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절판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다 아픈 존재이며, 의료진의 사소한 한마디로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지금도 깊게 파여 있는 의사와 환자간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환자의 고통을 자기 가족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대학병원의 긍정적인 역할을 십분 이해하지만, 지금보다는 더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램이다.-p.27쪽

보다 중요한 것은 남과 다르다고, 숫자가 적다고 편견을 갖거나 차별하지 않는 것이리라. 남과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풍토에서는 누구나 소수자로 몰려 차별을 당할 수 있다. 음지에서 사랑을 해야 하는 동성애자는 물론이고 시집을 안 간 노처녀가 겪어야 하는 고충은 얼마며 , 새우 눈이라서 내가 당했던 고초는 얼마나 지대했던가.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다고, 그리고 그 다름은 각자의 가치를 지닌 소중한 것이라고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대머리의 진정한 치료가 아닐런지.-p.149쪽

입 냄새, 이것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은 없지만, 주위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잘생기고 돈 잘 버는 김모씨, 그는 이빨이 썩었는데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 입 냄새가 심해졌다. 수시로 김모씨와 말을 해야 하는 내 친구도 나름대로 고통을 받겠지만, 그와 키스를 해야 하는 그의 애인은 정말 고역일거다. 그걸 어떻게 참고 견디는지, 정말이지 사랑의 힘은 위대하기만 하다.-p.169쪽

방귀를 참으면 어떻게 될까? 밑으로 나가지 못하는 방귀는 위쪽으로 올라가 혈액으로 흡수되고, 운이 나쁘면 트림의 형태로 배출된다. 방귀가 되려다 실패한 트림,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95%가 방귀를 참은 경험이 있다고 하고, 그 중 67%는 상습적으로 방귀를 참는다고 한다.
방귀는 병이 아니며 또한 죄악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자신 있게 방귀를 뀌지 못하게 함으로써 여성 건강을 망가뜨리고 있는가. 이건 다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내가 존경하는 미국의 한 지식인은 이렇게 말했다.
"방귀는 그 사회가 선진화된 정도를 나타내는 리트머스 시험지다."-p.175쪽

사실 변을 보는 행위는 지극히 정밀한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종합 예술이다. 축구경기 도중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사람이 좋은 수비를 보여주기 어려운 것처럼, 온 힘을 다해도 부족한 판에 책에 관심을 쏟으면서 대변이 쑥쑥 나올 리는 없다. 아니, 책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장기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는 게 아닐까.
우리 화장실은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화장실은 너무 편하고 너무 깨끗해, 사람들로 하여금 더 있고 싶게 만들고, 변비는 그 필연적인 산물이다. 옛날의 나무 변소로 가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보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변비가 늘어난 두 번째 이유는 다이어트 열풍 탓이다. ...날씬해지려면 당연히 먹는 걸 줄여야 하는데 대변을 보기 위해서는 역치를 넘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대변이 안나오다가 얼마 이상 쌓이면, 그래서 직장이 팽창되면 대변을 보고픈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그 경계선이 바로 역치이다. 사흘을 먹어도 역치를 못 넘으면 대변은 나오지 않으며, 나처럼 한 끼에 왕창 먹으면 하루 세 번도 가능한 법이다.-p.181-182쪽

건강에 신경을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쓸데없는 걱정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인터넷과 잡지를 통해 잘못된 건강지식이 무수히 퍼져나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정말 건강 염려증을 염려해야 한다.-p.199쪽

스캇 펫의 말이다. "경험 있는 정신과 의사라면, 이 세상에 사랑 없는 부모가 많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 중 대부분이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사랑을 위장하는 자세를 고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한 인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아이는 만들어지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만들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부모의 책임이 막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학교에서 '좋은 아들, 딸'이 되는 방법은 가르쳐주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p.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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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6-08-23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헬리코박터 엄청무서워하는 사람인데..
때로 의학상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에 절망하죠,,많이 도움 될꺼 같애요~

비자림 2006-08-2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밌어요. 꼭 만나 보시길.^^
 
존선생님의 동물원 - 노라와 세 친구들 다산어린이 그림책
이치카와 사토미 글 그림, 남주현 옮김 / 두산동아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선생님, 말을 못하는 동물들의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노라가 궁금하던 것을 물었습니다.

"동물들을 잘 보고 있으면,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히 알게 된단다. 그 동물을 아주아주 사랑하면 말이다."(p.30)

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그림책에서 가장 기억나는 말이다. 어디 동물뿐이랴! 사람도 그 사람을 아주아주 사랑하면 그의 마음을 읽어 낼 수가 있지 않을까?

이 그림책은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어린이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일부러 샀던 기억이 난다. 시골집에서 강아지나 오리에 환호성을 지르던 우리 아이들. 아이들은 누구나 동물을 사랑한다. 애정을 주면 솔직하게 반응해 주고 생명의 신비를 보여 줘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도시에 사는 촌놈들이라 동물원에나 가야 동물을 볼 수 있으니..

그래서 이 책을 덥석 집어 들었는데 정말 따스한 의사 선생님 이야기가 나와 감동했다. 게다가 영국 켄트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실존 인물 닥터 존을 그려 놓았다고 하여 더 흐뭇했다. 

어느 봄날 노라는 숲 속으로 놀러 갔다가 병에 걸린 아기오리를 보게 되고 아기 오리를 치료해 주려고 존 선생님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백발의 존 선생님은 진찰해 보고 난 후 새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오리를 쉬게 해 준다.

새 병원에서 노라는 아픈 새들을 많이 만난다. 맑디 맑은 아이의 눈동자처럼 정갈한 수채화 느낌이 나는 그림도 그림책의 흥미를 더해 주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러 가는 존 선생님을 따라 가 본 노라는 닭, 거위, 오리 , 양 등 여러 동물을 만난다.  집에서 기르던 동물은 끝까지 보살펴 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존 선생님, 독이 있는 꽃을 구별해 내는 양의 본능에 대해 감탄해 마지 않는 선생님, 염소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선생님,..

노라는 존 선생님과 다니며 여러 동물들을 구경하고 마음으로 만나게 된다. 존 선생님이 보살펴 주는 동물들이 왜 다 순하냐고 묻는 노라에게 응답하는 존 선생님의 말이 참 가슴에 다가왔다.

"그건 말이다, 이 곳에서는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동물들은 자신이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꿈꾸는 것은 아이가 사랑을 듬뿍 받고 커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의 이치에 눈 뜨고 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큰 가슴으로 받아 들이길 바라는 것이다.

다쳤거나 버려진 동물들을 거두어 변함없는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존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 주는 이 그림책에서 나는 가슴 따뜻하고 존경할 만한 한 인간을 보았다. 정말 실제로 만나고 싶은 선생님... 

5세에서 초등 1학년까지 적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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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9-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 따뜻한 동화네요...
님의 아이들이 그렇게 바램대로 사랑 듬뿍 받아가며 크고 또 그 사랑을 나눌줄 아는 아이들로 잘 성장할것이라 믿어요..

비자림 2006-09-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배꽃님, 감사합니다. 호호호 근데 어제 남푠이랑 축구에 열광하는 걸 보니 축구 좋아하는 남정네로 클 것은 자명한데 따스한 사람으로 클 지는 더 두고 봐야겠어요. 호호호
 
존선생님의 동물원 - 노라와 세 친구들 다산어린이 그림책
이치카와 사토미 글 그림, 남주현 옮김 / 두산동아 / 2000년 8월
구판절판


"주인이 버렸단다. 별 도움이 안 되거나, 기르기가 귀찮아진 게지. 하지만, 집에서 살던 동물은 갑자기 혼자가 되면 살 수가 없어요. 끝까지 보살펴 줘야만 한단다."-p.13쪽

"이 염소들은 루돌프와 앨버트란다. 염소한테는 양처럼 푹신한 털이 없기 때문에 춥거나 비 오는 날에는 오두막집이 필요하단다."
"루돌프는 왜 여기에 왔나요?"
노라가 물었습니다.
"루돌프는 배에서 태어났단다. 배에서 염소를 기르면 그 젖을 먹을 수 있지. 루돌프는 수컷이기 때문에 시장에 내다팔려는 것을 내가 얻어 왔단다. 루돌프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여행 중에 본 것을 꼭 들어 보고 싶구나."
"나도 듣고 싶어요!"
노라와 세 친구들이 동시에 소리쳤습니다.-p.16쪽

"왜 이 곳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순한가요?"
노라가 존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그건 말이다, 이 곳에서는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동물들은 자신이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
"선생님, 저요, 전보다 더 동물들을 좋아하게 됐어요."
노라는 기쁜 듯이 말했습니다.-p.22쪽

"선생님, 말을 못하는 동물들의 마음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노라는 궁금하던 것을 물었습니다.
"동물들을 잘 보고 있으면,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히 알게 된단다. 그 동물을 아주아주 사랑하면 말이다."-p.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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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20주년 골든앨범
정태춘 박은옥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비가 온다. 가을을 예고하는 비가 온다.  큰 근심 없이 살면서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마음이 가라앉고 내가 흘려보낸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 음반의 1은 '시인의 마을' 등 18개의 주옥같은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서정적인 노래들을 사랑했던 시간이 내게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로 대표되는, 그들의 이슬처럼 맑은 서정은 당시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어루만지고 가끔은 친구보다 더 큰 위로가 된 적이 있었다.

한 편의 시 보다 더 아름다운 이미지를 전해 주던 그들의 노래...

그중에서도 '떠나가는 배'가 가장 좋다. 마치 우리 인생의 깔깔한 외로움을 넌즈시 암시하는 듯한 가사들에서 나는 대중문화, 대중가요의 가볍지 않은 힘을 느낀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서늘한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갑판에 서 있는 한 남자, 차분히 자기 삶의 고단함을 응시하는 한 남자의 쓸쓸한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정태춘, 박은옥의 음악 세계는 80년대 이후 격변기의 시대를 거치면서 큰 탈바꿈을 한다. '아, 대한민국'으로 시작되는 그들의 강건한 외침은 운동권 대학생, 그리고 사회변혁을 희구하는 사람들의 푸른 입술에 많이 불리워졌다.

그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실천하는 정신이 고귀하고 아름답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서정적인 노래가 좋다.

오늘 불현듯 따스하고 정겨운 서정의 나라가 그리운 나는 달콤한 고독에 휩싸이며 '촛불'을 듣고 있다.

그들의 노래와 함께 밤을 새웠던 내 서투르고 상념 많았던 젊은 시간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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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 떠나가는 배~~ 아.. 많이 불렀던 노래, 기억나요. 그 부드러운 저음과 맑고 낭낭한 고음의 하모니..

비자림 2006-08-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있어 더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
그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사랑했던 시간들이 다시 가슴 속에 펼쳐지지요.
 
바닷가의 장례 문학과지성 시인선 194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품절


봄밤 2

봄밤에는 몸 속에 적힌 불륜들이 슬그머니 눈뜬다
이 가등과 저 가등 사이
수천의 빗줄기가 소문의 꼬리를 끊고 진상을
가려놓지만
불빛 가장자리로는 여전히 기웃대는 시선들로 붐벼
속내는 좀처럼 길바닥 아래로 흘러 넘치지 않는다
잔등을 보이고 돌아가는 사람은 밤새도록
더듬어왔던 그 한 번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등들만 불쌍한 외눈으로 서로의 알몸을 마주 비
추며
제 속의 둥근 욕망을 지척대는 빗줄기로
간신히 식히고 있다-p.47쪽

등꽃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 져내리면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가느니-p.48쪽

통 화


광섬유의 신경올을 통과하는 말들이라면
햇살의 길인들 왜 못 가랴
나는, 화창한 봄날 뜰 한 모퉁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네게 텔레파시의 신호음 보낸다
세 번만 벨이 울리거든
마음의 기미를 듣고서 내게 응답해다오
햇님의 통화로 땅 깨어나듯
시듦 없는 사랑은 먼 숨결로도
애송지마다의 새싹 촉촉이 적셔놓는다
발 없는 마음에도 말씀의 날개 달아맨다
나무는 나무끼리, 꽃들은 꽃들끼리
어느 것도 서로의 기미에 응답 않는 기적이란 없다
잠시 전 바람결로도 이미
수많은 파장 건너갔으므로
일손 놓고 바라보면 앞산 수풀조차
빗살 무늬로 파랑이지 않느냐-p.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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