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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구판절판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중략)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P.10-11쪽

멕시코의 곤잘레스 할아버지는 기막힌 이발사였어. 60대의 할아버지였는데 그 손길, 있잖아. 일개 머리통에 불과한 것을 대하는 자세가 예술적이었어. 뭐랄까, 배려가 넘치면서, 정확하고, 심지어 부드럽기까지 했는데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전혀 생색내지도 부러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는 거야.-P.14-15쪽

춤을 추는 두 사람은 잔잔한 호수를 걷는 새들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나는 순간 탱고의 의식 앞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이라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 출 수 없는 춤. 저런 춤을 추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 벽에 붙은 포스터의 글씨가 이렇게 읽히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P.44-45쪽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진 게 없어 불행하다고 믿거나 그러지 말자.
문밖에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던가.-P.100-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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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7-07-09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지 번호가 없는 책을 일부러 페이지 번호를 매기며 다시 치고 싶었다. 시 보다 산문이 더 끌린다, 이병률은.
50개국 200여 도시를 다닌 사람답게 선명한 사진들, 아름다운 풍광들이 있어 '끌림'은 매혹적인 산문집이었다.



홍수맘 2007-07-1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은 나의 로망이지만 한번도 떠나본적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유난히 "여행산문집"에 약한 저랍니다. 저도 "끌림"을 당하고 있답니다.

씩씩하니 2007-07-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글 읽으며 갑자기 '여인의 향기'를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알 파치노가 카페에서 만난 여자랑 추던 춤..탱고 맞죠???
참 감동적이었는데....
열정이란 말........딱 맞는거 같애요...

프레이야 2007-07-1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문이 더 끄는 시인이군요. 저도 이 책 담아갑니다. ^^

비자림 2007-07-1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이번 여름에 가까운 데라도 가시길! 저도 방콕 체질인데 이 책을 읽으며 갈 곳이 많아졌어요.
씩씩하니님, 저도 '여인의 향기'가 생각났지요. 알 파치노의 그 카리스마란!!!!
혜경님, 사진도 참 좋더라구요. 님과 님의 옆지기님이 그런 종류의 책을 펴내기를 기원합니다.^^

2013-04-26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두막 편지 - 개정판
법정 지음 / 이레 / 2007년 1월
절판


사람은 저마다 따로따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도 공유共有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칼릴 지브란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넓지 않을수록 깊고 진하고 두터워진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에 떨어진다.
행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지나친 것은 행복을 침식한다. 사람끼리 만나는 일에도 이런 절제가 있어야 한다.-p.95-96쪽

식물은 인간에게 유익한 에너지를 내보내고 있는데, 투명한 사람만이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기운이 달리면 숲속으로 들어가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그 나무의 기운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가까이해야 삶에 활기가 솟는다. 식물에서 삶의 신비를 배우고 기운을 받아들이라.-p.156쪽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할 것인가. 유유상종, 살아 있는 것들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그러니 자리를 같이하는 그 상대가 그의 한 분신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는가.-p.183쪽

교육이 할 일은 배우는 사람들이 온갖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개인이 지닌 특성이 마음껏 꽃을 피워 세상에 향기로운 파동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진짜 시를 가르쳐 보인 존 키팅 같은 교사가 우리에게는 아쉽다.-p.204-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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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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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들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며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처럼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
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
간임을

-p.14-15쪽

순정



비가 오고 마르는 동안 내 마음에 살이 붙다



마른 등뼈에 살이 붙다



잊어도 살 수 있을까 싶은 조밀한 그 자리에 꿈처럼 살
이 붙다



풍경을 벗기면 벗길수록 죄가 솟구치는 자리에 뭔지
모를 것이 끊어져 자리라고 할 수 없는 자리에



그 짐승 같은 시간들을 밀지 못해서 잡지 못해서


살이 붙어 흉이 많다 -p.90-91쪽

당신이라는 제국


이 계절 몇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
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해할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
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과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상현은 하현에게 담을 넘자고 약속된 방향으로 가자
한다 말을 빼앗고 듣기를 빼앗고 소리를 빼앗으며 온몸
을 숙여 하필이면 기억으로 기억으로 봄날은 간다



당신의, 달빛의 여운이 걷히는 사이 흥이 나고 흥이 나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러다 춤을 추고, 또 결국엔 울게
된다는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간곡하게



봄날은 간다



이웃집 물 트는 소리가 누가 가는 소리만 같다 종일 그
슬픔으로 흙은 곱고 중력은 햇빛을 받겠지만 남쪽으로
서른 세 걸음 봄날은 간다


-p.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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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7-07-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쓸한 보헤미안 같다, 그는.
여러 겹의 외투를 입은 언어를 만났다.
외투 사이 사이 한 사내가 건너가는 강물 냄새가 흐르고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서로의 쓸쓸함을 부벼대는 억새들이
그와 함께 울고 있는 것 같다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울고 있는 것 같다.


2007-07-07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7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자림 2007-07-0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만 보이시는 분, 님의 서재로 갑니다.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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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했던 엄연하고 무거운 현실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립니다. 그 반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도 일단 기록되어버리면 존재했던 것으로 착각되어요. 세월이 흘러 증언자들이 모두 늙어 죽어버리면 더욱 그렇죠.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니까요. 우리는 기억을 믿듯이 기록을 믿어요.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 존재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 범위까지만 유효성을 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에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p.8쪽

빗방울의 소멸은 참 쿨하기도 하지. 사람의 목숨도 투명한 셀로판테이프처럼 원하는 길이로 착착 끊어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사라질 때 집착이나 슬픔 따위 구질구질한 찌꺼기는 남기지 않고 물방울처럼 투명하게. 빗방울처럼 유쾌하게.-p.114쪽

섹스를 할 때 이진은 자신의 몸이 천 겹의 꽃잎을 가진 커다란 작약꽃과도 같다고 상상했다. 수없이 겹쳐지고 포개어진 그 화려한 꽃잎 사이의 어느 갈피에 까다로운 하얀 고양이가 숨어 있었다. 하얀 고양이가 어느 꽃잎 사이에 숨어 있을까. 가장 부드럽고 가장 섬세한 몸짓으로 한 장 한 장 꽃잎을 들추어가는 것이 그들의 섹스였다. 고양이는 한 곳에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다. 아주 조심스럽게 성깔을 부리고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면 천겹의 꽃잎을 가진 작약은 갑자기 조명이 꺼진 듯 풀이 죽고 꽃잎을 내려버렸다. -p.163쪽

이현의 깊고 우아한 눈시울, 지구상에서 가장 달콤한 눈웃음을 담은 그 아름다운 눈시울이 이진의 앞에서 애태우고 목말라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뼈 안쪽의 몹시 깊숙하고 예민한 부분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은 금세 온몸의 뼈마디로 퍼져나가 나의 온몸을 지지고 달구고 부수었다. -p.258쪽

성공의 여부를 모르는 대로, 희망에 들떠 일단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요? 그러므로 육신과 정신의 고통을 이기고 이세 공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결심한 나의 이름은 기록될 가치가 있습니다. 나의 이름은 이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p.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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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2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반가워요.^^ 163쪽의 글이 어쩜 그리 좋은지요.
천겹의 꽃잎을 가진 작약, 그 속을 헤치고 다니는 하얀 고양이 한 마리,
성깔 부리고 까다로운... 그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어져요. ㅎㅎ
건강하신 거지요? ^^

비자림 2007-05-26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제가 읽은 구절을 님이 읽으시니 저도 반갑네요^^ 배혜경님, 편안한 주말 되시길!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 2
스티브 비덜프, 샤론 비덜프 지음 / 북하우스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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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노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세계를 만들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57쪽

뛰어노는 것은 또한 모든 창의력과 발명정신의 원천입니다. 위대한 음악가들, 과학자들, 연인들, 예술가들, 경영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을 가지고 놀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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