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리뷰해주세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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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아닐까 한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현실의 유한성을 넘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고 의지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점점 더 짧아지는 주기적인 사랑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 하지만 이상적인 사랑은 여전히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일테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래서 시간과 사랑을 소재로 한 책들이 관심을 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기발하고도 적절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시간 여행을 하는 남자와 이를 기다리는 혹은 안타까워하는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 시공간을 초월한 이 둘의 사랑은 과거에서도 미래에서도 현재에서도 진행 중이다. 뒤죽박죽인 시간 속에서 안정적인 것이라고는 사랑, 그 하나밖에 없는 설정. 그러함에도 시간여행자를 혼돈 속에 사라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이 사랑은 그 깊이에 있어 깊고도 그윽하다.




유전적인 원인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헨리가 미래의 아내 클레어를 처음 본 것은 클레어가 6살, 헨리가 36살 때이다. 즉 현재의 클레어는 헨리를 알지만, 36살이 되기 전 헨리는 클레어를 만난 과거의 순간을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20살이 된 클레어와 28살이 된 헨리가 처음으로 현재에서 만나게 되므로 둘은 같은 과거를 겪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그런 상황인 것이다. 처음엔 이러한 설정이 당황스럽고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간여행을 떠나는 순간 자연의 이치처럼 자연스러워지므로 걱정하시지 마시길!




시간여행을 하는 헨리를 기다리는 과거의 클레어와 남편의 시간여행을 염려하는 미래의 클레어 사이에서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헨리의 가장 큰 난관은 미리 본 죽음이다. 시간여행으로 얻게 된 동상이라는 큰 부상과 아직 젊은 나이에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어 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가를 증명한다. 그렇지만 역시 독자는 시간여행자라는 특별한 상황에 기대 헨리의 죽음을 연장시키는 어떠한 사건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클레어의 사랑이 이쯤에서 끝나지 않기를, 그렇지 않다면 헨리의 더 많은 미래로의 여행을 목록에서 발견하고 싶은 욕심을 감추기 어렵다.




헨리가 결국 죽음의 시점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고백한 하나의 장면. 멋진 노파가 된 클레어가 작은 소음에 시선을 돌리던 그 모습을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에 느낀 감정은 마치 내가 시간여행자가 된 것처럼 감동적이다. 40여년이 지난 뒤에도 유효한 그들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소설은 헨리와 클레어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 그 아름다운 소재 외에 곳곳에 드리워진 시간의 조각을 맞추어 연결하는 묘미도 찾아 볼 수 있으니 소설읽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기대의 끈을 놓지 않기를.. 소설읽기를 마친 지금 이 소설의 감동을 영화로 곧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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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양장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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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이들의 책에서 얻어지는 것이 훨씬 많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는 복잡다단한 문제들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간명하게 설명하기 때문일까. 이토론 간단한 진리를 왜 구태여 어렵게 설명하고 포장하려 하는지 모를 일이기만 하다. 최근 이산가족 상봉과 맞물려 생각하게 되는 바가 많다. 가까운 지인 중에라도 찾을 수 있는 이산가족이 없어 그동안은 느껴지지 않던 그들의 고통이 세월이 흐른 뒤 절로 생겨났다고나 할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관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같은 부모에게서 난 형제나 부모사이를 거리가 멀고 시간이 지난들 떼어낼 수 있을까하는 그런 생각들이 부쩍 늘어나는 때였다.




이러한 때 읽은 몽실 언니는 짧은 이야기임에도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그런 책이다. 한 민족 간의 내전을 겪는 우리 나라의 5~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은 요즘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았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도망을 가 새아버지와 결혼한 엄마를 따라 나선 몽실이 겪어야 했던 신체적 고통은 어린 나이의 몽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착하고 사려 깊은 몽실은 이런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엄마를 한 인간이자 여자의 삶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을 가진 몽실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새장가를 들어 맞이하게 된 새어머니는 난남이를 낳다가 죽고, 전쟁통에서 구걸을 해 가며 지극정성으로 난남이를 키운다. 엄마와의 재회도 새아버지의 귀향으로 끝이 나고 다시 아버지와 살게 되지만 전쟁이 남기 것은 어느 것 하나 성하지 않은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고통이었다. 살아 돌아온 아버지였지만 가장으로서는 힘없는 아버지를 기댈 수 없는 처지였던 지라 다시금 구걸을 나서는 몽실이다. 그 와중에도 병든 아버지를 고치고자 노력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길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맞는다.




다시금 난남이를 홀로 거두지만 남는 것은 하나 없이 외톨이가 되는 몽실이의 모습으로 당시 사람들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렵고 배고픈 시절 찾아온 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전쟁이 남기고 간 상처는 이처럼 힘없고 배고픈 사람들의 몫인 것을 말이다. 몽실의 인생은 걸어도 걸어도 멀어지기만 한 고개처럼 멀고도 험난하다. 하지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곁에서 끊임없이 응원해준 어렵지만 마음씨 좋은 사람들을 보며 결국 이 사람들이 몽실을 버티게 한 버팀목이요, 시대를 이겨낸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전쟁의 이유는 어떠한 것이 되었든 용인 될 수 없다.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면 착하게 다 사귈 수 있다는 이 말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어린 몽실이도 이해한 이 말을 우리 또한 이해하고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전쟁을 막는 이유에서든 그렇지 않든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이기도 한 이 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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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을 리뷰해주세요.
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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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재미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 하는데 있다고 한다. 간혹 접하는 일본 소설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유독 인간의 어두운 부분인데 이 책 또한 다르지 않다. 덮어두고 싶은 그런 감정을 소설의 구성원들 대부분에게서 발견하게 된다면 이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그런 경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무언가 어둡고 소설 도입에 풍기는 악취가 섞인 비릿한 냄새가 나는 듯 한 그런 기분. 아마도 소설 속 인물들과 그들의 사고가 이전의 사고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에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한적하고 고요한 외딴 섬마을에 갑작스레 닥친 쓰나미로 온 마을 사람이 죽어버렸다. 열 네 살의 노부유키는 예쁜 소녀였던 미카를 사랑하는 철부지 소년이었고, 다스쿠는 이런 노부유키를 따르던 더 어린소년이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이들 셋은 우연한 계기로 섬에서 생존한 소수의 인물이 된다. 섬에서 반드시 사라졌어야 할 어른 셋이 살아남은 것은 어찌 보면 인생이라는 과정의 아이러니를 나타내기도 하고 이들 셋의 인생에 검은 빛을 드리운 원인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미카를 욕보이려던 관광객을 죽인 노부유키의 행동은 쓰나미와 더불어 영원히 잊혀 져야 할 과거였지만 이를 목격한 인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과거의 사고와 멀어지려는 노부유키에게 접근한 다스쿠가 대표적이다. 살인을 목격하고 노부유키에서 더더욱 집착하는 다스쿠는 어린 시절 아동폭력에 시달려온 피해자다. 자신의 경우에는 무덤덤하게 모른 척 행동으로 일관해 왔던 노부유키가 미카를 위해서는 살인까지 일삼는 것을 보고는 원망한다. 노부유키를 믿는 것 만큼이나 미워하는 것도 멈추지 못해 그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예전의 살인 사건으로 협박을 가하기도 한다.




다스쿠는 노부유키에 의해 죽게 되고, 이 사실을 미리 짐작했던 다스쿠에 의해 노부유키의 아내 나미코는 사건 전모를 알게 된다. 미카에게로 향했던 노부유키는 미카에 의해 철저히 자신의 이상을 짓밟히며 아내에게로 돌아온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아내는 그런 남편을 다시금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을 가슴에 넣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안한 날들일지도 모르는 그런 날들을 위해 진실을 묻는다.




결국 검은 빛은 살아남은 자 모두의 가슴에 자리했다. 다스쿠의 죽음으로 끝난 과거에 대한 협박은 멈추었지만 다시금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새겨진 검은 빛처럼. 폭력은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 되었든 인위적인 것이 되었든 그 자국을 깊게 새겨놓는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이야기에 내재된 의미가 많으면 많을수록 읽는 재미도 있거니와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아 후일에도 꺼내 보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지나치게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킨 책인지라 읽은 후에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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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를 리뷰해주세요.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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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르소설이라는 한 분야는 내게 있어 거리가 너무도 먼 그런 책이다. 무서움을 유난히 잘 타기도 하여 굳이 내 선택으로 읽게 되지 않는 책. 이번에 내게 온 두 권의 책은 모두 이런  류 이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까. 어렵지도 않은 문장과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도통 나가지 않은 날들이었다. 허나 무서움 보다는 재미 그 비스 무리한 것이 결여되어 있음의 이유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무서움을 느껴 잘 읽지는 않지만 장르소설의 매력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읽게 되는 매력, 즉 재미와 긴장 그리고 반전 등 때문일 것인데, 이 책에서는 재미도 긴장도 반전도 생기려다 만 듯 한 느낌이다. 알라우네라는 독일의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지어진 것 자체는 참으로 좋았는데 그걸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살인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써 나아간 덕에 긴장은 덜했고 그나마 살인에 대한 동기부여나 의미부여가 어설프다.




연쇄살인을 결심하게 된 경위도 그렇다. 내편 혹은 이쪽편이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게 만들도록 도움을 주었던 여러 사람의 우려도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살인의 동기는 어설프다 하더라도 연쇄살인 아닌가? 무언가 긴장 속에서 이루어져야할 이야기들이 살인자의 독백과 살인의 대상이 되는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차츰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게다가 살인자가 살인을 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성적인 갈등을 하게 되는데 이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살인자의 독백이라는 소설의 구성이 독자로 하여금 살인자의 시야의 편협성을 이해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는 절반의 성공은 거둔 듯 하다. 그렇지만 역시 소설은 장르소설의 대가 혹은 미스터리 소설계의 미다스의 손이라는 그럴듯한 칭찬만 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어지지 않는 장르소설의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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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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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즈음 인터넷으로 유포된 동영상 몇 개로 교권의 날개 없는 추락에 대해 우려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에 대한 반응은 대다수의 한탄과 교사 그룹 전체로의 매도로 양분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조차 교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현실이 공교육의 붕괴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현실에서의 교사 자신의 각성과 반성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다. 현장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좋은 교사를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이 책의 고다니 선생님처럼 말이다. 교직에 몸을 담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 교사 고다니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의 행동을 잘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 이었다. 돌출 행동이 많은 초등학교이기에 어린 아이들이란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을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을 막연히 초딩이란 단어로 평가하려 들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결국 아이는 아이들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는 평가가 선입견으로 작용하는 순간 참교육은 요원한 길이 될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아이들과 다른 마을에 거주하는 아이들 부모 사이의 반목, 장애아를 한 반에 두는 것에 대한 우려와 걱정, 아이들 간의 다툼, 관리자들과 교사들의 갈등 일상 학교생활에서 빈번히 접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있어 현실에서의 고민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이기적인 학부모에게 바른 말로만 대꾸한 것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행동으로 보일 때 결국 그 부모들도 고다니 선생님을 믿어 주었고,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데쓰조의 행동의 원인을 파헤치고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매일같이 신경을 쓰기도 했다. 학교 당국이 나몰라라 하는 교육행정을 펼칠 때에도 끝까지 아이들 편에선 고다니 선생님과 아다치 선생님을 보면서 우리 곁의 몇 몇 선생님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감상적인 사제 애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과 닮은 현장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읽은 후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나라면 어떠했을까?하는 되물음이 많았던 책읽기였는데 여느 교사 준비생이 울음을 터뜨리고 자신의 길을 걱정했다고 했다던 일화처럼 나 또한 자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허나 고다니 선생님처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고다니 선생님을 위한 길이고 아이들을 위한 길이었듯이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할 의지가 바닥으로 내려앉을 때 이 책을 한 켠에 두고 또 읽으며 용기를 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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