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슐츠 작품집 을유세계문학전집 61
브루노 슐츠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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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므로트(그것이 우리가 붙여 중 자랑스럽고 용감한 이름이었으므로)는 삶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유일한 급선무인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염원은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매력적인 일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세상은 그의 앞에 덫을 놓기 시작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몹시 감질나게 하는 온갖 음식의 맛, 안에 들어가 쉬면 너무나 기분 좋은 마룻바닥 위의 네모진 아침 햇살, 자기 사지의 움직임, 자기 발, 익살스럽게 놀자고 조르는 꼬리, 장난치고 싶게 만드는 쓰다듬어 주는 사람의 손, 난폭하고 위험하게 움직이고 싶을 때 그를 가득 채우는 완전히 새로운 기쁨 - 이 모든 것이 삶을 실험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도록 그를 유혹하고 격려했다. -61쪽

하나 더 있었다. 네므로트는 자기가 경험하는 일이 새로워 보이긴 하지만, 전부터 - 훨씬 전부터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상호아, 인상과 대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이것에 별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면 강아지는 기억의 근원, 깊숙이 자리잡은 몸속 기억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맹목적이고도 열정적으로 뒤져서 대부분 자기 안에 이미 준비된 적당한 반응을 발견해 냈다. 그것은 원형질에, 신경 속에 저장된 몇 세대에 걸친 지혜였다. 그는 전에 알아차리지는 못했디만 드러날 준비를 갖춘 채 기다리고 있던 동작과 결론들을 발견했다.-62쪽

그리고 아버지는 멀리서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손을 들어 뭔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 하늘에 색색가지 발진, 점점 커져 퍼져 나가는 얼룩이 생겨났고, 거대한 십자형 나선을 이루어 순환하며 선회하는 신기한 새들이 가득 날아왔다. 높이 날고 있는 그들의 날갯짓은 침묵의 하늘을 채우는 장엄한 소용돌이를 만들었따. 몇 마리는 거대한 황새였는데, 날개를 조용히 펼친 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떠다녔다. 색색가지 깃들이나 야만의 기념비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는데, 따뜻한 공기의 흐름 위에서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날개를 무겁고 서투르게 펄럭여야 했으며, 날개와 강력한 다리와 벌거벗은 부리의 형체 없는 덩어리인 다른 새들은 박제를 잘못하여 톱밥이 새어 나오는 독수리나 콘도르처럼 보였다.-123쪽

아버지는 깊은 감정을 느끼며 그들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아델라가 언젠가 사방의 하늘로 쫒아보냈던 새들 세대의 잊혀 버린 먼 자손들이었다. 이제 괴물과 불구의 핏줄, 새들의 황폐한 종족은 타락하거나 혹은 웃자라서 돌아오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크게 바보처럼 자란 새들의 몸 안은 공허하고 생명이 없었다. 그들의 모든 생명력은 깃털에, 외적인 치장에 쏠려 있었다. 그들은 마치 박물관에 있는 멸종된 종의 전시물, 새들의 천국 창곡 같았다.-124쪽

갑자기 공기 중에 돌딜이 휘파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멍청하고 생각없는 사람들이 새들로 가득한 환상적인 하늘에 장난 삼아 돌팔매질을 시작한 것이다.
(중략)
새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돌에 맞아서 그들은 공기 중에 뜬 채로 무겁게 늘어져 시들기 시작했다. 땅에 처박히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형체 없는 깃털 무더기가 되어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고원은 이상하고 환상적인 짐승의 사체로 뒤덮였다. 아버지가 살육의 장소에 도달하기도 전에 한때 멋있었던 새들이 죽어서 바위 위에 온통 흩어져 있었다.-124쪽

이제야, 가까운 곳에서 아버지는 그 황폐한 세대의 기괴함을, 그 이류 몸체의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오래된 짐승의 사체로, 아무렇게나 채워 놓은 거대한 깃털 더미에 불과했다.
(중략)
나는 아버지의 불행한 귀환을 보았다. 인공의 날은 천천히 보통 아침의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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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09-1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므로트는 노아의 증손으로 사냥의 명수란다.(창세기 10:8~9) 자그마한 강아지한테 참으로 과한 이름을 주는 것이 유태인식 유머인지 모른겠다.

이 책은 문장이 아주 길고, 그 길고 긴 문장으로 위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묘사, 설명이 이어진다. 어지럽다.

그래도 그가 묘사하는 장면만은 넘치게 기괴하고 환상적이다. 기괴하게 생긴 새들로 덮힌 하늘이라니.

언어를 인간이 배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말 어느 순간 꺼낸다는 느낌에 가깝다. 강아지의 쥐잡기 욕망처럼, 인간은 사물의 이름을 붙이고픈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나 보다. 딸은 끝도 없이 손가락질 하며 모든 것에 이름을 불러된다.

후애(厚愛) 2013-09-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셨죠?
안부가 많이 늦었네요.^^;;
다가오는 추석연휴 잘 보내시고 꽉 찬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