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봉 로망
로랑스 코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독서가라면 모두 꿈꾸는 양서가 가득찬 서점을 배경으로한 미스테리를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을 내려놔라.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아주 살짝 추리물의 외피를 둘렀지만, 주구장장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이런 글귀로 시작된다.


세상이 아주 가까이, 때로는 희미하게 악의 편이 되고

앞으로도 가슴을 찢을 고통만큼 확실하게 그럴 것이라 생각될 때,

세상에 사랑이 있음을 증명하는 책을 원한다.

우리는 좋은 소설을 원한다.


- 프란체스카 알도 발벨리


상기의 문장이 사실이라면 인류의 90%는 좋은 소설을 원한다.

 

글 속의 주인공이 쓴, 상기 문장이 포함된 글을 조금더 보자. 


그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 오 봉 로망의 본질을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다.

문학, 고통, 기쁨, 공포, 멋이 존재한 이래로 인간의 위대함은 위대한 소설들로 표현되어 왔다. 이 특별한 책들이 이해받지 못한 예는 많다. 그 책들은 영원히 잊힐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출판 종수도 많고 마케팅의 파워가 엄청나며 책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조적이다. 그 때문에 수백만 권의 그렇고 그런 책들이 보일 뿐, 정말로 좋은 책들을 파악하고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위대한 소설만큼 은혜로운 것이 있을까. 그런 소설들은 마법을 부린다. 우리를 살게 한다. 우리를 가르친다. 그런 소설들을 옹호하고 끊임없이 알려야 할 필요가 생겼다. 뛰어난 작품들이 알아서 빛을 발하고 저절로 독자를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우리에게 다른 야망은 없다. 


우리는 꼭 필요한 책, 장례식 다음 날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한다. 너무 울어서 더는 눈물도 나지 않고 애끊는 고통에 자기 발로 설 수 조차 없을 때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한다. 죽은 아이의 방을 정리할 때에도, 아이가 쓴 글을 늘 품고 다니고 싶어서 일기장을 베끼고 옷걸이에 걸린 아이 옷에서 100번, 1000번 냄새를 맡을 때에도, 그러다 더는 할 일이 없을 때에도 가장 가까운 측근처럼 옆에 있어주는 책을 원한다. (중략)


매일같이 아드리앵은 손목을 긋고, 마리아는 만취하고, 아낭은 트럭에 치여 죽고, 체첸에 사는 열두살짜리 소녀는 강간을 당한다. 매일같이 메로니크는 사형수의 눈물을 닦아주고, 노파는 참혹한 몰골로 죽어가는 이의 손을 잡아주며, 어떤 이는 시신들 사이에서 넋이 나가 있는 고아를 거두어 준다.


우리는 무의미한 책, 개성 없는 책, 한번 웃고 말 책에 관심이 없다. (중략)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별것도 아닌 일에 눈물이 나고, 등뒤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소스라치는 우리를 위해 쓰여진 책을 원한다.


우리는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책을 원한다. 

오랜세월, 망가진 몸, 가난,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미칠듯한 두려움, 좌절, 용기, 불안, 고집,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써낸 책을 원한다.(중략)


인간의 비극도, 일상의 신비도 우롱하지 않는 책을 원한다. 

우리를 다시 숨쉬게 하는 책을 원한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비극을 맞이한다.

어디서 날라온지도 모를 돌맹이에 맞아 휘청거린다.

우리는 결코 그 비극을 맞이하기 전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소설 속에 그 살아감에 대한 백만서른가지의 답이 있다. 

문득 이글을 쓰는 동안 필립 클로델의 소설 속 보로덱이 떠오른다.

짐승같은 시대를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끝내 떨구지 않고 살아내게 하는 힘도

인간에게 있다는 걸 믿고싶다. 


저마다의 마음속의 작은 사랑을, 음악이든 그림이든 소설 속에서든

잠시나마 마주볼 시간이 이 숨이 찬 일상 중에 한순간이라도 모두에게 주어지길 바래본다. 


돌아가신 김영삼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가 우연히 나와 같았다.

그 찬송가 속 좋아하는 한 구절을 옮겨본다.

모두에게 삶은 이토록 힘겨운 것인지.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세상 부귀 안일함, 모든 명예 버리고

험한 길을 가는 동안 나와 동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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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1-2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그래요, 휘모리님.
짐승 같은 시대를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그걸 버티고 견디게 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절망도 인간이 주지만, 구원도 인간이 주는 거라고 말이지요.

무해한모리군 2015-11-23 11:2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라는 물음에 답과 관계없이, 선한 행동에 대해 긍정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합니다.

스스로가 비겁하고 잔인해진 순간을 뼈아프게 몇년이 지나도 후회하게 됩니다. 그래봐야 한번 뱉은 말이든 행동은 되돌린순 없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뭔가 그 후회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집니다..

상처주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측은지심이든 신성이든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늘 나와 동행해 주기를.
 

 

 가끔 지나치게 미련이 많은 스스로가 답답하다. 연애에 대해 내가 믿는 절대진실 하나는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다. 한순간 스친 인연에 오래도록 끙끙거리고, 이미 지나간 사람이 그리워 날만 흐려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유난히 정이 많은 어머니는 내게 튼튼한 치아나 물려줄 것이지, 망할 감상만 잔뜩 짐지웠다.


 일본 여자는 타이페이 여행중 잠시 만난 남자를 오래도록 마음에 둔다. 그가 있던 타이페이를 자주 찾고,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의 음식, 언어, 느긋한 흐름을 좋아하게 된다. 남자도 여자를 오래도록 기다린다. 그녀가 사는 곳에 지진이 나자 직접 찾으러 일본에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잊지 않은 그들은 8년후 재회한다. 여자는 타이베이에서 남자는 일본에서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번 잃었던 인연을 애써 이으려고도,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살아간다.


 일본이 타이베이를 지배할 때 태어나 종전후 본국인 일본으로 건너간 남자는 노인이 될때까지 타이베이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는다. 나고 자란 곳을 마음한켠 업신여겼던 과거가, 또 일본인으로서 그곳에서 벌어진 불행한 현대사에 대한 죄책감이 고향으로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국적을 떠나 죽음앞에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은 타이베이였다.


 그 땅의 후끈한 기후와 길거리의 음식냄새와 한낮의 나른함까지 전해지는 소설이다. 운명을 믿는다. 놓친 인연이 안타깝고, 재회는 소중하다. 그러나 너를 만나 변화된 지금의 나도 소중하다. 너로 인해 변화된 나를 소중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그 길 끝이 너에게 닿지 않더라도 나를 품어주었던 너의 마음에 대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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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뭐 먹었어? 10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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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을 맞은 주인공의 요리솜씨는 감히 이젠 따라하고픈 마음도 먹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 늙으신 부모님 이야기, 편안해지고 늙은 짝의 이야기를 오래된 친구와 나누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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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딱히 눈물이 나거나 

감동적이거나 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패전한 소식을 듣고
임정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기뻐하며
'집으로 간다' '돌아간다'며 외치던 모습.

무수한 동지들을 담담히 죽음으로 걸어보냈던 
그들이 그렇게 기뻐하던 순간

그 이후에 역사에 벌어진 일을 알고 있기에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그들중 몇이 빨갱이로 몰려 죽었을까
또 나머지 몇은 전쟁으로 죽었을까
그보다 더 많은 수가 배고픔에 비굴해져야 했을까.

돌아온 조국에서 그들이 당해야할 일들.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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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즉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성은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거나, 혹은 이런 기질, 습관이 있는 사람은 절대 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거나 하는게 있을까?

나는 취미가 됐든 일이 됐든 무엇인가에 몰두해서 그걸 말하지 않고는 못견디는 사람을 보면 금새 좋아진다. 정도가 지나쳐서 잘난척에 가까워도 좋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들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물리지가 않는다. 

그리고 심각한 정도의 목소리 페티쉬다.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배우 사토 타케루군이 여성에게 말할때 목소리를 무척 좋아해서 그의 목소리를 음성파일로 따서 들으며 잠들곤 했다. (당연히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의 외모는 뭐랄까 사실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전혀 내 타입이 아니지만 저런 목소리라면 사랑할 수 있다) 


이 사토 타케루군이 주연한 영화중에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라는 작품이 있다. 그가 천재작곡가로 나오는데다 로맨스물이다. 상기의 원칙에 따라 내가 무척 좋아할듯하나 사실 그렇지 못했다. 


재밌게도 타케루군은 목소리는 정말 좋은데 노래는 딱히 잘하지 않고, 운동이나 액션연기는 훌륭하지만 사실 춤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천재 뮤지션 역할을 이미 다른 영화에서도 한 바 있지만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여자주인공은 정말 노래를 잘하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도 무척 좋지만, 뭐랄까 아키(남주인공)가 영화속에서 누군가와 음악을 함께 한다거나 음악으로 성장한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물론 아키는 작곡가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전혀 음악 영화가 아니라 로맨스물이다. 화면이 예쁜 평범한.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몇몇 장면은 정말 사랑스러워서 가끔 돌려보곤 한다. 

심지어 dvd도 가지고 있다 ㅎㅎㅎㅎ


첫만남에서 여자주인공이 지나치려는 남자주인공의 후드를 잡아 당겨 반했다고 말할때

여자주인공이 우연히 남자주인공을 발견하고 너무 좋아서 물건을 마구 흘리며 뛰어올때

콜라를 마신 여주인공에게 갑자기 입을 맞출때

헤어지는게 아쉬워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때


여자주인공이 정말 사랑스럽다. 그녀는 5천대 1의 경쟁률을 뚫을 만하다. 

영화가 제법긴데 이렇게 안아주고 싶은 그녀와의 심쿵 이야기는 짧디 짧고,

원스처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아니고

아키의 고뇌만 가득하다 보니 다소 아쉬운 영화가 되었다.


세계의 많은 이들처럼 일본 애니를 보다가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영화도 만화가 원작이고 만화가 더 재밌다. 지금 상영중인 그의 영화 바쿠만도 만화가 원작이다. 바쿠만은 원작을 좋아했던터라 실망할까 보기가 무섭다. 나는 사실 웹으로간 만화에 스크롤에 적응하는데도 꽤 어려움을 겪었다. 만화의 사각 공간의 제약에서 오는 압축이 좋다. 길고길게 시리즈가 이어지는 점도 좋고, 작가의 말 이나 작가의 자기 소개 같은 사족이나 곁가지 이야기들도 좋다. 영화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백가지 모습중에 일만 보여지는 것같은 아쉬움이 들곤한다.  


실망할지라도 아야노 고군이 주연한 피스오브케이크 dvd는 손에 넣고 싶다. 아주 재미있는 만화가 아닌데 그냥 그 심심한 이야기가 취향에 맞아 자꾸 보게 된다. 부천영화제에 상영된다는 소식을 너무 늦게 접해 놓쳤다. 


타게루군의 작품으론 내년에 개봉할 예정인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꼭 보고 싶다. 죽음을 앞둔 청년앞에 악마가 나타나 세상에 하나씩 무언가를 없애는 대신 그에게 하루씩 삶을 연장해주는 소설이 원작이다. 홋카이도 풍경도 그립고 해서 기대가 된다.  


*추신 : 요즘엔 원피스를 읽고 있다... 누군가와 미친듯이 원피스 얘기가 하고 싶다... 나랑 할 사람??? - 원피스 덕후 구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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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4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