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읽기의 혁명 2 -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인다 신문 읽기의 혁명 2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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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읽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혹은 인문관련 서적에서 사회비판적 서적으로 옮겨가고 있다. 사회를 바르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감이 오고 있을 정도로 더딘 과정이기도 했다.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안내를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었는데 이 책도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사회비판적 서적을 읽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던 이유에는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진실을 왜곡하고 현상을 주관적으로 잣대 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인해 신문보기를 즐겨하는 나로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보수신문의 하나를 구독하면서 정기구독이 끝나갈 무렵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간지는 그대로 대신에 주간지는 진보적인 매체로 따로 구독하게 되면서 나의 신문읽기가 그동안 얼마나 편향되어 있던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늘어갔고 이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모르고 있어 죄가 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알아가면서 부딪히는 좌절감이 커 갈수록 앎에 대한 목마름은 더해가듯이 이제는 더욱 잘 알아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싹 틔울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책읽기는 그 결실과도 같았다.




이 책은 1권에 이어 신문읽기의 혁명이라는 고갱이를 담고 있다. 신문읽기는 이해가 잘 될 터이지만 혁명이라니? 민주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민주시민으로써 신문읽기의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여정은 과히 혁명의 과정이라 불리 울 만큼 어렵고, 어렵지만 그 길을 통해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민혁명으로 되찾은 민주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는 세상을 바르고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창 그 언론의 주권을 되찾는 신문읽기의 혁명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 이유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보수언론에서 주창하듯 잃어버린 10년은 과연 옳은 표현일까? 오히려 노무현 정권은 보수언론의 편집논리에 발맞추어 나아갔음을 관련 정책으로 제시하고 진보정권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통해 그 논리마저 진실이 아님을 지적한다. 노무현 정권은 보수언론과의 감정적 대치를 보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그들의 논리와 같았음을 지적하면서 집권 후반기 국론 분열은 오히려 감정적 대치의 결과였음을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지지자들 그리고 개혁적 성향의 네티즌의 정파적 신문읽기에 그 원인이 있었음을 꼬집는다. 정파적 신문읽기는 이후 이명박 정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오고 있고 정책을 보지 않고 정치적 성향 혹은 정치적 인물에 대한 평가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을 불러오고 말았다. 더 큰 분열의 조짐은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정파적 신문읽기의 ‘함정’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신문읽기의 혁명 그 첫 번째 방법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구체적인 의문이 생긴다. 책은 차례대로 그 과정을 짚어주고 있기 때문에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목요연하다. ‘경제면 넘어 경제 읽기’에서는 정치사회면 기사와 경제기사를 분리시키는 편집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우리 삶을 틀 지우는 경제를 정치와 별개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신문읽기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보수언론의 편집논리가 숨겨져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문의 탄생과정에서 알 수 있다시피 성공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광고할 매체를 찾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신문은 자본가들의 논리를 반영하는 통로가 되어 왕과 귀족을 압박할 수 있었다. 물론 노동자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본가들을 압박하고자 하였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그들의 민중언론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이 행한 조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민중언론을 약화하고자 하는 방안은 신문구독료 인하와 신문광고를 통한 통제였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 삼성은 진보신문에 광고를 싣지 않고 있고 얼마 전 주간지 한겨레에서는 진보언론의 미래를 고민하며 진보언론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구독료 인상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라고 지적한 바 있음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문이 중산층을 겨냥해 기득권 유지를 위한 기사들을 쓰고 있는 이유는 신문사 자체도 대기업의 하나이고 그들의 고객 또한 중산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파적 신문을 넘어선 품격 있는 신문읽기도 필요하다. 신문의 품격을 판단하는 잣대 진실, 공정, 사랑을 알면 그 해답이 보일 것이다. 진실을 왜곡한 신문은 독이든 사과를 건네는 마녀와 같다. 우리는 매일 아침 건네 오는 신문이라는 사과에 독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마녀’는 일반 독자들이 신문지면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깊숙이 똬리 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특권이나 기득권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때로는 ‘거친 색깔공세’로, 때로는 ‘먹음직스러운 사과’로 민심을 호도하고 있기에 더 그렇다.p.119” 진실을 왜곡하는 신문은 결국 공정을 해친다. 공정을 잃은 신문내용을 보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보수언론의 논리로 변질되어 갈 수 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편협적인 사랑이 아닌 정파를 뛰어넘은 인간애 동시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유의하고 지켜볼 때 신문의 품격은 되살아 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제는 신문을 더욱 깊이 있게 읽을 줄 알 수 있게 해주는 단계로 돌입한다. 신문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파헤치고 우리 모두에게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에서는 세계화, 민중, 이해관계라는 핵심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세계화라는 논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혹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것인데 이에 관한 책으로 88만원 세대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있으니 이를 통해 보충해 두어도 좋다. 결국 그들의 자유란 특정계급의 자유일 뿐이라는 설명에 눈이 닿는다. 세계적으로 퇴조하고 있는 이 논리가 대다수 국민의 요구를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보수언론의 논리가 숨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중에 대한 보수언론의 시각은 더욱 파괴적이다. 민중배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논리는 세계 노동자들의 요구를 싣지 않는 것으로도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파업과정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것을 통해 확실시 된다. 이를 읽는 대다수 민중의 시각은 노동자들에게 차갑기만 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민중은 다름 아닌 신문 독자 자신이다. 스스로 민중이면서도 민중이란 말을 낯설게 여기는 현실은 신문의 여론 지배력에서 비롯한다. p.209"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방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이 민중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짚어둔다.




위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혹자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신문을 보아야 하는가? 이런 논리라고 한다면 곤란하다. 왜곡된 기사를 근절하고 바른 사회의 지평을 열어갈 참 언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자 신문의 갈 길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지배세력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의 혁명으로 많은 이들의 의견이 개진되고 보수언론의 논리가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어려움이 남아 있다.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통로로써의 언론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기득권자들의 논리가 담긴 신문을 대다수 민중의 요구로 채우는 신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노력뿐이라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 공감을 만들어줄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의 경제생활을 단순히 ‘취업’이나 ‘호구지책’으로 여길 게 아니라 정치생활과 연결 짓는 다리로 신문을 읽으며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 자기를 창조적으로 형성해 갈 때, 그때 신문 ‘읽기의 혁명’은 곧 ‘혁명 읽기’다. 그때 신문읽기는 예술이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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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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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옛 그림을 읽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고는 크게 고무된 적이 있었다. 세계 명화에 대해 열광하면서도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은 적은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알면 잘 보인다고 했던 그 말이 절절이 와 닿아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시간이 되었기에 이번 몽유 읽기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안견의 등장과 도화서에서의 부적응 등은 으레 천재 예술가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 강요되는 법칙과 관습에의 강요. 새로운 것,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작품을 열망하는 예술가의 고민. 그것이 결국 안견을 찾아왔고 해답을 찾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월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인연을 맺게 된 안평대군은 이러한 안견에게 진귀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안견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꿈을 그려달라는 안평의 말에 이를 수락한다.




간절히 원하면 꿈으로도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꿈으로 나타난 안평의 도원은 무엇일까. 무엇을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 결국 몽유도원도가 그려지게 된 배경이 뒤이어 전개 되면서 당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전개된다. 책은 안견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역사 소설의 매력을 이어 나간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막고자 했던 인물들과 이를 감지하고 임금을 도와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안평은 그 지지자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안평이 이루고자 했던 이상향은 꿈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를 후일에도 변하지 않는 그런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했던 안평의 간절한 바람이 안타깝다.




목효지의 등장으로 풍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으로 뽑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명당찾기라는 비난을 가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뜻이 갸륵하다. 목효지가 찾고자 했던 명당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평안한 그런 땅이 아니었을까. 모두의 바람이 된 이상향은 결국 그림으로만 남아 전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그런 그림으로 말이다. 이 그림이 얼마전 국립중앙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 그림의 사연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짧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여론 때문인지 긴 시간을 기다리며 스치듯 감상해야 했었다. 그림을 보면서 이 소설의 안경과 안평, 그리고 목효지가 떠올라 오래도록 눈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는데...어찌 되었든 결과는 그리 되고 말았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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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의 미래일기 - 쓰는 순간 인생이 바뀌는
조혜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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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의 행보에 대해 그리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은 그녀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미미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본 활동을 위해 잠시 국내 활동이 뜸했던 기억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줄곧 양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줄 모를 정도이니 말이다. 다만 가끔 골룸 분장을 하고 목소리와 제스쳐가 컸던 개그우먼이라는 기억만이 있을 뿐이었다. 일본 활동을 위해 공부했던 경험을 배경삼아 일어 관련 책을 낸 그녀가 에세이 그것도 일기, 이름도 낯선 미래일기를 낸다고 했을 때 대단한 사람이네!하는 감탄보다는 의아함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별로 깊은 관심도 호감도 없던 내게 이 책은 그녀를 다시 보게 하는 계기요, 긍정과 열정 그리고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조혜련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된 기회가 되었다.




미래의 일을 미리 상상으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책을 채워나간다. 무모함의 극치요 도전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지지 않을 그녀는 자기계발서적을 뒤적이던 어느 날 직접 목표를 구체적으로 경험해보는 극적인 도전을 하기에 이른다. 목표를 정하기만 하지 말고 나아가 상상으로 경험하는 것은 어떠할까? 분명 효과의 극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까하는 반신반의와 자신이 먼저 구해보고 여의치 않아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용기로 일을 치러낸 것이다.




어찌 보면 당혹스럽고 유치한 면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절대 그렇지 않다. 꿈을 꾸되 진실로 꾸는 듯한 느낌에 감동이 깃들여 있고 큰 꿈이되 노력이 곁들어진 꿈이기에 허황 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꾸준히 더 높은 이상을 위해 나아가는 그녀를 보며 작아지는 자신과 달라지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해준다. 이렇게 끊임없이 과감한 도전을 하는 그녀이지만 ‘누구보다’라는 비교에 있어서 성공은 아니다. 자신의 행복과 만족 그리고 모두의 행복까지 아우르는 목표를 가진 그녀이기에 그녀의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픈 생각이 절로 난다.




하루 반 권 책읽기를 생활화 하려 한다는 그녀답게 자신이 읽은 책의 일부를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활화 하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신이 읽고 변화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이 책이 새로운 삶 그리고 도전하는 삶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리라 믿는다. 미래일기를 전적으로 쓸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일기 옆 란에는 미래의 모습을 잠시라도 적어두려는 노력을 해볼 요량이다. 그녀처럼 왕성한 긍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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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선생님이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 시장, 부동산, 노동
전국사회교사모임 엮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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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영역은 언제나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의 영역인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한다. 이를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여서 수요공급의 원리나 그래프 등을 이용해 척척 그려 보이는 것이 경제를 잘 가르치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하는 고민의 시작은 어쩌면 현실 경제생활에 있어 합리적이고 올바른 경제인을 육성하는 데 일조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이 한권의 책은 그러한 의문의 시작이고 사용자가 아닌 대다수의 소비자 혹은 노동자인 우리들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크게 세 가지 분야에 대한 의문으로 책은 시작한다. 시장, 부동산, 노동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 책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므로 참 쉽고 간결한 문체로 쓰여 졌다. 누구나 읽어보아도 이해하기 쉽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싱거워 보일 그런 내용이지만 이제까지 배워왔던 객관의 영역인 경제이기를 거부한다. 우리 모두 의문을 갖고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달라질 수 있음을 짚어주는 작은 시도가 될 만한 뜻있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시장은 정말 합리적일까? 아니아니 시장실패도 있잖아. 하면 조금 똑똑해 보일지 모르겠다. 허나 정말로 시장실패 외에 다른 문제점은 보이지 않을까? 시장에 맡겨도 될 만한 일들과 소비자로써 혹은 사회 구성원으로써 함께 모색해 보아야하는 일들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의료 민영화라든지 대전의 대안화폐의 사례라든지 하는 사례를 읽다보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인으로써 살 수 있을만한 방법은 도처에 널려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시장이라는 것이 처음 생긴 순간부터 사람들의 편의와 행복을 위한 것임을 확인한다면 지금 달라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책은 아니지만, 조금 더 합리적이고 올바른 인간으로써의 행복한 삶을 위한 책이다 보니 부동산이나 노동에 대한 내용이 많다. 우리 모두가 편안히 살 수 있는 주거환경과 일 하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은 시장경제에서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시장만능주의라는 말과도 상통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모든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의 쓴맛을 보아야 하는 것이 어느덧 진리로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쟁하고 지면 패배를 인정하고 포기해야 하는 걸까?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그렇게 만들고 시장만능주의가 패배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청년 실업은 더 이상 몇몇 게으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원하기 때문에 고생을 자초한다 라는 인식이 그럼에도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더 좋은 일자리는 그 절대수를 줄이고 있는데 말이다. 기업들의 경쟁력을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는 일은 합리적인가? 기업은 개인적인 사업 영역이라는 생각 나아가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권을 사용할 뿐이라는 생각은 더 많은 사람들의 안정과 행복을 헤치고 가지게 되는 영역임을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이미 주거확보율은 100%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구하지 못해 혹은 구하더라고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주거권은 확보되지 못해도 괜찮은 걸까? 이제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생각해볼 시기라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아님을 안도하기 보다는 최저임금으로도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민영화 더 많은 자율을 시장에 부여하는 것으로는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 물론 가진 돈으로 행복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시장이기는 하지만 시장이 해도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분명 구분되어야 옳다. 이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이 세상을 다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선은 알 때이다. 이 책은 알되 제대로 알게 하는 좋은 책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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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 NIE 학습법
정문성 지음 / 파인앤굿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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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는 내 모습을 보며 보인 아이들의 첫 반응은 “아니 무슨 여자가 신문을 읽어요?”였다. 신문읽기를 즐기는 나로서는 신문의 장점을 늘어놓는 데 언제나 일조하는 나에게 그런 질문은 의외의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신문의 유용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해주려고 했건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격이다. 신문은 남자 어른들만의 전유물처럼 그리고 글도 많고 어려운 말들만 가득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그런 질문을 하게 한 것이다.




신문은 “살아 있는 교과서”라는 지은이의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 사회를 가르치고 있는지라 용어에서부터 사회 각 분야에 내재된 원리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례들을 찾기 마련인데 그 때마다 신문은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는 한다. 물론 신문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사회를 보는 눈이 생김은 물론이다. 보수 혹은 진보의 논리를 확산한다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실보다 공이 많은 것이 신문읽기라고 생각하는 바이므로 교차하여 읽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때로는 제시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찾고 이해하기로써의 신문 활용 교육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배운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자기화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스스로 학습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일 구독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이도 쉽지 않은 시도라는 생각에 매번 생각을 접고 만다. 10여 년 전부터 각광을 받았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 학습법이기에 관련 책이나 시도해볼만한 학습 모형에 대한 소개가 적은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이러한 때 정문성 교수님의 NIE 학습법이 출간 되었다 길래 얼른 구입해 읽어본다. 부푼 꿈을 안은 나로서는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우선은 홈스쿨용이기에 꾸준히 해야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고 초등학생용이라는 점이 두 번째다. 꼼꼼한 사례들이 적혀 있어 초등학생용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을 정도이나 중등학생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다. 아무래도 교사가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준비 해 편집하여 사용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통해 적용해 볼만한 수업은 충분한 것 같다. 어떻게 해 나아갈 것인가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 첫 부분에 나온 바대로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해 나아간다면 분명히 의미 있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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