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주년이라하여 짐짓 거창한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등굣길에 바라 본 그 대형 현수막을 보는 마음은 왠지모르게 씁쓸했습니다. 저 현수막의 휘황처럼 사실 학내의 분위기가 좋지는 않은 탓이었나봅니다. 그저 착잡한 마음을 안고, 강의실로 향했습니다.

 수업을 파하고 강의실을 나서고 보니 정말이지 번쩍 번쩍한 고가의 중형차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토끼눈을 하고 유심히 살펴보니 다들 우리 감리교 유수의 교회들을 담임하고 있는, 그야말로 지체높으신 분들의 것인 듯 싶습니다. 뭐 <개교 120주년 기념예배>가 있다던가요. 그런데 한 두대도 아니고 학교를 가득 메운 차들이 무슨 재벌이 아니라 목사들의 것이라고 하니 정말 부아가 오르면서도 서글퍼졌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오늘은 애당초 글렀구나 싶어서 예배를 포기하고, 하릴없이 가까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슨 특별한 목적으로 간 것도 아니고, 사실 갈 데가 없어서 그리로 향했다고 해두지요. 독립문 근처의 한 헌책방을 뒤적거리다가 시장통(영천시장이라고 하는 제법 큰 시장이 있어요.)에 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저는 문득 중세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일언을 떠올렸습니다.

"시장통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하느님을 뵐 수 없다."

 그랬습니다. 하느님은 저 가난하지만, 치열한, 괴로우나 여전히 희망 넘치는 삶의 구체적 현장 속에 계셨습니다. 부침개를 부치시느라 얼굴이 벌겆게 달아오른 중년의 아주머니의 얼굴 속에, 순대를 수걱수걱 자르시는 어느 할머니의 그 고단한 손길 속에, 주님은, 주님의 숨결은 너무나도 생생히 살아있었습니다. 한편, 120주년을 기념하며 예배한다고 들썩이던 학교와 목사들의 풍경이 오버랩되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듯 하였습니다.

"네가 딛고 있는 그곳이 바로 네가 내게 예배할 곳이니라!"

 그 음성을 마음에 담아 나는 속으로, 속으로 시장통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예배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생의 현장 속에서 펄펄히 살아계시는 그 분을 대면하지 않고서 어찌 그 분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사람 속에 계시는 그 분을 모시기 위하여 철저히 낮아지지 않고서야 어찌 그 분을 뵐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값비싼 승용차에 계시지 않고, 휘황찬란한 교회당과 예배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땀내나는 시장통에 계심을 나는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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