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럭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세정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 소설은 다른 외국 소설에 비해 좀 더 많이 접해본 것 같다. 세련된 보헤미안 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도 기교가 넘치지만  개인적으로는 '물의 가족', '달에 울다'등으로 만난 마루야마 겐지를 더 좋아한다. 그의 시적인 문체에 반해서 한동안 그의 소설을 찾아 헤맨 적도 있다. 몇 달 전에 감동 깊게 읽은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읽다가 콧등이 시큰해져서 좀 울기도 했었다.

최근에 읽은 시게마츠 기요시의 '굿럭'이란 작품은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세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1. 첫 번째 이야기 '땡땡'은 무기력한 한 국어교사의 별명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아 주인공에게 사람이 아닌 '오브제'로 느껴지는 다나카 선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나카 선생의 수업을 유일하게 듣는 가나에는 아빠의 무기력한 모습과 땡땡의 모습이 겹쳐져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다.

그런데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교사 땡땡은 예전에 열정적인 교사였고, 학생들에게 맞은 이후 그렇게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평범한 교사로 살고 있지만 여러 학교를 다녀 보았고, 교단에 서서 참담하고 무기력한 순간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땡땡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좀 씁쓸해졌다.

'저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다 제멋대로이고, 안 듣는 쪽이 더 잘못이지만 저는 듣고 싶어요. 선생님께서 우리보고 들으라고 하셔야죠. 어리광으로 보일진 몰라도 애들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어른들이 우리에게 똑바로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단 말이에요.

땡땡에게 따지는 가나에, 땡땡과 이야기하면서 아빠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가나에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 자식간에 소통이 잘 안되고, 교사와 학생간에도 형식적인 관계만 남아 있는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이 소설에서는 가벼운 터치로 수채화를 그리듯 조금씩 묘사된다. 하지만 결말 부분을 보면서 나는 작은 희망을 보고 있었다.

2. '굿 럭'은 아이가 둘인 15년차 부부가 위기에 처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느 날 아내 유미코가 다카시를 데리고 친정에 가 버린 사실을 안 남편은 인생 게임을 하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어디서부터 상황이 잘못 된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사범대 출신인 둘은 학교폭력으로 얼룩진 성장기를 거친 사람들이라 미래의 교육환경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만 유미코가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은 데 비해 주인공은 대기업에 합격하고서도 교사가 된 아내의 마음을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둘의 벽은 거기서부터 생긴 것이다.

"유미코는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반드시 설명했어야 하는 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사이에 그녀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결국, 서른일곱 살이 된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나는 결혼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겨우, 풀지 못한 오해들이 쌓여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오해는 둘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서로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오해함으로써 둘의 결혼 생활은 파탄 직전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부부는 서로의 정체성을 더 이해하고 아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집을 찾아 온 치매 노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의외로 위로 받는 주인공을 보며 가슴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3.'레오에게 봄이 오면'은 두 돌도 되기 전에 자식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임시 교사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서도 무섭도록 당돌하고 위협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레오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돌파구를 모색하지만 잘 안 되고 레오의 일탈 행위는 더해만 간다.

가정방문을 간 연후에야 레오의 내면의 상처를 알게 된 주인공은 레오에게 조금씩 다가선다.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는 레오를 끌어안으며 주인공도 조금씩 상처가 치유될 것이란 것을 우리는 안다!

'굿 럭'에서는 간접적으로 나왔지만 세 이야기 모두 교사가 등장하여 연작 소설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중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교육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레오에게 봄이 오면'에서 교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하여 인상적이었다.

 작가 시게마츠 기요시는 가볍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썼고, 그의 소설은 읽은 후 무언가 우리 일상을 되돌아 보게 하는 힘을 지닌 듯 하다. 가장 가까운 이들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 주며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살포시 전해 준다. 이 책의 제목'굿 럭'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도 외치고 싶다. 모두들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서로의 이야기를 평화로운 눈으로 듣고 참을성 있는 귀로 들어서 서로의 마음에 닿기를! 가장 가까운 그 사람과는 꼭 소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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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6-18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말이라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더라도 듣기 좋은 말이에요..^^
모두들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그나저나 어깨는 좀 어떠신지요..^^)

비자림 2007-06-1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어깨는 많이 나았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더운 여름, 님께도 좋은 일 가득하시길!

hnine 2007-06-19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일본 소설과 친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저도 며칠 전에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소통의 수단은 옛날보다 발전했는데 왜 사람들은 소통의 문제로 이리 힘들어 하는 것일까요.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비자림 2007-06-1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hnine님 반가워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참 좋죠? 만약 소설을 쓸 수 있다면 그런 소설을 저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따스함을 주는 소설, 한 사람의 마음, 한 사람의 마음의 상처까지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