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둥개님이 전파사에 대한 페이퍼를 쓰신걸 보자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울 둘째 삼촌... 정말 존경스런 분이시다.   울 엄마는 이북이 고향이시고 부산피난 시절 고생도 좀 하셨다... 그때 울 둘째 삼촌이 세살이었던가...  튀밥을 먹고는 밤에 경기를 일으켰는데 그게 잘못되었나 소아마비가 되셨다.

피난시절 울 엄마가 그런 동생이 안쓰러워 놀리는 아이들 있으면 엄마가 나서서 때려주곤 했다는데 엄마는 학교에 못갈지언정 삼촌을 업어 가고 업어 오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시켜야 한다고 했다는데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놀리고 화장실 가는것도 그렇고 그래서 삼촌 스스로 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못배웠다고 하신다.  게다가 그 당시 고등학교에선 장애인은 학교에 올 수 없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규정을 내세워 입학을 불허하는 바람에 울 둘째 삼촌은 중학교 졸업장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늘 공부에 안타까움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데  학교 진학이 어려워 지자 대신 뭐든 조물딱 조물딱거리면서 만들고 조립하고 그런걸 좋아하셨단다.

서울로 다시 올라온 후엔 할머니가 청계천등을 돌면서 삼촌이 관심있어 하는 것들에 대한 책과 공구들을 구해다 주곤 했는데  그게 바로 삼촌의 직업이 되었단다.

처음엔 정릉에서 시작해서 제법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돈 벌이도 잘되었는데 삼촌가게가 잘되니 우후죽순처럼 전파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곳으로 이사를 했고 벌써 30년이 되어 온다..

벌판이던 이곳에 터를 잡고는 여지껏 전파서 간판을 걸어 놓고 계신다.

한참이던 80년대는 기사도 3명이었고 조명부터 하수도 공사까지 안하는것 없이 다 하는 정말 만물상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흥청망청하던 시절이아니었으니 당연히 조금 고장나면 바로 전파사에 수리를 부탁하거나 출장수리 부르는게 일반화 되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고장나면 그냥 가전회사 A/S를 부르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에 A/S라는 개념도 없었던것 같다.

우린 방학때 삼촌댁에 놀러가는게 무지 재밌었다.. 셋째 넷째 삼촌까지 다 달려들어 일을 했지만 늘 일손이 부족했었다.

손재주가 좋은 울 큰오빠는 중학교때부터 방학때 마다 삼촌네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도 초등학교때부터 삼촌댁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특히 신나는건 형광등 조립할때 마다 개당 10원인가 5원인가를 받았던거다.  

지금은 형광등도 잘 안쓰지만 그때는 형광등 본체가 있고 갓이 있고 그리고 나서 스타트전구를 끼고 형광등을 껴야 비로소 완성품이 되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체인이 있어서 그걸 본체위에 있는 고리에 걸어 주어야만 나중에 사가는 사람이 집에 가서 그걸 천장에 고정할때 쓸 수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본체따로 갓 따로... 다 따로 따로 나왔다.. 그래서 주말이나 방학때는 그곳에서 그걸 조립하는 알바를 했다.

그리고 난 삼촌한테 배워서 열쇠깍는것도 잠시 했었다.. 그런데 불량이 많이 나와서 짤리긴 했지만서도... 참 신기했다.. 원본열쇠를 고정틀에 끼고 나서 모양이 비슷한 열쇠를 낀후 원본처럼 요리조리 밀고 당기면서 열쇠를 깍는것이... 내가 버린 열쇠만 해도 ㅎㅎ 바쁜데 그래도 맡겨야지 별 수 있나???

어렸을때 내가 많이 팔았던 제품 목록을 기억해 보니.

1.  새한에서 나오는 연통에 다는 가스배출기라고 해야 하나... 지붕은 빨간색이고 연탄까스 냄새 빨아내 주는 거.. 이거 정말 히트 상품였는데...

2. 여름이면 선풍기 날개... 몇인치 몇인치 해서 빳빳한 전기줄에 꿰어 천장위에 걸어 두었다. 날개도 3개짜리 4개짜리 구분해야 하니 종류도 다양하고 복잡했다.   찾으면 내려서 한개씩 꺼내 팔았는데..

3.  똑딱이 - 형광등에 줄이 연결되어 있고 쵸콜렛 색인데 양쪽으로 하양과 빨강의 버튼이 튀어 나와 있어 누르면 한쪽이 튀어 나오는.. 그걸로 끄고 켜는것을 했는데.....

4. 콘센트- 전기줄에 2구, 3구짜리 콘센트를 연결 하려면 드라이버로 연다음 전기줄 끝을 니퍼로 살짝 벗겨서 구리선을 꼰다.. 그리곤 콘센트의 나사에 동그랗게 말듯 둘러 놓고 다시 뚜껑을 덥고 나사를 조인다..  반대쪽엔 110V용 코드를 연결해 준다..이것도 조립방법 동일...그러면 지금은 아예 규격화 되어서 나오지만 이때는 이렇게 전파사에서 다 만들어 팔았다.

5. 사각 건전지... 소형 라디오를 가져오면 연결을 한 다음 검정고무줄로 칭칭 감아서 건전지와 라디오가 분리 되지 않게 해줬었다.

ㅎㅎ 그러고 보면 나도 어려서 부터 만능 소녀는 아니었을까?

한번씩 할머니 손을 잡고 청계천을 돌면서 이런 저런 팔릴만한 물건을 사가지고 오는것도 재밌었다.

소형가전은 대부분 팔았었는데...    그때 청계천에 있는 육교를 건너면서 차가 지날때 마다 육교가 출렁거려 얼마나 놀랬던지  육교를 못 건너 다녔었다..

귀퉁이에서 할머니랑 잔치국수 사먹던 기억도 난다... 길에서 거의 쪼그려 앉어 자세로 먹던 아무맛도 없는 멸치국물에 국수만 덜렁 말아 주는데도 그때 국수가 참 맛있던게....

지금도 우리집은 뭔가가 고장이 나면 삼촌네로 가져간다.

그리곤 쓸만한 다른것으로 바꿔온다.. 그건 고쳐서 되팔라 하고... 좋은건 다시 가져오지만서도 그것보다 더 좋을때만 해당된다.

우리 둘째 삼촌은 우리에게 참 많이 베풀어 주셨다... 이 은혜 다 갚고 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픈 다리로 인해 이동이 불편하셨던 우리 삼촌 오토바이, 자가용 운전면허증 다 있다.

장애인은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것에 굴복하지 않고 직접 오토바이를 개조하고 (ㅎㅎ 지금은 이런 오토바이 시중에 판매되지만 울 삼촌이 최초라고 말하고 싶다.. 진작 특허출원해 둘것을... 독일군 오토바이 처럼 옆에 짐을 실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놓아 3발 오토바이를 만들었고 발로 시동을 못거는 대신 손으로 레버를 잡아 당기면 시동이 걸리게 만드셨다.. 물론 그 앞에 있던 오토바이 가게 아저씨의 부단한 노력이 같이 곁들여진 작품였지만 암튼 그걸 가지고 가선 강남면허시험장에서 떼를 썼다고 한다.. 막내삼촌이 접수하려 다니고 둘째 삼촌은 왜 이건 오토바이가 아니냐면서..시위하고.. 결국 오토바이 면허증 따내셨다...   (음 이때도 그곳에서 심한 소리 많이 들으셨다....   몸이 불편하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지 말고 집에나 있으라는등.... 쥑일넘들.. 아직 잘 살고 있나 모른다..)

자가용 면허를 따기 위해서도 차를 직접 개조하셨다.. 클러치를 밟지 못하시기때문에 긴 막대장치를 해서 손으로 클러치를 누르고 악셀을 누르고 브레이크를 누르고...이런것들이 다 가능햇다. 그 옛날 오토차가 나오기 전에 스틱차 였음에도 울 삼촌 운전 잘하셨다.

이 차를 가지고 강남면허시험장에 갔을때 또 그사람이 있었는데 또 규정을 내세워 안된다고 하는걸 그럼 장애인은 차도 안태워 주는데 아무데도 가지 말고 살란 소리냐면서 우김을 내세워.. 결국 면허증에 표시를 해서 받았다... 장애인용 특별차량에 한한다는..

지금은 장애인 차도 고안되어서 나오지만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 같은 세상에 맞서 우리 삼촌 대단한 일들을 많이 하셨다.

지금은 삼촌이 직접 만든 차 아니다... 아주 세련된 운전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은 차를 타신다.  이렇게 다리가 불편하신데도 부모님을 위하는 정성은 성한 자식보다 더 하다..

아 전파사에 대한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말이 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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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띠... 또 열이...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조선인 2005-09-29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멋진 삼촌이세요. 당근 추천감!

히나 2005-09-2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자랑스런 삼촌이네요. 저도 추천들어갑니다. ^^

비로그인 2005-09-2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터라겐님의 기억력에 한표!

2005-09-2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9-2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계천이 좋아요.
내일모레 난리가 나겠군요.^^
(1천 원짜리 그곳의 잔치국수가 지금도 있나?)

파란여우 2005-09-29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번째 추천은 접니다

클리오 2005-09-29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만능소녀.... 지금도 그 재능을 살려보심이... ^^

검둥개 2005-09-2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이어요. ^^ 목록에 나온 물건들이 저도 다 기억이 나네요.
인터라겐님 삼촌분 정말 멋지세요!!!

날개 2005-09-2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삼촌이시군요.. 제가 아홉번째 추천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