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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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다 덮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경애의 마음과 상수의 마음을 빨리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 몇 분 동안 마음이 있음직한 품에 책을 가만히 안고 있었다. 🥺 너무 오랫만의 소설. (올해 처음 읽은 소설인거 실화입니까?...)

카알벨루치님이 <너무 한낮의 연애> 속 조중균이 <경애의 마음>에서는 확장팩으로 등장한다더니 사실이었다. 괴짜같은, 스스로 안에 유폐된. 그러나 세상이 쥐락펴락할 수 없는 자신만의 룰을 가지고서 단호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 부스러진 마음을 가지고 파괴되지는 않았다며, 언젠간 결국 누군가의 곁에 서 있기로 하는 사람. 글쎄, 상수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아니 있다고 하여도 나는 그를 알아 볼 수 있을까.

“(97) 경애가 이 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 많은 것들이 생장하고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애도 아무튼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마음이 들면 경애는 불현듯 약속을 잡아보다가도 낮이되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없어,라고 생각하며 외출을 취소하곤 했다.”
“(307) 버틴 건, 버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버려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멸 속으로.”


나 자신을 내버려둔 적이 있다.
삶의 키를 단단히 부여잡고 휩쓸리지 않겠다고 애를 쓰면서 “이것봐, 나 아주 잘 살고 있고, 잘살아 낼거야.” 증명하던 시간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면 남은 시간 동안은 정말로 나를 방기했다. 술과 잠 혹은 불안과 무기력으로.

나는 버틴다고 생각했었는 데, 그렇게 버티는 것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 데. 돌이켜 보면 무엇을 버틴 것일까. 시간이 지나가기를? 세월이 흘러가기를? 가진 것은 시간 밖에 없었으므로 그냥 시간을 무턱대고 펑펑쓰며 하염 없었다.
짧지 않은 이번 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을 테지만 후회된다. 그렇게 미련하게 오랫동안 버티는 것은 아니지 않았었나. 누구보다- 지금의 나에게, 미안한 것 같다.

“(349)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경애의 마음>에서 가장 눈을 끄는 것은 강하지 않은 개성을 가져 강한(?) 주인공들이다. 한 번에 눈길을 끄는 매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읽어 갈수록 이해가 갔고, 어느새 응원하고 있었다. 조금은 못난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대하는 어딘가가 나와 닮은 두 사람을. 그런데 또 나보다는 훨씬 멋진 태도를 가진 인물들을.

자꾸 뒤돌아 보게 되는 상수와 경애를 닮고 싶다. 부스러짐을 직시하지만 파괴되지 않았다고 토닥이는 용기를. 자신의 상처를 마구 휘두르지 않고 고독으로 스스로를 잠그고 유폐된 응시의 시간을 오롯이 견디는 수선스럽지 않은 태도를. 그렇게 조금씩 모은 힘을 막 다 써버리지 않고 아끼고 모아 자신을 가지런히하고 곁의 속도를 기다리는. 가만가만한 조심스러운. 약간은 미지근한 것도 같은 그러나 실은 적당한 온기의 마음을 갖고 싶다.

오랜기간 동안 난 항상 뜨거운 사람이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 멋져보이고 싶어서, 때때로 특별한 사람이고 싶어서. 언제나 촉수를 곤두 세우고 - 그들이 원하는 입에 발린 좋은 말을 하려했다.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굳게 믿었다. 나의 뜨거움이 여름의 옥수수처럼 관계를 쉽게 상하게 한다고 한들 내 탓은 아니라 여겼다. 돌이켜보면 그 뜨거움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표면적으로는 너, 파헤쳐 보면 나. 누구에게 이득이 되었을까. 글쎄. 결국은 누구에게도.

서투르고 미지근한 참으로 느린 그들의 연애(혹은 연대)를 생각한다. 쉽게 끓거나 식지 않는 온도와 더딜지라도 단단한 속도로, 세상을 살아 갈(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다 써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진지한 욕망이 생기고 말았다.

“(176)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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