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기도하는 집>을 읽으며, 담담하고 우직한 문학의 한 경지를 알음 알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의 눈금>은, 생의 궤적을 탐색해나가는 순례자의 '무던한' 정신을 깨우쳐주었습니다. 어딘가에 적어두었던 책의 한 대목이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적십니다.
"아탈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유목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 단촐하게 짐을 꾸려 풀 좋은 초원을 찾아다니는 그런 유목민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 통역 데리고, 김치 항아리 짊어지고 다니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몽골의 초원에서 올 여름에 내린 결론은 이것. 짐을 줄이자, 나는 무거워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한껏 가벼워지셨겠지요...?
언젠가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셨던 카잔차키스의 말을 빌려 이런 말을 남기셨다는데요.
"우리는 하나의 심연에서 와서 또 하나의 심연으로 간다.
이 심연과 심연 사이를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지금쯤이면 또 하나의 심연에 당도하셨을른지요...? 그 심연에는 '쉼'이 있기를. 그 적막하고 깊은 못가에서 평안하시길. 내내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