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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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잠시 작은 시골마을에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마을이 산중턱에 있어서 겨울이면 유독 눈이 많이 내리던 마을이었다.

눈이 내리면 쉬지 않고 내려서 산과 도로가 모두 눈에 덮였다.

어느 해 겨울인가는 눈이 너무많이 걸으면 무릎까지 눈이 쌓였다.

집 앞의 화장실도 걸어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차가 다니는 도로와 사람이 다니는 샛길까지 모두 눈에 덮여 길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때의 고요함과 적막감, 그리고 그 고요와 적막이 중는 평안함......

지금은 너무나 복잡한 곳에 살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차와 사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기와 환경, 그리고 그 때 느꼈떤 마음이 떠오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란 책을 읽으며 다시금 눈 덮인 작은 시골마을을 다녀왔다.

이 책을 열면 주인공 시마무라와 함께 기차를 타고 눈 덮인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냐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려 넢고 있었다.

벌써 저렇게 추워졌나 하고 시마무라가 밖을 내다보니, 철도의 관사인 듯한 가건물이 산기슭에 을씨스럽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 빛은 거기까지 채 닿기도 전에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P7)

시마무라는 눈 속 마을로 인도하는 기차 안의 맞은편에는 병자를 간호하는 애달픈 여인 요코가 앉아 있다.

시마무라의 목적지는 눈 덮인 나가타현의 한 온천마을이다.

그 마을에서 예전에 만났던 고마코라는 여자를 찾아오는 길이다.

그러나 고마코를 만나러 오면서도 시마코는 계속해서 요코가 신경이 쓰인다.


작 년에 시마무라는 우연히 눈 덮인 시골마을 여관에 머무르다가 19살의 게이샤 수업을 듣고 있는 고마코를 만난다.

(소설에서는 고마코는 시마무라는 다시 만난 후 199일만의 만남이라고 한다.)

고마코는 도쿄에서 결혼을 했었던 경험도 있으나 무슨 사연이 있는지 이 곳 시골마을에서 게이샤 수업을 듣고 있다.

그녀는 의외로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시마무라는 그런 그녀와 정을 나누는 만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고마코는 이미 게이샤가 되어 있었고 매일같이 술자리에 불려 나갔다.

그리고 술에 취해 틈틈히 시마무라가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온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시마무라 역시 그의 특유의 허무적인 생각과 표현으로 코마코를 바라본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으며 고마코의 친구인 요코를 생각한다.

이 소설은 눈 덮인 시골 마을의 풍경묘사와 함께 세 남녀 사이의 심리를 저자의 특유의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무심한듯 서로를 그리워한다.

이 소설에서는 눈 덮인 일본의 온천마을 풍경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 역시 뛰어나다.

특히 시마무라를 향한 고마코의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과연 남성이 어떻게 저렇게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힘들어요. 당신은 이제 도쿄로 돌아가세요. 힘들어요"

힘들다는 건 여행자에게 깊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때 꾹 참고 견뎌야 하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여자의 마음이 여기까지 깊어졌나 보다 하고 시마무라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만 돌아가세요"

"실은 내일 돌아갈까 생각중이야"

"어머, 어째서 돌아가려는 거죠?"하고 고마코는 눈이 번쩍 뜨인 듯 얼굴을 들었다.

"내가 계속 있어봤자 당신을 어떻게 해줄 수도 없잖아?"

멍하니 시마무라를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격한 어조로,

"그게 틀렸어요. 당신은 그게 틀렸따고요"하고 애타는 표정으로 일어나 느닷없이 시마무라의 목에 매달려 몸부림을 치다가,

"당신은 바로 그렇게 말하는 게 틀렸어요. 일어나요. 일어나라니까요"하고 중얼거리며 제풀에 넘어졌다. 광기마저 띠고 몸이 불편한 것도 잊었다.

그러고 나선 따스하게 젖을 눈을 떠,

"내일은 정말로 돌아가세요"라고 나직이 말한 뒤, 머리카락을 주었다. (P70)

이 소설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에 불이 나는 장면이다.

눈이 녹고 다시 눈이 오기 전의 짧은 시기의 어느 날 저녁 시마무라와 고마코는 다시 만나 마을을 걷는다.

유난히 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지던 그 밤, 마을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 고치창고에서 불이 난다.

그리고 그 불 속에서 요코는 2층에서 떨어진다.

고마코는 시마무라의 품 속에서 빠져나가 그 불 속으로 들어가 요코를 데리고 나온다.

저자는 이런 급박한 상황을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낸다.


불은 영사기를 세워놓은 입구 쪽에서 난 듯, 고치 창고의 절반쯤은 이미 지붕도, 벽도 다 타버리고 없다. 기둥이며 대들보 같은 골격만이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판잣지붕, 벽, 마루가 전부인 텅 빈 창고일 뿐이어서 안에서는 연기도 별로 나지 않았따. 충분히 물이 뿌려진 지붕도 더 이상 타는 것 같지 않은데도, 불길은 계속 번져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생겼다. 석 대의 물펌프로 허둥지둥 끄려고 하면 일시에 불똥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일었다.

불똥은 은하수 속으로 퍼져나가면서 흩어져 시마무라는 또 한번 은하수 쪽으로 끌어올려지는 느낌이었다. 연기가 은하수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은하수가 쏴아 하고 흘러 내려왔다. 지붕을 비껴난 펌프의 물줄기 끝이 흔들려 물안개처럼 희뿌연 것도 은하수 빛이 비추기 때문인 것 같다.  (P148)

물 속에서 일어나서 은하수로 닿으려는 불꽃과 연기가 어쩌면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 안에 있었던 감정과 사랑이었을까?

계속해서 뿌려지는 물주기는 허무의 감정일까?

그리고 그 허무 속을 뚫고 올라오는 불꽃처럼 이들의 사랑은 은하수에 닿았을까?


이 책은 노벨상 수상작가인 저자가 노년에 한 일본의 눈 덮인 시골 마을에서 쓴 책이다.

이 소설을 쓰고 저자는 다음 해에 자살을 한다.

사람의 인적인 끊긴 눈 덮인 시골마을에서 73세의 노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나간 사랑과 감정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 사랑과 감정이 모두 사라지게 하는 허무감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작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 자신이 머물렀던 그 눈 덮인 시골마을로 데려가는 마력의 필치를 뽑낸다.

그리고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동안 그 필치에 끌려 눈 덮인 일본의 한 온천마을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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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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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가 나왔을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었다.

나 역시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인터넷에서 이 작품의 서평을 찾아 볼 정도로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서평에서 이 작품이 일본의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을 다루고 있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법률적인 논쟁이나 사회적 논쟁에 한 발 자국 떨어지고 싶어하는 내 자신의 성향상 이 책을 읽기가 꺼려졌다.

그런 이유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 작품을 읽었다.

너무나 심각하거나 딱딱한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법률적인 논쟁에 치우친 작품이라기 보다는 작가 특유의 추리소설 필치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소설이다.

물론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추리소설이란 큰 틀 안에 있는 소제일뿐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역시 하가시노 게이고의 어떤 작품보다도 치밀하고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처음엔 사오리라는 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그녀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외롭고 쓸쓸한 학교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짝사랑해 왔던 상급생 후미야가 접근해 온다.

후미야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을 때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며 후미야의 접근에 어떤 의도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짝사랑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나 작가는 그 후의 이야기를 단절시킨다.

둘의 사랑이 어찌 되었다거나 후미야가 나쁜 놈이었다거나 그런 내용도 없다.

그러나 후에 이 둘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이야기는 갑자기 세월이 지나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루는 회사를 운영하는 나카하라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11년 전 이혼 한 아내가 살해 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카하라와 그녀의 아내 사요코는 11년 전 딸 아이가 강도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 되었다.

둘은 범인이 사형판결을 받게 하게 위해 전심으로 노력을 했다.

그 결과 범인은 사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11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아내의 살해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한 노인이 자신이 살해범이라며 자수를 한다.

단지 돈이 필요해서 우연히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사요코를 발견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나카하라가 아내의 사건을 파해지면서 다시금 소설 앞에 등장햇던 사오리와 후미야가 등장한다.

나카하라는 아내의 장례식장에 찾아 온 사오리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또한 아내를 죽인 노인의 사위가 이제는 유명한 소아과 의사가 된 후미야라는 남성이었다.

결국 나카하라는 사오리와 후미야가 연관이 있는 인물이고 이들의 과거가 아내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나카하라는 전 아내 사요코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녀가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사형제도폐지운동을 반대하는 것에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 당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글을 출판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가령 사형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유족의 승리는 아니다. 유족은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만 필요한 순서, 당연한 절차가 끝났을 뿐이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도 마찬가지 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사형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범인이 살아 있으며 '왜 범인이 살아 있는가? 왜 범인에게 살아 있을 권리를 주는가?'라는 의문이 유족의 마음을 끊입없이 갉아 벅는다.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라는 의견도 있지만, 유족의 감정을 떨끈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종신형에서 범인은 살아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매일 밥을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어쩌면 취미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유족에게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씩 끝질기게 말하지만, 사형 판결을 받는다고 유족의 마음이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족에게 범인이 죽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P189-90)

나카하라 역시 아내의 글에 동감하여 이 책을 출판하려 한다.

그러나 아내의 죽음을 파해지면서 그 신념이 흔들리는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사형이나 형벌로는 사람을 진정으로 갱생시킬 수도 없고, 속죄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사형은 속죄가 아닌 '공허한 십자가'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신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요코는 딸의 죽음으로 사람을 죽인자는 반드시 사형당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신념을 향해 달려갔다.

나카하라 역시 그 신념을 쫓아가며 사건을 파해치지만 결국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요즘들어 드는 생각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들이 점점 단단해져서 나중에는 그것이 돌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돌처럼 된 생각과 신념은 왠만한 것으로 무너뜨릴 수 없고,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에 대해 강한 반격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각과 신념들은 대부분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 생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과연 내 생각과 신념들이 맞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또 다른 상처들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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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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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권으로 이사를 와서 자주 못 가지만 예전에는 대둔산이라는 곳을 자주 등산했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절경이 아름다우면서도 산세가 험하기로 이름난 산이다.

케이블을 타고 올라가서도 한참을 험한 산을 오르다가 보면 정상 부근에 가까워서 작은 동학운동 기념비가 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학운동의 마지막 사람들이 여기서 일본군과 대치하다가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구를 보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은 이 험한 산 꼭대기까지 오르게 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이 산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가졌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구한말 동학운동을 배경으로 전봉준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야구경기의 패색이 짙은 9회말 경기를 보는 것처럼, 이미 스코어가 너무 벌어져 돌아킬 수 없는 축구의 후반전을 보는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했다.

나는 동학운동이 단순히 탐관오리의 학정에 반발해 일어난 농민운동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당시의 조선의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이미 외쇄의 세력에 점령 당해있고, 민씨 일가들은 권력을 통해 백성들을 탈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봉준과 동학 접주들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일어난다.


이 책은 다른 동학운동과 관련된 책과는 달리 대원군과 개화파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설정이겠지만 이 책에서는 전봉준이 동학운동을 일으키기 전 대원군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남쪽에서 난을 일으키면 어떠겠냐며 대원군의 의중을 묻는다.

대원군은 이제 믿을 것은 백성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대원군이 동학운동을 지지한 것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동학운동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다시 찾기 위해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동학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뿐만 아니라 인간 전봉준의 끝임없는 고뇌를 읽어야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과감한 혁명가이기 보다는 고뇌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등장한다.

난을 일으키기 전에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정말 이 길 밖에 없는가?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우금재에서 전투가 패퇴한 후 죽어가는 한 백성과의 대화는 정말 압권이었다.


전봉준이 군말 없이 군사를 따라나섰다. 방금 지나쳐 온 길가 짚더미 위에 부상당한 군사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 잘 뭉쳐 받쳐준 짚단을 벤 채 몸에도 짚단을 덮은 사내가 숨을 몰아쉬었다. 전봉준이 다가가 피로 범벅된 사내의 손을 잡았다. 얼굴이 희고 고왔다.

"왜 혼자 누워 있소?"

"동무들에게 두고 가라 하였습니다. 난 틀렸습니다."

"그런 소리 할 거 없소. 우리랑 갑시다."

"장군!"

사내가 피로 미끄덩거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통증 때문인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 길이 가장 옳았다고 확신하십니가?"

세상을 빨아들이려는 갈망이 눈에서 번뜩였다. 전봉준이 또박또박 말하였다.

"그대가 목숨 걸고 나선 길이오. 의심하지 마오"

사내가 밭은 기침을 하더니 안심하는 소리로 일렀다.

"백성들은 장하였소. 그들을 배신하지 마시오. 변절하지 말시오"

"그 말을 따르겠소"

- 본문 중에서 (P308)


구한말 처럼 나라가 시끄럽다.

보수와 진보가 극단에서 싸우고 있다.

서로 나라를 위한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나서서 바로 잡겠다고 한다.

나라는 오랫 동안 둘로 갈라져서 북쪽에서는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아댄다.

중국은 미국과 맞서는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고,

일본은 자위대 헌법을 바꾸어 자위대 해외 파병을 가능케 했다.

남한의 허락없이는 한반도에 군사를 보내지 않겠다더니 이제는 북쪽은 허락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정부에서는 우리의 허락없이는 자위대가 못 들어오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구한말과 비슷하게 돌아간다.

청나라 군사도 허락을 받고 들어왔고, 일본군도 허락을 받고 들어와 백성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허락을 받고 우리나라를 합병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자신의 앞 일이나 걱정하라고 한다.

그렇다! 내 앞 걱정하기도 벅찬 시대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려운 것일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 소설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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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팅 1
조엘 샤보노 지음, 임지은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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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SF와 결합된 청소년문학의 뿌리가 매우 깊다.

우리에게 영화화 되어서 잘 알려진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 역시 오래 전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여진 SF 소설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이런 소설은 YA소설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young adult'라는 말은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보지만, 미국 출판사에서는 주로 청소년 층인 12세에서 18세 정도로 본다.

우리나라에 유행한 헝거게임과 메이즈러너 시리즈도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YA소설로 분류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헝거게임과 메이즈러너가 생각이 났다.

핵전쟁 이후 새로운 독재권력이 지배하는 세계관과 그들이 만든 가혹한 생존게임에 내몰리는 스토리는 헝거게임과 비슷하다.

또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 가혹한 실험 조건을 만든다는 설정은 메이즈러너와 비슷하다.

파괴된 미래의 도시와 황무지에 소년이 내몰려 생존해 간다는 설정은 얼마전 읽은 피프스 웨이브와도 비슷하기도 하다.

모두들 대표적인 YA소설이고, 이 소설 역시 그런 맥락을 잇고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히 기존 소설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은 미래 사회에서 새로운 대학입시라는 테스팅이라는 시험에 응시하는 배경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테스팅이라는 것이 실패한 사람들이 죽거나, 서로를 죽여야 하는 끔찍한 시험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시아는 이후 새로 재건된 통일정부에서도 가장 변두리의 다섯 호수 마을의 소녀이다.

이 마을에서는 5년 동안 테스팅에 지원한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변두리로 취급받는다.

그러다가 시아와 시아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토마스와 금발의 미소녀 잰드리, 그리고 말라카이 등 네명은 다섯 마을에서 5년 만에 처음 테스팅 시험 응시자로 선발된다.

기대에 부푼 시아에게 아버지는 테스팅에 무언가 함정이 있는 것 같다는 암시를 준다.

테스팅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통일정부의 수도인 토수시티로 가는 도중 시아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 당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아는 시험이 시작되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기숙사에 있던 라임이라는 아이가 자살을 하고, 함께 다섯마을에서 온 말라카이는 시험 중 오답을 맞추어서 죽어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응시자들이 죽어가고, 응시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죽음으로 내 몬다.

결정적인 4차 시험에 이르러서 그들은 모두 핵전쟁으로 황폐한 도시와 황무지에 던져진다.

그 곳에서는 오염된 물과 변정된 동물들, 그리고 동물과 사람의 경계를 가지고 있는 뮤턴트들이 존재한다.

시아는 이 과정에서 아무도 믿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토마스를 믿고 사랑하게 된다.

둘은 4차 시험 도중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목적지까지 힘겹게 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토마스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결국 시아는 토마스까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대학입시라는 테스팅을 앞 두고 벌어지는 긴박감이 매우 압권인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것이 미래사회의 모습이 아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험에 떨어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많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인성보다는 남을 밟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의 모습이 너무 닮아 있다.

어쩌면 미국 청소년들도 나름대로 대학입시라는 끔찍한 압박감들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이런 소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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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남미였어 - 생에 단 한 번일지 모를 나의 남아메리카
김동우 지음 / 지식공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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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남미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김창삼 교수의 세계여행기]이다.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여행기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책꽃이에 있던 몇 권짜리 전집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어린나이에도 저자가 남미를 여행하며 겪은 일화와 사진들을 보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래서 지금도 남미를 연상하면 괘죄죄한 모습에 남미 원주민과 함께 벽돌 집 앞에서 웃고 있는 김창삼 교수의 사진이 먼저 떠오른다.


두 번째는 젊은 시절에 보았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마돈나가 주연한 [에비타]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아르엔티나의 역사와 에바 페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너무 감명받아 '돈 크라이 포미 아젠티나~'라고 노래하는 이 영화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는 최근에 읽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란 소설이다.

이 책을 통해 칠레의 굴곡진 역사를 알게 되었고, 남미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또 남미를 기억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김동우라는 저자가 쓴 [걷다보니 남미였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세계여행을 하는 도중에 남미여행을 기록한 여행기이다.

저자의 특유의 유모와 궁색?맞은 여행기가 꼭 어린시절에 읽었던 김창삼교수의 여행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 책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기점으로 시작하여 남미의 여러 곳을 여행한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저자가 트래킹을 좋아해서 남미의 유명한 트래킹 코스와 산들을 걸은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진과 함께 저자가 황량하고 거친 산을 오르는 모습을 읽고 있는 동안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여행 코스 중 저자가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곳이 파타고니아라는 곳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세계 3대 트래킹 코스로 알고 있던 곳이며, 나에게도 꼭 걷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파타고니아가 하나의 트래킹 코스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7배나 넓은 광활한 얼음과 바람의 지역인 것을 알았다.

저자는 이 파타고니아 발릴로체라는 곳을 트래킹하기도 하고, 토레스 델 파이네라는 곳을 트래킹 하기도 한다.

광활한 산과 벌판을 트래킹하며 텐트에 자기도 하고, 걷센 바람을 맞으며 오르기도 한다.





저자는 남미 여행 중 여러 번 등산을 하는데 그 중 최고의 압권은 남미의 최고봉 아콩가구아를 등산한 것이다.

거이 2주가까이 계속되는 등산에서 결국 거센 바람으로 인해 중간에 등정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후회와 씁쓸한 마음에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고요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적을 베고 누웠다. 아콩가구아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장면마다 송곳 같은 후회가 합리화의 방패를 뚫고 가슴을 찔렀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내게 실패자란 낙인을 찍었다.

좀 더 용기를 내야했다. 과감하게 나 자신을 던져야 했다. 말로만 일생일대의 도전이 아니라 진짜 모든 것을 걸었어야 했다. 악천후는 핑계일 뿐이다. 산을 내려온다는 건 곧 육체의 편안함을 약속하는 행동이다. 불편과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면 산 아내 평온함은 진짜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마지막까지 버틴 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한테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벗겨지고, 진물이 흘러도 정산에 서 보고 싶었다.

산을 내려오자 이런 불같은 의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마음의 중심은 갈기갈기 찢겨 누더기가 돼 있었다. 나 잣니에 대한 확신은 황량한 아콩가구아처럼 건조했다. 이런 비루한 자괴감은 나를 더 깊고 어두운 수령으로 빠드렸다. (P278)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는 저자의 용기가 부러웠고, 그 여행을 통해 누리고 있는 자유와 사색의 시간이 부러웠다.

그 자유와 사색의 시간을 누릴 수 없는 독자에게 책을 통해 그 시간을 선물해 주는 저자의 배려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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