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주신 엄마, 아빠가 안 계신것도 아닌데... 저는 어릴때 부터 할머니 , 할아버지 품이 늘 좋아서 그분들만 쫓아 다녔더랬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리광쟁이, 울보쟁이 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논길따라 , 뚝길따라 해질녘까지 힘드신지도 모르고 다니셨고 다큰 손녀딸이 두고간 숟가락을 가지고 여고 문앞까지 쫓아오셔서 전해주고 가시곤 하셨지요.
시집간 손녀딸이 그리워서 주무시다 말고 새벽에 몰래 비어있는 방문을 열어보시곤 하셨다는 말은 할머니에게 여러번 전해 듣곤 했지만, 어느새 사랑표현이 쑥스러워진 나이가 되어버린 무뚝뚝한 손녀딸은 그저 찾아가 봉투 하나 내미는 것으로 큰 사랑에대한 작은 보답을 한것이라고 믿곤 했더랬죠.
1년전부터 자리보전 하고 누워 계실적에도 전 그저 무슨 날이 되어야만 찾아뵐 시간을 냈고 깡말라 버린 앙상한 할아버지손을 오랫동안 잡아주지도 못하고 내쳐 나오며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뒤엉킨 무거운 마음들은 집 마당을 나오며 떨쳐버리곤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 무심한 손녀딸에게 늘 주시고픈게 많았던 할아버지는 해가 바뀌기전 늘 건사한 풍경의 달력들을 보물단지처럼 숨겨두셨다가 나에게 건네주셨고 할아버지에게 소중한 자잘한 물건들을 늘 건네주시려고 애쓰셨지만, 저는 그저 예의상으로 받는척할뿐 그 물건들의 소중함을 물질자체에 가치로만 판단했지요.
몇달전,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방문을 두드리자 그 앙상한 손으로 손녀를 맞으시며 바쁘게 내 놓으시는 열쇠고리는 믿음, 소망, 사랑이 적혀진 십자가 모양의 동으로된 열쇠고리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열쇠고리를 빼내고 대신 끼워보니 쇠로된 열쇠와 동으로된 십자가가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맑고 투명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할아버진' 네 믿음대로 잘 될꺼다.' 하시며 입가에 주름이 깊게팬 웃음을 힘겹게 지으셨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렇게 할아버지는 힘겨운 숨을 몰아쉬면서도 점점 정신이 혼미해 지면서도 늦은밤 문밖에 나는 소리가 올리도 없는 손녀딸의 소리라며 밖을 살펴보라며 할머니를 재촉하시곤 했더랍니다.
추석명절날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병원에서 지켜볼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떠나실진 몰랐습니다.
저희 부부가 건네는 용돈을 침대곁에 두시며 나중에 또보자 하셨는데.... 그 모습이 살아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되셨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저 담담할 뿐입니다. 잔뜩 부풀어진 가슴안에 뭔가 꽉 막혀있는것 같지만, 눈물은 더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단 며칠만에 풀어버릴수 있을까요... 저 사는 동안 그 사랑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목말라 하겠지요.
어릴적 유난히 앙탈진 둘째손녀딸을 업어주시고 달래주시던 그 손길을.... ....
이렇게 그분을 하늘나라로 보낸후에야 ... 할아버지가 주신 마지막 선물... 십자가 열쇠고리....' 당그랑 당그랑' 울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투명합니다. 울 할아버지의 정다운 인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