때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때로는 볼록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내가 확대되어 들여다 보일 때도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그녀가 직접 구워준 시디를 받은 건 꽤 오래 됐다.
하지만 언젠가 시디와 상자가 한꺼번에 행방불명이 됐고,
이번 이사 때 홀연히 시디 따로, 상자 따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그녀의 시디를 들으며 짐 정리를 하다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서재에서 한대수씨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처음으로 싸인이란 걸 받겠다고 쭈뼛거려본 게 한영애씨였던 건?
대학 입학 후 처음 가본 콘서트가 강산에 콘서트였다는 말도 했나?
천지인이나, 언니네이발관이나 황신혜밴드를 그녀가 좋아하는 건 그럴싸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티삼스를 알고 장필순을 알고 어떤날을 알지?
이 나직하고 쓸쓸하고 갈라진 목소리들에게 그녀도 빚졌던 것일까?
일기예보를 못 봐 확인할 수 없지만 비가 오려는지, 황사가 오려는지, 하늘은 흐릿하고,
외로운 사람들은 말간 노래들을 들려주고 있고,
난 그녀에게 쓰디쓴 커피를 대접하며 혹시 하늘바다도 아냐는 질문이 하고 싶어졌다.
지금 그녀의 빈 시간 옆에 노래 말고 사람도 있는지 가만히 더듬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녀는 아주 가끔만 서재에 오는데, 나도 꽤 서재를 비우고 있었는데,
그녀가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그래도 새삼 당신의 선물이 정말 고맙다고 인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