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에 EBS에서 방영한 [스페이스 레이스 (한국 방영 제목 : 우주전쟁)]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이 드라마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 탐사선을 보내기까지의 경쟁에 대한 드라마였는데, 드라마의 시작 부분은 폰 브라운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로켓 부분의 개발은 주로 폰 브라운이 담당했고, 원자폭탄의 부분은 하이젠베르크가 담당했다. 미국의 동료 과학자는 하이젠베르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감시가 치밀한 하이젠베르크에게 치약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한다. 치약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쪽지의 내용은 오로지 "E=MC2"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었다. 이 쪽지를 본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개발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깨닫고 핵무기 개발을 일부러 지연시킨다는 내용이다. 이 장면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그들이 맞딱드렸던 공포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책을 읽으며 다시금 예전의 드라마 장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원자폭탄이 개발되는 과정을 마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주된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과 미국이 핵무기 개발을 경쟁하던 내용과 실제로 원자폭탄이 히로미와 나가사기에 떨어졌을 때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개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개발하고 충격을 받는 장면, 그리고 실제로 원자폭탄이 사용되었을 때 받은 충격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주로 과학 역사를 다룬 책들이 딱딱할 때가 많이 있는데, 이 책은 마치 대하드라마를 보듯이 원자폭탄의 개발과정의 흐름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 명의 과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이라면 단연 '오펜하이머'이다. 오펜하이머는 1943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에야 미국 핵무기 개발의 책임자인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책임자로 임명된다. 한때는 공산주의자라는 의심을 받아서 책임자로 임명되는데 어려움을 받았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고 책임자로 임명된다. 이후 그들은 독일과의 경쟁을 통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 같은 독일의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일부러 핵무기 개발을 지연시켰다고 말한다.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 독재 정권 하에서 독일의 핵물리학자들이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원자폭탄 제조를 막으려고 시도한 반면, 두려워할 만한 강요를 전혀 받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의 동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신무기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인다. (P 183)"

반면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미국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개발을 합리화시킨다.

"만약 우리가 이 무기를 개발해 공개 실험을 통해 그 끔찍한 본질을 세상에 보여주지 않는다면, 조만간 다른 부도덕한 국가가 비밀리에 그것을 만들려고 시도할 것이다. 미래의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인류가 적어도 그 상황을 제대로 아는 게 훨씬 낫다. (P 287)"

또 처음에는 원자력의 개발을 나름 평화적 목적에만 한정시키겠다는 의도도 보인다.

"인류는 우리가 발견하고 개발한 것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장래의 이것을 파괴적 목적이 아니라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 (P 287)"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미국의 과학자들은 정말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생각을 가졌을까? 아니면 단순히 자신들의 직면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힘 앞에 자신들의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런 말들을 했을까? 그들의 생각이 순진했다는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기 원자폭탄의 투하 이후에 발견되었다. 이 책에는 원자폭탄 투하 이후 과학자들이 느꼈던 죄책감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느꼈던 정신적인 혼란은 언급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은 아인슈타인과 프랑크, 실라르드, 라비노비치처럼 원자폭탄 사용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암울한 날이었다. 하지만 메사 위에 있던 사람들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 어쨌든 그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밤낮을 잊고 열심히 일했다. 이제 놀라운 소식이 들려온 이 최초의 순간에 이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처럼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무방비 상태의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고통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한 일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같은 개인의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P 365)"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 경쟁 과정, 더 나아가 소련과의 수소폭탄의 경쟁 과정은 더 충격적이다. 1952년에 실시된 태평양의 한 섬에서 실시된 수소폭탄의 실험의 끔찍함이 묘사되어 있다.

"태평양에 길이 1.6Km, 깊이 53m의 폭발 구덩이가 생겼다. 최초의 슈퍼에서 나온 불덩어리, 즉 지름이 5.6Kmsk 되는 돔 모양의 화염이 사라지고, 거대한 버섯 모양의 연기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자마자, 과학자들은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엘루겔라브 섬이 통째로 사라지란 것이다. TNT 3메가톤 (300만 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된 그 폭발은 최초의 원자폭탄과 마찬가지로 모든 예상과 심지어 매니액의 계산마저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P 488)"

저자는 원자폭탄에 이어 수소폭탄의 개발로 태양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지구에서 재현했다고 말한다. 그 후 소련 역시 수소폭탄을 개발하게 되고, 세계는 핵 전쟁의 위기에 빠져든다.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관심이 있는 부분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책에서 주장하는 것과 다른 주장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하이젠베르크의 양심에 가책을 느껴 원자폭탄 개발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온 자료나 하이젠베르크와 대화를 나눈 스승인 유대인 학자인 보어 등의 증언을 통해 하이젠베르크는 최선을 다해 원자폭탄을 개발했고, 단지 미국보다 실력이 안 되어서 늦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어느 사실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히틀러가 죽기 전에 하이젠베르크가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오펜하이머가 V2 로켓을 개발했다면, 어쩌면 세계 최초의 피폭 국가는 일본이 아닌 미국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니 끔찍하기까지 했다. 인류가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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