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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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사촌 동생이 결혼식에 참여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척들의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번은 결혼식장이 집 바로 옆이어서 아무런 핑계도 대지 못하고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거의 10년 만에 만난 친척도 있었다. 결혼식을 하는 사촌 여동생 역시 10년 만에 만나 신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결혼식 후 모두들 다시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10년간의 공백이 매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안다는 것은 이렇게 인생의 한순간의 만남을 통해, 비어져 있던 공간들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공간들이 채워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내 인생도 타인에게는 몇 번의 중요한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해 나머지 공간이 채워지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는 것처럼, 순간의 단면들이 연결된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톤 다이어리]라는 소설은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캐럴 실즈'는 잘 알려진 캐나다의 대표적인 여성작가이고, 이 소설은 1955년 퓰리처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다. 다만 한 여성의 인생의 전반을 다룬다는 거대한 스토리에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선뜻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조금은 지루하다는 서평들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 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자 지루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 탓이었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일생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루고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몇 가지 순간들만을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것이 연결되는 식이다. 한 챕터가 하나의 단편소설이 될 수 있을 만큼 완성된 이야기 형식을 가지며, 그것들이 연결된 '데이지 굿윌'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완성한다. 그래서 각 챕터마다 탄생, 어린 시절, 결혼, 사랑, 어머니가 되다. 일, 슬픔, 평온, 노쇠, 죽음같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개인적인 야기처럼 10년마다 중요한 친척을 만나,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접하면서도 지루함보다는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첫 번째 '탄생'에서는 주인공 '데이지 굿윌'이라는 여성의 탄생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머시 스톤이 채석장에 일을 하러 나간 남편 카일러 굿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러운 출산을 맞이해 죽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태어나서 이웃집 여성인 클래런틴의 손에 키워진다. 후에 그의 아들 바커와 두 번째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장은 다섯 번째 챕터인 '사랑'이다. 여기서는 데이지 굿윌이 신혼여행에서 남편이 사고사로 죽은 뒤 혼자 생활하다가 캐나다로 여행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여행 도중에 바커 플랫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바커는 오래전 고인이 된 자신을 키워준 클래런틴 아주머니의 아들로서, 클래런틴과 함께 자신을 키우다시피한 20살 많은 노총각이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둘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세밀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되고, 결국 이 만난으로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결국 데이지는 바커와의 결혼으로 세 자녀를 낳고, 많은 손자와 손녀를 낳은 후 평범하게 노년을 맡고, 병들고,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저자는 데이지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녀의 인생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어쩌면 불우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한 여자의 일생을 저자는 위트스러운 표현으로 매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는 자신의 인생의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았던 강인한 여자인 데이지 굿윌의 삶은 주위의 증언이나 편지 등으로,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다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남미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란 소설이 많이 떠올랐다. 자신의 할머니를 모델로 해서 칠레의 굴곡진 역사와 한 여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룬 소설이었다. 이런 가문 소설이나, 인생 소설을 접할 때면 인생을 넒은 시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안달하고 있는 모든 문제도 인생의 거대한 물줄기처럼 순간의 단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내 부모에서부터 흘러와서, 다시 자녀에게로 흘러갈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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