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고마워요.

당신을 통해 위로를 얻고, 나는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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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밥을 밥을 주신 예수님

   동무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이 자리가 기쁨의 자리

   되게 하소서

 

2. 밥은 밥은 내 것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

    이 자리가 밥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3. 밥을 밥을 서로 나눔은

    동무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

    이 밥을 통해 한 자녀

    되게 하소서

 

_찬양집 <농부 하나님>에 있는 노래다. 곡조도 좋고, 동요같으니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노랫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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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1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 문득 밥 퍼주는 최일도 목사가 생각납니다.
오래전 그분의 수기책를 읽은 적이 있어요. 밥, 한솥밥, 밥 한숟가락의 힘.
쉽고 간결한 노랫말이 참 아름답습니다.^^

바람결 2007-10-13 08:56   좋아요 0 | URL
혜경님, 최일도 목사님을 아시는군요.ㅎㅎ
저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고
말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을 떠올렸답니다.

오늘도 밥을 통해 사랑 나누는,
행복 가득한 하루되세요~^^

프레이야 2007-10-13 23:01   좋아요 0 | URL
장일순 선생님은 전 처음 들어봐요^^
그분의 좋은책 한두 권 권해주시겠어요?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
오늘 문우들과 가야문화쪽으로 다녀왔어요. 전에 갔던 곳이지만 다시요.
120명이 함께 밥을 먹었어요. 밥을 많이 드시는 선생님에게 먼저 한 술
더 덜어드리기도 하고, 웃고 떠들고, 소박한 반찬에 다들 맛나게 먹었지요.
가을이 참 좋습니다. 내일 주일 은혜로이 보내시길요.^^

바람결 2007-10-13 23:23   좋아요 0 | URL
미소와 웃음을 반찬 삼아 나누는 밥상은,
'함께'라는 이유로 그저 기쁘고 행복한 것이지요.
오늘 그렇게 맛난 밥상 나누셨다니 참 좋은 날이셨군요.
저는 아마도 내일이 그러할 것 같은데요?
가까운 산으로 야외예배 가거든요.
벌써부터 몇 분 성도님들은 잡채며, 사라다며 맛난 음식들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제 생각엔 그저 간결하고, 소박하게
먹었으면 싶은데, 저희 교회는 어딜가나 잔치를 벌인답니다.ㅎㅎ

그나저나 장일순 선생님께서는 살아 생전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으신 분이에요. 다만 그와 막역한 사이였던 김지하, 이현주, 김종철, 리영희 등등의 분들이 그간 소개하려 애를 써왔는데요. 제 생각엔 <좁쌀 한 알>이라는 책이 무위당 선생님의 일화들과 말씀들을 비교적 충실하게 실었구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은 선생님의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는 선생님을 기리는 분들이 모여 집필한 회고록이란 점에서 특색이 있습니다. 또한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라는 책 또한 빼놓을 수 없겠어요. 저는 지금 그 책을 조금씩 읽어나가는 중인데, 선생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 좋답니다. 무튼 제 마음에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랍니다.^^ 혜경님도 책을 읽다보면 많은 깨달음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구, 말이 많았습니다. 혜경님도 기쁘고, 행복한 주일 되시기 빕니다.^^;

2007-10-1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4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4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주일은 올해부터 감리교에서 제정한 <농촌선교주일>이었다. 도시와 농촌의 교회 간 문화, 경제의 간극을 좁혀보자는 뜻으로 시행하기로 한듯 한데, 사실 나의 심기는 못내 불편했다. 도시교회의 경우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농촌 교회들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홍보나 주지의 과정이 생략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농촌이 '대상화', 혹은 '타자화'되고 있는 듯한 별리의 징후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을 기회 삼아 교회 내에서라도 농촌의 결에 맞는 찬양과 예배를 드려보자는 생각에 <농부 하나님>이라는 찬양집에서 몇 곡을 골라보았다. 우리 가락에 맞추어 박수도 치고, 어깨춤도 덩실거리며 진행된 예배가 여간 새로울 뿐만 아니라 흥겹기도 하였다. 여전히 '서구의 하나님'을 찬양할 뿐, 우리의 풍토 속에서 고백하지 못하는 작금의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예배의 시도는 (이미 많은 교회에서 시도한 바 있지만) 저으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작은 변화가 서구의 산물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한국적 기독교의 새 장을 열어가는 초석이라 생각한다.

하여 지난 주말에 불렀던 찬양 중 한 곡인 <농부 하나님>을 이곳에 적어본다. 본래 이 곡은 몇 해전 불의의 사고로 소천하신 채희동 목사님의 글이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음악을 함께 싣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속 뜻 깊은 가사로만도 은혜가 넘친다.

 

농부 하나님

 

1.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땀흘려 일하는 농부를 먼저 만드셨네

    씨뿌리고 생명을 돌보아라 땅을 돌보아라

    오늘도 새날을 일구시는 농부 하나님

 

2. 논밭을 갈고 갈아 일하는 농부들은

    참되고 거룩한 주님의 참된 사제지요

    농부처럼 주님의 일을 하라 일은 거룩하다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농부 하나님

 

3. 한 톨의 쌀을 서로 나누는 사람에게

    주님의 거룩한 나라가 지금 임하리라

    밥은 밥은 주님께 속하도다 밥은 생명이다

    우리게 밥을 먹이시는 농부 하나님

 

4. 손잡고 어깨걸고 두둥실 춤을 출 때

    하나님 우리와 에루야 춤을 추시네

    하나님 함께시니 풍년이다 춤을 추어보자

    신명난 나라를 이루시는 농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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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05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부 하나님, 가사네요. 잘 읽었습니다. 곡조를 같이 못 들어 아쉽지만
가사만으로도 참 좋습니다. 하나님 우리와 에루야 춤을 추시네..
농촌교회에 취지가 잘 설명되지 않고 타자화한 점으로 심기가 불편하셨군요.
차츰 그런 문제도 나은 쪽으로 해결되길요.. 바람결님^^

바람결 2007-10-06 01:02   좋아요 0 | URL
곡조도 함께 들을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요...
무튼 이런 찬양이 더 많이, 더 널리 불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듭니다.

농촌이 여전히 타자화되는 현실은 비단 교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방위적인 문제인고로 우리의 투쟁과 바램은 더 절실해야겠습니다.
 

 120주년이라하여 짐짓 거창한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등굣길에 바라 본 그 대형 현수막을 보는 마음은 왠지모르게 씁쓸했습니다. 저 현수막의 휘황처럼 사실 학내의 분위기가 좋지는 않은 탓이었나봅니다. 그저 착잡한 마음을 안고,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수업을 파하고 강의실을 나서고 보니 정말이지 번쩍 번쩍한 고가의 중형차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토끼눈을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다들 우리 감리교 유수의 교회들을 담임하고 있는, 그야말로 지체높으신 분들의 것인 듯 싶습니다. 뭐 <개교 120주년 기념예배>가 있다던가요. 그런데 한 두대도 아니고 학교를 가득 메운 차들이 무슨 재벌이 아니라 목사들의 것이라고 하니 정말 부아가 오르면서도 서글퍼졌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오늘은 애당초 글렀구나 싶어서 예배를 포기하고, 하릴없이 가까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슨 특별한 목적으로 간 것도 아니고, 사실 갈 데가 없어서 그리로 향했다고 해두지요. 독립문 근처의 한 헌책방을 뒤적거리다가 시장통(영천시장이라고 하는 제법 큰 시장이 있어요.)에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저는 문득 중세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일언을 떠올렸습니다.

"시장통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하느님을 뵐 수 없다."

 그랬습니다. 하느님은 저 가난하지만, 치열한, 괴로우나 여전히 희망 넘치는 삶의 구체적 현장 속에 계셨습니다. 부침개를 부치시느라 얼굴이 벌겆게 달아오른 중년의 아주머니의 얼굴 속에, 순대를 수걱수걱 자르시는 어느 할머니의 그 고단한 손길 속에, 주님은, 주님의 숨결은 너무나도 생생히 살아있었습니다. 한편, 120주년을 기념하며 예배한다고 들썩이던 학교와 목사들의 풍경이 오버랩되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듯 하였습니다.

"네가 딛고 있는 그곳이 바로 네가 내게 예배할 곳이니라!"

 그 음성을 마음에 담아 나는 속으로, 속으로 시장통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배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생의 현장 속에서 펄펄히 살아계시는 그 분을 대면하지 않고서 어찌 그 분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사람 속에 계시는 그 분을 모시기 위하여 철저히 낮아지지 않고서야 어찌 그 분을 뵐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값비싼 승용차에 계시지 않고, 휘황찬란한 교회당과 예배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땀내나는 시장통에 계심을 나는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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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아르헨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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