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가 구도의 방랑길입니다
송기득 지음 / 새날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신앙인은 늘 자신의 머묾을 근심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신앙이 완전하거나 유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보니까 남보다 잘난 것도, 억지로 우길 것도 없고, 남에게 강요할 것도 없다. 단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구도(求道)의 길을 걸어간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의 영혼은 도(道)와 가까워진다. 노자는 ‘성인(聖人)은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도덕경 2장) 하여 도(道)에 이른 사람은 공을 이루고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기실 구도자가 걸어야 할 참된 길은 늘 머물지 않는 방랑자의 그것이라 하겠다. 

 평생 ‘사람됨’과 ‘인간 해방’을 주제로 신학을 써내려갔던 송기득 교수의 이 책은 그가 대학 강단을 떠나면서 일종의 마무리 작업으로 집필한 것으로서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64년 11월 2일부터 그해 12월 24일까지 53일 동안의 방랑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기록이다. ‘거지 방랑기’라는 표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돈, 잠자리, 먹을 것 ‘없이’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일대를 방랑한다. 방랑의 목적은 오로지 ‘자기 신뢰’이며, ‘자기 수행’에 있었다. 그는 한 명의 철학도로써, 그리고 한명의 종교인으로써 ‘광야의 시험길’에 올랐던 것이다. 이는 마치 사막에서의 고행(苦行)으로 진리를 향해 분연히 타올랐던 초대 교부들의 열정과 흡사해보였다. 

 그가 걸어간 ‘구도의 방랑길’은 그야말로 좁은 길이었다. 사람들의 계속되는 의심 (때가 때인지라 그는 간첩으로 의심받아 몇 번이고 경찰서로 잡혀간다.), 도반(道伴)과의 동행, 교회에서 쫓겨나고 술집에서 구원을 받는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과 아이러니들이 그의 방랑에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그러한 모든 상황들을 교재 삼아 ‘자기 신뢰’와 ‘자기 수행’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구도의 길’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우리네 삶의 현장에 있음을 발견한다.(나는 순례의 길이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 있다던 코엘료의 ‘순례자’를 떠올렸다.) 

 "도는 삶의 현장에서 닦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삶의 적나라한 현장은 수도의 산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삶의 텍스트가 따로 없다. 상황이 텍스트인 것이다."       <본문, 81쪽> 

 비로소 진정한 구도는 자신의 구체적 삶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임을. 그리고 진정한 신앙인이란 제 삶의 모든 상황들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다움’을 향해 방랑하는 존재임을 책은 말하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며 한 줄 한 줄 읽어내려 간 한 영혼의 방랑기 속에는 그동안 얼핏 잊고 지내던 단순 자명한 진리가 번뜩이고 있었고, 나는 다시 한 번 ‘구도’를 말하며, 여전히 ‘머묾’의 미망에 갇혀 있는 나를 질책했다. “구도는 다른데 있지 않다. 매일의 삶, 곧 지금-여기에 있으며, 고여 있지 않고 깨어 떠돎에 있다. 그것이 바로 참 사람됨에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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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기득 교수, 전 처음 들어보는 분이지만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방랑길을 좁은길로 부르신 바람결님의 글을 보니,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 떠오릅니다. 고여있지 않고 깨어 떠돎, 진정한 구도와 신앙의 길을 늘 생각하시는 님의 글이 오늘 아침 참 좋습니다.
좋은 하루 시작하시길...

바람결 2007-08-17 12:41   좋아요 0 | URL
송기득 교수는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학계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랍니다. 현실과 타협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셨던 분 중의 하나랍니다. 어쨌거나 지드의 좁은문이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길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늘 깨어서 떠돌지 않을 수 없겠죠? 오늘도 그 좁은 길을 생각해봅니다.

날씨가 덥네요. 좋은 날 되세요, 혜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