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소양과 담쌓고 사는 저지만 그래도 외우는 시 몇 편은 있습니다.
무어 그리 고민이 많은지 하얗게 밤을 새우던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옮겨적던 그 시들.
이사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책장은 정리중이고,
베란다에 하릴없이 쌓여있던 책뭉치를 헤집다가 발견한 일기장을 들춰보고,
제가 아직까지 그 시들을 암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버렸지요.
당신에게도 그런 시가 있겠지요?
추적추적 몇날며칠 째 비가 내리니, 함께 추억을 나눠 보기 딱 좋지 않겠습니까?

목마와 숙녀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고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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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한 편 더 - 백범일지에서 한용운.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07-04 09:42 
    한용운 치사스럽게 사는 것은 오히려 치욕이니 옥같이 부서지면 죽어도 보람인 것을 칼들어 하늘 가린 가시나무 베어내고 휘파람 길게 부니 달빛 또한 밝구나. 중학교 때 처음 ...
  2. 유리에 가면......
    from 2007-07-04 10:08 
          술을 마시면 노태맹의 '유리에 가면'을 낭송하는 시인이 있다. 그 낭랑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여민 슬픔이 스르르 사그라 ...

  3. from 존재증명, 부재증명 2007-07-0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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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_가끔 생각이 나곤 한다_28
    from 존재증명, 부재증명 2007-07-0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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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먼 후일 - 김소월
    from 讀한우유님 2007-07-06 20:18 
  6. 사람들은 경이롭게 여행한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from 존재의 향기 2007-07-0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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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진리에의 길 - 바바 하리 다스
    from 존재의 향기 2007-07-07 21:34 
      ...
  8. 풀꽃 향기 물씬 풍기는 예쁜 동시집
    from 파피루스 2007-07-09 17:58 
     우리의 산자락과 들판에 핀 풀꽃을 어쩜 이리도 정감 있게 그려냈는지요. 버들강아지와 개구리, 제비꽃과 호랑나비, 민들레와 병아리, 할미꽃과 제비...... 한 장면 한 ...
  9.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 윌리엄 블레이크
    from 존재의 향기 2007-07-09 20:16 
      ...
  10. 서사적 서정....
    from 2007-07-10 11:28 
        외면  믿을 수 없다는 듯 언 반찬그릇이 스르르 미끄러졌다 흘끔흘끔 부부를 훔쳐볼수록 한기가 몰려와 나는 몸을 ...
  11. 위대한 깨달음의 기도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from 존재의 향기 2007-07-10 18:22 
      ...
  12. 미소짓는 것은 전염성이다 - 작자 미상
    from 존재의 향기 2007-07-12 20:45 
        미소짓는 것은 전염성이다  
  13. 멋들어진 비유와 상징으로 글 한 줄 써내고 싶다면...
    from 오래된미래 2007-07-16 07:37 
      유명 미술사가이며 상징 관련 전문 저자인 잭 트레시더가 쓴 책이다(아마존에서 찾아보면, 이 저자는 상징, 큰사전을 비롯해 상징 관련 책을 여럿 썼다). 본격적으로 상징을 다룬 책으로는 거의 10년 만이다. 이 책은 모두 7개 장과 보너스처럼 상징체계를 붙여놓음으로써 거의 모든 상징물을 다 다루고 있다. 이 책이 상징을 다룬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것은 저자가 세계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진귀한 그림이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라고 해도
  14. 아무리 추하거나 아름다울지라도 - 잘랄루딘 루미
    from 존재의 향기 2007-07-16 22:03 
        아무리 추하거나 아름다울지라도 &nbs
  15. 시 한편~~
    from 냥이네 하루하루의 책 2007-07-18 21:2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곷이 되었다. . .                  &nbs
  16. 수묵(水墨) 정원·9_ 번짐
    from 休; 청춘의 뒤란에 기대어 쉬다 2007-07-20 12:46 
    수묵(水墨) 정원·9 - 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
  17. 그래요~ 저도 좋아하는 시가 있더랬죠.
    from 책나무속 둥지 2007-07-21 09:04 
    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언젠가 이테마의 제목을 보았을때 나도 꼭 내가 좋아하는 시를 적어보
  18. 어린애가 처량하기도 하지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07-21 10:58 
    접동새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어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
  19. 석문(石門)
    from 비우고 채우기 2007-07-24 13:58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 열 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20. 내 삶의 의미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3 09:11 
    내 삶의 의미 /  최태준     싱그러운 이 아침                               불타는 바다의   &

  21.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3 15:46 
    恨을 삼키며  -겨울비/ 최태준                                  후두둑    &n
  22. 어머니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3 15:56 
    어머니 /최 태 준                              간 고등어 한 마리           
  23. 과거를 이야기하자
    from 지적유희 2007-08-03 16:32 
    시인 고은 선생을 기억하게 된 것은 2000년도 였던가 남북 정상 회담 때 울며 노래하는 장면을 보고서이다. 전후 폐허 더미에서 의지할 곳이 없어 지나가던 스님을 무작정 따라 나섰다가, 절에서 등단을 한 후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움 시만 발표 하였다. 속세로 돌아와 본격적인 글쓰기 일을 하며 70, 80년대의 정권을 살았다. '그 청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삶 보다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고 시인은 고백한다. 50년대 부터 살아오며 그
  24. 詩 쓰는 마음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6 21:04 
    詩 쓰는 마음/최 태 준                                아무도 찾지 않는       &nb
  25. 심상心想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6 21:14 
    심상心想/ 최 태 준     세월歲月에 비친                                 거울 속 모습 &
  26. 점화點火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6 21:22 
                점화點火  -새로운 역사를 꿈꾸며/ 최태준   모래알 같은                      &
  27. 귀향歸鄕
    from 내마음의 풍경 2007-08-06 21:25 
        귀향歸鄕/ 최 태 준                                     여름내 비어
  28. 당신이 현명할지라도 - 랄라 데드
    from 존재의 향기 2007-08-07 20:11 
        당신이 현명할지라도  
  29. 너를 기다리는 동안 written by 황지우
    from 방금 글 엄청 길게 썼는데 날렸다... 2007-08-08 19:32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
  30. 신이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 키에르케고르
    from 존재의 향기 2007-08-09 18:00 
        신이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31. 조선인님 이벤트참여 - 전 3번, 당신이 외우는 시 한편에
    from 木筆 2007-08-13 09:26 
                         절   망                     
  32. 내가 외우는 시
    from little miss coffee 2007-08-13 18:28 
    워낙 추리소설적 인간이라 시詩랑은 거리가 멀다... 고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른 시집 한 권. 빌헬름 뮐러의 '겨울 나그네' 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소시적에는 독문학도였습니다. 겨울이면 꺼내 듣는 '겨울 나그네'       어쩌다보니, 세가지 버젼의 '겨울 나그네'가 굴러다니고 음악청년에게 선물 받은 맨 앞에 있는 하이페리온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여름에 듣는 '겨울 나그네' 도 나름
  33. 바람이 불면 _이시영
    from 休; 청춘의 뒤란에 기대어 쉬다 2007-08-13 23:06 
    바람이 불면 날이 저문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면 한잔 해야지 붉은 얼굴로 나서고 싶다 슬픔은 아직 우리들의 것 바람을 피하면 또 바람 모래를 퍼내면 또 모래 앞이 막히면 또 한잔 해야지 타는 눈으로 나아가고 싶다 목마른 가슴은 아직 우리들의 것 어둠이 내리면 어둠으로 맞서고 노여울 때는 하늘 보고 걸었다          &n
  34. 그래도 난 내 폐 반쪽이 날아갈 때까지 소리지를 거야!
    from 좁고 낮고 창이 넓은 방 2007-08-14 01:18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가겠어 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를 갈아끼우고 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 구름의 일요일을 베고 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을 거야 어린 시절 왜 엄마는 나에게 바람도 안 통하는 긴 플레이어 스커트만 입혔을까? 난 다리가 못생긴 것도 아닌데 회오리 바람 속으로 비틀거리며 오토바이를 몰아가는 불량한 남자가 좋아 머리 아픈 책을 지루한 음
  35. 내가 외우는 시/몽혼 (조선인님 이벤트)
    from 처녀자리의 책방 2007-08-16 14:42 
    요사이 어떻게 지내시나요 近來安否問如何 사창에 달빛이 비치니 첩의 한은 깊습니다. 月到紗窓妾恨多   몽혼에게 흔적을 남기게 한다면 若使夢魂行有跡 당신 앞 돌길 반은 모래가 되었을 것을. 門前石路半成沙   묻노니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달이 사창에 이를 때면 저의 한은 깊어지곤 한답니다. 만약 꿈길의 걸음에 자취가 생긴다면 문 앞의 돌길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 (검색을 해보니 이렇게 번역한 시도
  36.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from 텅 빈 세상에 2007-08-17 14:03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찻값을 계산하겠다고 서로 계산서를 붙드는 두 사람 당신이 손을 놓기 직전에 내가 먼저 손을 놓아야 하는
  37. 쉽게 씌어진 시
    from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2007-08-21 17:01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
  38. 신에 대한 신뢰
    from 2007-08-23 17:58 
      신에 대한 신뢰 이 세상의 모든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하나는 신이 계획한 대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방식으로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지켜보라. 땅으로 가는 나뭇잎의 여행은 신에 의해 완벽하고 상세하게 계획되었다. 바람에 날리는 모든 움직임, 모든 방향 전환,
 
 
토트 2007-07-0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시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거에요. 그때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열심히 외웠던 생각이 나네요. 아직도 기억 나는 걸요.ㅎㅎ

프레이야 2007-07-0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처럼 빗소리가 좋은 날, 이 시가 확 당기네요. 오랜만에 읊어보고 갑니다^^

무스탕 2007-07-0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이 시를 외워오라고 해서 단단히 외우고는 거기에 감정 + 음률 + 동작을 보태서 수업시간에 낭독했던 기억이 나네요 ^^

홍수맘 2007-07-0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뚱댓글:
왜 전 갑자기 "목로주점" 노래가 떠 오른데요?

조선인 2007-07-0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트님, 초등학교 6학년에 가르쳐 주기엔 너무 어려운 시인 거 같은데요? 전 아직도 저 시가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요. 그저 멋스럽다 여겨 중얼거릴 뿐. ㅎㅎ
혜경님, 사춘기 때엔 장대비가 좋아 흠뻑 맞고 다녔는데, 지금은 빨래 안 마르는 걱정이 앞서요/
무스탕님, 감정, 음률, 동작까지 넣었다니, 오, 보고 싶습니다. 재공연을!
홍수맘님, 그 노래도 참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