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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와 휴 ㅣ 웅진 세계그림책 28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10월
평점 :
'윌리와 휴'도 재미있지만 내가 원래 쓰고 싶었던 리뷰는 이 책의 원서 'WILLY and HUGH'였다. 안타깝게도 알라딘에는 이 책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 대신 쓰게 된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알게 된 작가가 참 많지만 앤서니 브라운처럼 자기 세계가 확고하고 유모가 넘치고 우리에게 건강한 메세지를 주는 작가도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서 앤서니 브라운의 새로운 책을 발견할 때면 노다지를 캔 사람처럼 들뜨게 된다.
작고 왜소하고 친구가 하나도 없는 윌리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첫 마디, "Willy was lonely."이다. 아이들에게 "윌리는 외로웠어요."라는 말을 안 해도 아이들은 대충 표정과 그 다음 장의 모습만 보아도 윌리가 외롭고 슬픈 상태임을 짐작했다.
윌리는 자기 문제에 푹 빠진 상태로 고개를 숙여 걷다가 덩치 크고 힘센 휴와 부딪치게 된다. 휴도 무슨 일인지 앞을 보지 않고 달리다가 윌리와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They met!"
그렇다. 그들은 드디어 '만난' 것이다. 부딪쳤어도 휴가 윌리를 무시했다면 둘의 우정은 생겨나지 않았을 텐데 터프하고 거대한 몸집의 휴는 계속 자기가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둘은 벤치에 앉아 조깅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조깅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데도 오만 인상을 찌푸리고 뛰고 있는 그들을 보며 둘은 함께 웃는다.
그리고 악당 버스터가 윌리를 협박하자 휴는 단 한 마디 말로 버스터를 제압한다.
그 후 그들은 동물원에 갔다. 이 장면이 이 책의 압권이다. 동물원에는 소파에 앉은 세 식구(세 명의 인간)가 갇혀 있다. 아이들은 이 장면을 보며 '우히히 사람이 동물원에 갇혔네."라고 탄성을 지르며 재미있어 했다. 전부 빨간 신발을 신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황당해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윌리와 휴는 똑같이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불쾌하고 민망한 표정.. 이제 동일한 관점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침팬지와 고릴라는 서로 끈끈한 연대감이 생기게 된다.
그 후 윌리와 휴는 도서관으로 가고 휴에게 윌리가 책을 읽어 주는데 휴는 너무 재미있어 한다. 호탕하고 시끄럽게 웃어 제끼는 휴를 노려보는 다른 고릴라들의 모습도 참 재미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도서관을 나오려는 찰나 거미가 보이고 덩치 큰 휴가 당황해 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윌리는 휴를 위해 거미를 제거해 주고 친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 한다.
그리고 둘은 내일의 만남을 기약한다. 똑같은 옷을 입고 서로를 껴안으려고 서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며 난 참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꼈다.
앤서니 브라운의 시선은 우리 일상 곳곳에 박힌 부조리한 점을 풍자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윌리가 즐겁게 걷고 있고 옆에서 함께 걷는 휴는 윌리를 다정스런 눈길로 내려다 보고 있고 둘의 그림자는 합쳐져 있다.
합쳐진 그림자처럼 둘의 마음은 영원히 하나로 이어질 것을 암시하는 것 처럼...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읽어 주고 아이들이 좋아하자 원서로 사 주었다. 영어를 잘 못 하지만 윌리의 대사를 할 때면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휴의 대사를 칠 때면 굵은 목소리로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여기 나온 문장들을 아직 잘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일일히 해석하지 않고 그냥 몸으로 보여주고- 고릴라 휴가 뛸 때는 나도 뛰는 척 하는 등- 재밌는 장면에서는 함께 킥킥 웃어댔다.
우리 아이들은 5세, 6세 때부터 보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꺼내온다.
취학 전의 아이를 둔 엄마들께 권해 드리며, 번역된 책이나 원서나 다 좋으니 한번쯤 아이들이 이 책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