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은 읽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나는 같은 공간에 있으나, 그 공간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면에서 과연 싸고 빠르며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여행길이다. 테드 창의 아마도 유일한 작품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꽤 오래 그의 세계에 머물렀다. 이야기는 짧고 쉽고 신선했다. 언어에 대해서, 인간임을 규정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아주 가깝게 다가선 미래에 대해서 나는 자주 그가 그린 방식으로 꿈을 꿨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그가 2010년에 발표한 중편이다. 역시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는 프로그램은 아주 오래 전에 개발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설겆이를 해 줄수 있는 프로그램은 요원하다. 일상생활은 많은 변수가 있고, 그런 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싾는 수 밖에 없기'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는 가상의 공간에서 애완(?)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개발된 소프트웨어 객체들이 등장한다. 개발회사는 이들을 길들이기 쉬울 정도로 키워서(?) 판매한다. 문제는 장시간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오너들이 소프트웨어 객체를 더이상 상품으로 인지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차, 오디오 등 온갖 사물에도 깊이 애정을 가진다. 그러나 이 소프트웨어 객체는 그 객체 또한 우리에게 요구를 가지며, 전자와는 다르게 우리와 '관계'를 형성한다.

 

 자, 지금은 대부분의 일이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그 공간에만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가상의 공간속에서 말도 하고, 학습도 하며, 변화도 한다. 과연 이 것에게 인간과 유사한 권리를 줘야할까? 이것이 스스로의 복제를 포함한 생사여탈을 결정하도록 해도 될까? 이 무한 복제 가능한 소프트웨어 객체의 역사와 주체성을 우리는 인정해야할까? 이것은 인간과는 분명히 다른 성장과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과 인간 간의 애착관계를 우리는 애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가 도발적으로 묻는 것처럼 내가 10년을 같이 보내서 어떤 성격을 가진 객체의 한 카피를 성상품으로 판다면 부도덕한 것인가? 성상품으로 판매된 나의 오랜 친구 소프트웨어 객체는 성상품에 적당하도록 학습되고 성장되어진다. 고로 성상품으로서의 생활(?)이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란다. 물론 카피본에게 자기삶을 결정할 권리가 없지만 인간 역시도 자신의 양육환경을 고르지 못할 뿐더러 이건 양육과도 다르니까. 혹은 소프트웨어객체를 온라인 상에서 고문하는건? 윤리의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내가 누군가를 직접 안는 것과 온라인 상에서 안는것은 다르다. 누군가의 눈을 보고 공기를 통과해서 들리는 말과 전화기 넘어의 목소리는 같을 수 없다. 그래 온라인상의 관계는 다르다. 하지만 다른 것이 못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속 관계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설겆이를 하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데도 무수한 경험을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너무 쉽게 창을 닫고, 간단하게 온라인속 나의 역사를 삭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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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3-09-1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드림 사가야겠어요~ 테드 창 책 다 있긴 한데,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무해한모리군 2013-09-17 15:20   좋아요 0 | URL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더 좋긴했어요 ^^

다락방 2013-09-1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읽다가 포기했는데...이 페이퍼를 읽으니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추석 지나면 저도 주문 넣어야겠어요. 제가 읽는다한들 휘모리님처럼 이런 생각들을 풀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무해한모리군 2013-09-17 17: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저는 가지라는 만화책이 읽고 싶은데 서점에 들렀다 퇴근할까 고민중.
무탈하게 추석보내고 우리 또 만나요.

하늘바람 2013-09-1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셨어요?

추석 명절 잘 보내셔요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테레사 2013-09-2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저는 당신인생의이야기의 표제작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애 대한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 우리 인생을 보는 시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놀랍도록 그럴듯했습니다. 저는 단연코 이 책이야말로 철학적 에스에프라는 지위를 주었습니다(저 혼자지만서돟ㅎ)

무해한모리군 2013-09-23 17:31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맞습니다.
sf를 통해 결국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되곤합니다.
물론 그 돌아봄과 질문들이 내삶에 그닥 영향을 안미친다는 것이 =.=
여하튼 딱딱한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다소 몰랑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는듯 합니다.

반가워요~
 

박진영의 신곡이 나왔다.

자기가 두루 놀아봤는데 결론은 사랑이란다.

무수한 고전, 종교와 결론이 같네.

그래도 점점 인종초월적인 외모를 구비해가는 그분이

무릎까지 꿇으며 얘기하니까 한번 더 고개 끄덕여 주는걸로.

 

주군의 태양(내 페이퍼에 2회째 등장!)의 소지섭을 보니 안타깝다.

저렇게 멋진 슈트빨인데...

어째서 어째서 여주인공을 보는 사랑에 빠진 달콤한 눈빛,

'아우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데!!'하는 눈빛이 안나올까.

리처드기어 아저씨와 차승원 아저씨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역시 좀 놀아봐야(?) 결국 사랑이라는 결론에 다가갈 수 있는가?

음 머리로 결국 사랑이라는 걸 알고 놀아보지 않은 사람과는 뭔가 다른게 틀림없다.

 

하루키 소설의 리뷰는 잘 써지지가 않는다. 아마 나처럼 소심장이가 이렇게 유명한 소설가와 코드가 잘 안맞는다고 쓰기가 쉽지가 않아서일 것이다.

하루키 신작의 선인세가 큰이슈가 되고 많은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좌절감을 주나보다.

이해한다. 나도 대학동창들의 급여얘기를 듣다보면 때로 짜증을 넘어 눈물이 날려고 한다.

여튼 걔 급여가 준다고 내 월급이 늘것도 아니고 해서 남의 얘기는 그냥 접어두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하루키는 잘읽힌다.

코드가 안맞다지만 나만해도 그의 신간을 꾸준히 읽어왔다.

(그러니까 그는 잘 팔리기도 한다)

상실의 시대는 무려 네번을 읽었다.

(절대 첫사랑이 내게 그 책에 나오는 누구랑 닮았다고 해서 그런게 아니다)

한시대 젊음의 초상을 그리 잘 그렸다고 칭찬이 자자한 게츠비도 겨우 두번 읽었고,

인간의 감정이 어찌 흘러 변하는지 오로라공주 작가언니가 좀 보고 배워야 할 안나카네리나는 건성 듬성으로 한번 훑어보았을 뿐이며,

내가 발견하는 멋진 말은 모두 이 책이 출처로 되어있던데, 초심자를 위한 가이드까지 있는 걸 보니 어려울게 틀림없을 향연은 아직 사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언제나 그의 소설을 읽으면 세가지 느낀다.

1. 그는 남자다.

그의 소설 속 여자들은 여성이라기 보다 소녀로 느껴진다. 국가대표 첫사랑 수지가, 구가의 서에 나오면 씩씩한 수지로 느껴지고, 건축한 개론에 나오면 사랑스러운 수지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여자들은 감정이나 관계에 두께가 생기지를 않는다. 이번 새책에 나오는 첫사랑은 이해 못할 행동을 했는데 글이 끝날때까지 아예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2.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다.

그의 책에 촘촘히 박혀있는 그 많은 문화적 장치들에서 내가 공유했다기보다 언젠가 들었고, 어디선가 읽었던 문화의 향취를 느낀다. 그들의 폐배, 고민 뭐 그런것들. 불행히도 탈패가 내리막길이라 늙스구레한 복학생들과 대학시절을 보낸 내게 딱히 새롭지도 공감할 것도 아닌 문화다.

 

3.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먹물 남자다.

같은 먹물남자 얘기를 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늘 흥겹다. 역시 같이 욕하는게 잼있지, '니넨 너무 뜨거워, 내가 맞았지?'하는 냉소적인 먹물 얘기는 좀 불편하다. 그의 얘기 속 남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첫사랑에 대한 얘기를 들으러 저 멀리 북유럽으로 날아갈 여유가 있고, 내가 잘 모르는 음악이나 책 얘기를 하는 건 멋지다. 비록 운동권들 후일담이라면 진저리쳐지기는 하지만, 한순간도 뜨거워본적이 없는 사람이 그들을 조롱하는 것도 불편하기는 매일반이다.

 

그래도 하루키를 읽는다. 그는 매일 달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고 한다. 그의 위스키 여행기는 별로였고 그의 달리기 에세이는 참 좋았다. 이상하게 그의 글을 읽다보면 별거 아닌거 툭 털고 또 하루 영차 살아보자 하는 느낌이 든다... 중년아저씨 글을 읽고 리프레싱이라니 아 나의 취향. 

 

페이퍼 제목이 개인의 취향이라서 하는 말인데,

나는 지드레곤이 좋다.

아 열살만 어리고 싶다, 지드레곤과 문화를 공유하게 ㅠ.ㅠ  

노래안하고 서있기만해도 해도 기쁨...

(무슨 음악프로에서 상받고 그러는걸 봤다. 가죽잠바입고 예쁨 =.=)

 

덧글 : 소지섭이 인터뷰에서 매일 다이어트 생각만 한다고 한걸 봤다.

난 허리없이 살아도 할 말이 없음을 느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그래도 지섭이 오빠는(내가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티브이에 나와요 @.@) 섹쉬해요.

 

 

 

 

펼친 부분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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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09-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얘기긴 한데 아저씨들 얘기네 ㅎㅎㅎ
글을 쓰기 시작할때는 우리나라 작가글을 더 많이 읽고 나도 글을 잘써야지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어찌 가다보니 나는 지드레곤이 좋다라는 글이 되었을까 =.=

우리작가글을 더많이 읽고 나도 원래 생각했던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

오늘의 일기 끝.

Mephistopheles 2013-09-1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사장님의 사랑은 아가페보단 에로스에 많이 치우쳐있을꺼 같습니다. ㅋㅋㅋ
오죽하면 별명이 X고....

인물의 설정 상 상처받은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이다 보니...사랑의 감정에 서툴러서 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무해한모리군 2013-09-16 10:19   좋아요 0 | URL
p사장님께서 일년동안 인도지 어딘지를 다녀오셔서 깨달음(?)을 얻으셨데요 --a 늙어서 이제 노는게 힘든걸지도 ㅎㅎㅎ

전 세번(저희 아가가 열시에 자거든요 ㅠ.ㅠ) 봤는데 키스신이랑 포옹 막 이런게 어색하더라구요 ㅎㅎㅎ 그래도 소군을 보는 것만해도 만족만족.

순오기 2013-09-16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한번도 소지섭이 멋지다, 좋다~ 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가 나오는 걸 잘 챙겨보지 않아서 그의 매력을 모르는 건지도 모르지만...
취향도 유전이 되는지, 우리 애들이랑 누가 좋다 멋지다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딸들은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해요, 신기하게도!!@@

무해한모리군 2013-09-16 16:16   좋아요 0 | URL
저희 어머니는 좀 느끼하게 생긴스타일을 좋아하시더라구요 ㅎㅎ
취향이 저랑은 완전 달라요 ㅋㄷㅋㄷ
전 챙겨보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꽤 많이 본거 같아요...
드라마는 늘 중간중간 봤지만. 출연한 영화 두편도 봤고,
심지어 그 오글거리는 앨범도 두개 다 들어보았어요 ㅋㄷㅋㄷ
눈매가 제 스타일이예요. 예전에 베이비펌하고 나왔을때 아주 잘 어울렸어요. 심지어 저는 그스타일을 저도 시도를 했었어요... 쿨럭...
 
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이책은 오직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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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슐츠 작품집 을유세계문학전집 61
브루노 슐츠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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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므로트(그것이 우리가 붙여 중 자랑스럽고 용감한 이름이었으므로)는 삶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유일한 급선무인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염원은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매력적인 일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세상은 그의 앞에 덫을 놓기 시작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몹시 감질나게 하는 온갖 음식의 맛, 안에 들어가 쉬면 너무나 기분 좋은 마룻바닥 위의 네모진 아침 햇살, 자기 사지의 움직임, 자기 발, 익살스럽게 놀자고 조르는 꼬리, 장난치고 싶게 만드는 쓰다듬어 주는 사람의 손, 난폭하고 위험하게 움직이고 싶을 때 그를 가득 채우는 완전히 새로운 기쁨 - 이 모든 것이 삶을 실험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도록 그를 유혹하고 격려했다. -61쪽

하나 더 있었다. 네므로트는 자기가 경험하는 일이 새로워 보이긴 하지만, 전부터 - 훨씬 전부터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상호아, 인상과 대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이것에 별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면 강아지는 기억의 근원, 깊숙이 자리잡은 몸속 기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맹목적이고도 열정적으로 뒤져서 대부분 자기 안에 이미 준비된 적당한 반응을 발견해 냈다. 그것은 원형질에, 신경 속에 저장된 몇 세대에 걸친 지혜였다. 그는 전에 알아차리지는 못했디만 드러날 준비를 갖춘 채 기다리고 있던 동작과 결론들을 발견했다.-62쪽

그리고 아버지는 멀리서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손을 들어 뭔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 하늘에 색색가지 발진, 점점 커져 퍼져 나가는 얼룩이 생겨났고, 거대한 십자형 나선을 이루어 순환하며 선회하는 신기한 새들이 가득 날아왔다. 높이 날고 있는 그들의 날갯짓은 침묵의 하늘을 채우는 장엄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따. 몇 마리는 거대한 황새였는데, 날개를 조용히 펼친 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떠다녔다. 색색가지 깃들이나 야만의 기념비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는데, 따뜻한 공기의 흐름 위에서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날개를 무겁고 서투르게 펄럭여야 했으며, 날개와 강력한 다리와 벌거벗은 부리의 형체 없는 덩어리인 다른 새들은 박제를 잘못하여 톱밥이 새어 나오는 독수리나 콘도르처럼 보였다.-123쪽

아버지는 깊은 감정을 느끼며 그들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아델라가 언젠가 사방의 하늘로 쫒아보냈던 새들 세대의 잊혀 버린 먼 자손들이었다. 이제 괴물과 불구의 핏줄, 새들의 황폐한 종족은 타락하거나 혹은 웃자라서 돌아오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크게 바보처럼 자란 새들의 몸 안은 공허하고 생명이 없었다. 그들의 모든 생명력은 깃털에, 외적인 치장에 쏠려 있었다. 그들은 마치 박물관에 있는 멸종된 종의 전시물, 새들의 천국 창곡 같았다.-124쪽

갑자기 공기 중에 돌딜이 휘파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멍청하고 생각없는 사람들이 새들로 가득한 환상적인 하늘에 장난 삼아 돌팔매질을 시작한 것이다.
(중략)
새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돌에 맞아서 그들은 공기 중에 뜬 채로 무겁게 늘어져 시들기 시작했다. 땅에 처박히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형체 없는 깃털 무더기가 되어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원은 이상하고 환상적인 짐승의 사체로 뒤덮였다. 아버지가 살육의 장소에 도달하기도 전에 한때 멋있었던 새들이 죽어서 바위 위에 온통 흩어져 있었다.-124쪽

이제야, 가까운 곳에서 아버지는 그 황폐한 세대의 기괴함을, 그 이류 몸체의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오래된 짐승의 사체로, 아무렇게나 채워 놓은 거대한 깃털 더미에 불과했다.
(중략)
나는 아버지의 불행한 귀환을 보았다. 인공의 날은 천천히 보통 아침의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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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09-1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므로트는 노아의 증손으로 사냥의 명수란다.(창세기 10:8~9) 자그마한 강아지한테 참으로 과한 이름을 주는 것이 유태인식 유머인지 모른겠다.

이 책은 문장이 아주 길고, 그 길고 긴 문장으로 위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묘사, 설명이 이어진다. 어지럽다.

그래도 그가 묘사하는 장면만은 넘치게 기괴하고 환상적이다. 기괴하게 생긴 새들로 덮힌 하늘이라니.

언어를 인간이 배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말 어느 순간 꺼낸다는 느낌에 가깝다. 강아지의 쥐잡기 욕망처럼, 인간은 사물의 이름을 붙이고픈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나 보다. 딸은 끝도 없이 손가락질 하며 모든 것에 이름을 불러된다.

후애(厚愛) 2013-09-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셨죠?
안부가 많이 늦었네요.^^;;
다가오는 추석연휴 잘 보내시고 꽉 찬 한가위 되세요!*^^*
 

슬프거나 심란할 땐

만화 연재물을 잔뜩 싾아두고 읽는다.

원래는 책을 읽었는데,

어느순간 집중력이 전만 못해서 마음이 어지러우면 요지가 파악이 잘 안된다.

대학시절 어느날 신촌 창천교회 옆골목 만화방에서 꽤 슬플때도 만화만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 단골이 됐다. 살다보면 슬플 때가 너무 많다.

 

울적할 때 어떤 노래를 듣는가?

누구는 엄청 즐거운 노래를 듣고 몸을 흔든다 하고,

어떤이는 더 슬픈노래를 들으며 감정에 깊이 빠져본다 한다.

나는 후자다. 만화도 약간 아련한 쪽이 좋다.

 

가능한 빼먹지 않고 보는 시리즈 만화들이 몇 있다.

시리즈가 끝이 난 것들 말고 진행되고 있는 것들로면 몇 추려본다.

더 많은 수에 관심이 있었지만,

몇 권 보다가 끝나면 애장본으로 한꺼번에 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몇년째 이어지는 탓에 포기한 것도 있고, (대표 : 피아노의 숲 --;;) 지지부진한 이야기에 그냥 그만 본것도 있고, 나는 계속보고 싶은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더이상 출간이 안되 읽을 수 없는 작품들도 있고,(대표 : 마호로역 다다 신부름센터) 딱보니 이야기 전개가 길어 내가 죽는 날까지 결론을 모를듯해서 시작하지 않은 작품도 있다. 주로 보는 일본만화만을 얘기하자면 자주나와야 일년에 네권쯤이니 속터지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니 일본 만화계가 좀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어쨌건 최근 관심을 가지는 작품은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다. 엄마가 다른 네자매의 성장기다. 불륜으로 아빠를 뺏기고도 유부남을 사랑하는 첫째, 술꾼 둘째, 뽀글머리 명랑처자 셋째, 축구를 사랑하는 배다른 동생인 넷째.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열몇살 무렵의 우리 삶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하고 싶었던 일을 때론 포기해야하고, 능력과 목표 사이의 커져만 가는 거리에 좌절하면서 말이다. 전반적으로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또다른 성장기로는 3월의 라이온이 있다. 장기가 소재다. 무려 중고교 6년간 장기반 활동을 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두지 못하는 상처가 있는 나로서는 약간의 동경을 가지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아, 그러나 이야기는 어린시절 부모를 잃고 어두운 어린시절을 보낸 천재 십대 장기기사의 성장기다. 천재소년에서 벗어나서 직업인으로서 프로 장기기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보다 잘난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 극심한 스트레스와 싸우면서 장기의 세계에서도 장기 밖 세계에서도 서서히 자라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엄마미소로 보게 된다.

 

 분위기가 좀 다른 작품으로는 플랫이 있다. 요리외엔 모든 것에 무관심 무기력인 고등학생과 매사 진지한 어린 조카 콤비의 이야기다. 둘의 표정만으로도 너무 사랑스러워 미소짓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특유의 아련함과 그 시절의 통증이 싫어서 청소년물은 싫다 싫다 하면서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꽤나 읽고 있는 셈이다.

 

 기복이 있긴 하지만 심야식당도 꾸준히 읽고 있고, 일본의 중산층의 삶이 잘 그리고 있는 네꼬무라양 이야기도 읽는다. 대지진 이후 일본 보통 사람들의 삶은 달라졌을까? 네꼬무라양이 말해주면 좋겠는데 소식이 없다. 도서관의 주인보단 서점숲의아카리가 더 좋은데 둘다 안나온지 꽤됐다. 서점숲의 아카리의 연애사가 어떻게 정리되는지 궁금한데 이대로 번역이 안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최근엔 일본 개항기에 카모메라는 찻집을 배경으로 하는 치로리라는 여백이 많은 만화를 읽어보았는데 어린 소녀인 주인공 아이가 기모노를 입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현실의 삶이 빡빡하다보니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 차 한잔, 술집 한귀퉁이에서 여유를 찾고자 하는지 모른다. 아니 나는 여전히 이 도시의 한구석에서 빡빡하게 하루를 지내지만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는 다른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으로 아주 작은 숨구멍을 내는지도.

 

요즘 읽는 만화 얘기를 쓰려는데 너무 길어져서 일단 일본만화편 하고 다시 유럽 국내만화편으로 갈까한다...

 

덧글 : 한번더 마구 옆길로 새어나가 한마디,

가장 내가 기다리는 만화는... 

권교정님의 셜록이다.

투병중이셨는데 많이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서 다음권이 나와주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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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9-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의 라이온.....입소문 자자하죠...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3-09-11 09:14   좋아요 0 | URL
표지랑 제목이랑 스토리가 모두 따로 놀아요 ㅎㅎㅎ
아 상처입은 남자주인공이야 말로 모든 로맨틱물들의 필수요소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는 명랑만화 주인공같은 남성상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슈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