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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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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옛 그림을 읽는 방법에 관한 책을 읽고는 크게 고무된 적이 있었다. 세계 명화에 대해 열광하면서도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은 적은 현재의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말이다. 알면 잘 보인다고 했던 그 말이 절절이 와 닿아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시간이 되었기에 이번 몽유 읽기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안견의 등장과 도화서에서의 부적응 등은 으레 천재 예술가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 강요되는 법칙과 관습에의 강요. 새로운 것, 그리고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작품을 열망하는 예술가의 고민. 그것이 결국 안견을 찾아왔고 해답을 찾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세월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인연을 맺게 된 안평대군은 이러한 안견에게 진귀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안견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푸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어느 날 꿈을 그려달라는 안평의 말에 이를 수락한다.




간절히 원하면 꿈으로도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꿈으로 나타난 안평의 도원은 무엇일까. 무엇을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 결국 몽유도원도가 그려지게 된 배경이 뒤이어 전개 되면서 당시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전개된다. 책은 안견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역사 소설의 매력을 이어 나간다. 세조의 왕위 찬탈을 막고자 했던 인물들과 이를 감지하고 임금을 도와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안평은 그 지지자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안평이 이루고자 했던 이상향은 꿈속에만 존재하는 곳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를 후일에도 변하지 않는 그런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했던 안평의 간절한 바람이 안타깝다.




목효지의 등장으로 풍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으로 뽑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명당찾기라는 비난을 가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뜻이 갸륵하다. 목효지가 찾고자 했던 명당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평안한 그런 땅이 아니었을까. 모두의 바람이 된 이상향은 결국 그림으로만 남아 전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그런 그림으로 말이다. 이 그림이 얼마전 국립중앙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이 그림의 사연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짧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여론 때문인지 긴 시간을 기다리며 스치듯 감상해야 했었다. 그림을 보면서 이 소설의 안경과 안평, 그리고 목효지가 떠올라 오래도록 눈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는데...어찌 되었든 결과는 그리 되고 말았다. 그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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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를 리뷰해주세요.
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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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힌다라는 표현은 그와 맞지 않는 줄 알았다. 이 전 작품이던 “혜초”가 내게는 쉽지 않았던 소설이라는 점이 그런 우려를 낳았던 것 같다. 허나 이번 소설은 달랐다. 단순한 소재가 아닌 우리의 역사나 문화를 가미한 작품을 만들어낸 그였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을 짐작하기는 하였지만, 그 전개에 있어 이렇게 속도감을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역관의 딸로 자라 주변국 언어에 능통했던 따냐가 참수형에 처해진 아버지의 시신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 러시아로 건너가 활약한 사기단의 활동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예고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바람과 같은 남자 이반을 만나게 된 일도 말이다.




어쩌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조선에 있을 때에는 반듯한 것만을 좇는 그런 여인이었을 테니 말이다. 사기 치는 행위는 따냐에게 있어 생존이었지만 또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광활한 러시아의 숲을 팔아 해치우며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리 울 정도의 담력도 있었고 단숨에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을 놓치지 않는 여인 따냐는 조직을 배반하고 결국 이반과 새로운 사기단 활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조선국 사신 행렬의 러시아황제 하사품까지 꿀꺽하고 조선으로 당당히 입성한다. 이반의 지칠 줄 모르는 사기와 재물욕은 따냐에게 그를 사랑하는 데에 거리낌이 되지 않았다. 비밀이 있다고 사랑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표현은 아마 따냐를 두고 한 저자의 말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이반은 또 다른 계책을 세우고 있음을 따냐는 미리 짐작할 뿐이다. 그를 저지하지도 함께 모의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일을 맡아 해 나아간다. 고종의 새벽 커피 즉 노서아 가비를 준비하는 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왕이기에 러시아 공사관 쪽 사람인 따냐가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처음 밝혔듯이 엄청난 속도로 사건들이 전개된다. 이후 벌어지는 속고속이는 관계 속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처음 아버지 최역관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인물이 밝혀지는 일도 단숨이다. 고종의 독살을 계획하고 이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배신하려고 하는 남자. 이를 미리 알아채고 독살을 막았던 따냐. 이들의 이야기는 분명 소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처럼 들릴 테지만 ‘독차 사건’의 주인공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완벽한 허구는 아니다. 이 점이 바로 김탁환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탁환을 문화비평가 강심호는 소설노동자를 꿈꾸는 이라 표현한다. “이야깃감을 찾기 위해 동서고금의 책과 기록들을 아귀처럼 먹어치우는” 김탁환에게 독차 사건을 벌였던 김홍륙이라는 인물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마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커피 한 잔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김탁환은 탁월한 이야기꾼임에 틀림이 없음을 다시 확인 하게 된다. 또한 그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이 소설 읽는 이들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커피는 매혹적인 가정법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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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이기담 지음 / 예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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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년 선덕의 부름이 다급하다. 명활산성에서의 비담의 반란이 이유로, 반란의 진압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나, 그들의 손에 황룡사가 들 것을 염려한 것이다. 황룡사는 선덕의 아버지 진평왕부터 꿈꾸어 오던 불국토 신라를 향한 염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이 책 도입부와 결말은 유기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다. 선덕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시기로 평생의 과업을 통해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리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선덕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가 되겠다.




유명인의 어린 시절이 그러하듯, 덕만의 총명함은 언니인 천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같은 성골이었기에 남자 성골이 없던 당시의 왕위 계승권은 천명에게 있었지만, 덕만이 더 적합한 인물로 지목된다. 남자 성골이 없다 한들 후일 춘추가 왕이 된 상황을 생각한다면 진골의 남자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역시 덕만의 기품과 능력이 여자로서 왕의 자리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덕만의 자질을 살펴보자면 천명과 대비되는 부분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자매는 한 남자를 사랑하였다. 진지왕의 아들로 오랜 세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반란을 꿈꾸던 용춘이다. 반란을 계획하던 도중 덕만의 유명세에 다급해진 천명의 고백을 듣고는 주춤하던 그이지만, 곧 실행에 옮길 태세를 갖춘다. 천명의 여종 춘님에게 발각된 후, 천명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는데, 천명은 사랑하는 용춘을 돕고자 한다. 이 부분을 보고 있자면, 사랑에 헌신적인 천명임에는 분명하지만, 국가나 대업을 둔 이라고는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겠다. 아나들판에서 백제 포로가 된 장수에게 두루마기를 덮어주었던 덕만과 그로인해 반역을 꿈꾸는 이들에게 모함을 당해 죽음의 위기에 빠지면서도 이를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바꾸기까지 하는 덕만에게 경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평왕과 신료들과의 패권다툼에서의 결과로 어머니 마야황후가 궁에서 나간 뒤, 덕만은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졌으며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왕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 시기 더욱 깊어졌으며 이전에 드높았던 자신의 지위가 백성들 사이에서 잊혀지고 있음을 통해 왕위는 백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확고한 왕권과 백성들의 지지야 말로 신라에 가장 필요한 일임을 확신하게 되는 시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용춘을 붙든 이도 덕만이었고 왕위계승자로 지목된 이도 덕만이었다. 여자로서 사랑하는 이를 붙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대업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보아야할 것 같다. 당시 진지왕계의 분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그 선봉에 섰던 용춘을 회유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까. 가야계를 회유한 것은 김유신의 동생과 김춘추를 맺어준 일로 일단락되었고, 백성들을 하나로 통합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는 것은 황룡사의 9층탑을 건립하는 일로 마무리 하겠다는 의지도 이루어졌다. 물론 반대의 여론도 드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선덕의 죽음 앞에서도 반란은 지속되었으니 말이다. 허나 이러한 선덕의 의지는 왕이 세상을 등진 이후에도 남아 하나의 뜻으로 기억되었다. 황룡사 9층탑에 대한 왕의 의지가 옆에서 왕을 모시던 신하들의 가슴속에 삼국통일의 의지로 남겨진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은 선덕의 위업에만 치중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인으로서의 갈등을 언니인 천명과의 대비로 풀어나간 부분에서는 다른 팩션 소설에서는 없던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덕여왕에 대한 기록이 조금 더 살을 더해 상상력을 더욱 가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조금 남는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큰 사건, 사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독자들에게 지루함 없이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읽은 이소설의 큰 매력이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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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뼈 - 마키아벨리와 다 빈치가 펼치는 고도의 두뇌추리
레오나르도 고리 지음, 이현경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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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504년, 피렌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원숭이 떼의 공격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장면은 아비규환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으로 시작되는데,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누가 사주한 일인지도 명확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군주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피렌체공화국의 서기관 마키아벨리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군주의 모습을 모델로 삼은 그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통해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악랄했던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군주 모델로 삼았던 배경에는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이 그러할 수 밖에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군주국, 공국, 공화국, 교황령 등으로 세력이 분열되어 자국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움직임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피렌체는 피사와 대립하고 있던 상황으로 아르노 강줄기의 방향을 돌려 피사를 제압하고자 한다. 이 때 고용된 이가 또 한 명의 주인공 레오나르도이다. 아르노 강의 수로를 변경하기 위한 운하현장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키아벨리가 두란체와 지네브라와 함께 도착했을 때 레오나르도는 현장을 떠난 후였다. 발견된 흑인과 고릴라의 시체는 해부된 상태, 이는 레오나르도가 범인 혹은 그와 연류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를 쫓는 여정이 시작된다.

다음번 희생자는 철학교수 필리포, 죽은 그의 옆에는 이상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또한 레오나르도의 짓임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는 세 사람 중 두란테는 그를 찾아가는데, 곧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그는 레오나르도에게 고대의 책을 전하고자 했었다. 그 책의 행방이 묘연하다. 정치적인 혼란이 있었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상업이 발달하였고 그로 인한 동방과의 교류로 인해 고대 문화의 유입이 활발해졌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동방의 콘스탄티노플 등에서 중요한 책이 레오나르도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 세속을 지배하고 있던 교황이라는 권력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레오나르도를 찾았지만, 해결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적이고 내편인지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 고용되었지만, 연구를 위해 베네치아의 사주를 받는다. 그러나 곧 밝혀진 바로는 이는 베네치아가 아닌 동방의 술탄의 속임수. 이를 예견한 교회와 교황은 첩자, 즉 지네브라를 보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속임수가 꼬리를 물고 지속되는가? 레오나르도의 연구에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게 된다.

가공할만한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는 레오나르도, 천재로 알려진 그도 두려워할 만한 무기를 만들었다니 각계의 중심인물들이 주목할 만 했다. 교황의 비밀회의를 통해 밝혀진 무기는 기계 따위의 것이 아닌 관념이나 이론으로 교황과 술탄도 두려워 할 만 한 것이라 한다. 소설의 첫 장면인 원숭이 떼와 아르노 운하에서의 흑인과 고릴라의 시체도 이 무기와 연관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조금 허무한 느낌마저 지울 수 있는 무기가 될 지도 모른다. 진화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의 책들과 연구의 결과로 알게 된 이 사실이 무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대한 교황의 지배가 절대적이었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러한 교황의 세력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세속 군주의 세력이 강화되어 가고 있던 분위기도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긴박감 넘치는 여정의 결과가 다소 부실한 결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대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새로운 분위기가 당시 이탈리아 세력구도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 군주론과 진화론에 대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팩션 소설이라는 한계가 있더라 하더라도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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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교향곡
조셉 젤리네크 지음, 김현철 옮김 / 세계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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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선뜻 읽기 쉽지 않았다. 다른 책들에 순위가 밀려 한참이나 후에야 읽을 수 있었다. 읽는 동안 전문용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책 귀퉁이에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클래식은 둘째 치고 고등학교 음악시간 이후로 볼 수 없었던 각 기호들에도 익숙해 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읽혔다.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을 소재로한 소설은 요즘 나오는 팩션 소설들에 비해 구성면에 있어서나 스토리 전개 면에 있어, 탄탄한 면모를 지닌다. 두꺼운 책이었고, 알지 못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후에나 털고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재미가 상당했다.

우선 이야기는 1980년의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어느 연인의 드라이브 장면, 젊은이들의 치기를 보여주듯 약간의 알코올 섭취와 장난기 섞인 행동은 맞은편의 트랙터를 피하지 못하고 도로를 이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장면은 왠지 동떨어진 듯 보였다. 27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가 전개되는 소설은 한동안 첫 장면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잊었을 정도이니까.

주인공인 다니엘 파니아구아는 음악학과의 역사음악학 교수이다. 어느 날 학과장 두란의 지시로 한 콘서트에 참석하게 되는데, 주최자는 로널드 토머스로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을 재구성한 곡을 선보이는 콘서트였다. 콘서트에 참석한 다니엘의 감상은 이 곡은 토머스가 재구성한 것이 아니며, 베토벤의 것이란다. 짐작은 결국 확신으로 굳어가고 있을 무렵 콘서트 직후 토머스가 살해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진다.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의 필사본이 존재하는 것이며 범인은 악보의 장소를 알고 있는 토머스를 살해한 것이라 판단한다.

사건 해결을 위한 나름의 노력은 여러 방향에서 진행된다. 수사나 판사에 공조하는 다니엘과 살해사건에 빠질 수 없는 형사 마테오스와 아길라르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범인을 모색해 나아간다. 이상한 것은 역시 판사가 직접 사건 해결을 위한 기초자료를 모으고 있다는 데에 있지만. 나중에 첫 장면과 수사나 판사의 일그러진 묘한 표정을 매치했더라면 금방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했다. 아무튼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결사조직, 알베르티의 암호바퀴, 보나파르트 황태자 부부, 나폴레옹의 독살설 등은 소설 다빈치 코드와 닮은 점이 많았다. 하나 하나 제각각 구실을 해 내었다면 다빈치 코드를 넘어서는 소설이 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 부분이다. 아쉬움이 절로 생길 정도로 괜찮은 소설이었다는 말이다.

결국 제10번 교향곡은 악보를 손에 쥔 인물이 비행기와 함께 산화되면서 세상에 나타날 수 없는 악보의 운명을 지닌 듯하다. 불멸의 연인에게 바쳤으나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사라졌던 악보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 덕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 중이다. 얼마 전 한 TV프로에서 음악이 나오는 장면을 배경삼아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장면이 떠오른다. 곡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대한 설명은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는 아닐지 모르나 필요조건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에 호기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다빈치 코드가 그림에 있어 대중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만큼 이 소설이 음악에 있어 그러한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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