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풍경소리> 책은 매긴 값[定價]이 없습니다. 돈받고 팔지 않습니다. 달라고 하시는 분에게만 거저 드립니다. "좋은 것일수록 힘써 나누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좇아서 펴내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저희는 이른바 '지적 소유권'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습니다.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소유로 삼다가 마침내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까지도 자기 소유로 삼아서 돈받고 팔아먹는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에서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자기의 소유라고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무엇을 지니고 있다면 그 무엇은 다른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이요, 다른 누군가에게로 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제 소유로 움켜잡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물론,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분들을 반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동의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입니다. 저희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고 환산되어야 하고 환산되고 있는 세속에 거역할 권리가 만인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

매달 <주식회사主式會社 드림>으로 부터 '거저' 받아 읽고 있는 <풍경소리>에는 이렇게 '알리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지적 소유권'에 대한 논쟁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에서(한미 FTA에서도 지적 소유권에 대한 논쟁이 첨예하였으니) 정말이지 새로운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은연 중에 고착화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서 탈출하는 일은, 그리하여 전 지구, 전 우주의 온 생명들이 함께 사는 길로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그 '못된' 심성에 서 벗어나는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지적 소유권'에 찬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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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그대 사랑의 뾰족한 바늘이 하도 많이 찔러대어

나는 그만 곤드레만드레로 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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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8-1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므로, 취해버린 사람의 저 비틀거림을 비웃지 말아라.
그 분의 사랑에 찔린 사람은 더이상 세속의 기준으로 판명되지 않는다.
2천년전 저 광야를 걷고 또 걸어 복된 소식을 전하던 바울을 보라.
 
사람살이가 구도의 방랑길입니다
송기득 지음 / 새날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신앙인은 늘 자신의 머묾을 근심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신앙이 완전하거나 유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보니까 남보다 잘난 것도, 억지로 우길 것도 없고, 남에게 강요할 것도 없다. 단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구도(求道)의 길을 걸어간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의 영혼은 도(道)와 가까워진다. 노자는 ‘성인(聖人)은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도덕경 2장) 하여 도(道)에 이른 사람은 공을 이루고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기실 구도자가 걸어야 할 참된 길은 늘 머물지 않는 방랑자의 그것이라 하겠다. 

 평생 ‘사람됨’과 ‘인간 해방’을 주제로 신학을 써내려갔던 송기득 교수의 이 책은 그가 대학 강단을 떠나면서 일종의 마무리 작업으로 집필한 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64년 11월 2일부터 그해 12월 24일까지 53일 동안의 방랑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기록이다. ‘거지 방랑기’라는 표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돈, 잠자리, 먹을 것 ‘없이’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를 방랑한다. 방랑의 목적은 오로지 ‘자기 신뢰’이며, ‘자기 수행’에 있었다. 그는 한 명의 철학도로써, 그리고 한명의 종교인으로써 ‘광야의 시험길’에 올랐던 것이다. 이는 마치 사막에서의 고행(苦行)으로 진리를 향해 분연히 타올랐던 초대 교부들의 열정과 흡사해보였다. 

 그가 걸어간 ‘구도의 방랑길’은 그야말로 좁은 길이었다. 사람들의 계속되는 의심 (때가 때인지라 그는 간첩으로 의심받아 몇 번이고 경찰서로 잡혀간다.), 도반(道伴)과의 동행, 교회에서 쫓겨나고 술집에서 구원을 받는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과 아이러니들이 그의 방랑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그러한 모든 상황들을 교재 삼아 ‘자기 신뢰’와 ‘자기 수행’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구도의 길’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 있음을 발견한다.(나는 순례의 길이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 있다던 코엘료의 ‘순례자’를 떠올렸다.) 

 "도는 삶의 현장에서 닦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삶의 적나라한 현장은 수도의 산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삶의 텍스트가 따로 없다. 상황이 텍스트인 것이다."       <본문, 81쪽> 

 비로소 진정한 구도는 자신의 구체적 삶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임을. 그리고 진정한 신앙인이란 제 삶의 모든 상황들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다움’을 향해 방랑하는 존재임을 책은 말하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며 한 줄 한 줄 읽어내려 간 한 영혼의 방랑기 속에는 그동안 얼핏 잊고 지내던 단순 자명한 진리가 번뜩이고 있었고, 나는 다시 한 번 ‘구도’를 말하며, 여전히 ‘머묾’의 미망에 갇혀 있는 나를 질책했다. “구도는 다른데 있지 않다. 매일의 삶, 곧 지금-여기에 있으며, 고여 있지 않고 깨어 떠돎에 있다. 그것이 바로 참 사람됨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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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기득 교수, 전 처음 들어보는 분이지만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방랑길을 좁은길로 부르신 바람결님의 글을 보니,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 떠오릅니다. 고여있지 않고 깨어 떠돎, 진정한 구도와 신앙의 길을 늘 생각하시는 님의 글이 오늘 아침 참 좋습니다.
좋은 하루 시작하시길...

바람결 2007-08-17 12:41   좋아요 0 | URL
송기득 교수는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학계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랍니다. 현실과 타협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셨던 분 중의 하나랍니다. 어쨌거나 지드의 좁은문이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길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늘 깨어서 떠돌지 않을 수 없겠죠? 오늘도 그 좁은 길을 생각해봅니다.

날씨가 덥네요. 좋은 날 되세요, 혜경님.
 

몸살을 앓고 있는 선배의 집에 문안 차 들렀다.

선배의 집에는 함께 기거하고 있는 또 다른 선배 한 명이 있는데,

불쑥 나타나더니 갑자기 나에게 물을게 있단다.

"너 민노당이지?"

"네?"

"아무튼, 너 민노당이잖아."

"아니요, 저는 송아무갠데요?"

"이그, 그런 말이 아니고......"

"......"

"그나저나 이랜드 사건에 대해서 얘기 좀 해봐"

"뭘요?"

"그게 왜 나쁜지. 다른 기업들도 다 그러는데 왜 이랜드가 타겟이되냐 이 말이지."

"......"

"솔직히 난 이랜드란 기업이(박성수 회장을 포함하여)그렇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제가 정치적으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써......"

"그래, 어쨌든 간에"

"정직의 문제라고 봐요. 어떤 기업이 또 어떤 누군가가 정직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한국사회 전체가 거짓되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조차도 거짓일수는 없는 거에요."

"응, 그래"

"그런데 박성수 회장이 그 거짓된 모습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하나님의 축복' 운운하였으니,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거짓의 결과'인가요?"

"......"

"형, 저는 이랜드를 반대하지 않아요. 그저 '거짓'과 '욕심'에 반대할 뿐이죠. 제가 민노당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께서 '진실'과 '정직'을 원하신다는 건 분명하게 믿어요."

"그래. 알았다. 일리가 있는 것 같다."

 .....................

 요즘들어 '이랜드 반대'라는 배너를 자주 보게 된다. 나같은 사람이 달지 않으면 누가 달겠느냐마는 나는 문제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랜드는 인간의 욕심과 거짓이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이다. 물론 그 속에 피땀어린 민중들의 생존과 눈물이 뒤엉켜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이랜드 반대'에 있지 않다. 그동안 이 땅의 기업들이, 그리고 한국사회가, 더 나아가 한 명 한 명의 민초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자행해왔던 '거짓'과 '욕심'에 문제가 있다. 차라리 나는 '거짓과 욕심에 반대한다'라는 배너를 달고 싶을 정도이다.

 어쨌든 우리는 부당해고자들과 여전히 빈곤 속에 시달리는 이 땅의 비정규직들을 위해 눈물 흘려야 한다. 그리고 그 연민의 눈물이 삶 속에 스며들어, 나부터 하나씩 하나씩 '욕심'과 '거짓'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랜드 반대로 더 나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분명히 또 다른 '이랜드'가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 속에 있는 것들, 네 속에 존재하는 '이랜드'부터 반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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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자아의 죽음을 통해

영생의 비밀스런 신비를 배울 때까지-

나는 오랜 허송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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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아를 버려야 거듭난다는 말씀이시죠!
버리고 버려야 한다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라는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바람결 2007-08-16 22:40   좋아요 0 | URL
불가에서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했던가요?
자아(ego)를 버려야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이를때에만
진정한 사람됨에 이르는 길(구원)이라고 생각해요.
혜경님의 말씀처럼, 시인과 촌장이라는 노래패는
오래전에 '가시나무'라는 곡으로 그 길을 노래했더랬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지금도 허송세월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