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은 읽고 나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나는 같은 공간에 있으나, 그 공간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면에서 과연 싸고 빠르며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여행길이다. 테드 창의 아마도 유일한 작품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꽤 오래 그의 세계에 머물렀다. 이야기는 짧고 쉽고 신선했다. 언어에 대해서, 인간임을 규정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아주 가깝게 다가선 미래에 대해서 나는 자주 그가 그린 방식으로 꿈을 꿨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그가 2010년에 발표한 중편이다. 역시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는 프로그램은 아주 오래 전에 개발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설겆이를 해 줄수 있는 프로그램은 요원하다. 일상생활은 많은 변수가 있고, 그런 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싾는 수 밖에 없기'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에는 가상의 공간에서 애완(?)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개발된 소프트웨어 객체들이 등장한다. 개발회사는 이들을 길들이기 쉬울 정도로 키워서(?) 판매한다. 문제는 장시간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오너들이 소프트웨어 객체를 더이상 상품으로 인지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차, 오디오 등 온갖 사물에도 깊이 애정을 가진다. 그러나 이 소프트웨어 객체는 그 객체 또한 우리에게 요구를 가지며, 전자와는 다르게 우리와 '관계'를 형성한다.
자, 지금은 대부분의 일이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그 공간에만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가상의 공간속에서 말도 하고, 학습도 하며, 변화도 한다. 과연 이 것에게 인간과 유사한 권리를 줘야할까? 이것이 스스로의 복제를 포함한 생사여탈을 결정하도록 해도 될까? 이 무한 복제 가능한 소프트웨어 객체의 역사와 주체성을 우리는 인정해야할까? 이것은 인간과는 분명히 다른 성장과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과 인간 간의 애착관계를 우리는 애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가 도발적으로 묻는 것처럼 내가 10년을 같이 보내서 어떤 성격을 가진 객체의 한 카피를 성상품으로 판다면 부도덕한 것인가? 성상품으로 판매된 나의 오랜 친구 소프트웨어 객체는 성상품에 적당하도록 학습되고 성장되어진다. 고로 성상품으로서의 생활(?)이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란다. 물론 카피본에게 자기삶을 결정할 권리가 없지만 인간 역시도 자신의 양육환경을 고르지 못할 뿐더러 이건 양육과도 다르니까. 혹은 소프트웨어객체를 온라인 상에서 고문하는건? 윤리의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내가 누군가를 직접 안는 것과 온라인 상에서 안는것은 다르다. 누군가의 눈을 보고 공기를 통과해서 들리는 말과 전화기 넘어의 목소리는 같을 수 없다. 그래 온라인상의 관계는 다르다. 하지만 다른 것이 못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 속 관계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설겆이를 하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데도 무수한 경험을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너무 쉽게 창을 닫고, 간단하게 온라인속 나의 역사를 삭제하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