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도 과감히 머리를 감지 않기로 결정하고,
실삔 두개로 앞머리를 깻잎모양으로 만들고
짧아서 안묶이는 머리를 간신히 낑낑대며 묵는다.
일어나자마자 밥통속에 넣어둔 핫도그를 입에 물고
(어제 생협에서 배달됐는데 어떤 맛인지 너무 궁금해서 못참고 아침부터 간식질 --)
운동화에 항아리 모양 검정코트를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7시20분경 출근 전철에 올라 언제나 처럼 2-4칸 노약자석 쪽에 자리를 잡는다.
어 그런데 노약자석에 앉은 아가씨가 벌떡 일어서서 나에게 자리를 양보할 조짐?
왜? 혹시......... 내가 임산부로 보여서? 제길, 운동이 확실히 성과가 없구나 --;;
화장을 안해서? 이 몇년된 펑퍼짐한 코트때문에? 운동화 때문에? 질끈 묶은 머리 때문에 ㅠ.ㅠ
어쨌거나 자리를 양보하려던 아가씨는 내가 앉을 기미가 없자 슬그머니 되돌아가 앉는다.
조용한 아침 전철 무거운 도시락통은 바닥에 내려두고, 에콜로지카를 뽑아 들고 읽기 시작하려는데.......
이 아가씨가 이 아침부터 통화를 시작한다..
통화 내용인즉슨,
**광장 소속인 이 아가씨가 지난밤 xx광장 소속인 아가씨와 인터넷 체팅으로 광장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했다는 것인데...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이, 우리 선거는 한달전에 공고하고 해야되는 규정을 그렇게 무시하면 되요?'
참으로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고, 단체들안의 민주성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아가씨여~~ 아침 7시20분부터 20분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전철에서 오빠라는 분께 노약자석에 앉아서 떠들어야 할만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모모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꼭 공유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또 당신 옆에 어르신들도 얼마나 졸리시겠는가?
에콜로지카는 이제 막 멋진 논지를 내게 펼쳐놓는 참인데 당신이 하루 중에 몇 안되는 나의 독서시간을 가로막았단 말이지...--;; (절대 당신이 날 오해해서 미웠던게 아니야..)
아무리 째려봐도 듣지 않고.. 오늘 약 스무명 정도의 시민들은 모모광장에 대한 적의감으로 넘쳐흘렀을 것이다. 늘 생각하지만 마음을 얻기위해서는 논리가 아닌 훌륭한 품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