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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책에대한책 영화에대한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 책에 나온 책이나 영화의 태반은 내가 본 적도 간혹은 듣기만 많이 들은 것들인지라, 이런 장르야 말로 매니아를 위한 것이지 직장생활하며 토막독서하는지라 얇디얇은 독서력을 가진 내가 도전할 장르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위트넘치는 우리 혼비님이 쓰신 책에대한책은 과연 달랐다. 여전히 내가 읽어본 책은 한 서너권쯤 되었을까? 그래도 농담의 위력과 그가 소개하는 책의 묘미는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한번도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았던,(어린시절 티브이 어린이용 연작 외화를 본 탓에)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어볼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건 그가 아니면 아무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미국인은 정말로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읽어봐야 한다는 말은, 정말 좋다는 뜻이고, 안 읽으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13쪽)
이 책의 작가는, 곧 자신의 소설을 평하는 글에 질려버릴 것인데, 그런 글에는 전부 다 '새롭게 쓰여진'이라는 표현들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가 아직 출간되지 않았으므로, 그가 아직 그런 말에 질리지 않았을 테니 나는 써도 된다.
(308쪽)
이 노골적인 찬사를 보라. 솔깃하지 않은가? 그래 이정도 화끈하게 칭찬하고, 욕도 칭찬도 화끈하게 들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맹체컨데 마커스가 펫 숍 보이즈가 부른 <고 웨스트>에서 들어낼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절대 들리지 않는다.)
(223쪽)
사실은 너무 걱정이 되어서 힐러리 스펄링의 훌륭할 것이 분명한 마티스 전기(페이퍼백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5년 전에 하드커버 신간으로 산 것)를 시작할 수도 없다.
(266쪽)
이 책의 ()의 그의 혼잣말은 영국식 위트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이 곳에 다 옮길 수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소리내서 낄낄거렸다는 사실만 밝히겠다. (난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다)
그리고 요즘 정치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 책은 희한하게도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모든 대통령의 임기와 모든 시대는 끝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95쪽)
존 해리스의 '그렇다면 이제 누굴 뽑지?'를 한 권 받았다. 마치 어떤 책들이 나를 스토킹하는 느낌이 잠시 들었다. 누군가 '어젯밤 네 집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라는 책을 쓰기 전까지, 이보다 더 내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제목은 없을 것 같다.
(211쪽)
혹시 한국판으로 이런 서적이 있다면, 수십권 정도는 사서 주변사람들에게 뿌려줄텐데 말이다.
여러분 나라에도 펭귄 현대 클래식 시리즈가 있는가? 여기 영국에서 그 시리즈는 젊고 과시하기 좋아하는 문학애호가들에게 큰 의미를 지녔었다. 지적 진지함, 그리고 역시 책을 좋아하는 여자들과의 하룻밤에 대한 욕망/의욕의 표시로 내 친구들과 나는 눈에 띄는 연두색 표지의 펭귄 현대 클래식 시리즈 한권을 늘 가지고 다녔다. 물론 효과는 없었지만, 우리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236쪽)
일전에 늘 멋진 여성들과 쉽게 연애에 성공하는 알라디너 R에게 비법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하게 '여자분들이 책읽는 남자에 대해 호감이 있는거 같아요'라고 답하지 뭔가. 그랬다!! 닉 혼비님의 실패는 시의적절하지 않는 책을 들고 다닌 것이 첫째요, 둘은 그 때 블로그가 없었기 때문이구나.. 오호! 그가 이 작전에 성공했다면 꽤나 다른 소설을 내놓았을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이 작가는 끊임없이 책을 사재기를 하고 (나역시 그렇다) 태반은 읽지 못하며 (나역시 매우 그렇다) 그 이유를 아이들이나 축구때문이라거나 날씨 기타등등에게 돌린다. 나 역시 미친듯한 열정에 사로잡혀 예약까지 해가며 혹은 물건너 해외에서 주문한 책에 대한 열정이 어느새 식어 집에 진열해 두며 죄책감을 느낀 점이 한두번이 아닌데... 오.. 닉 혼비님께서 나의 죄책감을 줄여주셨음은 물론이다. 고로 나와 같은 독서가들이여 이 책안에서 위안을 받으라.(난 보통 책의 주요 부분엔 체크 표시를 하는데 닉 혼비님의 지름 부분에 사랑의 하트 표시를 해뒀다)
만찬 회의가 적다는 것만 빼면, 독자가 된다는 것은 대통령이 되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이 의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우편으로 도착하는 책이라든가, 3차세계대전 따위에 신경쓰느라 원래 정해놓은 길에서 당분간 벗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81쪽)
이달에는 책을 너무 많이 사서 남들에게 불쾌감을 줄 지경이니 전부 밝히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선별해서 적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벌써 몇 달째 사실대로 다 밝히지 않고 있는 중이다. 자꾸만 사놓고 읽지도, 목록에 올리지도 않은 책들이 발견된다.
(121쪽)
하지만 자이드 책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두 번째 문단에서, "진정한 교양인이란, 읽지 않은 수천 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태연자약하게 더 많은 책을 원할 수 있는 이들이다"라는 부분이다.
(158쪽)
우리가 소유하는 책들은 읽었는지, 읽지 않았든지 간에 우리의 자유재량에 맡겨진, 가장 온전한 자아의 표현이다.
(159쪽)
내 독서 지도가 1900년경 대영제국의 지도와 비슷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 의아해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보다시피 내 무식함의 영역을 아주 조그맣게 침략하는 정도가 전부다. 매년 또 한 권의 고전 소설이 이곳을 점령하고, 새로 나온 문학인의 전기가 저곳을 격퇴시키고 있다. 솔직히 말해, 더 멀리 보낼 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17쪽)
염려마시라. 이 책들은 런던 켄우드하우스 후원 책판매 행사에서 1파운드 이하로 사들인 것이다.
(225쪽)
이달에는 이사를 하느라 '빌리버'가 된 이래 처음으로 책을 한권도 사지 않았다. 읽지 않은 소설, 전기, 회고록과 에세이집, 시집과 서간집을 넣을 곳을 찾느라 수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현재로서는 책은 그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265쪽)
내게는 침대 위쪽에 책장이 하나 있는데, '구입한 책'과 그 밖에 언젠가 읽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책들을 올려둔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중 몇 개가 죽었다고 판단되면 하드커버인 경우에는 아래층 거실의 책장으로, 페이퍼백인 경우에는 침실문 바로 앞에 놓은 책장으로 부드럽게, 경의를 다해 옮겨지고, 그러면 그 책들은 거기서 영면에 들어간다.(한때는 좋은 생각처럼 여겨졌던 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존재하는가? 그렇기를 바란다)
(중략)
이건 마치 기류에 의한 강수 과정처럼 순환적이지만 아름다운 시스템이다. 흥미가 증발하고, 책은 뜨거운 공기로 변해 올라갔다가, 옆으로, 심지어 아래층으로 내려간 다음, 어쩌구저쩌구..
(317~318쪽)
그리고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 너에게도 죄는 있다!! 재미 없는 책들에 대한 그의 신란한 평가도 읽는 재미 중에 하나다.
문예 소설이란 별로 성공하지 못한 여느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고, 예술영화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보통 영화이며....
(80쪽)
사실 생각해보면, '간결' 전통을 따르는 소설 중에서 아주 신나는 것은 많지 않다. 농담이란 보통 뿌리째 뽑혀나가기 십상이니, 잡초 뽑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농담이 제일 먼저 솎아질 것이다. (중략) 글을 쓰긴 뭐 하러 쓰나? 봉투 뒤면에다 줄거리 요약과 주제 두어 가지를 적어놓은 다음, 그냥 내버려두는게 낫지 않을까? 사실 말이지, 픽션이나 픽션 창작에는 별로 실용적인 면이 없는데, 사람들은 그런 글쓰기를 남자답고, 고된 일로 묘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나하면 그건 애초에 너무나 남자답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엄격함에 대한 강박은 이를 보상하기 위한 시도, 글쓰기를 농사일이나 장작패기처럼 진짜일처럼 보이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다.
(94쪽)
위대한 예술은 엘리트주의를 두려워하면 안 되겠지만, 엘리트주의가 아닌 위대한 예술도 많다. 그리고 나는 문학 학위가 없는 똑똑한 사람들이 현대 소설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그들이 문학에는 의미가 있다고 믿길 원한다. 소설에는 성인을 위해 쓴 책을 읽을 수 있는, 누구나에게 보이는 목적이 있다고 말이다. (중략)
내가 픽션에서 좋아하는 점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 아니 최소한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사할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대신 똑똑하게 말해줄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마크 트웨인이 똑똑했던 것이고, 디킨스도 그랬다. 그리고 로디 도일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 특히 책을 자주 사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내게는 엄청나게 유식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유식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능력보다는 그것이 더 뛰어난 재능처럼 여겨진다.
(208쪽)
어떤가? 닉 혼비는 다른 사람의 책을 이야기 하는데 위의 글을 읽는 순간 이미 몇 권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소설을 써내기도 했던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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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이 인용해오고도 아직 남아있는 나의 밑줄 구절들>
이따금 예술(나는 스포츠도 예술에 포함시킨다)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움직을 공간을 부여하고, 연주할 시간을 찾고...
(290쪽)
하틀리의 소설과 크루의 자서전은 공히,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성격이 아니라 체질임을 상키시켜준다.
(302쪽)
정치운동과 해고와 야비한 질투 아래, 그 외의 어떤 것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우리(다시 집합대명사다)의 삶이 매초마다 지나가는 소리 말이다.
(309쪽)
각종 보험금이나 수당은 깜짝 놀랄 만큼 해당 범위가 넓고 복지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것이 과연 그렇게 가치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인도에 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유아원으로 돌아가거나. 장애인들과 더불어 어떤 일을 하거나,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충동은 매일매일, 아니 때로는 매 시간마다 병마처럼 우리를 찾아왔지만, 실행에 옮긴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대신 우리는 그날의 업무를 논의하러 회의실에 모여 않았다.
(310쪽)
아직 이 이야기가 지겹지 않은가? 우린 날마다 지겨웠다. 우리의 권태는 주욱 계속됐다. 집단적 권태. 그건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312쪽)
회의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경멸을 담은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회의에서 하등 쓸데없는 소리만 오간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었고, 사실 서너 번 중 한 번은 소득도 목적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필요한 것 하나쯤 알려주는 회의는 많았으므로 우리는 회의에 참석했고, 끝나고 나면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중략)
갑작스런 계시가 다가왔다. 날마다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 직장 때문에 우리가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하고 내몰리고 있다는 계시가. 직장을 그만둬야 할까?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면 그런 자질들을 타고난 것이어서 까칠하고 활기라곤 없는 인간이 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것일까? 그런게 아니길 바랐다.
(313쪽)
흠 직장인이다 보니 왠지 이 책 소개를 길게 옮겨놓고 싶어지더라.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도 생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물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