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독보적 유튜버 박막례와 천재 PD 손녀 김유라의 말도 안 되게 뒤집힌 신나는 인생!
박막례.김유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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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빌려서 버스에서 쓱 훑어보다가 눈물샘 터져서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첫페이지부터 너무 훅 치고 들어와서, 깜짝 놀랐음. 물론 초반의 짠함이 후반부의 신남으로 후련하게 상쇄되지만, 앞부분은 입술 깨물 각오 하고 읽어야 한다. 그녀의 젊은 시절이 너무 기구하니까. 그런데 기구하다라는 말도 참 덧없이 느껴지는 것이- 박막례님의 기구한삶이란 반세기 전의 너무도 평범한 한국 여성의 삶이기에

그 시절은 모두에게 다 기구한 삶을 선물했던 듯 하다. 어쩌면 별일 없이 평탄한 삶이 특별한 삶일 지도 모르겠다. (이건 누굴 탓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현대사 정말 나빴다..라고 할 밖에....)

 

모든 것에서 기꺼이 용감한 박막례님이 유일하게 부끄러워하는 주제는 자신의 못배움이었다. 책에는 그녀가 글을 익히는 것 조차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들이 푸념처럼 섞여있는 데, 이게 실화냐 싶을 정도라서 한숨이 푹푹 난다. 비교적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그녀 역시 여자가 많이 배우면 집나간다는 근거로 공부를 안시켰다고 한다. (잠깐 뒷골 당겨서 말잇못...)

 

근데, 사실인 것 같다. 배운 여자, 똑똑한 여자들에게 결혼과 출산과 육아란?????? 배운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은 나도 직관적으로 알겠다. 현대의 여성이라면 뒷목잡고 쓰러질 이 속담은 사실 가부장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집 안에서만 기능해야 한다는 것. 집은 여성을 묶어두는 곳이라는 것. 공부는 집 밖의 세상을 알려준다는 것. 그리하여 공부한 여자는 집 안에서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

집안에 여성을 묶어두면서 유지해 온 가부장적 질서는 여성이 집바깥의 삶을 건네다 보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질서와 싸우기 위해 우리는 악착같이 많이 배워서 집을 나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까지 실컷, 실컷 나가있어야 한다. 당연히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

 


나에게는 몇가지 눈물 샘 코드(그 주제가 나올 낌새만 보여도 눈물 펑펑남)가 있는 데, 그 중에 하나가 엄마-가난-헌신-뒷바라지정도로 축약되는 자기 삶 없는 엄마라는 여성의 모습이다. 버스에서 참지 못한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이 눈물의 의미는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감사와 미안함 40%, 안타까움 20%, 공포 20%, 기타의 감정 20% 정도로 구성되어있지 않나 싶다. 20%의 공포에 대해 추가설명 하자면, 나도 엄마처럼 살까봐 되시겠다. 엄마처럼 살기는 싫은 데,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나에겐 엄마가 필요하고. 그 오묘한 역설.

 

엊그제 유키즈온더블록이 틀어져 있어서 생각없이 보고 있는데, 출연자 중 한명이 영상편지를 보내면서 엄마, 이젠 제발 편하게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 했다세상의 모든 딸들이 하고 싶은 말 아닐까. 그런데 정작 엄마는. 삶의 많은 시간을 누군가를 돌보느라 송두리째 써버린 엄마는

뭐가 하고 싶을까

하고 싶은 것이 있긴 할까.


 

*

 

70대의 유튜버가 되기 전까지 박막례님의 삶도 그러했다. 누군가의 밥을 해주기 위해서만 기능하는 삶. 도저히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는 삶. 이제 더는 밥을 안해도 된다는 은퇴를 앞두고, 할머니는 치매 위험진단을 받으신다.

 

“(56) 70평생을 아버지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허리가 굽어라 일만하며 살다가 박막례 씨,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날,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나는 어떤 생각에 단단히 미쳐있었다. 우리 불쌍한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62) 치매는 의미의 병입니다.

내 존재가 더 이상 큰 의미 없다고 판단할 때 뇌세포도 서서히 감소하게 되고, 그렇게 기억력을 잃어가는 병....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들 때 우울과 시련이 나를 잠식하면서 뇌세포가 하나 둘 손상되는 마음의 병.

그래, 애꿎은 두더지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할머니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신 삶의 의미를 찾게 하자!”

 

어떤 사람에겐 자기 자신의 삶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최소한의 자신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모두가 당신 자신의 삶을 찾으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별 상관없는 사람에게 하는 으레의 조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어떤 조언이라면, 그것은 먼저 나 자신의 변화를 걸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김유라PD가 할머니 삶의 의미를 위해 사표를 낸 것처럼 말이다.

 

당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싶었다는 손녀의 조력이 없었다면, 할머니 인생이 부침개처럼 뒤집힐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나의 경우 요즘 뭘 읽든 뭘 보든 페미니즘 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는 터라, 할머니와 손녀의(자매들의) 멋진 연대로 읽었다.

 


*


 

후반부의 막례님 인생 2막 부분도 좋지만, 시간이 없다면 앞부분의 젊은 막례님의 이야기 정도만 읽어도 무방하다. 그녀의 열다섯, 스물다섯, 서른다섯의 삶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살면서 만나온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박막례님의 이야기는 엄마의 친구 이야기에서건, 더러 내비치는 본인의 이야기에서건, 목욕탕의 아주머니 수다들에서건 분명히 들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들을 다룬책은 있었겠지만, 날것 그대로의 들이 담긴 책은 드물다. ‘이야기(드라마)’수다는 그녀들의 것이었지만 은 그녀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삶을 서사화하고 그것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분명히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있을 수 없는 그녀들의 모든 서사는 드라마에 투사되고, 그러고도 남은 말들은 글이 아닌 수다로 쏟아졌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들(혹은 나)- 눈을 감고 뜨면 내일이 와있고, 내 일들이 펼쳐져있었겠지.

 

그래서 귀했다. 밥만 했다’, ‘작년과 똑같이 살았다와 같은 무뚝뚝한 한 줄 짜리 구술. 일상에 삶이 잡아먹혀버린 사람이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이라고 여겨졌다. 한 줄을 제외한 나머지 페이지의 빈 공백이 사실은 그녀가 담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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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리뷰에 요즘 여자들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데, 할머니처럼 고생을 해봐야 페미니즘 어쩌고 하는 소리 못할거다라는 류의 댓글을 읽었다. 아니, 오독도 이런 오독이 없다. 박막례님은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결혼 안하고 기계랑 살 거라고 하셨다.ㅋㅋㅋ



내가 할머니처럼 70세 노인이었다면
다시 저 두려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죽음이 두려워 가만히 앉아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박막례의 인생 역전은 내가 옆에서 등 떠민게 아니라,
이날 다시 바다로 직접 그 두 발로 걸어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서 시작된 기적이었을 것이다 - P92

한번은 할머니가 밥 먹으러 온 에버랜드 직원한테 "삼촌, 나도 에버랜드 구경 한번 시켜주면 안 돼?"라고 하니까 정말 구경을 시켜줬다. 그런데 들어가면 뭐하나, 아무것도 안 태워주는데.
박막례답게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안 탄다’고 웃어넘기고 집으로 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할머니에게 너무 박했던 것 같다. 본인 나이를 자각할 시간도 없이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다가 이제 좀 여유가 생겨 돈 내고 놀이기구 좀 타볼랬더니 늦게 왔다고 뒤통수 맞은 거다.
인생, 진짜 뭘까?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아쉬운 게 없는 거야?
열심히 살아야 해서 열심히 살았는데도 그게 꼭 잘 산 게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너무 쉽게 벌어진다. - P225

"귀신이고 나발이고 난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어. 다시 내 인생을 돌아다보기 싫어. 내 인생이 젤로 무섭지. 내 인생만치 무서운 게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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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8-20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리뷰는.. 뭡니까. 할머니처럼 고생을 해봐야 페미니즘...
하아-
뇌 너무 투명해주시네요. 하아-

쟝쟝님 리뷰 써주니까 너무 좋다. 자주 오고 자주 좀 써줘요!

공쟝쟝 2019-08-20 09:20   좋아요 0 | URL
설마 그말 나올까 했는데 설마나왔음 ㅋㅋㅋ 뇌청순 ㅋㅋㅋ
그르게요.. 자주 좀 와야하는 데 ㅠㅠ 인생의 낙인데... 나 맨날 왤케 바쁨???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