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을 앓고 있는 선배의 집에 문안 차 들렀다.

선배의 집에는 함께 기거하고 있는 또 다른 선배 한 명이 있는데,

불쑥 나타나더니 갑자기 나에게 물을게 있단다.

"너 민노당이지?"

"네?"

"아무튼, 너 민노당이잖아."

"아니요, 저는 송아무갠데요?"

"이그, 그런 말이 아니고......"

"......"

"그나저나 이랜드 사건에 대해서 얘기 좀 해봐"

"뭘요?"

"그게 왜 나쁜지. 다른 기업들도 다 그러는데 왜 이랜드가 타겟이되냐 이 말이지."

"......"

"솔직히 난 이랜드란 기업이(박성수 회장을 포함하여)그렇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제가 정치적으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써......"

"그래, 어쨌든 간에"

"정직의 문제라고 봐요. 어떤 기업이 또 어떤 누군가가 정직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한국사회 전체가 거짓되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조차도 거짓일수는 없는 거에요."

"응, 그래"

"그런데 박성수 회장이 그 거짓된 모습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하나님의 축복' 운운하였으니,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거짓의 결과'인가요?"

"......"

"형, 저는 이랜드를 반대하지 않아요. 그저 '거짓'과 '욕심'에 반대할 뿐이죠. 제가 민노당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께서 '진실'과 '정직'을 원하신다는 건 분명하게 믿어요."

"그래. 알았다. 일리가 있는 것 같다."

 .....................

 요즘들어 '이랜드 반대'라는 배너를 자주 보게 된다. 나같은 사람이 달지 않으면 누가 달겠느냐마는 나는 문제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랜드는 인간의 욕심과 거짓이 만들어낸 하나의 허상이다. 물론 그 속에 피땀어린 민중들의 생존과 눈물이 뒤엉켜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이랜드 반대'에 있지 않다. 그동안 이 땅의 기업들이, 그리고 한국사회가, 더 나아가 한 명 한 명의 민초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자행해왔던 '거짓'과 '욕심'에 문제가 있다. 차라리 나는 '거짓과 욕심에 반대한다'라는 배너를 달고 싶을 정도이다.

 어쨌든 우리는 부당해고자들과 여전히 빈곤 속에 시달리는 이 땅의 비정규직들을 위해 눈물 흘려야 한다. 그리고 그 연민의 눈물이 삶 속에 스며들어, 나부터 하나씩 하나씩 '욕심'과 '거짓'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랜드 반대로 더 나은 세상은 오지 않는다. 분명히 또 다른 '이랜드'가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 속에 있는 것들, 네 속에 존재하는 '이랜드'부터 반대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