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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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읽지 않는 장식용 책들로 가득하다. 그냥, 너무 장식용 책들이라서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 날은 뭐라도 빼들고 가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무의미했다. 정확히는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어느 영화의 장면처럼 툭 치거나 후 하고 불면 사라지는 입자들처럼 남김없이 흩어지고 싶은 아주 늦은 저녁의 퇴근 길.

“(p.38) 먼지. ... 작고 쓸모없는 물질, 청결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것, 모든 생명체가 덧없이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형태. ... 한곳에 정주하는 일 없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흩날리며 지금껏 나는 살아왔으니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할 때 마다 세상 곳곳을 누비는 먼지를 떠올리던 날들이 있었으니까.”

단순한 제목의 단순한 표지. 소설의 시작은 무심하고 물끄러미 흘러갔다. 나 역시 무감각하게 읽기 시작했다. 더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하기 싫을 때는 역시 누군가가 안내하는 이야기가 최고지 하면서.

“(p.43) 파리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데도 노파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희는 노파의 이름일까.”


그러고 보면 나는 시시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꽤나 노력해왔다. ‘꽤나’라는 부사는 나 자신에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주 애써왔으니까. 이따금 견딜수 없어지는 것은, 계속 애써야 하니까. 너무 바빠 혹은 너무 힘에 부쳐 정신 줄을 놓고 싶은 순간에,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그래도’를 꼭 마음 한켠에 품고 사니까. 숨막혀 하면서도 숨쉴 구멍 하나를 머릿속에 만들고 있을 때 나의 표정은 살아있기 보다는 정물같은 모습일 것이다. 매일 아침의 지하철에서 나는 그런 정물에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을 곰곰이 뜯어보기도 했었더랬지. 요즘은 꽉 낀 마스크 때문에 그 조차도 어렵지만.

그래도 정물은 아니니까. 사람이니까. 아무리 표정이 없어도, 내가 알아챌 수 없다고 해도. 그러니까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내 고통이 아주아주 크다고 해서 쉽게 단정짓지는 말아야할. 누군가의 삶. 곡진한. (아직은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

“(p.176) 이제 내게 추연희 라는 이름은 복희 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 생, 백복희의 두 번째 엄마.....”

사람은,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온기를 지닌 존재라는 건. 너무도 구체적이고 복잡한 궤적의 총체라 쉽게 알려하거나 품으려 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아직 나 자신도 모르잖아, 나 하나로도 이렇게 벅차잖아. 하면서. 여전히 그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퇴근길 꼬박, 늦은 밤 꼬박. 길지 않은 소설을 몰입해서 읽고 “사느라 살아내느라 너무 고생한” 한(혹은 여럿) 여성의 삶과 이별하며 정말 많이 울었다. (울고 싶어서 소설을 이용한 것인가.... ) 이 눈물의 의미는 뭔가, 생각하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여적 남아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가 아프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 그냥 나도 덜 힘들고, 너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는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끝에 매달리는 나약한 나에 대한 불신의 마음. 완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아직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기는 힘들겠다는 마음까지도.

내가 이렇게 치사해 엉엉.

그렇게 울고 나니까 그래도 쪼금은 더 잘 살고 싶어지더라. 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방법은 생각안나지만 누군가를 사랑은 못해도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지는 말아야지 그랬다. 그래, 나는 먼지가 될 것이고 언제고 암흑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는 건 어차피 고생이고, 이,그,저 고생하다 헤집어진 마음의 상처에 단정하지도 않은 짧은 댓글을 다는 것 말고는 맞서는 방법을 모르는 나이긴 하지만. 얼른 단단해져서, 조금은 더 강해져서, 스스로 믿는 구석이 손톱만큼이라도 생겼을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가 허락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 한 조각은 내어주자고.
그냥, 계산 없이, 단순하게.
가능한 만큼만, 진심으로.

시시 때때로 비릿한 냉소가 올라오긴 하지만, 난 역시 착하고 따뜻한 게 좋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위선보다는 진짜로 선한게.
그리고 기왕 선할거면 너무 무르기보단 적당히 단단했으면 좋겠어.
물론 단단함이 선함을 압도하면 안되지.
적당히 무른 단단함으로 선하게 살고 싶다. 으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너무 쉽게 살지는 말자.

그러다 사는 게 너무 어렵고 아파지면,
어렵지 않고 착한 소설 한편 읽고 울다 자야지.
그런 날 읽기 맞춤했던 좋은 소설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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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ex 2020-09-0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진심 / 조해진 지음˝ 읽으란 얘기인지, 말란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독후감‘과 ‘외로움‘이 겹쳐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서 읽어도 될까요?

공쟝쟝 2020-09-07 18:21   좋아요 0 | URL
사서 읽으셔도 되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