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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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서 읽다가 잠깐 덮어두고 나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 끝에 조금 남았는 데- 좀처럼 마지막 단편을 읽지 못하다가 <경애의 마음>을 주문해버렸으므로 마저 읽기로 했다.


확실히 이 소설은 앞의 세편이 너무 재밌다. 
뒤로 갈 수록 어렵기도 하고, 막판의 해설은 제목마저 난해해서 곤혹이었다..

필용, 양희, 조중균, 세실리아.
어딘가가 뒤틀린, 그런데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들.
과거의 그들이 나의 예전과 조금씩 닮아있어서, 나는 위태위태하게 그들의 성장을 바랐지만 글쎄 - 구덩이를 파고 다시 덮고 하는 세실리아처럼 여전히 그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음담패설은 잘하면서 연애에 도통 관심이 없는 무성애자?
꽃에 물을 주듯 매일 일정량의 알콜을 주입하며 학교뒤 술집 골목을 밤마다 휘젓고다닌 주정뱅이?
토론만 시작하면 이길 때 까지 대화를 이어가야만 하는 고집스러운 여자후(선)배? ⠀⠀⠀⠀⠀⠀⠀⠀⠀⠀⠀⠀⠀⠀ ⠀⠀⠀⠀⠀⠀⠀⠀⠀⠀⠀⠀⠀⠀
˝(p.42) 너무 한낮의 연애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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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동안 취해서 흔들리듯 걸어다닌 것 말고는 남은 게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듯 한낮의 화면처럼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래도 주머니에 모욕의 값으로 이만원을 항상 꽂아놓고 다니는 조중균씨 처럼 절대 놓지 않아야할 다짐하나 정도는 나에게 잠겨있을지도 몰라, 생각하며 내일 출근을 위해 이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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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6) 세실리아
이미 전철이 끊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으로 걸었다. 취객들은 항상 집을 향해 걷는다. 집이 생각나지 않을 땐 집으로 가는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길로 걷는다. 가다가 여기는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면 집이라 믿으며 걷는다. 우리는 늘 취하고 집으로 가지 못하지만 그건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거나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야. 술을 마시면 마음이 곧잘 파쇄된 얼음처럼 산산조각 나곤 하니깐 아무곳이나 집인가 싶어 그러는거지

(p.286) 작가의 말
나는 일상을 가만히 견디다가도 어느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주변의 누군가에게ㅡ낯선 당신에게라도ㅡ가서 막무가내로 묻고 싶을 때가 잦은데, 그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는 질문이다. 괜찮습니까, 하는 질문. 왜 이렇게 됐습니까, 괜찮습니까.
그렇게 물을 때 나는 사람들 곁에,
차가운 창의 흐릿한 입김처럼 서 있겠다, 누군가의 구만육천원처럼 서 있겠다, 문산의 느티나무처럼 서 있고, 잃어버린 다정한 개처럼 서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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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7 0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중균씨 이야기는 <경애의 마음>에서 확장팩으로 등장한 것 같아요 <너무 한낮의 연애> 읽다가 진도가 정말 안 나가던 찰나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냥 포기하고 반납했습니다 푹 쉬세요~

공쟝쟝 2018-09-27 00:33   좋아요 0 | URL
확장팩!! 조중균씨 또보고 싶었는데- ㅎㅎㅎ 궁금해졌어요~!

공쟝쟝 2018-09-27 00:33   좋아요 0 | URL
긴 연휴 끝났는데 아직도 더 쉬고 싶네요 ㅠ 벨루치님두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