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혼자’라는 것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추구해야 하는 과제인 사람도 있다.
나는 비로소 혼자. 가 되었다. 나는 드디어. 혼자. 가 되었을 뿐이다.
지치고 힘들었을 때 돌아가서 푹 쉴 곳이 충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조용한 고양이가 있는 내 집이라는 게 너무 좋다.
혼자에게는 당연히 외로움도 따라오지만, 내가 똑똑히 고독 속에서 들여다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니 일시적 외로움의 해소를 위해서 질 낮은 선택들을 하면 안돼.
차라리 그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낫다.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나아.
그것들은 지나갈 뿐이며 나를 해치지 않는다. 나를 해쳤던 것은 질 낮은 관계들.
매달렸던 것은 댓가가 따랐던 사랑과 인정과 갈망들.
진공의 시공간을 혼자서 통과하면서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오랜 시간 앓아온 마음인 만큼 시간과 공을 들여 살펴야겠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님. 봐줘야 한다. 가엾고 딱하고 안쓰러운데 걔한테 가혹하게 굴지 말자. 모르는 척 하지 말자. 나는 천 번을 모르는 척 하다가 천 한번 째에 잠깐 집중하고 딴청을 피우고 막 그래. 그런데 계속 걔가 느껴져서 쳐다봐주기로 한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머리가 데인 듯이 뜨겁다.
아침에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어쩌고가 떠올라서 검색했는 데, 안전의 욕구 다음은 사회적 욕구고 맨 끝에는 자기 실현의 욕구. 나는 안전의 욕구를 스스로의 힘으로 꾸려 놓았을 뿐이고 그걸 하기 위해 만든 조건이 혼자가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어야 한다. 굳히기. 안전하구나. 그건 내가 만들어 낸거다.
그리고 이젠... 너무 지치는 일이지만 어떤 것들을 해결 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봐도 좋으려나.
할 수 있는 만큼만 이라고 생각하는 데, 눈물 범벅이 되서 머리 아파 죽겠다.
약해진 상태에서는 아무에게나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좀 배우게 되었다.
쉴 때는 바쁘게 쉬는 거 금지. 속 안에서 올라오는 상처들에 집중하기. 잠겨있기.
이 시간들을 통과하는 동안 내가 일기를 쓰는 사람인 게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들을 매만지다 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머리를 흔들고 뭐 그랬다.
감정에 맞는 몸 짓을 해줘야 감정이 해소 된다고 한다.
그만 파내려고 했는 데 더 파내야 할 것들이 있었어.
마흔 전에 안 게 어디야.
당분간 잘 먹어야겠다.
-사랑, 사랑이 뭘까요.
-어려운 거 아니에요. 하나 하나 풀어놓고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 그것들에게 잠겨보는 거. 그걸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러려고 온 거예요.
-너무 화나서 너무 슬퍼서 아파서 그러고 싶지가 않은 데요. 벌써 이렇게 머리가 아픈데.
-이제 시작예요. 하실 수 있어요.
사랑 받고 싶어서 노력하는 내가 보인다.
어른이 된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해는 어린 아이의 몫이 아니다.
이해는 아이의 몫이 아니다.
너 잘못한 거 없어. 너 이해 할 필요도 없어.
그 말은 틀렸어. 그 말들은 의미가 없어.
발이 시리고 춥다. 그래도 이젠 다시 집에 돌아갈 필요가 없다.
내 집이 있으니까.
마음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벌어지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잔디밭 위에 선 채 나 자신의 멍청한 갈망을 노려보았다. 적막함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외로웠다. - P102
그 후에 내가 외로움에서 나 자신을 비틀어 떼어냈던 게 기억난다. 외로움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균형이야 말로 모든 것이었다. - P102
나는 내 주위 잔디밭을, 건물들을, 주차장을, 직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조그맣고 빈틈없는 세계를 둘러보았다. 이 세계에서 내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방법을(다시 말해 무례한 모욕을 피하고 어디까지 굴복할지 한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 P102
삶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든, 삶은 순간이라는 좁고 똑바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달려 있다고 나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나는 몽상으로부터 몸을 돌려 걸어갔고, 주방 문을 통과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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