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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평점 :
조선사는 통사 뿐 아니라 부분의 역사 그리고 관련된 팩션까지 너무나 많은 책들이 서점가에 진열되어 있고, 최근 고대사 연구 분위기에 힘입어 고대사도 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 중간격인 고려사에 대한 책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대중들이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통사로서의 고려사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쉽고 재미있는 고려사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이 출간되었다. 고려 왕조 전반에 걸친 서술이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고 배경서술이 자세하여 재미도 있고 국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고려태조 왕건의 고려왕조 창건과 호족세력 약화를 위한 혼인정책, 광종의 과거제 실시와 노비안검법, 성종의 유교질서 확립, 현종의 군현제 실시 등등을 교과서로만 접해왔던 딱딱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이 책에서는 왜 그러한 제도와 사건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이전의 왕들의 치세는 후대왕의 치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 읽다보니 어느 새 두 권의 책이라도 결코 양이 많지만은 않았다. 세부적인 서술을 강조하기 보다는 역사적 배경을 쉽게 풀이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바탕으로 지어진 이 책은 그 양식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본기와 열전이라는 양식의 사기를 모방하여 왕들의 치세와 업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공신과 왕비와 후비 등을 뒤에 달았다. 대부분은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는 왕은 고려태조 왕건이다.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왕조의 창건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 때문이리라. 견훤과 궁예의 몰락 그리고 경순왕의 투항에 이르기까지 결코 승자가 될 수 없었을 것 같은 왕건이 이들을 제압하게 된 이유는 뚜렷해 보인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포용력이 그것인데 견훤과 궁예가 측근들에 의해 파멸하게 된 것과 대비된다. 투항해온 자들과 발해의 유민세력을 통합하여 강국을 만들고자 했던 왕건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렇다 해도 호족세력의 발호를 막을 수는 없는 때여서 혼인정책으로 이를 다스리고자 한다. 태조 당시에는 문제가 없어보이던 이 정책은 후에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혜종의 즉위와 죽음이다. 외가세력이 미천하여 의지할 곳 없었던 혜종에게 힘 있는 외가를 두었던 이복동생들은 위협적이다. 여기에 각 지방 세력까지 연합하여 짧은 생을 두고 마감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 왕의 침소에 든 자객의 신분을 묻지 않았을 정도이니 그의 권력이 보잘 것 없었음은 말해 무엇 할까. 그 뒤에 정종이 즉위하게 되지만 곧 광종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된다. 구체적인 사안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단지 유추해 볼 뿐이지만 지역 세력 간의 갈등이 정종을 유약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호족세력의 견제 속에서 왕위에 오른 광종은 왕권강화를 위한 일들에 착수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제를 실시한 일이요, 노비들을 양인으로 해방하여 군사력과 재정 강화를 위한 노비안검법 실시가 그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에 대한 반발세력도 거세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거부의 움직임은 후에 광종의 피바람을 불러오게 되어 아들마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차에 왕위에 오른 경종은 부왕의 철권정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호족세력과의 화해모드를 분위기로 삼아 화합의 정치를 하고자 한 것인데 생각하던 바는 그리되지 않는다. 경종 죽음 이후 아직 어린 아이였던 송을 대신해 성종이 즉위하게 된다. 이 부분은 현재 천추태후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인데, 전혀 다른 시각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성종은 한없이 훌륭한 군주로 그리고 천추태후로 알려진 헌애왕후와 현종의 어머니 헌정왕후는 불륜을 저지른 여인들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목종이 유약한 군주로 그려져 있는 것도 같은 시각이다. 고려사를 편찬한 시기의 조선이 유교를 치도로 삼고 있기에 그러한 시각이 당연한 것일 거라는 생각이다.
목종은 어머니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신하에게는 죽임을 당한 불운한 군주였다. 후일 현종이 즉위하게 되는데 고려에 태조의 혈통이 단 한명 밖에 없음이 원인이다. 어렵사리 왕위에 오른 현종은 왕권 확립을 위한 5도 양계 체제를 실시하고 지방을 제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내치를 확립하고 거란의 침입을 막는 등의 국방에도 힘을 기울여 후일 덕종과 정종 임금이 안정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나 하늘은 어진 자를 일찍 데려가는지 덕종, 정종 임금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이복 아우 문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데 이 임금이 고려 시대 최고의 황금기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문종이다. 문종에 이어 순종, 선종, 헌종, 숙종이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재위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인지 전하고 있는 역사의 내용도 적은 편이다. 후대의 고려왕조에 비해 강건한 왕권을 쥐고 있다고는 하나 외침으로 인한 이유때문인지 전대에 비해 다소 흔들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진의 부상으로 인한 고려의 대응이 인상적이다. 숙종의 비원을 알고 있는 예종은 여진족을 정벌코자 하는 노력에 힘을 쏟는다. 그 전에 내실을 다지고 백성들의 생활을 편안케 하는 조치들을 취하는 것을 잊지 않은 예종은 성군의 면모를 지닌 임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힘입어 여진 정벌의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동북 9성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후일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여진에게 9성을 돌려주는 결단력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현명한 판단이라 여겨진다. 크고 작은 소모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이유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후일 여진의 금 건국과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그간의 치세가 빛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이후의 인종 조에 왕권이 흔들리게 됨으로서 무신들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되는 경위는 하권을 통해 확인 해 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