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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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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들의 일대기를 읽노라면 당대의 사회를 지배한 위정자들의 모습에 대한 분노와 민중들에 대한 연민 비슷한 감정이 교차한다. 이번에도 같았는데 더욱이 마음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시간은 흘렀고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라는 그 말이 진실을 왜곡 시키는 기능을 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물론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용의 정신이 메말라 있음을 매일 보고 겪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부에서는 주로 조정에서 정조와의 관계 그리고 시대를 잘못 만났지만 귀이 쓰시려고 하는 임금의 배려로 백성들을 돌볼 수 있는 목민관 시절의 정약용을 만나보았었다. 이번 2부에서는 정조의 죽음 이후 몰락해 가는 남인 세력과 정약용 일가의 모습을 담는다.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엮은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1801년 순조 1년부터 1818년까지 장장 18년의 세월이다. 정조의 뼈를 깎는 인내의 빛은 결국 죽음과 더불어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남인 세력을 절멸하려는 노론과 대비 정순왕후의 만남은 이후 조선의 혼란과 쇠락을 가속화 시키는 원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집에 갇혀 변화를 거부했던 경직된 시대, 소아에 갇혀 개방을 거부했던 폐쇄의 시대, 반대 당파를 공격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서슴없이 죽이던 증오의 시대,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증오했던 불행한 시대의 유산을 한 몸에 안고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죽음은 단지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지향했던 정조 시대 조선의 죽음이기도 했다. p.90】




처음에는 장기에서 그리고 다산초당이라고 알려진 강진에서의 유배시절을 소개한다. 이곳에서의 학문에의 끊임없는 추구는 결국 그가 남겨놓은 저서들로 미리 짐작할 뿐이다. 당시 정약용이 썼던 글과 편지들을 소개하는 면이 많아 그의 면모를 바로 볼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약용의 위대한 점은 시대가 그러했지만 결코 분개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정에 처음 나아갔을 때에는 전문기술자, 목민관으로 후에 유배지에서는 후세를 위한 학문의 정리로 그 영향을 오늘날에도 전해주고 있는 그는 진정한 지식인이요 대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당시 시대의 우울함으로 인한 백성들의 한 많은 삶을 개혁하고자 하는 방안은 나라를 바로세우고 백성들을 위하는 진정한 위정자요 실학자의 모습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나라의 정치를 하는 이들이 보고 듣고 익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약용은 백성을 위해 임금이 있고, 목민관이 있는 것이지 임금이나 목민관을 위해서 백성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임금의 정치가 퇴폐하면 백성이 곤궁하게 되는데, 그러면 나라가 가난하게 된다. 나라가 가난하면 부세의 징수가 가혹하게 되는데 그러면 인심이 떠나가고, 그러면 천명이 가버리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시급한 것은 정치에 있다.”라고 말했다. p.159】




시대를 앞서간 그가 후세에 자신을 바로 볼 것을 원해 지었다는 자찬묘지명을 오늘날에는 어찌 바라볼 것인가.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않는가?”라는 그의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는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 서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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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하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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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마지막 왕이었던 예종이 안팎으로 힘을 다했지만 고려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부의 적으로 그리고 후일에는 안과 밖의 적들에 의해 그러했다. 고려를 처음 위기에 몰리게 한 이들은 문벌귀족이었다. 고려의 여느 왕보다 유명한 이가 이자겸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종의 장인으로 왕을 능멸하고 국사를 좌지우지 하려했던 그는 이러한 문벌귀족의 대표 격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때이니만큼 왕권은 약할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자겸은 결국 제거되었지만 약화된 왕권은 다시 세우기가 어려운 것인지 또 다른 파란이 몰려온다. 서경천도 운동이 그것인데 국내적으로는 지역싸움이 국외적으로는 자주적 혹은 사대적 외교정책과도 맞물린다. 알다시피 실패한 운동의 결과는 개경파의 득세로 막을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때였다. 인종의 시대에도 이랬지만 그의 아들 의종 시기에는 더욱 심란한 상황이 되었으니 이는 전대의 왕권약화가 그 원인이리라. 문벌귀족의 득세는 결국 한 세력의 권력집중을 보이고 그 외 세력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가져온다. 다만 불만 세력이 병권을 쥐고 있을 때에는 반란이 여지가 많음을 몇 차례의 역사적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여서 무신들은 문신들을 몰아내고 왕을 가두는 등 권력을 거머쥐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부터 우리는 생경한 왕들을 만나볼 수 있다. 국사에서는 무신집권기의 권력자들의 변천만이 나올 정도로 왕들의 입지는 약한 것이었다. 의종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왕을 세우고 제거하는 것도 무신들이었으니 왕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명종, 신종이 그러했고 강종이 그랬다. 고종 때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최씨의 무인정권이 몰락하기는 하였지만 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몽고의 침입 때문이다. 안의 적들을 밖의 적들이 처단한 것이니 이들의 간섭이 얼마나 심할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때로 몽고의 지배를 온전히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삼고는 하지만 직접지배와 마찬가지로 고려의 원 간섭기가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원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을 또 다시 기만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총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등의 시호만 보아도 짚이는 것이 있으리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원의 국력이 약화되었으므로 고려에도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이때에 왕위에 오른 인물은 또한 반원적 성향이 뚜렷한 인물이기도 하였으며 개혁적인 인물이기도 한 공민왕이다. 반원을 내세우며 개혁에 착수한 공민왕은 변발, 호복의 철폐를 시작으로 정동행성, 쌍성총관부 등을 폐지하여 자주적인 국권회복에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권문세족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더욱이 어려운 점은 외적들이었다. 원명교체기에 큰 세력으로 성장한 홍건적이나 왜구의 침입은 국가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신돈이라는 카드를 내밀어보기도 하였으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이 아직은 무리수 였던 듯 싶다. 왕비의 죽음 이후 기이한 행위들을 보이는 공민왕의 기록은 영화 쌍화점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호위무사격이었던 홍륜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어떤 학자는 영민하고 총명했던 공민왕의 이러한 기록이 조선왕조의 창건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이라고 하였지만 말이다.




이러한 시각은 우왕에 있어 더욱 뚜렷하다. 이성계 세력에 의해 폐위 당했기에 고려사의 세가에도 오르지 못했고 기록도 인신공격의 성격을 지닐 정도다. 그의 아버지가 신돈이었다는 설로 일축하고 마는 것이 그것이다. 역사의 기록 또한 승자의 기록인 것을 입증하는 임금이 바로 우왕일 것이다. 폐위된 우왕의 아들 창왕을 왕위에 앉힌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다. 공민왕의 후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폐위되었다는데 그의 아들이 왕이 되다니.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처음부터 임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정당성의 문제라든지 민심 문제 등 이씨가 임금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창왕이 일 년 만에 죽고 잠시 공양왕을 왕위에 올리기도 하였지만 마지막은 이씨왕조의 창건이었다. 이성계 혼자만의 욕심이었다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허나 고려의 운은 이미 시간을 달리하고 있었다. 왕씨의 고려는 국가의 위기를 헤쳐 나갈 만한 힘이 없었다는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고려가 막을 내리자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날이 밝았다.




이 책은 고려 전반의 역사를 담은 책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고려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뜻도 이유도 모르고 재미없어 보이는 국사에 대한 이미지도 개선 될 것이라는 생각도 보탠다. 문벌귀족들의 발호로 시작하여 무신정권 그리고 몽고의 간섭기 까지 어려운 시기였을 테지만, 그 대응에 있어 미흡했던 점들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대의를 저버린 당대의 지배층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책 두 권으로 고려사를 한 눈에 알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세부적인 고려의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책읽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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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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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는 통사 뿐 아니라 부분의 역사 그리고 관련된 팩션까지 너무나 많은 책들이 서점가에 진열되어 있고, 최근 고대사 연구 분위기에 힘입어 고대사도 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지만 그 중간격인 고려사에 대한 책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있기야 하겠지만 대중들이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통사로서의 고려사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쉽고 재미있는 고려사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이 출간되었다. 고려 왕조 전반에 걸친 서술이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고 배경서술이 자세하여 재미도 있고 국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고려태조 왕건의 고려왕조 창건과 호족세력 약화를 위한 혼인정책, 광종의 과거제 실시와 노비안검법, 성종의 유교질서 확립, 현종의 군현제 실시 등등을 교과서로만 접해왔던 딱딱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이 책에서는 왜 그러한 제도와 사건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이전의 왕들의 치세는 후대왕의 치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 읽다보니 어느 새 두 권의 책이라도 결코 양이 많지만은 않았다. 세부적인 서술을 강조하기 보다는 역사적 배경을 쉽게 풀이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바탕으로 지어진 이 책은 그 양식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본기와 열전이라는 양식의 사기를 모방하여 왕들의 치세와 업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공신과 왕비와 후비 등을 뒤에 달았다. 대부분은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는 왕은 고려태조 왕건이다.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왕조의 창건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 때문이리라. 견훤과 궁예의 몰락 그리고 경순왕의 투항에 이르기까지 결코 승자가 될 수 없었을 것 같은 왕건이 이들을 제압하게 된 이유는 뚜렷해 보인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포용력이 그것인데 견훤과 궁예가 측근들에 의해 파멸하게 된 것과 대비된다. 투항해온 자들과 발해의 유민세력을 통합하여 강국을 만들고자 했던 왕건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렇다 해도 호족세력의 발호를 막을 수는 없는 때여서 혼인정책으로 이를 다스리고자 한다. 태조 당시에는 문제가 없어보이던 이 정책은 후에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혜종의 즉위와 죽음이다. 외가세력이 미천하여 의지할 곳 없었던 혜종에게 힘 있는 외가를 두었던 이복동생들은 위협적이다. 여기에 각 지방 세력까지 연합하여 짧은 생을 두고 마감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 왕의 침소에 든 자객의 신분을 묻지 않았을 정도이니 그의 권력이 보잘 것 없었음은 말해 무엇 할까. 그 뒤에 정종이 즉위하게 되지만 곧 광종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된다. 구체적인 사안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단지 유추해 볼 뿐이지만 지역 세력 간의 갈등이 정종을 유약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호족세력의 견제 속에서 왕위에 오른 광종은 왕권강화를 위한 일들에 착수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제를 실시한 일이요, 노비들을 양인으로 해방하여 군사력과 재정 강화를 위한 노비안검법 실시가 그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에 대한 반발세력도 거세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거부의 움직임은 후에 광종의 피바람을 불러오게 되어 아들마저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차에 왕위에 오른 경종은 부왕의 철권정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호족세력과의 화해모드를 분위기로 삼아 화합의 정치를 하고자 한 것인데 생각하던 바는 그리되지 않는다. 경종 죽음 이후 아직 어린 아이였던 송을 대신해 성종이 즉위하게 된다. 이 부분은 현재 천추태후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인데, 전혀 다른 시각의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성종은 한없이 훌륭한 군주로 그리고 천추태후로 알려진 헌애왕후와 현종의 어머니 헌정왕후는 불륜을 저지른 여인들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목종이 유약한 군주로 그려져 있는 것도 같은 시각이다. 고려사를 편찬한 시기의 조선이 유교를 치도로 삼고 있기에 그러한 시각이 당연한 것일 거라는 생각이다.




목종은 어머니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신하에게는 죽임을 당한 불운한 군주였다. 후일 현종이 즉위하게 되는데 고려에 태조의 혈통이 단 한명 밖에 없음이 원인이다. 어렵사리 왕위에 오른 현종은 왕권 확립을 위한 5도 양계 체제를 실시하고 지방을 제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뿐만 아니라 내치를 확립하고 거란의 침입을 막는 등의 국방에도 힘을 기울여 후일 덕종과 정종 임금이 안정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나 하늘은 어진 자를 일찍 데려가는지 덕종, 정종 임금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이복 아우 문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데 이 임금이 고려 시대 최고의 황금기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문종이다. 문종에 이어 순종, 선종, 헌종, 숙종이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재위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인지 전하고 있는 역사의 내용도 적은 편이다. 후대의 고려왕조에 비해 강건한 왕권을 쥐고 있다고는 하나 외침으로 인한 이유때문인지 전대에 비해 다소 흔들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진의 부상으로 인한 고려의 대응이 인상적이다. 숙종의 비원을 알고 있는 예종은 여진족을 정벌코자 하는 노력에 힘을 쏟는다. 그 전에 내실을 다지고 백성들의 생활을 편안케 하는 조치들을 취하는 것을 잊지 않은 예종은 성군의 면모를 지닌 임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에 힘입어 여진 정벌의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으며 동북 9성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후일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여진에게 9성을 돌려주는 결단력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현명한 판단이라 여겨진다. 크고 작은 소모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이유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후일 여진의 금 건국과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그간의 치세가 빛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이후의 인종 조에 왕권이 흔들리게 됨으로서 무신들에게 권력이 넘어가게 되는 경위는 하권을 통해 확인 해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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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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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심리학의 만남이라. 얼핏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보다 절묘한 만남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어차피 역사란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역사학자들의 상상이 낳은 결과이다. 사료의 불충분성이 커질수록 그러한 결과는 더욱 필요한 절차가 된다. 고대에 비해 사료가 많이 남은 조선의 역사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당시의 정황을 기록한 내용이 그 상황을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차피 상상을 해야 한다면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는 심리학에 기대어 보는 시도도 좋을 것이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오랜 시간 인간의 행동을 심리적인 이유에 비추어 분석해 놓은 학문이라고 할 때, 얼토당토 않는 시도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역사적 자료를 갖추어 놓고 심리학의 힘을 빌려 상상을 돕는 이 책은 흥미도 있거니와 역사적 인물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총 5인의 인물들을 만난다. 정조, 이이, 허균, 연산군, 황진이. 이 5인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인물들이다. 따로 그 역사적인 내용을 열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심리학적인 분석이 더해져 흥미를 보태고 이해를 더하고 있다. 5인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어릴 적 경험을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 나타나게 되는 심리적인 문제 또한 어린 시절의 경험에 원인을 두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억압된 무의식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었었다.




어린 시절 겪게 되는 무의식이 표출하고 이겨낼 때에는 승화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그렇지 않고 억압될 경우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단다. 전자의 경우가 정조와 이이였다면 후자는 그렇지 못했다. 여기에 개인적인 성향과 더불어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 또한 부모의 자녀 양육이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또 한 번 입증하고 있다.




허나 저자가 심리학자 이다보니 1차적 사료를 이용하는 대신 2차적 사료를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점이 남는다. 대개 유명한 역사도서를 인용해 인물들을 분석했기 때문에 역사도서를 쓴 지은이의 시각을 반영하여 새로운 해석보다는 기존의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옳은 역사읽기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사료의 이용 한계가 자칫 오류를 남길 수도 있으므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저자의 분석을 따라 읽다보면 역사를 이룬 이들도 오늘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고뇌를 겪었던 이들이라는 점을 느끼게 되어 친밀감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읽기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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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
이덕일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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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된다고 했던가. 현재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여자들의 권리는 이전의 여인들이 자신의 운명과 관습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했던 노력 덕이다. 그 여인들이 있기에 오늘의 여자들의 권리 신장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노력이 남자이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역사 분야의 인물이라는 것이 반갑다. 물론 이덕일님은 소외되었지만 소신을 세우려 했던 인물을 높이 평가하는 이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역시 반가운 일은 어쩔 수가 없다.




책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써 명성이 대단한 신사임당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강인하지만 이 또한 후대 사대부들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는 양처는 아니었던 것이 이유인데, 율곡 이이의 높은 성품과 학문을 비추어 신사임당이라는 여인을 평가했다. 현재 오만 원 권 지폐의 인물로 지정된 일에도 이러한 시각이 담겨있음을 저자는 한탄해 한다. 오만 원 권 지폐에 담지 말아야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사임당 본인의 자질을 바르게 알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그 시대 이전까지는 여인들의 권리가 조선 중기 이후에 비해 월등했던 것임을 비추어 볼 때, 여인들에 대한 깊은 차별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음도 시사한다.




더욱 확실한 것은 조선 이전의 여인들을 살펴보는 일이다. 현재 드라마로도 인기리에 방영중인 천추태후가 대표가 될 수 있겠다. 성종의 유학 이념에 맞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 그녀는 단연코 대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원나라의 황제의 정비가 된 기황후, 신라왕실을 쥐락펴락했던 미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역사 속 여인들의 이미지를 철저히 파괴할 만큼 파격적이다. 이들이 생소한 이유는 이후 남성들의 시각으로 적힌 역사서에 부정적으로 기술되었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바로보고자 하는 이가 있으니 앞으로 올바른 시각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겠다.




인수대비 한씨, 장희빈, 혜경궁 홍씨, 문희는 인생의 굴레를 이겨내려 한 냉혹한 승부사들이다. 결과가 좋았다 할 수 없지만 그들의 노력이 쉬웠다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다. 천하를 경영한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에 대한 평가도 재고되어야 함은 마찬가지이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선덕여왕의 노력 때문이었으며 진성여왕의 치세로 신라의 쇠락이 가속화 되었다 말하는 역사가들의 평가는 잘못 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 나라의 창업을 이끈 소서노, 허황후, 선화공주, 민경왕후 민씨의 삶도 재조명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다행히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이들의 일생을 담은 책과 방송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모든 여인의 삶이 역사에 상대적으로 작게, 혹은 부정적이게 기술되어 있어 아쉽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난정, 어우동 등인데 이들의 행적이 옳았던 것은 아니나 당대 사대부들이 이들의 동반자였음을 볼 때 그 처사가 사뭇 과하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사대부들의 이중적인 성향의 피해자였음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현세자의 죽음만큼이나 안타까운 이가 소현세자빈 강씨인데 타국에서 민족의 어려움을 딛고 경영자로써의 훌륭한 면모를 보여주었던 이의 죽음은 한스러울 정도다. 이들의 움직임을 바로 잡아주지 않는다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여자들의 삶이 부정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불어 의롭게 살다 돌아간 논개, 김만덕, 최용신의 삶 또한 그 존재로써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많은 여인들의 삶을 담고자 한 노력으로 책의 분량은 꽤 많은 편이었으나 각 여인들 삶을 살피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고 있었다. 역사를 이토록 재미있고 흥미롭게 쓴 이덕일님은 역시나 역사의 대중화에 일조하는 큰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뜻이 있는 역사를 기록한 그의 노력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울러 그가 지적했듯이 여자 혹은 남자가 아닌 우리 역사를 만들어간 인물이라는 점에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여성들의 실제적 삶을 추적해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의도가 충실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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