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치열하게 독서를 한 후 한참이 지나서 그 책을 열어 볼 때가 있다. 당시에 감동을 받았던 구절들이 현광 팬으로 그어져 있기도 하고, 저자의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페이지 여백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내 반대 논리들이 적혀져 있기도 하다. 한때 치열하게 정독했던 책들은 펼쳐지는 대로 열어보며, 당시의 감정과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책장을 넘기고 있다 보면, 어쩌면 내 인생도 이렇게 바라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들, 이것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감정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낙담의 시간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페이지가 되어서 그것들을 관조하며 넘기고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집을 읽다 보면 이런 감정을 미리 맛보는 느낌이다. 그레이스 페일리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그녀가 살았던 미국에서도 겨우 3편의 단편소설집을 출간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러시아 출신 이민자의 출신의 유대인이자 여성의 시각으로서 미국적인 삶과 인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 소설을 먼저 번역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녀의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이야기와 문체에는 한번 빠져들면 이제 그것 없이는 못 견딜 것 같은 신비로운 중독성이 있다. 거칠면서도 유려하고, 무뚝뚝하면서 친절하고, 전투적이면서도 인정이 넘치고, 즉물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서민적이면서도 고답적이며, 영문을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고, 남자 따윈 알 바 아니라면서도 매우 밝히는, 그래서 어디를 들춰봐도 이율배반적이고 까다로운 그 문체가 오히려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문체는 그녀의 명백한 특징이자 서명이며 흉내 내려 해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P 7)"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꼈던 중독성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졌었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소설을 [소망]이라는 아주 짧은 단편을 읽다 보면, 마치 메인 요리의 애피타이저를 맛보듯 그녀의 소설의 맛을 조금 알게 된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소설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혼한 한 여성이 연체된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혼한 남편을 만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소소한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독백처럼 언급한다. 남자라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까. 아니, 그녀 자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까. 그럼에도 하루키의 말처럼 모르면서도 알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마치 인생의 어느 순간인가 한 번은 느껴봤을 감정이다.
"그렇다. 사실 나는 뭘 해달라거나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도 뭔가 소망하는 건 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두 주 만에 책을 반납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학교 제도를 바꾸고 사랑하는 이 도심의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예산위원회에서 연설하는 유력한 시민이 되고 싶다. 내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전쟁이 끝나게 해주겠다고 오래전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전 남편이든 아니면 지금 사는 남편이든 죽을 때까지 한 남자와 부부로 살고 싶었다. 두 사람 모두 평생을 함께 할만한 됨됨이를 지녔으며, 지나고 보니 사실 한평생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짧은 한평생 동안 한 남자의 됨됨이를 바닥까지 알 수도 없고, 바위 속에 감춰진 그 사람의 여러 가지 이류를 속속들이 알 수도 없다. 바로 오늘 아침 나는 창밖으로 한동안 길거리를 바라보다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기 2년 전, 시 당국에서 심어놓은 작고 멋진 플라타너스들이 그날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P 19)"
이 소설집에는 유독 '페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페이스라는 이름은 그녀의 3편의 단편소설집에 단골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으로, 그녀의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대부분 페이스라는 주인공은 그녀처럼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로 나온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관조하며,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나무에서 쉬는 페이스]라는 소설이 이런 페이스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중요한 대화가 아주 간절했던 수간, 남자의 모든 세계를 코로 들이마시며 냄새로 느끼고 싶었던 순간, 나의 다정한 언어를 그의 시들지 않는 육체적 사랑으로 바꾸어 표현할 줄 아는, 적어도 한 명의 똑똑한 동반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 순간, 나는 별도리 없이 아이들 가득한 동네 공원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P 109)"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뭐가 달라질까]라는 소설이었다. 아마 가장 그레이스 페일리 다운 소설이라고 하면 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한때 좋았던 시절을 누렸던 여자가 독백을 하듯 시작한다.
"나를 만나면 분명 반가울 겁니다. 나는 젊음이 뭔지 제대로 알던 여자였습니다. 그래요, 행복했던 시절 나는 여느 사람과 달랐습니다. 내게는 그 시간은 한순간의 꿈같은 게 아니었어요. - 중략 - 그럼에도 그 젊은 나날을 잃어버리고 나니, 오랜 기간 희망 없이 향수병을 앓는 기분입니다. 그 시절은 내게 영영 떠나온 고향과 같으며, 그 후로 커다란 기쁨 속에 살기는 해도 낯선 도시에 있는 느낌이었지요. 그래요, 알겠어요. 안녕, 젊은 날들. (P 25)"
소설에서는 돌리라는 여성은 낙후된 도시에서 잭이라는 남편과 존이라는 아들과 산다. 존은 애가 딸린 지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려고 하고, 돌리는 자신을 자해하면서까지 반대를 한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갈등이 생기고, 남편은 또 다른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간다.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돌리는 존과 결혼하기 전의 앤서니와 뜨거웠던 시절을 회상한다. 결국 잭은 마거릿이라는 여자와 결혼하지만, 결혼하고서도 계속 지니를 찾아간다. 그렇게 돌리의 삶의 단편들이 순간순간 지나가고, 이제 그녀는 나이가 들어 그 시절들을 다시 회상한다.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피우고 한시라도 빨리하려고 서둘렀던 그 모든 게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존은 평생 도안 지니를 찾아가는 길에 어째서 마거릿에게 예의를 지키는 전화를 걸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잭 말인데요, 그는 진짜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내 편이었을까요, 아니면 반대편이었을까요? 그리고 앤서니. 내가 몇 번이고 그에게 굴복하고 또 굴복했을 때 대체 앤서니는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P 47)"
사실 이 소설집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한편 읽고, 또 다른 편으로 바로 넘어가기엔 무언가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또 한편을 읽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선뜻 와닿지 않아 다시 읽기도 했다. 조금은 우울하기도 하고, 조금은 위트 있기도 한 그녀의 문체를 읽으며 삶의 단면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삶은 단면 단면들은 격렬하고, 치열하고, 어떤 땐 우울하기도 하지만, 결국 지나가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노년에 인생이라는 책을 열어보았을 때 미소 짓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래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