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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사에 슈이치 지음, 김영순 외 옮김 / 프리미엄북스 / 1998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랫만에 소설을 완독했다. 기분이 상쾌하다.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보고 영화관을 나올 때처럼 차고 신선한 바람이 내 고여 있는 마음의 방에 불어오는 듯하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었는데도 자꾸 소설 속 세상을 떠올리게 되고 내게도 분명히 닥칠 노년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번잡하고 고단한 일상을 함께 하고 함께 치러내야 할 가족관계의 사슬. 이것들에 대해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담담하게 이야기한 소설이 '아내에게'이다.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걸까, 무슨 고백을 한다는 걸까, 이런저런 상념이 들었는데 몇 페이지 안 읽고 '아! 이 소설은 노년에 대한,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구나.'라고 느꼈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 도모아키가 아내에게 진정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그 고백을 조만간에 할 것 같은 징후를 남기고 소설은 막이 내렸다. 그리고 그 각성은 되려 예순살 된 주인공, 사는 게 짜증나고 화가 나고 무료한 주인공에게 분명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누구에게나 오래 살고픈 욕망은 본능으로 잠재해 있겠지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게 되면 새로 꾸리게 된 보금자리를 지키고 픈 소망에 삶에 대한 욕망은 더 질기고 강해지게 된다. 그러나 그 욕망 뒤에는 또한 건강하게 노년을 지내다가 맑고 고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픈 욕망도 있다. 치매에 걸리지 말고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배우자에게도 짐이 되거나 추한 모습 보이지 않고, 심각한 병에 걸리더라도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말고 잠자듯이 편안히 생을 마감하고픈 게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인 것이다.

근데 이 소설의 여든여덟의 어머니 키누도 그렇게 살려고 애썼지만 모든 게 뜻대로 안되자 굶어서 서서히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깔끔하게 살고자 하나 대소변도 못 가리고 심지어는 아들 손으로 자신의 기저귀를 갈게 하는 처지에 이르자 비참한 심정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 속의 '나'는 부모님 봉양 문제로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고 심한 요통에 시달리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도 지탱 못 할 만큼 정서적으로도 피폐해지자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제안한다. 아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아내를 '며느리'의 자리에서 해방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 제안도 아내를 어느 정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지만 아내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지 않은 성급하고 단순한 결론이었다. 그것은 그가 어머니의 오줌기저귀를 난생 처음 갈아보는 데서 구역질과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정말 힘든 일을 아내는 하루에도 수십 번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도 진정으로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에서 하고 있는 것을 남편은 모른 것이다. 그리고 그 아내는 남편이 그것에 대해 진정으로 고마워 하고 이해해 주기만 해도 얼려 있던 마음이 풀릴텐데 남편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 삶과 죽음 노년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들에 대해 지은이는 쉬운 문체로 편하게 읽을 수 있게 써 놓았기 때문에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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