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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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오래전에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콘스탄틴]이 떠올랐다. 영화는 타락한 세상에는 천사와 악마가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악마를 제거한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에서 콘스탄틴의 진짜 적은 악마가 아니라 천사임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설국열차]로 더 잘 알려진 틸다 스윈튼이 가브리엘 천사 역으로 등장에 나중에 날개가 잘린 채로 타락한 세상으로 떨어진다.

 

 

 

[천사들의 탐정]은 영화 [콘스탄틴]처럼 판타지적 요소는 없다. 하지만 작가 '하라료'가 그리고 있는 세상은 영화에서처럼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타락한 세상에서 천사는 더 이상 천사의 모습이 아니라, 날개가 잘린 채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화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라료'는 스릴러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작가이다. 특히 그가 탄생시킨 중년의 탐정 '사와자키'는 여러 편의 시리즈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까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이번 [천사들의 탐정]을 통해 처음 '하라료'와 그가 탄생시킨 '사와자키'라는 탐정을 만났다.

[천사들의 탐정]은 작가가 '사와자키'라는 탐정을 등장시키는 7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단편소설이라고 하기는 한 편의 분량이 조금 많은 편이다. 이 소설의 공통점은 탐정 '사와자키'가 주인공이라는 것과 함께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이 사건의 의뢰인이나 대상자로 나온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순수한 천사의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비친다.

첫 소설 [소년이 본 남자]에서는 '에노모토 다이스케'라는 소년은 우연히 살인 의뢰를 현장을 목격하고 자신의 저금통에서 5만 엔을 꺼내서 사와자키에게 여자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왜 저금통까지 깨서 사건을 의뢰하냐고 묻는 사 와 자키에게 아이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순수한 대답을 한다.

"그야...... 사람 생명은 돈보다 중요하잖아요?"

그러나 사건을 수사할수록 사와자키는 그 아이가 천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수상 중에 그 아이의 이름도 가짜이고, 그가 의뢰한 사건의 본질도 순수한 동정심은 아니었음이 밝혀낸다.

두 번째 소설 [자식을 잃은 남자]에서는 유명한 음악가의 숨겨진 아들이 아버지에게 나타나 돈을 요구한다. 아버지가 거절하자, 아버지의 어린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아버지는 마음을 바꾸어 아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과연 이 아들은 악마일까, 천사일까.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타락한 세상에서 작가가 어떤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건물 뒤 주차장 쪽 도로로 향했다. 오가는 차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위에 인적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아버지를 대신해 흰 장미 한 송이를 길에 던졌다. 그때 길 건너편 보도 끄트머리에 놓인 옅은 색의 예쁜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오빠가 어린 여동생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꽃다발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P108)


세 번째 소설 [240호실의 남자]에서는 천사들이 사는 세상이 더 흉악하게 묘사된다. 처음 소설에 등장하는 여고생의 이미지는 아빠의 외도를 염려하는 순수한 딸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건을 파헤칠수록 등장하는 추잡함과 그 추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딸이 택한 끔찍한 선택이 드러난다.

네 번째 소설 [이니셜이 M인 남자]에서는 한 남자 아이돌을 짝사랑한 여자 아이돌이 자살을 하기 전 사와자키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는 그것을 단지 순수한 여자아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한다.

"아가씨 나이가 열여섯? 열일곱?"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어린 소녀들은 늘 진짜라고 하지. 만화체로 쓰는 연애편지도 진짜고, 고시엔 야구 대회 응원에서 흘리는 눈물도 진짜고, 공부하라는 소리만 하는 어머니를 죽이겠다는 생각도 지자라고 하지. 자살하겠다는 건 대체 어떤 진짜인가?"(P165)


그러나 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여자아이는 만화체로 연애편지를 쓰고, 고시엔 야구 대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마지막 소설인 [선택받은 남자]에서는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중학생을 찾아 도시의 뒷골목을 헤매는 사와자키와 선거에 출마한 청소년 선도위원 '구사나기'의 모습이 묘사된다. 소설은 내내 '구사나기'가 과연 진짜 천사일까? 아니면 천사의 모습을 가장한 악마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말 구사나기는 가출한 청소년의 안부가 걱정되어서 일까? 아니면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일까? 타락한 세상에 너무나 익숙한 나는 후자를 염두에 두고 읽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사외자키'라는 중년의 탐정을 아주 매력적으로 그린다. 그는 세상의 냉혹함을 너무나 잘 아는 듯, 그런 세상을 무심히 바라본다. 아무리 타락한 세상의 모습도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친다. 그러다가도 그 타락한 세상 속에서 병든 어린 천사를 보면, 마치 길 잃은 짐승이라도 보듯이 다가가 보듬어 준다.

이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1980년대와 90년대 일본 사회가 배경이다. 고도성장의 그들 속에 버려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타락해 가는 세상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2010년대의 한국, 지금 이 세상에서 천사들은 또한 어떤 모습으로 타락해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도 이런 천사들을 지켜나가는 탐정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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