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거실 책꽂이에 앞으로 읽을 책을 두기로 했다.
파란색 책꽂이에 위쪽칸은 내가 아래쪽은 신랑이 쓴다.
신랑은 은근슬쩍 내가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나의 읽을 책 책꽂이에 꽂아두곤
내가 새책을 간택하려고 서 있을때면 내 등뒤를 째려보고 서 있다.
자기가 은근히(?) 꽂아놓은 책을 언제 읽나 궁금한가보다.
어제는 휴일을 맞아 금방 배송된 따끈따끈한 로맨스 소설을 읽을려고 하는데
더 이상 못참겠는지 자기가 두번이나 칭찬하고 두달전에 꽂아둔 이스마엘을 왜 읽지 않냐고 직접 언급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가 안읽으면 무안할듯 해서 뽑아든다.
고릴라 이스마엘은 아주 교육적인 이야기이다.
인간은 지구에 속한 아주 작은 존재인데, 자기가 세상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이 있다. 그런데 얘들이 과대망상이 지나쳐서 자기가 속한 세계를 마구마구 파괴하는 것이다. 결국 자기들도 파괴될 것이 뻔한데, 어찌 되겠지 하면서 그 파괴적인 방법으로 마구마구 내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성서와 여러가지 비유를 곁들여 설명하는데 해결책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살지 않도록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도 문화적 삶을 누릴 길은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단다.
이 책을 다 읽고 현재 상태로 소비와 성장을 계속해서는 답이 없다고 우리부터라도 인구 줄이기에 앞장서자고 신랑에게 말해보았지만 귀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신랑은 무위당 선생의 주옥같은 글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생협과 농산물 직거래에 의의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토론이 우리 가정생활에 필요하다.
최근 신랑은 돈 많이 주는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원하는데 나는 반대를 하고 있다. 돈은 나도 벌고 하니 돈보다도 너무 힘들지 않은 직장에 다녔으면 좋겠다. 마흔남짓까지 하는 직장 생활이니 바짝 벌어야한다는 취지는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러다 몸상하면 말짱 황인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러다 굶어죽는다'는 협박에 개미처럼 일하며 그 시기를 늦춰보려 안감힘을 쓰는 것만이 답일까? 베짱이로 살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세상을 만드는 일에 조금더 시간을 투자해야겠다.
공휴일 아침 둘이 조조영화 보며 비스켓으로 아침을 때우고 고등어에 된장찌개 점심먹고, 바닥에 늘어져 졸다 읽다 하며 보내는 하루. 이런 평온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그 나머지 날들을 너무 힘겹게 살아야하는 건 정말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스마엘처럼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신랑에게 확언해주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