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아이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했다. 이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어수선했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뭔 집들이인가 싶기도 했지만, 입학 전에는 왕따 걱정을 하게 했던 딸이 어디 가나 친구 많다는 소리 듣는 게 기특하여 애써 강행했다.

12시쯤 애들이 오기로 했고, 점심은 간단하게 스파게티 해먹이고, 치킨 몇 마리 시켜야겠다 마음 먹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늦잠꾸러기 해람이 때문. 다른 식구 아침 다 먹을 때서야 일어나 한 시간도 넘게 춤추며 노래하며 밥을 먹었다. '아빠엄마 힘내세요' 노래부르며 율동할 땐, 우리가 지금 힘든 건 바로 너 때문이야라며 속으로 울부짖었을 정도. -.-;;

간신히 상 치우고 청소하고 샤워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약속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건만 친구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아침을 안 먹었다는 애들이 있어 바로 점심 차리기 시작. 딸아이 친구가 일곱에, 동생을 데리고 온 애가 4이요, 엄마가 같이 온 집이 2. 예상밖의 성황에 너무 많이 했나 싶었던 스파게티가 동이 났고, 옆지기 간식으로 스무개 남짓이나 수북하게 쌓였던 김말이도 몽땅 사라졌고, 감 10개가 후식으로 나가 빈 접시로 돌아왔다. 아이들 먹성에 놀라 저녁 반찬거리로 생각했던 부추와 냉동실에 쟁여놨던 조갯살로 오후 내내 전을 부쳤는데, 역시 다 팔렸다. 그외에도 간식으로 쥬스며 우유며 콜라며 과자 등도 부지런히 공급. 어찌나 정신 없었는지 치킨 시키는 걸 까먹었다는 건 뒤늦게 알았다.

먹는 사이 사이 남자애와 여자애가 편이 갈려 2번쯤 전쟁이 났고, 마로 방에 모여 노는 건 잠깐, 어느새 안방으로 몰려가 노래방한다 게임한다 소리소리 지르고, 일부는 마루에서 블록놀이를 했다 퍼즐을 했다 자동차놀이를 했다 뱀주사위도 했다 베란다의 장난감을 죄 끄집어내고, 일부는 마로방에서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불이며 옷이며 책을 꺼내 사방에 쌓아놨다. 그야말로 정신이 쏙 빠지는 오후였는데, 대부분의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최대한 늦게까지 놀다 오라고 했다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5시가 되어서야 썰물처럼 애들이 밀려나갔고,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퍼즐이 몇 조각씩 사라지고, 자동차놀이 구성품 일부가 부서지고, 장난감 피아노에 달린 토마스기차 하나가 종적이 묘연하니, 객관적으로는 해람이가 제일 큰 피해자. 하지만 실컷 놀아 기분이 좋았는지 해람이는 장난감의 피해에 너그러운 반응이었다. 문제는 냉장고인데, 김치통과 물을 빼면 그야말로 텅 빈 상태. 할 수 없이 라면 2개 사와 밥 말아서 대충 저녁 때우고, 그제서야 샤워를 하려 보니 내 꼴이 가관이다. 떡진 머리를 이마 까서 질끈 하나로 묶고, 헐렁한 옆지기 티셔츠엔 사방 음식 얼룩이고, 후줄근한 잠옷용 고무줄바지 차림이었던 것. 이 꼬락서니를 엄마들이 보고 있었구나 싶어 그제서라도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가 크니 정말 별 걸 다 하고 살게 되는구나 싶어 저절로 혀를 차게 되는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해람이랑 같은 반 엄마를 만났다. 이사했냐며 반가와 하시더니 초대해 달라신다. 맙소사, 해람이까지 집들이 해야 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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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동이 있는 가정에서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군요! 제목에서 갸웃, 하고 뭘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하늘바람 2010-03-2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마로가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나저나 이사를 하셨군요.
힘드셨을텐데 큰일도 담대하게 치루셔서 참 멋져요.
전 요즘 집을 내 놓았지만 도통 보러 오지 않아서 속을 끓이는 중이랍니다

조선인 2010-03-22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 넵, 그 아동은 부모에게 의논 없이 초대부터 한 뒤 사후 통보한 것에 대해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답니다.
하늘바람님, 이사 얘기는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놓을 거에요. 할 말이 엄~~~청 많아요.

현필화 2010-03-2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님 블로그에 처음 놀러왔네요. 이사하느라 넘 고생하셨어요..거기다 마로 집들이까지. 글만봐도 정신이 없네요. 그래도 정이 있는 동네같아 좋아 보여요

꿈꾸는섬 2010-03-2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이사는 잘 하셨는가봐요. 어른들 집들이보다 아이들 집들이가 더 정신없군요.ㅎㅎ
아이들 한바탕 휘젓고 갔으니 어떤 상황일지 상상이 되요.ㅋㅋ
고생 많이 하셨어요.^^

마노아 2010-03-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끌벅적! 큰일 해내셨어요. 최대한 늦게 돌아와도 좋다고 허락한 엄마들의 마음이 읽혀지네요.ㅋㅋㅋ

조선인 2010-03-2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필화야, 너도 알라디너냐?
꿈꾸는섬님, 그야말로 태풍으로 초토화 상태입니다. 흑흑
마노아님, 3명이 3시 좀 넘어서 나가더라구요. 그애들 붙잡으며 다른 애들이 그 대사를 할 때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 들었다니깐요.

기인 2010-03-2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저 이제 임신 3개월인데... 어찌하나요;; ㄷㄷ
그래도 넘 부럽습니다. 갈길이 구만리네요 ㅎㅎ

토토랑 2010-03-22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조선인님도 이사 하셨군요..
저두 어번 월요일에 이사 ㅜ.ㅜ
아우 아직도 정신 없어요... 비싼 포장이사를 해도 그러네요...

순오기 2010-03-22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이사한 줄도 몰랐네요.
친구 초대해놓고 사후 통보한 간 큰 아동이 누구랍니까?ㅋㅋ
고생하셨네요~ 나중에 차림새 이야기보면서 뿜었어요.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니까~ 엄마들도 이해하겠죠.^^

2010-03-23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3-23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저도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걸요? ㅎㅎ
토토랑님, 그러게요, 포장이사 하면 뭐합니까. 딱 애들방과 베란다만 치웠고, 사방에 짐이 산적입니다. ㅠ.ㅠ
순오기님, 아흑, 그저 쥐구멍만 찾을 따름입니다.
속닥님, 아아아앙, 이건 정말...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水巖 2010-03-23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셨군요. 아이들 다니기에 더 좋은곳일가 생각해 봅니다.
좋은곳에서 더 좋은 일 많으시기를 빕니다.

조선인 2010-03-2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그냥 동네 이사에요. 조금 너른 집 욕심내느라 애 전학시키는 건 아니다 싶어서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세실 2010-04-0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로 친구 집들이라 멋진데요. 마로 기분이 하늘로 날아갈 듯 하겠네요^*^
뒷정리가 많이 힘드셨을텐데..흐 고생하셨습니다.


조선인 2010-04-0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감사합니다.

펭귄 2010-04-1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귀국해서 처음 1, 3학년 애들 영어를 가르치는데 3학년애들의 난장에 기가 막혀했는데.. 읽다보니 3학년 애들이 아직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군요! (아무리 그래도 당시 7개월짜리 둘째 장난감을 가지고 깨부수며 노는건 아직도 이해할 수 없음) 우리애들은 집에서 파티는 하면 안되겠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

조선인 2010-04-20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정이니? 애 초등학교 보내면 실감할 거야. 1학년은 철 없어서 힘들고, 2학년은 군기 바짝 들어 제일 편할 때고, 3학년은 실실 요령 피우기 시작하는데 통제가 안 되고, 4학년 넘어서면 그 때부터 애들이 아 요 정도까지만 까불어야 하는구나 배워. 문제는 요새 애들이 5학년만 되도 사춘기가 와서 반항을 시작한다는 거야. 6학년이 되면 아예 머리 위에 올라선다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