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랑 그 자체가 사랑하는 대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사랑함으로써 사람들은 그 대상에 자신의 욕망을 자연스레 투영시키고, 자신의 욕망이 투영되어 반사된 그 모습에 스스로 찬탄해 하며, 행복해 한다. 우리 모두는 그런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려 정리하자면,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지, 욕망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좋은 약이 입에 쓴 것처럼, 진실 또한 언제나 입에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씁쓸하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러한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진실 앞에서 언제나 자신을 위장하고, 서로 속이며, 상충되는 욕망들을 저울질하며 타협하는 것이다.


여기 놓인 모든 것들은 나의 투영된 욕망의 부산물들이다.


율리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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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38,000원


 

율리시즈는 벌써 몇 번째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것인지 기억에도 가물거릴 지경이다. 처음엔 범우 비평판 율리시즈를 사려 했으나, 일단 4권으로 구성되어 꽤나 거창스러울 뿐 아니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20세기 영문학의 최고봉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율리시즈를 당연히 원서로 읽어야 한다는 황당한 지적 허영심과 함께, 가격이 매우 경제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oxford판 율리시즈를 구입하고 말았다. 웬걸! 이건 완전히 성문종합영어로 영어 공부하는 것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독한 맘으로 시작한 영어 공부가 1-2달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처럼, 난 총 20장으로 구성된 성문종합영어 중 8장 ‘동사의 종류’ 편을 영원히 넘어서지 못했다. 8장까지는 무지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있지만, 그 이후론 연필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던 내 성문종합영어! 나에게 oxford판 율리시즈가 바로 그러했다. 1300페이지에 4000여개의 주석 거기다 조이스 관련 희귀 화보까지 들었다니 꽤 마음이 동하긴 하지만, 율리시즈는 나에게 무지 지루했었다는 경험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닌텐도 DS

 



 

가격: 141,000-23,8000원


 

얼마 전 부산으로 향하는 새마을 호 기차를 탔다. 내 옆자리에 재수 없게 생긴 대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걸어와 앉았다. 그는 나를 흘낏 쳐다보고선 가방에서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녀석은 곧 그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내가 곁눈질로 자꾸만 그것을 쳐다보자, 녀석은 이내 내 욕망을 눈치 채고 말았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화려한 ‘demonstration‘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소프트웨어를 내 눈 앞에 펼쳐 보이며, 자신의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이에 난 풀이 죽고 말았다. 분했다! 녀석의 고까운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하다니! 30대에 닌텐도를 산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지를 녀석이 알아주었음 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악!


Hamilton watch "Jazz Master"

 



 

가격: 890,000 원


장 폴 뒤부아의 “케네디와 나”를 보면 소설의 화자인 소설가 폴라리스는 바람난 아내와 더불어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치료차 병원을 찾아간 그는 담당의사에게서 예기치 않은 해밀턴 시계에 대한 아주 은밀한 고백을 듣게 되는데, 케네디가 암살당하던 날 병원의 간호사였던 누이가 의식을 잃은 케네디의 손목에서 해밀턴 시계를 몰래 훔쳐 나와, 그것을 병원의 의사인 자신에게 유품으로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 고백을 들은 후 폴라리스는 해밀턴 시계에 대한 끝없고도 강렬한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데, 결국 그는 총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의사를 협박해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진 해밀턴 시계를 강탈하고야 만다.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진 해밀턴 시계의 한 편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질 것을 상상하며 폴라리스는 행복에 젖어든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서 해밀턴 시계에 대한 끝없고도 강렬한 유혹에의 갈증에 시달렸고, 그 갈증을 이겨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나 역시 항상 꿈꾼다. 해밀턴 시계의 한 편에 내 이름이 멋지게 새겨지기를……. 캐주얼 시계는 이미 여럿 갖고 있는데, 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이것이 문제로다!


Thorens TD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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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3,600,000원


나에게 음악은 들고 다니는 것이었지,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릴 적  귀에 이어폰을 꽂고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음악을 듣는 것이 나에겐 꽤 호사였다. 새로 출시된 워크맨 모델들을 여러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부단히도 많은 레코드 테이프를 사 모았었다. 내 음악인생에 LP는 애초 존재치 않았다. 테이프를 사 모으는 것이 식상해질 무렵엔 이미 CD가 출시되기 시작했고, LP는 그저 사양길에 접어든 구식에 불과했다. 내가 LP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땐 이미 LP는 생산이 중지된 상태였고, 오래된 중고 물로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토렌스 턴테이블은 나에겐 결코 가질 수 없는, 향유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대체물로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차가우면서도 견고하게 느껴지는 바디와 육중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이는 톤 암. 돈이 돈 값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미묘한 디테일에서 결정된다. 구두가 다 거기서 거기지, 시계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게 들리지만, 그 사람들은 로망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미(美)란 예술이란 대부분 그런 상당히 무용하기 그지없는 가치에서 출발하는 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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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0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즈 어제 서점에서 봤는데 지금까지 봤던 책 중 제일 두꺼웠어요. 허. 읽을 엄두를 못내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