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즐겨 하고 있던 길바닥 독서. 열심히 걸으면서 책을 읽는 것으로, 아무래도 집중 수위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므로 가뿐한 만화책이 적합하다. 길바닥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을 200%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나같이 집에서는 온전한 내시간을 갖기 어려운 아줌마들에게 매우 권장할만 하다. 그런데, 길바닥 독서에는 몇 가지 단점이 따르니....
첫째는 시력 보호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 요즘 햇볕은 너무 강렬해서, 지면을 오래 들여다보면 눈이 좀 시리다. 게다가, 흔들리는 지면을 보는 것은 눈에 매우 안 좋은 일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듯 하다.
둘째는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것. 내 딴에는 <건널목에서는 아무리 재미있는 부분이라도 덮는다>라는 당연한 사항을 규칙이랍시고 정해놓고 있지만, 사실 경미한 사고는 건널목 이외 지점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제일 많이 겪는 일은 보도블럭에 발 걸려서 비틀, 하는 것.
마지막은... 이것이 가장 걸리는 부분인데, 상당히 X팔린다는 것.(여기서 '부끄럽다'는 표현은 뭔가 적합치 못하다. 역시, 비속어일지라도 X팔린다...가 확실히 맞다.^^;) 다 큰 어른이, 복장을 단정히 하고 길바닥에서 만화를 본다는 것은...역시, 흔한 일은 아니기에 가끔 호기심 어린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랴. 늬들이 날 알아? 하는 배짱으로 버티는 수밖에.
그런데 오늘....딱 걸렸다. 2시경 출장이 있어서 나가는데, 도보로 20분가량이면 되고 날씨도 좋아서 걷기로 했다. 나가기 직전 도서관에 들러 마씨 두 분(마냐님과 마태우스님^^)이 추천한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빌렸다. 햇살은 살짝 덥다 싶을 정도로 따뜻해서, 어제까지도 전기난로를 쬐던 내 마음을 포근히 녹여주었다. 게다가, 책은 또 얼마나 유쾌하던지.^^ 이런 따뜻한 날, 길바닥 독서를 하기에 딱 좋은 분량, 구성, 컨셉이었다. 주인공의 엽기행각에 길바닥이라는 것도 잊고 낄낄거리며 걷고 있는데...
"허허,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길에서 웃고 그래?"
이건 뭐냐. 남이야. 별 이상한 아저씨도 다 있네. 하며 고개를 들었더니, 아뿔싸! 도서관 가기 직전에 만났던, 학교 기사님이다. 교육청에 공문 수발 출장을 가신다며, "걸어갔다 와야겠어."하시더니만, 코스가 이 코스였나보다!!! ㅎ...ㅎ... 삐리리 웃으며 할말을 찾았지만, 걷던 속도가 있어서 미처 변명도 하기 전에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이런.... 우리 기사님, 무지하게 입이 가벼우시다. 내일이면 내가 길바닥에서 책을 들여다보며 낄낄거리고 걷고 있던 것이 전교에 파다하게... ㅎ....ㅎ....정말이지 X팔린다. TT
오늘의 교훈. 검증되지 않은 코스에서는 섣불리 시도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