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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소양과 담쌓고 사는 저지만 그래도 외우는 시 몇 편은 있습니다.
무어 그리 고민이 많은지 하얗게 밤을 새우던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옮겨적던 그 시들.
이사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책장은 정리중이고,
베란다에 하릴없이 쌓여있던 책뭉치를 헤집다가 발견한 일기장을 들춰보고,
제가 아직까지 그 시들을 암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버렸지요.
당신에게도 그런 시가 있겠지요?
추적추적 몇날며칠 째 비가 내리니, 함께 추억을 나눠 보기 딱 좋지 않겠습니까?
목마와 숙녀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고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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