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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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세상이 온통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동네 친구들과 공터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부모님은 항상 건강하게 내 옆에서 나를 돌봐주실 것 같았다. 친구들은 항상 옆에 있고, 그들이 절대로 나를 배반하거나 뒤통수를 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나오는 끔찍한 불행들과 사고들은 드라마나 뉴스에서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세상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부모님도 병이 들거나 세상을 떠날 수 있고, 가정에도 아픔과 사고들이 생길 수 있고,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내게 끔찍한 일을 저질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어릴 적 세상이 조금씩 금이 가고 사라지면서, 어른의 세상이 탄생된다. 그 어린 시절의 세상과 어른 세상 어디엔가 세상의 변환점에는 어린 시절의 악몽인 초크맨의 이미지가 있다.

[초크맨]이란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표지에 그려진 여자 아이의 그림으로 인해 끔직한 상상을 하게 된다.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그려진 여자 아이의 그림은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뒤에 사이코패스와 같은 연쇄살인마 등이 존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크맨은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잔인한 스릴러 이야기는 아니다. 어찌보면 성장소설과 같은 이야기이고, 끔찍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아련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소설은 어린 시절 '에디 먼스터'라고 불리던 주인공 에디가 40대의 어른이 된 2016년에서 12살이던 1986년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에디는 '뚱뚱이 게브'라고 불리는 단짝 친구와 '호프', 그리고 조금은 불량하고 야비해서 '메탈 미키'라고 불리는 세 친구들과 함께 다닌다. 또 한 명이 있다. 마을 목사의 딸이자, 시크하면서도 에디의 마음의 한 시절을 차지한 '니키'가 있다. 에디는 이들과 어울리며 어디서나 행복할 것 같았다.

"재미있게 놀다 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태양은 밝게 빛났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티셔츠를 입고 컨버스 운동화를 신었다. 쿵쿵거리는 축제장의 음악 소리가 벌써부터 희미하게 들렸고 햄버거와 솜사탕 냄새가 나는 듯했다. 오늘은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P 17)"

그렇게 완벽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던 놀이동산에서 그는 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희망찬 세상에 금을 내는 균열을 맞닥드린다. 에디는 잃은 지갑을 찾으러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다. 그러다가 우연히 댄싱머신 앞의 한 아름다운 금발 머리의 여자를 발견한다. 곧 댄싱머신은 고장을 나고, 돌아가던 회전판이 날아들면서 아름다운 금발의 여자를 얼굴과 다리를 절단한다. 다행히 학교 영어 선생이던 핼로런씨가 그녀를 구조하고, 그녀는 다리를 건진다. 얼굴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 사고가 에디의 마음 깊숙한 곳에 영향을 미친다. 그 후로부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친구들과 놀던 분필 놀이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그 그림 속에서 사건을 예고하는 초크맨이 등장한다. 결국에는 사지가 절단된 여자아이의 그림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여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놀이동산의 댄싱머신 사고로 겨우 목숨을 구한 금발의 여자였다. 당시 사건은 죽은 여자를 사랑했던 핼로런씨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핼로런은 자살을 하고, 죽은 여자가 끼던 반지가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에디는 범인이 핼로런 씨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반지를 가져다 둔 사람이 바로 에디 자신이기 때문이다. 에디는 과연 왜 그 반지를 핼로런 씨의 책상 위에 가져다 두어야 했을까. 그리고 어린 시절 그의 집 앞에 등장했던 초크맨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설은 잘 구성된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가진 스릴러 소설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문체로 에디의 어린 시절을 그리다가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초크맨의 정체를 이야기한다. 최근에 읽은 스릴러 중에서는 가장 문학성이 있는 스릴러이면서도, 완벽한 구성을 가진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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