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장성민 지음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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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어지럽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공표, 후계자 문제 등으로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북한은 왜 핵을 고집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북한보다 강해 보이는 주변국들은 속 시원히 막을 수 없는지 또 왜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의 위력을 의심하고 강한 결속을 위해 미국의 약속을 받고자 노력하는지 등등 신문지 1면에 매일 같이 기획기사를 싣고는 있지만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국민들은 이것이 정부의 안보를 통한 불평세력 잠재우기인 것인지 진짜 전쟁직전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지 조차 알 수가 없어 분분하다. 북한의 핵 포기만큼이나 불투명해 보이는 현실은 종종 무기력한 증상으로 나타나 보이기도 한다. 국민들 대부분이 위기는 인식하나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부 고위층의 대북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를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동안 퍼주기로만 인식하던 대북정책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으므로.




북한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이므로 김정일을 중심으로 책은 구성되었다. 물론 한국, 미국, 중국의 대북정책은 필수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김정일은 누구인가? 외교의 천재인가?하는 물음에서 김정일에 대한 주변국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드러나지 않음으로 인한 신비주의 비슷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찌되었든 김정일의 의도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외부세계가 절대로 자신과 북한을 모르게 하는 것을 체제유지의 비결로 삼고 있는 것이 그가 원하는 바이므로. 때로 기분파로도 알려지기도 했지만 북한의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 선군외교를 펼치고 있는 김정일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임은 부인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그가 최근 건강이상을 신호로 후계자를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듯하다. 전면에 내세운 이는 이 책과는 달리 3남 김정운 이지만,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은 동일해 보인다. 군부의 입김이 거세어지는 현실은 김정일 이후 북한의 세력이 김정운 단독 정권이 아닌 군부와의 연합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핵을 고집하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할 경우 지금보다 첨예한 대립이 올 것이라는 예상도 함께.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부자세습의 과정에는 정당성이나 명분이 확고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군부에게 권력을 넘어가게 하고 그 결과 북한 체제 위기의 증가라는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닿을 것이라는 사실은 북한의 핵무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듯 보인다.




결국 체제 보전을 위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핵무장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북한은 왜 핵을 포기하지 않는가라는 물음과도 맞닿아 있다. 구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붕괴 및 변모는 북한의 위기의식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었다. 부시 미국의 대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 또한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고 그 결과 유리한 경제적 기반을 넓혀 결국에는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가 담겨 있다. 그렇지만 핵은 북한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타당하다. 결국 북한은 핵을 가져야 하지만 오래 쥘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위협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회주의 정권에 따른 국제적 고립 그로 인한 경제적 위기 등 체제 유지를 위험하게 하는 요소를 축출하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어떠한가?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우리만큼 불안해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본토로까지 날아갈 수 있는 핵탄두의 개발이 머지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한국과 일본의 자위적인 성격의 핵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명분이 상실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밀수출은 결국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미국의 적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미국 안보에 그리고 세계의 경찰국이라는 미국의 자부심에 그리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리라 본다.




요즘 중국의 입장도 판이해졌다. 이전의 혈맹국 혹은 동맹국에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두 국가 간 사이가 사뭇 심각하다. 물론 항상 좋은 사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수위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왜 반대할까? 자국의 안보, 대만을 중심으로 하는 반 중국 세력에 유입될 경우의 심각한 부작용, 주변국의 핵실험 강행, 경제발전에 치명적인 악영향 등 이유는 미국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더욱이 현재 중국과 북한은 사회적 가치판단이며 전략적 관심사에서도 일치점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북한의 핵보유는 중국에게는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을 보유한 북한의 입장은 주변국들의 반대로 인해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휴전상태인 우리의 경우는 어떠할까? 북한의 고성능 핵무기기 개발될 경우, 미국은 우리를 도울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물음은 최근 전술핵 재도입 요구로 이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핵무기를 동원한 핵전쟁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전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 사회적인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국이 그러했듯 스스로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금강산관광지구, 개성공단지구 등 자본주의 요소의 도입으로 인해 북한의 상황은 그러한 면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는 큰 체제를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핵을 포기하면 협상을 하겠다, 협상을 하고 핵을 포기시키자. 하는 의견을 하나로 조율하는 과정은 그래서 필요하다. 북한이 협상하고자 하는 대상이 미국이므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협상단의 노력으로 북한의 제재 수위를 낮춰 천천히 개방을 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 간의 문제를 대화로 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듯 국가 간에도 최상의 방법은 대화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협상을 그리 중요시해야 하는지 또 한 번 깨닫게 하는 책이 된다. 




서평으로 간단히 이 책을 정리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정리해 두어야 할 지면이 사실 너무나 많고 줄을 그어놓은 부분만 해도 책의 반 분량에 가깝다. 현재 북한의 상황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현황 그리고 이전과 앞으로의 방향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할 필독서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 신문으로 보는 현상은 지나치게 단면적이고 미시적이다. 이 책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북핵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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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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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체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에도, 전 지구적 합의를 모으는데 한낱 개인으로써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데에 무기력한 감정을 느낀다. 인류의 미래를 위하는 일에도 이러할 진데 다른 나라 멀리 떨어진 나라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는 어떻겠는가. 우리 역사에도 열강들의 이기심으로 피폐된 과거가 있었지만 어느 나라 우리를 진정한 친구로 여긴 적이 없었다. 국가 간 이해의 차이는 그만큼이나 큰 것일까. 게다가 국가 안의 여러 이익들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레바논이 그랬다. 어려운 역사를 헤쳐 나왔지만 남은 것은 종파 간의 반목이 사회를 갉아먹는 동인이 되었다.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으로 인한 이스라엘 건국 그리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문제는 이러한 레바논의 문제를 심각하게 하는데 일조한다. 물론 국가 헌법으로 고착화된 정책으로 인해 정파 간 불균등한 권력조직도 하나의 원인이 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수니파 이슬람이 대부분인 팔레스타인 난민의 레바논 유입은 다른 종파 지도자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국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 때 주변 국가들의 간섭은 내전을 오래 그리고 사회전반에 증오가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시리아였으며 시리아 그리고 팔레스타인 세력을 적으로 삼는 이스라엘이 예다. 내전의 과정에서 세력을 확장하게 된 이들은 시아파 무슬림이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의 정치권력으로써 국가 전반에 영향을 떨쳤으며 이스라엘을 막는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이들이 이스라엘과 그의 친구 미국의 적 헤즈볼라다. 헤즈볼라의 생성과 발전은 레바논 역사에서 필연적인 요소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전 혹은 전쟁은 자주 일어났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고통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전쟁이 그들의 삶을 앗아갔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견뎌온 고통의 시간 등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이기도 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은 내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레바논을 재건하려했던 시간을 한 순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시작은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군인 납치였지만 이 또한 이전의 사건들이 원인으로 빚어진 결과였다. 레바논의 국민 대부분은 이러한 헤즈볼라의 행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허나 이스라엘의 입장은 달랐다. 헤즈볼라를 이유로 내세우며 전면전으로 입장을 대신했다. 그의 친구 미국이 열심히 동조했음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민간인이 죽어갔다. 군사시설이 아닌 사회기반 시설의 철저한 파괴. 천문학적 군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폭탄사용. 대부분은 아이들인 수많은 민간인의 죽음 등 레바논은 절망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이웃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죽어감에도 손도 쓸 수 없는 사람들의 절망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이스라엘의 만행을 저지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고, 레바논 국민들의 감정은 부정적이었던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글의 저자이기도 한 림의 입장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헤즈볼라를 원망하던 심정이 적국 이스라엘로 옮겨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와 남편 그리고 부인을 잃은 사람들에게 남은 것이 또 무엇이겠는가. 이는 민족과 국가를 떠나 인간이라면 당연히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이지 않겠는가. 사과와 종전을 요구하는 힘없는 레바논에게 헤즈볼라, 이란, 시리아와의 관계를 청산하기를 요구했던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은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는 무력한 국가와 국민에게 너무도 잔인하게 행동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으로 되갚을 수 있는 복수의 칼일 뿐인 것을 왜 그들은 알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왜 자신들의 과거를 잊어버렸는가...아마도 민족의 과거를 통해 더 많은 칼을 갈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비극이 증오와 복수심의 결과임을 또 한 번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3일 만에 전쟁은 끝났다. 국제사회에 대한 레바논 국민의 호소도 별로 소용이 없었던 그날의 기억을 림의 일기로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레바논의 상황은 불안정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증오는 날이 갈수록 커져갈 것이다. 림의 과거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듯이 이번 전쟁을 겪은 아이들의 미래도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없이 진정한 외교가 불가능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그들의 만행에 대해 레바논 나아가 팔레스타인 그리고 주변 아랍국가에게 사과하고 권리를 나누지 않는다면 평화의 중동은 부정적이라는 생각이다.




이스라엘 그들의 과거가 피로 얼룩져있음을 림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온 친구라는 사실도. 다만 그들 민족이 중요하듯이, 아랍의 민족도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무기력함을 약한 민족이 느끼고 절망하지 않도록 국제사회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유엔에 더 많은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헤즈볼라든 이스라엘이든 어떤 종파이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앗아갈 수는 없음이라는 진리에 전 지구적인 합의가 있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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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바나
데보라 엘리스 지음, 권혁정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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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내전에 관한 이야기는 연을 쫓는 아이, 그리고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등으로 접하게 되어 그 참혹함에 대해 내성을 쌓았다고 생각했었다. 허나 아니었다. 파르바나를 따르는 여정은 내게 여전히 힘들고 괴로움을 전해주었다.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그곳의 아이들과 여인들 그리고 무고한 국민들의 고통은 끊이지 않았었다. 그들은 여전히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들에게 외출금지령을 내린 탈레반은 일률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구속했다. 많은 남편과 사내아이들이 군대에 동원되었으므로 여인들이 가장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외출을 금지하는 명령 때문에 굶어죽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파르바나의 집도 마찬가지여서 엄마와 언니 그리고 동생 둘이 아버지 없이 살아야 했지만, 먹을거리를 가져올 사람이 없었다. 이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장에 갔었던 파르바나는 남장을 하고 가족을 구해낼 것을 결심한다.




남장을 하고 아버지가 했었던 편지를 대신 읽어주고 써주는 일을 하며 실질적 가장이 된 파르바나는 아버지가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꿋꿋하게 살아내었다. 어려움을 무조건 참아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언니와의 갈등,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삶에의 고난함을 솔직히 표현하는 파르바나는 여느 소녀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상황이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언니의 결혼으로 가족이 여행을 떠난 사이 아버지가 출옥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와 파르바나는 탈레반의 공격을 받은 그곳으로 가족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아버지가 떠난 파르바나에게 남은 것은 펜과 종이 그리고 책 몇 권이 전부였다. 짐을 꾸리고 다시 혼자가 된 파르바나는 가족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엄마를 잃은 아기 하싼과 다리가 하나 밖에 없는 아시프, 할머니와 단 둘이만 살고 있는 릴라를 만난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도 가도 나오는 것은 황무지와 배고픔의 연속인 날들일 뿐인 미래는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뢰밭에 걸려든 짐승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지뢰에 입힌 예쁜 색을 따라 지뢰밭에 들어가기도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기도 했다. 난민촌에서의 난민들에 대한 묘사는 또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이 소설이 아닌 아프간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기록이라니...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어떠한 모습을 보일 것인가. 그곳을 조국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국가는 어떤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 여전히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탈레반이 있는 한 여전히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간직한 국민들의 모습에서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의 유산과 미래의 염원을 담은 책을 힘든 여정 내내 버리지 않았던 파르바나의 모습에서 어렵고 고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아프간 사람들의 모습을 본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그들의 고된 삶이 하루바삐 끝을 맺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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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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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빈도는 이웃 나라 간이 가장 많고,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은 하나의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 가장 많이 남는다. 한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했던 우리의 모습에서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있음을 감안할 때, 전쟁의 명분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 삶을 파헤쳐 속살을 들여다 볼 때에도 그러한 생각은 마찬가지로 남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마저 박탈당하는 사라예보 사람들의 삶을 오늘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사라예보라는 지역의 이끌림 때문에, 그간 논픽션 자료와 책을 통해 만났던 곳이었다. 사실과 사실을 기록한 자료들에서 최근 도피 중이던 라도반 카라지치와 라트코 믈라디치의 기소와 체포까지 관심 있게 지켜본 곳이었다. 대개 우리와 관계없다라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그곳을 직접 경험해 알리고자 한 이들의 용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소용없다라는 인식의 공유는 더없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 사라예보에도 누구나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첼로 연주자가 있었다. 저격수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몇 시간씩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첼로 연주는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다. 살기 위해 몸을 숨겨야 할 때 드러내어 연주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한 것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해갔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이 그러하듯 작은 균열이 세상을 변하게 만든 것처럼. 이는 첼리스트의 바람이었다.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리라 여길 수 있는 것이라면 첼리스트의 연주가 시작될 가치는 있었다.

『첼리스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다. 폐허가 된 도시 풍경에서 거의 지워졌던 무언가가, 다시 새롭게 가치 있는 것으로 재건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희망을 품는다.  p.14』

이제 희망은 포위당한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이며, 그마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 이전 사라예보의 시간과 전쟁이후의 시간이라는 불일치 한 삶속에서 적응해 가는 동안 케난, 드라간, 애로의 삶은 분리되어간다. 분리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괴로워하는 이들은 사라예보의 사람들이자 내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노인의 낚실 줄에 낚이지 않는 비둘기는 행운이라 여길 테지만, 노인의 의지에 의해 잠시 안전할 뿐이다. 거리의 개는 저격수의 총을 맞게 될 운명에서 사라예보 사람들과 동등하다.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라예보의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존재감을 상실해 가는 모습이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겁을 집어먹고 있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동안 우위에 두었던 무언가를 버리고 이전 삶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을 함으로써 느끼는 비참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일깨워 주고 미묘한 변화를 이끌어주는 것이 선율이었다. 비록 목숨이 위태롭다 해도 죽은 이들을 위해 연주되는 선율은 이전의 사라예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연주되어지는 선율이다. 삶의 끝에 있다고 느껴져도 버려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무언가를 품었을 때 자신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일치한다고 느껴지는 때가 되리라.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각인되는 이유다. 애로는 죽음에 직면했지만,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책은 사라예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만연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경우를 초래하는 모든 곳에서의 삶의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전쟁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 가해자든 피해자든 승자는 없다. 인간으로써의 모습을 버린 혹은 버려진 이들에게 남은 것은 깊은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전쟁에 직면하기 전에 이와 같은 소설을 읽고 공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내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다. 첼리스트의 연주가 애로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처럼 이 책 또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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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마리나 네이멧 지음, 박미경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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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란 약이 얼굴에 덧칠 해진 한 여인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랐다. 생김새로 보자니, 한국인이 아닌 듯 했다. 기사 제목은 “여자가 학교에 갔다는 이유만으로”였고 클릭 해 읽노라니, 아프가니스탄 여인이었다. 학교에 갔다가 이를 저지하는 탈렌반 무장세력에 의해 산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은 서구적인 것을 지독히 저주하며 여인들이 외출하는 행위조차도 반대한다. 여인이 외출을 할 경우에는 남자와 함께여야 하며 학교에 가는 것은 절대 금지된다. 이러한 규정을 어긴 여인은 여자의 얼굴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처럼 이란에서도 얼마 전 혼란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반미세력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으며, 여인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다. 마리나가 소녀시절인 80년대 이란은 지독한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 마리나의 이야기가 책의 내용이다. 지금은 이란이 아닌 캐나다라는 곳에 정착해 중산층의 가정을 이룬 마리나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며 그러한 일들을 침묵하는 행위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글을 쓰고 알리고자 했으며 치유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마리나는 이란에 거주하는 소수의 크리스쳔이었다. 크리스쳔이 된 이유에서도 역사적 굴곡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이란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크리스쳔이면서 책을 사랑하는 마리나는 친구를 사랑하고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런 날들이 다가온다. 샤 왕조의 부패로 인해 여론이 들끓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여러 길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혼란이 찾아왔다. 사회주의 사상가들, 무자헤딘, 근본적인 이슬람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그러했다. 이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종교밖에 길이 없다고 주장하는 호메이니가 결국 정권을 잡았다. 많은 사람은 호메이니를 원했고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는 사회주의자들과 무자헤딘 그리고 반정부주의자들에게 총구를 돌렸다. 숙청은 혁명의 필수 단계인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 마리나의 학교도 마찬가지여서 19세의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가 교장이 되었고 수업은 모두 종교수업이 되어버렸다. 크리스쳔인 마리나의 학교생활은 곧 지옥처럼 변해갔다. 어느 날 수업을 거부하고 나온 것이 화가 되어 악명 높은 ‘에빈’으로 끌려간 마리나는 그곳을 나온 이후에도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에빈’은 정치범 수용소로써 현 정부에 반대하는 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감금, 고문, 처형 등을 하던 악명 높은 곳이다. 고문의 끝은 밀고였으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처형을 당했다. 마리나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서 만난 알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지만,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 했다. 자신은 살아남고 친구들은 모두 죽음을 당해야 하는 상황은 마리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결국 알리는 암살당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에빈에서의 기억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란은 이라크와의 오랜 전쟁과 내분으로 인해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할 곳이 되었다.

혼란 속에서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마리나는 신념을 가진 여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이었던 이들이 서로 적이 되어 죽고 죽이고 저주하는 모습을 본 마리나는 상실과 고통의 삶에 용기 있게 맞섰다. 이란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생이 결코 죽음 앞에서도 후회가 없도록 노력했다. 이 여인이 침묵한 20여 년의 시간을 누가 감히 돌팔매질 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출간 된 이후 이란 사회가 보내는 욕과 비방은 그녀의 용기 앞에서 하찮은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고, 인종을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독재자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상식과 신념을 갈고 닦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함을 마리나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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