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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
레베카 밀러 지음, 최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여기 중년의 여인이 있다. 젊은 시절 화끈하게 약과 섹스에 취해 흔들리며 살았던 이여자는 나이 차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개기로 새사람이 되었던 과거가 있다. 요리, 육아, 완벽한 내조의 여왕으로 이십년을 살던 그녀는 실버타운 입주를 계기로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피파의 할머니는 매우 뚱뚱했다. 피파의 엄마는 뚱뚱해질까 두려워 먹기시작한 약에 의존하면서 망가진다. 피파는 그런 엄마처럼 약에 의존하게 될까봐 결혼 후 감기약 조차 멀리하며 살아간다. 한편 평생을 가족에 헌신했던 피파는 딸아이가 자신과 닮을까 두려워 거리를 두고, 남자처럼 씩씩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피파의 딸 그레이스는 피파의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부모에게 상처받지 않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청춘이 있을까?
그들은 모두 부산스럽게 뛰고 서둘렀다. 뉴욕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오직 나만 빼고. 나를 움직이는 건 어떤 목표나 존재 이유도 아닌 그저 자연적인 욕구일 뿐이었다. 아마도 난 사랑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비록 그때는 몰랐지만. 그때의 나는 눈 더미 속에 처박힌 칼처럼 날카롭고 싸늘할 뿐이었다. - 184쪽
나 역시 스물에는 주변 사람들에게(가족을 포함해서) 괜찮은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겉은 짐짓 그렇지 않은 척 눈을 사납게 찢고 돌아다녔다. 가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나와 너무 좋았는데 어느새 다시 뿌리 내릴 곳을 찾아 서성였다.
스물엔 엄마처럼 바지런 떨지 않으며 살리라 장담했는데, 서른 둘에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엄마처럼 잔소리하며 한시도 방바닥에 앉지 않고 일을 찾아내서 돌아다니는 내가 있다. 피파의 모계도 강렬한 욕망과 몰두하는 성품을 대대로 물려받은 것처럼, 부모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도 분명히 자식에게도 남겨지기 마련인가 보다.
피파의 삶을 통해 오직 가족이 삶의 전부인 유년기에서, 혼자만의 청년기, 가정을 이루며 다시 가족이 삶의 전부가 되었다, 홀로 오롯이 자기자신이 되는 중노년기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대화라고 부를만한 걸 나누지 못했다. 사실 그녀가 날 제일 잘 아는 사람이고, 내게 가장 헌신한 사람인데. 내가 노력한다면 우린 다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게 틀림없다. 그리고 인간이 이제와 쉬이 바뀔리 없으니 내가 가진 천성을 받아들이고, 그 중 장점이 될만한 걸 드러내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신랑이든 누구든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 자기자신이 더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고. 무슨 일이든 결정할 때 내가 편한 방향 내가 행복한 방향이 뭔지 고민해 봐야겠다.
휴. 이렇게 쓰고 보니 왠지 이 책이 도덕 교과서 같지만 사실은 아주 미묘한 힘겨운 순간 행복한 순간 혼란스러운 순간들 사소하지만 자신에겐 의미있는 순간들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