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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인생에서 내가 선택한게 뭘까?
이 소설 속 남자의 나날에 그가 선택한 것은? 펭귄을 입양한 것 정도? 아니 그마져도 소비에트 붕괴에 따른 급속한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동물원하나 유지할 수 없어진 정치사, 세계사의 흐름에 따른 것이다. 소소한 인생인데 그 소소한 인생이 결정되는 요소는 참 거창하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병든 펭귄과 문학을 가슴에만 품고 신문의 남의 조문을 쓰며 살아가는 남자의 느릿느릿한 일상이 마음에 와 닿는다. 뭐 나도 펭귄처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렸을 땐 생각도 못했던 삶을 홀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의 평온한 일상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고 이리저리 얼켜만 간다. 시골 작은 별장에 아내와 아이, 애완동물로 이루어진 소박한 삶의 꿈은 어찌될까? 하긴 죽음의 순간 내 옆을 지켜줄 벗하나만 건져도 꽤나 훌륭히 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끝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죽음일텐데, 글을 읽으며 내 삶의 조문을 쓴다면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행동과 잘못이 언급되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성과는 두줄이면 족하리라. '10세이전엔 때로 부모님을 기쁘게 한 적이 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완급조절이 훌륭한 추리소설이다. 다소 썰렁하지만 왠지 모를 웃음이 슬며시 번져나가는, 그 속에 담긴 것은 우울할지라도 풀어내는 방식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다. 갑작스럽고 신선한 결말도 기대해도 좋다.
나도 미리 새해 인사를 해본다.
'더 나쁜 일이 없도록 한잔 하자구. 벌써 좋아지고 있지 않나?'
모두에게 꼭 그렇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