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인생에서 부모님과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면 군대에 있을 때이다.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는 편지로 집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내 상황과 안부를 물어왔다. 나 역시 내 군대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집 안의 상황을 물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가 직접 보지 못하는 집 안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이미 편지의 글을 통해 전달된 집안의 상황은 내가 읽는 순간 백 퍼센트 똑같이 전달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집안의 상황은 편지라는 글을 통해 내게 새롭게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그때의 편지의 내용은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이었을까? 결국 해석이라는 것은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좋게 포장하자면 '다르게 해석된다 말보다 '새롭게 해석된다 말일 것이다. 결국 해석 된다는 것은 기존의 텍스트를 해석자의 주어진 상황을 고려해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근대적인 해석학은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시작되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전의 단순한 고전 해석을 철학적 해석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기존의 해석의 텍스트의 본래 의미를 밝히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철학적 해석은 본래의 의미를 밝히는 것과 함께 해석자의 상황을 고려한다.

그와 함께 해석학이 문제 삼는 것은 독자의 삶의 자리다. 텍스트의 의미가 드러나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독자가 텍스트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텍스트를 읽는 의도는 무엇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삶의 자리는 텍스트의 의미가 드러나는 중요한 터전이 된다. - [해석학] P79


이런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은 기존의 텍스트에 대한 문법이나 문맥적 해석적 방법과 함께 새롭게 심리적 해석을 제시한다. 텍스트의 저자가 글을 작성했을 당시의 심리적 의도까지 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 방법은 텍스트를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또한 해석자의 주관적인 심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은 딜타이에 의해 계승 발전된다. 딜타이는 단순한 심리적 해석에서 뛰어넘어 정신 학문을 강조한다. 정신 학문은 당시 유행하던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의미로 단순한 심리의 의미를 넘어 인간의 삶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딜타이의 해석학은 단순한 텍스트의 이해를 넘어, 텍스트를 인간의 삶 전반을 통해 이해하려 했다. 이것을 '해석학적 순환의 원리'라고 한다, 이 해석학적 순환의 원리는 후에 하이데거의 해석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정신의 학문이란 인간의 마음과 정신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신의 학문은 '이해의 심리학'이다. 자연과학은 그에 비해 인과적 설명의 심리학이다. 정신 학문의 이해를 위해 그는 삶의 통일성과 전체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처음으로 해석학적 순환의 원리가 나타난다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전체적인 것과 연관에서 개별적인 것을 이해한다. 또한 개별적인 것은 전체를 결정하다.."  -[해석학] P94


하이데거에 이르러 존재 해석학의 성립된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의 의미를 밝힌다. 하이데거는 기존의 철학이 존재와 존재자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보고, 존재를 존재자에게서 불리한 것을 제시한다. 그에게 있어서 존재란 존재자가 존재자일 수 있게 하는 기초이며 근거이다. 존재란 '있음'이며, 그 '있음'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존재 해석학이다. 그러나 이 존재를 의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라고 부른다. 현존재라는 의미는 주어진 지금의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현존재의 상황을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라고 부른다. 결국 현존재가 존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현존재가 주어진 세계, 특히 시간의 관계성 속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존재를 포함한 세계를 해석해야 하고, 세계를 해석함을 통해 다시 존재를 해석하게 된다. 앞의 딜타이의 '해석학적 순환'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인간의 실존적 현재는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터전이기에 존재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런한 현재를 해명해야 한다. 이는 존재론을 위한 기초작업이기에 그는 이것을 기초 존재론이라 불렀으며, 그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고 해명하는 것이 이른바 실존적 분석이다.
기초 존재론적 분석의 대상은 세계 안에 던져져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현재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실존적 상황을 "인간은 세계-내-존재 말로 표현한다. 인간은 세계 안으로 던져져 있으며, 매 순간 그때마다 특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 던져져 있음을 넘어 스스로를 기획 투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제나 각기 그때마다 특정한 현재에 자리한다. 그 현재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현재이다. 그 현재 안에서 인간은 구체적인 사실로 살아간다. 이러한 현재적 사실과 그에 관계되는 총체적 상황을 그는 현사실성이라 부른다. 현사실성은 현존재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며, 그 자체로 그렇게 있는 존재의 성격을 일컫는 말이다. 이해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현사실적인 삶을 해명하는 작업, 이를 통해 현존재에 드러나는 존재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 현사실성의 해석학이다. - [해석학] P117-8


결국 존재 해석학이란 현재에 삶에서 존재하는 현존재의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일 것이다. 결국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존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해석해야 하고,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존재를 해석해야 한다. 결국 존재는 그가 속한 세계와 동떨어져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해석학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직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완독하지 않은 나에게는 아직 이 정로 밖에 '존재해석학'을 이해하지 못 했다. 하이데거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존재해석학'에 대한 이해가 풍성해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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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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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오래전에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콘스탄틴]이 떠올랐다. 영화는 타락한 세상에는 천사와 악마가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악마를 제거한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에서 콘스탄틴의 진짜 적은 악마가 아니라 천사임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설국열차]로 더 잘 알려진 틸다 스윈튼이 가브리엘 천사 역으로 등장에 나중에 날개가 잘린 채로 타락한 세상으로 떨어진다.

 

 

 

[천사들의 탐정]은 영화 [콘스탄틴]처럼 판타지적 요소는 없다. 하지만 작가 '하라료'가 그리고 있는 세상은 영화에서처럼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타락한 세상에서 천사는 더 이상 천사의 모습이 아니라, 날개가 잘린 채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화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라료'는 스릴러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작가이다. 특히 그가 탄생시킨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는 여러 편의 시리즈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까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번 [천사들의 탐정]을 통해 처음 '하라료'와 그가 탄생시킨 '사와자키'라는 탐정을 만났다.

[천사들의 탐정]은 작가가 '사와자키'라는 탐정을 등장시키는 7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단편소설이라고 하기는 한 편의 분량이 조금 많은 편이다. 이 소설의 공통점은 탐정 '사와자키'가 주인공이라는 것과 함께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이 사건의 의뢰인이나 대상자로 나온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순수한 천사의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비친다.

첫 소설 [소년이 본 남자]에서는 '에노모토 다이스케'라는 소년은 우연히 살인 의뢰를 현장을 목격하고 자신의 저금통에서 5만 엔을 꺼내서 사와자키에게 여자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왜 저금통까지 깨서 사건을 의뢰하냐고 묻는 사 와 자키에게 아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순수한 대답을 한다.

"그야...... 사람 생명은 돈보다 중요하잖아요?"

그러나 사건을 수사할수록 사와자키는 그 아이가 천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수상 중에 그 아이의 이름도 가짜이고, 그가 의뢰한 사건의 본질도 순수한 동정심은 아니었음이 밝혀낸다.

두 번째 소설 [자식을 잃은 남자]에서는 유명한 음악가의 숨겨진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타나 돈을 요구한다. 아버지가 거절하자, 아버지의 어린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아버지는 마음을 바꾸어 아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과연 이 아들은 악마일까, 천사일까.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타락한 세상에서 작가가 어떤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건물 뒤 주차장 쪽 도로로 향했다. 오가는 차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에 인적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아버지를 대신해 흰 장미 한 송이를 길에 던졌다. 그때 길 건너편 보도 끄트머리에 놓인 옅은 색의 예쁜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가 어린 여동생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꽃다발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P108)


세 번째 소설 [240호실의 남자]에서는 천사들이 사는 세상이 더 흉악하게 묘사된다. 처음 소설에 등장하는 여고생의 이미지는 아빠의 외도를 염려하는 순수한 딸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건을 파헤칠수록 등장하는 추잡함과 그 추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딸이 택한 끔찍한 선택이 드러난다.

네 번째 소설 [이니셜이 M인 남자]에서는 한 남자 아이돌을 짝사랑한 여자 아이돌이 자살을 하기 전 사와자키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그것을 단지 순수한 여자아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한다.

"아가씨 나이가 열여섯? 열일곱?"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어린 소녀들은 늘 진짜라고 하지. 만화체로 쓰는 연애편지도 진짜고, 고시엔 야구 대회 응원에서 흘리는 눈물도 진짜고, 공부하라는 소리만 하는 어머니를 죽이겠다는 생각도 지자라고 하지. 자살하겠다는 건 대체 어떤 진짜인가?"(P165)


그러나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여자아이는 만화체로 연애편지를 쓰고, 고시엔 야구 대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마지막 소설인 [선택받은 남자]에서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중학생을 찾아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는 사와자키와 선거에 출마한 청소년 선도위원 '구사나기'의 모습이 묘사된다. 소설은 내내 '구사나기'가 과연 진짜 천사일까? 아니면 천사의 모습을 가장한 악마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말 구사나기는 가출한 청소년의 안부가 걱정되어서 일까? 아니면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일까? 타락한 세상에 너무나 익숙한 나는 후자를 염두에 두고 읽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외자키'라는 중년의 탐정을 아주 매력적으로 그린다. 그는 세상의 냉혹함을 너무나 잘 아는 듯, 그런 세상을 무심히 바라본다. 아무리 타락한 세상의 모습도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친다. 그러다가도 그 타락한 세상 속에서 병든 어린 천사를 보면, 마치 길 잃은 짐승이라도 보듯이 다가가 보듬어 준다.

이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1980년대와 90년대 일본 사회가 배경이다. 고도성장의 그들 속에 버려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타락해 가는 세상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2010년대의 한국, 지금 이 세상에서 천사들은 또한 어떤 모습으로 타락해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도 이런 천사들을 지켜나가는 탐정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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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드웨인 존슨이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허큘리스]가 개봉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는 신화적인 헤라클레스를 인간적인 헤라클레스로 해석한다. 헤라클레스를 한 용병으로 설정하고, 헤라클레스의 몸값을 높이고 상대에게 겁을 주기 위해 그를 찬양하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 꾼 동료를 등장시킨다. 이 영화에서 헤라클레스가 펼치는 싸움이 이 이야기꾼에 의해서 신화화되고, 우리는 그런 신화화된 헤라클레스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모티브이다.


 

 

[허큘리스]와 비슷한 관점에서 그리스 신화를 바라보는 영화가 조금 더 오래전에 개봉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트로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천부적인 솜씨를 가지고 있는 전사이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그를 신적인 존재로 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전투 중에 발목(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 후 최후를 맞게 된다. 불사의 존재인 아킬레스를 인간 아킬레스로 해석한 영화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매트리스]란 영화 역시 해석과 관련된 영화이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상징들로 똘똘 뭉쳐있는 이 영화는 주인공 네오가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관점을 두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매트리스 안의 가상세계가 실재 존재하는 세계로 생각했으나, 모피어스를 만난 후 실재의 세계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가상의 세계 대신 실재 세계를 선택한다. 결국 네오의 삶은 그가 세계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바뀌게 된다.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해석학과 관련되어있다. 해석학이란 원래 그리스에서 신탁을 해석하던 것에서 시작되어, 성서를 해석하면서 발전하였다. 앞의 두 영화 [허큘리스]와 [트로이]는 근대적인 해석학의 경향을 설명해 주는 좋은 소재이다. 근대 이후부터 이성적인 사고와 진화론적인 사고가 중심이 되면서, 고전을 해석할 때도 신화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성의 틀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지배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신학자인 불트만이다. 그의 사상을 '탈신화화'라고 한다. 그는 성서를 해석할 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적인 모습을 제거하거나, 성서의 신화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인간 예수를 찾아내려고 했다. 현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모습을 제거하고 인간 예수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나 책들은 대부분 이 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해석학들의 책은 이런 해석이 성서를 바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고 현대신학자들 중 많은 학자들이 이런 해석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탈신화화의 해석의 전제는 이성적인 틀 안에서 신의 존재를 배제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제를 가진 해석으로 신의 존재를 믿고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성서를 해석하기를 강요하는 것도, 이성을 수단으로 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근대의 해석학이 고전에 대한 해석학이었다면, 하이데거 이후 해석학은 단순히 고전을 해석하는 범위에서 넘어서 존재자와 세계를 해석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통해 생각하는 인간, 즉 인식하는 인간에 초점을 두었다. 하이데거는 이런 데카르트의 근대철학이 인간의 존재, 존재자에 대한 초점을 놓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이에 인간을 '현존재', 또는 '세계-내-존재'로 해석한다. 즉 인간의 존재를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나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결국 인간이란 존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이고, 그럼에도 그 죽음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존재의 상태를 비본래성(inauthenticity)이라고 부른다. 영화 [매트리스]에서 네오가 마치 거짓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는 현실을 외면하는 네오의 동료 사이퍼스의 삶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런 시간적인 존재와 죽음의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삶을 본래성(authenticity)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아카넷 출판사에서 나온 신승환 교수의 [해석학]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중점을 두어 해석학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시작해서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해석학적 철학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본래 철학은 삶과 존재를 해석하는 것이기에 해석학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철학자들이 펴쳐간 생각의 체계와 이론에 관계되는 좁은 의미의 학문적 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서만이 존재할 수 있고 또 그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인간의 근원적 행위를 넓은 의미에서 철학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기보다 삶과 존재로서의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은 본질적으로 해석학적일 수밖에 없기에 해석학적 철학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성서해석학, 철학적 해석학, 존재 해석학, 해체론적 해석학 등 여러 가지 해석학을 다루지만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분야기 바로 존재 해석학이다.

 

 

 

해석학에 관심이 많아 '폴 리쾨르'의 [해석의 갈등]이라는 책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구입하여 읽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외국 학자들에 의한 해석학 개론서가 많고, 폴 리쾨르의 저작은 너무나 방대하고 난해하여 아직까지 완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참에 한국 학자의 연구에 의해 집필된 해석학 책이 출간되어, 이 책을 통해 더 쉽게 해석학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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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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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사촌 동생이 결혼식에 참여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척들의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번은 결혼식장이 집 바로 옆이어서 아무런 핑계도 대지 못하고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거의 10년 만에 만난 친척도 있었다. 결혼식을 하는 사촌 여동생 역시 10년 만에 만나 신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결혼식 후 모두들 다시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10년간의 공백이 매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안다는 것은 이렇게 인생의 한순간의 만남을 통해, 비어져 있던 공간들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공간들이 채워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내 인생도 타인에게는 몇 번의 중요한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해 나머지 공간이 채워지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는 것처럼, 순간의 단면들이 연결된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톤 다이어리]라는 소설은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캐럴 실즈'는 잘 알려진 캐나다의 대표적인 여성작가이고, 이 소설은 1955년 퓰리처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다. 다만 한 여성의 인생의 전반을 다룬다는 거대한 스토리에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선뜻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조금은 지루하다는 서평들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 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자 지루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 탓이었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일생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루고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몇 가지 순간들만을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것이 연결되는 식이다. 한 챕터가 하나의 단편소설이 될 수 있을 만큼 완성된 이야기 형식을 가지며, 그것들이 연결된 '데이지 굿윌'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완성한다. 그래서 각 챕터마다 탄생, 어린 시절, 결혼, 사랑, 어머니가 되다. 일, 슬픔, 평온, 노쇠, 죽음같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개인적인 야기처럼 10년마다 중요한 친척을 만나,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접하면서도 지루함보다는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첫 번째 '탄생'에서는 주인공 '데이지 굿윌'이라는 여성의 탄생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머시 스톤이 채석장에 일을 하러 나간 남편 카일러 굿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러운 출산을 맞이해 죽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태어나서 이웃집 여성인 클래런틴의 손에 키워진다. 후에 그의 아들 바커와 두 번째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장은 다섯 번째 챕터인 '사랑'이다. 여기서는 데이지 굿윌이 신혼여행에서 남편이 사고사로 죽은 뒤 혼자 생활하다가 캐나다로 여행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여행 도중에 바커 플랫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바커는 오래전 고인이 된 자신을 키워준 클래런틴 아주머니의 아들로서, 클래런틴과 함께 자신을 키우다시피한 20살 많은 노총각이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둘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세밀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되고, 결국 이 만난으로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결국 데이지는 바커와의 결혼으로 세 자녀를 낳고, 많은 손자와 손녀를 낳은 후 평범하게 노년을 맡고, 병들고,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저자는 데이지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녀의 인생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어쩌면 불우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한 여자의 일생을 저자는 위트스러운 표현으로 매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는 자신의 인생의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았던 강인한 여자인 데이지 굿윌의 삶은 주위의 증언이나 편지 등으로,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다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남미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란 소설이 많이 떠올랐다. 자신의 할머니를 모델로 해서 칠레의 굴곡진 역사와 한 여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룬 소설이었다. 이런 가문 소설이나, 인생 소설을 접할 때면 인생을 넒은 시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안달하고 있는 모든 문제도 인생의 거대한 물줄기처럼 순간의 단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내 부모에서부터 흘러와서, 다시 자녀에게로 흘러갈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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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146
척 드리스켈 지음, 이효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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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대한 미스터리는 아직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그가 단기간에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인해 히틀러가 초능력자라든지, 히틀러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소련이나 미국과 거래 후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다든지, UFO가 히틀러가 남긴 과학기술이라는 든지, 심지어는 히틀러가 여자였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히틀러에 대한 설들은 난무하다. 그만큼 히틀러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스터리 한 인물일 것이다.

히틀러의 자녀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애인으로 알려진 에바 브라운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혹자들은 히틀러에게 자녀가 있었고, 그가 자살할 때 함께 죽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어떤 프로에서 히틀러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영국인 남자에 대한 방송을 보기도 했다. 히틀러가 젊은 시절에 영국인 여인을 사랑했고, 그가 영국에서 히틀러의 아들을 낳았으며, 자신이 그 아들이라는 주장한다. 히틀러는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그중에서 히틀러의 자녀를 낳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런데 히틀러가 만약 하녀와 관계를 맺어서 딸을 낳았다면, 그 하녀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유대인인 것을 몰랐다면, 이 하녀가 자신의 자신의 자녀를 살리기 위해 히틀러에게서 숨었다면, 그리고 그녀가 역사 속에 숨어서 자신의 자녀를 길렀다면, 마지막으로 이 여성이 이 모든 과정을 자신의 일기에 남겼다면...

이 소설은 바로 이런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게이트 하트라인'은 수많은 난관을 뚫고 선택된 미국 특전대 요원이었다. 그러나 전투 중에서 판단 미스로 어린아이들을 살해하게 되고, 그 죄책감으로 특수부대를 나와 지금은 독일에서 여러 단체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독일 정보부의 '장'이라는 인물이 관공서 건물에서 도청기 설치를 의뢰하고, 게이지는 낡은 관공서 건물에 도청기를 설치하다가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한다. 게이지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해 이 일기장을 가지고 나오지만, 읽을수록 이 일기장이 역사의 대단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게이지는 이 일기장의 정체를 알기 위해 애인인 모니카와 함께 프랑스에 고서 수집가인 모니카의 사촌 오빠를 찾아간다. 이때 모니카의 사촌 오빠에게서 빚을 받아내던 프랑스의 폭력조직에서 이 일기장의 가치를 알게 되고, 게이지와 충돌이 발생된다. 이 충돌에서 폭력조직 중 한 명이 죽게 되고, 이들은 복수와 함께 일기장을 노리는 과정에서 모니카를 살해한다. 결국 게이지는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혼자 폭력조직과 맞서 모니카의 복수를 시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로 더 알려진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 [본 아이덴티티]가 연상되기도 했다. 기억을 잃은 첩보원이 여성의 도움으로 자신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초반에는 게이지가 모니카의 도움으로 과거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 비슷하다.

또 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스티븐 시걸'의 영화들도 연상된다. 평범한 요리사였던 전직 특수부대 요원이 테러리스트들의 위협 속에서 숨겨왔던 전투 본능이 살아나는 과정들이 이 소설과 닮아 있다.

이 소설은 단순히 액션 부분뿐만 아니라, 인물 묘사와 전투 과정의 묘사도 뛰어나다. 군 출신의 저자답게 게이지가 특수부대원이 되는 훈련과정을 매우 자세히 묘사하고 있고, 과거로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상태의 묘사 등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프랑스 폭력조직의; 보스인 '니키'라는 인물을 매우 잔인하고 파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왠지 '덴젤 워싱턴'을 연상시키는 게이지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오히려 게이지를 돕는 '엘리스 대위'라는 인물도 매우 매력적이다.

현재 게이지 '하트라인 시리즈'를 네 권이 출간되어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황금가지에서 번역되어 나올지 기대가 크다. 예전에 팔코 시리즈처럼 중간에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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