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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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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8



    우리 가족의 한 해는 동생의 생일이 지나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분위기다. 선물로 받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더니 책 제목 두 개를 적어줬다. 한 권은 소설이었다. 코니 윌리스의 SF소설인 『화재감시원』. 평이 좋아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한 권은 코델리아 파인의 『젠더, 만들어진 성』이었다. ‘젠더와 성이라고?’ 둘이 다르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그런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트위터에서 성차별/성폭력 문제와 논쟁을 리트윗하고, 여성신문과 같은 언론의 기사를 읽는다. 페미니즘 양서들도 모으고 있다. 서재에는 스무 권의 관련 책이 있고, 그 중 네 권은 픽션이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올 4월부터의 일이다.


    동생은 트위터에서 뭔가 흐름의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SNS를 하지 않던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몇 차례의 권유를 받아 트위터에 좀 익숙해지고 나서야 그 변화가 무엇인지 알았다. 뜨거운 말들이 오고 갔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이른바 ‘인증샷’들이 즐비했다. 공인과 유명 인사들, 혹은 기업과 단체들의 수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뜨거운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논리적이고 강인했다. 그동안의 편협한 독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분위기와 흐름. 화들짝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내가 갇혀 있던 곳에서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감옥의 이름은 ‘남성판타지’였다. 숟가락으로 탈출 통로를 만드는 영화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오빠는 어딜 가든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하는 남자가 됐으면 좋겠어.” 그 말의 뜻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페밍아웃’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나에게는 없다. 배가 나아가던 방향만 바꿨을 뿐이다. 앞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될는지는 하나도 모른다. 언젠가 말했지만 그야말로 헐벗고 초라해진 기분이다. 그렇다고 그런 책들을 읽으며 “나를 좀 보듬어주세요.”라고 조를 마음가짐은 아니다. 마음의 알맹이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그걸 세심하게 가꿔갈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는 늘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나는 질문하는 것에 익숙했다. 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대방 역시 나와 비슷한 질문 속에서 명확치 않은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명쾌함은 나의 미덕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단호한, 열렬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게 하는’ 선언은 늘 버거웠다. 살짝 발을 뒤로 빼고 되도록 가운데에 위치하려는 습관도 있었다. 어쩌다가 모호함의 탐구자가 되었는지를 소급해보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질문 던지는 놀이를 어렸을 적부터 즐겨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끓어오르고, 편을 드는 노력을 한다. 이것이 어떤 변화였는지를 설명하고 싶지만 결코 쉽진 않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원제 : We Should All Be Feminists)』는 선언이다. 제목부터가 당위를 주장한다. 4월부터 시작한 트위터, 그리고 5월의 비극. 나는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생각의 이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큰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봐도 놀랍다. 아니, 씁쓸하기까지 하다. 자신들을 싸잡아 일반화한다며 각종 학문을 근거로 들며 남성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주장을, 남자인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남성판타지 속의 시시콜콜한 농담들이 트위터의 뜨거운 물결에 찬물을 씌우려 들어왔다가 된통 ‘깨지고’ 나가는 광경도 매일 수 십 차례 봤다. 하루는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나라 남자들 수준이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어.” 아직도 저 밑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은 나의 이런 발언조차 ‘일반화’라며 비난하면서 나를 자신의 편에서 빼버릴 것이다. 물론 개의치 않는다. 내가 그쪽 편이 아니니까. 어제는 부산지하철의 ‘여성배려칸’ 시범도입을 두고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자꾸 배려해주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는 사진을 봤다. 뭘 그리도 많이 움켜쥐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동생과 종종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오빠가 된 것에 동생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동생이 밤늦게 들어올 때면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가야 마음이 편한 세상이다. 국가기관과 수사기관은 무엇이 ‘여성혐오’인지 전혀 모르는 (아마 판례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드는데) 세상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인간존엄성 개념은 적극적 노력과 깊은 관련이 있고, 그 때문에 기본역량 개념과도 가깝다. 기본역량은 계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마사 누스바움, 한상연 옮김,『역량의 창조』, 47쪽)라고 했다. 이것은 희망이다. 다시 한 번 치마만다의 책 제목을 생각해본다. 나는 당위를 담은 주장에서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레 캐내어봤다.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회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 결국 공감의 능력이 되는 그 노력이 하찮게 취급된다. 교육부를 발칵 뒤집어놓은 파렴치한 발언에 우리는 더 크게 분노하고 놀라야 했다. 치마만다는 말한다. “우리는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치마만다의 책, 21쪽) 사실 젠더뿐만 아니라 인권과 동물윤리에 이르는 우리 사회의 초보적 인식에 대해 무수히 말을 쏟아내고 싶다. (예컨대 이달 7일에 정부는 반려동물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는 ‘반려동물 산업 육성’책을 내놓았다가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발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과학기술에 관해서는 가장 빠른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우리는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치마만다의 책, 43쪽)이라는 핑계만 대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태도로 일관해오고 있다.


    문제는 그 ‘좋은 것’이라는 뭉뚱그린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이 포함하고 있는 영역이 죄다 남성판타지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거다. 오늘 트위터는 또 폭발했다. 한 외국 남성이 “한국 여자들은 예쁘니까 외모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과 싸우지 마세요.”라고 말했다가 폭격을 맞았다. 문제가 터진다. 논쟁이 시작된다. 자제가 촉구된다. 결국 그렇게 진화되면 지는 쪽은 늘 약자다. 하지만 5월의 비극 이후 트위터에서 여성들은 물러나지 않는다. 나 역시 참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여성상을 흠모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판타지였다. 치마만다는 분노의 긍정을 본다. 중립과 침묵은 기득을 지켜준다. 나는 적극적으로 편을 들 준비를 한다. 한숨을 쉬며 바라보게 되는 대상은, 4월부터 지금까지의 경험만 놓고 보자면 십중팔구도 아닌 ‘십중십’ 남자였다.


    젠더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며, 또한 대단히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젠더, 그건 족쇄다. 치마만다는 여성성이 강요되는 상황만 말하지 않는다. ‘단단한 남자’가 되어야만 하는 남성성 강요의 문화도 함께 말한다. 물론 그는 여자가 더 많이 타협해야 하는 분위기를 중점으로 말하지만, 우리는 그 지점에서 여성성, 혹은 남성성의 강요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성소수자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달 11일에 서울광장에서는 이른바 ‘퀴퍼(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트위터에서는 ‘#문명인이됩시다’라는 태그로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축제도 잘 끝났다. 각국 대사들이 와서 참가자와 시민들에게 좋은 말도 들려줬다. 그런데 길 반대편에서는 나라가 멸망할 징조라며 한복 입고 곡성(哭聲)하는 이들이 있었다.


    ‘젠더’라는 족쇄가 풀린다면 치마만다는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한 세상”(치마만다의 책, 28쪽)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공정함은 행복의 조건일 것이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질 수 있는 분위기가 공정함의 조건일 것이다. 사회는 억압받는 자들에게 용기를 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대체 그게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주 쉽게 눌러버리며, 위축된 이들이 발언을 시작하면 중립을 지키는 자세로 침묵하라 타이른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기 전, 나는 그 침묵의 삶을 어머니에게 들었다. “나만 조용히 하면 친척들 와서도 행복하고 잘 웃고 가잖아.” 어머니는 단속받는 여자였다. 아무도 단속하지 않아도 스스로 단속하게 되는 사회. 그 긴 세월을 감옥 속에서 사신 것이었다. 교사이셨던 어머니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어딜 가든 나는 그걸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스스로를 ‘나’라고 부를 수 없는 삶을 사셨다. 여자가 더 많이 타협해야 한다. 새벽에 방에 들어오신 어머니가 이젠 잠이 올 것 같다며 지쳐 안방으로 가실 때까지 나는 왜 남자가 여자의 고통에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알았다기보다는 여태 몰랐던 나 자신이 무척 수치스러워졌다고 해야 적당하겠다.


    “우리 사회는 일정 연령에 다다른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을 심각한 개인적 실패로 여기도록 가르칩니다.”(치마만다의 책, 34쪽) 어머니는 그런 ‘실패’를 두려워하셨고, 대신 참는 삶을 사셨다. 지금은 그 후유증을 앓고 계신다. 그 새벽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된다. 잘 잤냐며 인사를 하고 동생을 보다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때가 있다. 되물림 되면 안 되는 어떤 족쇄 속에서 동생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꿈이 있고, 전문 기술도 있으며, 깨어 있는 20대의 한 여성이 위축되도록 단속 받는 사회의 거대한 힘에 언젠가 지쳐 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렵다. 계속 싸워나가야만 겨우겨우 행복해지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그래서 연대와 공감을 강조한다. 정희진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그걸 명확히 한다. 나는 늘 각오해야 한다. 동생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연대의 대상이 되어줘야 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나이가 어려서, 경험이 적어서, 체격이 크지 않아서 내가 받을 숱한 차별과 역경은 비루하다고 하겠다. 어쨌든 ‘남자’니까. ‘나’를 해체시키고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려는 일체의 압박에 어떻게든 저항하겠지만, 동생은 거기에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압박까지 이겨내야 한다. 치마만다가 ‘파란 마스카라’로 기억하는 친웨 아줌마 이야기는 한 여성이 그 압박에 굴하고 “무한한 아량의 바다”(치마만다의 책, 60쪽)와 같은 사람이 됐다는 슬픈 이야기다. 친웨 아줌마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치마만다는 “세상의 인정을 구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억지로 변형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치마만다의 책, 72쪽)고 다짐했다. 주체로 살고 싶다는 뜻이다.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주체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 해도 그랬다. 5월의 비극으로 우리는 여자의 속사정을 들어볼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를 맞이했었다. 아니, 그런 일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지만. 나는 많은 남자들이 귀를 열고 그 ‘단단함’의 이미지를 스스로 깬 다음 공감할 준비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하다. 젠더 문제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불편하다.”이다. 배운 사람 티를 내는 이들은 진화생물학을 근거로 반박하고, 계급 문제를 들먹이며 남자들도 힘들다고 호소(트위터의 표현대로라면 ‘징징거리는’)하기도 하며, 여성종속은 오래된 문화라며 반대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는 이들도 있다.


    나는 인간을 믿는 편이다.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하고 싶다. 아마 치마만다도 그런 마음으로 책을 썼을 것이다. 아니, 내가 잠시 기만했다. 치마만다와 같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이 인간을 긍정하게 된 것이라 해야 옳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 되찾아야 합니다.”(치마만다의 책, 51쪽) 단어는 ‘페미니스트’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희망의 단어다. 우리 사회는 이 단어를 ‘골수’, ‘담배’, ‘꼴통’, ‘XX년’과 같은 미개하기 그지없는 표현으로 매도하고 왜곡해왔다. 대상이 여성이니 오죽 신났을까. 그런데 치마만다는 그 단어를 되찾자고 한다. 원래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어딘가 그 단어가 잠들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이 이 낡은 단어의 겉면을 씻어줬고, 동생은 그걸 들여다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그 단어는 읽거나 보는 게 아니라, 듣고 느끼는 것이었다. 신비하리만치 슬펐다. 내가 그걸 모두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남자니까. 하지만 남자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진심을 다해 끝까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52쪽) 부디 많은 이들이 이 말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번역의 수고를 해준 김명남은 “21세기 현재 우리가 꼭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다룬”(치마만다의 책, 91쪽) 책이라 소개했다. 나는 ‘주로 잡담만 한다’는 그의 트위터에서 (물론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지만) “생각이 바뀐다는 것, 바뀔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이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치마만다의 책 제목 중 ‘should’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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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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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6년 3월 13일 일요일





기초와 근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기단이 부실해도 고층을 올릴 수 있는, 그런 불가능의 공법은 인간 세계에 없다. 그래서 대가들은 글을 쓰고, 세상은 우리 독자들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권한다. 카렌 암스트롱의 말이 옳다면, (이는 그녀가 자신의 저서 『축의 시대』에서 한 주장인데) 위대한 가치의 대부분은 이미 나와 있다. 쏜살같은 21세기를 사는 ‘나’라는 30대 신참이 철학과 문학, 미술 등을 곁에 두고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이유는 그거다. 나를 고리타분하다 말해도, 그런 표현이 싫진 않다. 놓치지 않으려고 읽는다. 알지 못하면 실천도 못한다. 그런 생각으로 산다. 역사와 사상, 그것들을 담은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매체와 대부분의 사람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나를 못 믿는다. 기초와 근본이 덜 되었으므로. 그래서 기초와 근본은 낯설다. 결코 적응하지 못하겠지만, 낯선 것을 피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읽고 실패하고 쓴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치겠지만, 이게 나의 실존에 대한 접근법이다. 거울을 보면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반사의 상(像)임을 거부하는, 또 다른 내가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생각하는 나와 움직이거나 실천하는 나는 같지 않다. 과연 의지박약의 문제일 뿐일까? 그렇게나 약해빠진 사람일까? 불일치의 불꽃이 수없이 이는 이 세상은? 한 철학교수와 모교 근처의 한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도 그거였다. 거울 속 또 다른 나를 볼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 같은 것, 그걸 딱히 종교적으로 해석한 건 아니지만, 여하튼 그런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에리히 프롬이 1956년 세상에 내놓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을 추천해줬고, 나는 읽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나고 나서야 거울 속의 나를 노려보며 첫 복기라는 걸 해본다.



*   *   *



    위대한 운동선수들은 한 목소리로 기초를 강조한다. 그녀/그들은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기초를 다듬는 일에 썼다. 현 NBA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스테픈 커리가 화려한 드리블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어렸을 때부터 양손으로 동시에 두 개의 공을 튕기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보는 우리들이야 그 모습에 눈멀지만… 어른들은 모든 일이 그렇다고 내게 가르쳐줬다. 기초의 유무로 결판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기술에 한한 진리가 아니다. 인간이 수호해야 하는 고귀한 정신과 가치도 우리에게는 기초다. 실존의 난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니, 정신과 가치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혹은 지녀야 하는 (이런 비유가 적합하다면) 최고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기초가 안 된 사람들이 벌여놓은 일들이 어제도 기사에 실렸다. ‘원영이 사건’으로 기가 찬 저녁에, 3개월도 안 된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20대 초반 부부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판결 따윈 궁금하지도 않다. 기사를 읽어보니, 원치 않은 아이였다고 한다. 새벽 늦게 퇴근해 집에 들어왔는데 딸이 울어 짜증이 나 바닥에 던지고 할퀴고 꼬집었다고 한다. 변명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건 인간을, 상대를, 생명을 하나의 도구로 절하해버린 사건이다. 저 어린 부부에게 <아이>라는 것은 그 단어의 기초와 근본을 잃어버린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생명임을 인정하여 적어도 연민이라도 했더라면, 저 부부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줄지어 보도되는 세상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이 인간 실존 문제를 해결할 최상의 답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본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개인으로서든 인류로서든 결정되어 있는, 본능처럼 결정되어 있는 상황으로부터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쫓겨”(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사랑의 기술』, 24쪽) ‘나’와 분리되는, 실존적인 불안을 느끼는 존재다. 이러한 불안에는 죄책감과 수치심이 함께 한다.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마다 내게 엄습했던 죄책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에리히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성기노출의 수치심이 아닌 성(性) 분리의 자각을 의미한다고 봤다. 분리된 인간은 고독의 감옥에 갇힌다. 결합의 방법은 오직 사랑이지만 쉽게 달성하지 못하므로, 이따금 광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모든 이들이 이런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원초적 결합의 상실인 분리를 느끼는 이들은 대개 비(非)유아이다. 또한 에리히가 보기에 분리 극복의 해답은 제한되어 있다. 일단 그는 여러 문화권에서 제시된 해답들을 하나씩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합일(合一)이다. 말 그대로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외부의 어떤 도움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취적 합일과 집단과의 합일이 있다.


    전자는 영화 ≪향수(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에 묘사된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르누이가 만든 ‘절대 향수’는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 즉 그르누이가 처형되는 장면을 보려고 모여들었던 군중을 나체로 만들고 서로 사랑을 만끽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르누이가 느꼈을 고독이란!) 이 합일은 종종 난폭하기도 하며, 에리히가 ‘몸+정신’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퍼스낼리티>라는 것의 전체를 사용한다. 집단과의 합일은 전자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주로 ‘의례’와 ‘종교’, 혹은 ‘정부’라는 공식제도를 통해 개인이 군중과 합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민족주의, 전체주의는 물론이고, 민주주의도 여기에 포함된다. 공감 누르기, 콘서트 예매, 붉은악마, SNS, 정당활동 참여, 보신각 타종 행사… 그런 의미에서 사실 우리가 ‘개인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합일 속에서 차이만 추구하는 것일지도.


    후자의 경우는 평등과 전체를 사상적 개념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잘 모르고 말하는 이 개념들은 두 가지 함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차이의 소멸이다. 이건 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다.”라는 말은 “당신도 나랑 똑같이 해야 한다.”라는 명령으로 비화될 여지가 많다. 두 번째 함정은 이를 통한 인간 개체의 비개성화다. 전체 안에 개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개인보다 전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비판의 여지가 있음에도 매력적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들으면 분리의 불안과 죄책감이 조금은 씻겨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정체 모를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맹목적일 수 있다.


    다른 두 가지 방법에는 ‘노동+오락’, 그리고 창조적 활동이 있다. 특히 에리히는 노동과 오락에 있어 그것의 상투성을 비판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은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無)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에리히의 책, 34쪽)


    그렇다면 대체 분리의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즉 우리의 실존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건 에리히 프롬에게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에리히의 책, 38쪽)이다. 역설이다. 하지만 이런 성숙한 사랑은 ‘공서적 합일’이라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형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공서(共棲)는 생물학 용어로 symbiosis, 즉 공생(共生)과 같다. A와 B가 서로를 강하게 결합시키는 미숙한 형태의 사랑인데, 에리히는 이걸 수동적인 마조히즘(복종)과 능동적인 사디즘(가학)으로 나눠 설명한다. 이것에 비해 성숙한 사랑은 하나가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는 능동적인 활동이다. (여기서 에리히가 말한 ‘활동’은 스피노자가 말한 ‘능동적 감정’이다.) 그리고 이 활동은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에리히의 책, 42쪽)이다. 상대방에게 생명을 주는 것. 그렇게 타인을 고양시키는 것. 고양된 타인이 또 다른 타인에게 그렇게 하는 것. 에리히가 본 <참사랑>은 바로 이런 생산적 성격을 가진 사랑이었다.


    능동적 사랑에는 보호, 책임, 존경, 그리고 지식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고루 들어 있어 서로 의존한다. 모성애가 그 대표적인 예인 보호는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연민, 그리고 동정에서 비롯된다. 에리히는 여기서 구약의 요나(Jonah) 이야기를 꺼낸다. 요나는 정의파.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니네베(니느웨) 사람들이 너무나도 싫다. 하지만 ‘하느님’은 요나에게 명한다. 니네베 사람들에게 재앙을 경고하라고. 요나가 따랐을까? 그 길로 도망쳤다가 큰 물고기(혹은 고래)의 배 속에 갇혀버렸다. 다시 풀려난 그는 ‘하느님’에게 화를 냈다. 이런 정의가 또 어디 있습니까?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그러자 ‘하느님’은 뙤약볕의 요나를 위해 아주까리를 길러줬다가 다음 날 걷어내면서 (햇볕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요나에게) 이런 명언을 남긴다. 여기서 ‘십이만 명’이란 아주 많다는 뜻이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서 4장 10~11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本)


    <참사랑>, 즉 능동적 사랑에는 이런 동정과 “전적으로 자발적인 행동”(에리히의 책, 46쪽)인 책임, 그 책임을 지배나 소유 따위로 전락시키지 않는 강력한 힘인 존경, 그리고 그 존경의 조건인 지식이 들어 있다. 특히 지식은 인간의 비밀을 알려는 욕망과 부득이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소유의 힘으로 바뀔 수도 있다. 분해와 해체, 그 잔인함으로 한 인간에 대한 앎의 욕구가 상대를 파괴시키는 일도 비일비재 했었으니까. 에리히는 그걸 “절망적인 방법”(에리히의 책 49쪽)이라고 했다. <참사랑>에서 지식은 타인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한한다. 그리고 딱 그 선까지만 힘을 쓴다. 카렌 암스트롱도 『신을 위한 변론』에서 역설했었다. 신과의 합일에 있어 신에 대한 지식은 중요치 않다고. 타인과의 합일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참사랑>이란 “오직 순수한 생산적 활동에 의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내적 힘에 바탕을 둔 겸손을 터득한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련의 태도”(에리히의 책, 52쪽)이다. 처세를 위한 겸손을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에리히는 말미에서도 역설한다. “이성의 배후에 있는 정서적 태도는 겸손한 태도이다.”(에리히의 책, 162쪽)


    정신분석학의 선상에 있는 에리히가 보기에 한 인간이 발달시켜야 하는 사랑은 어머니에서 아버지, 그리고 그 둘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인간의 발달과도 같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은 한계가 없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에리히의 책, 60쪽)고 생각하는 자기본위성, 즉 egotism에 빠진다. 딱히 그 이외의 것을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받는 사랑이 아닌 ‘주는 사랑’을 통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랑만 배운다면 부족하다.


    에리히와 정신분석학자들은 보통 6세 이후로 보는데, 여기서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사상, 법률, 질서, 훈련, 모험 등 <세계>를 대변하는 존재다. 그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받을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조건적인 사랑도 올바른 형태가 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줘야 하는 사랑은 “성장하는 어린아이에게 능력에 대한 확신을 증대시켜야 하고 마침내 어린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위를 갖고 아버지의 권위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야”(에리히의 책, 66쪽)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성숙해진 아이가 나중에는 스스로 어머니가,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에게는 이렇게 두 사랑이 병존한다. 에리히에게 사랑은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에리히의 책, 69쪽)



*   *   *



    이어지는 글에서 에리히는 다섯 가지의 ‘사랑의 대상’을 정리한다. 배타성 없는 사랑이자 그가 ‘사랑의 바탕’이라 부른 형제애, 앞서 잠깐 언급한 모성애, “현존하는 사랑의 형태 중 가장 기만적인 것일지도 모른다.”(에리히의 책, 77쪽)고 한 성애, 이기심과는 정반대의 사랑인 자기애, 그리고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선(善)인 신에 대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 다섯 형태를 되짚어보면서 <참사랑>의 윤곽을 다시 그려준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 사이의 사랑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동등한 존재라 하더라도 항상 ‘동등’하지는 않다. 우리가 인간인 한, 우리에게는 항상 도움이 필요하다.”(에리히의 책, 71쪽)고 역설한 그에게 있어 가장 기초적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 나는 이걸 ‘차등의 극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은 차등적 존재다. 우생학의 관점에서 그것만은 옳다. 하지만 우리는 그 차등을 ‘동등’이라는 추상의 관념으로 극복할 수 있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그러나 그런 극복이 반드시 인위적인, 대단히 이질적인 제도나 개념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이 낯설긴 해도, 우리는 무력(無力)을 동정할 수 있는 인간미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모성애는 불평등의 긍정으로 비화될 여지가 다분하다. 아이를 종속시키는 자아도취적 성격도 있다. 하지만 보호와 책임에 대한 1단계의 모성애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더 나아간다.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은 ‘좋은 일’에 대한 감정을 아이에게 함양시켜주는 것, 에리히가 ‘Happiness’라고 말한 감정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머니가 ‘젖’을 줄 수 있으나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에리히의 책, 73쪽)고 비판했다. 물론 아버지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 건 아니다. 자신을 초월한 사랑을,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성애는 에리히가 많은 각도에서 비판해온 사랑이다. 특히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에리히의 책, 79쪽)고 했다. 피정복욕을 포함한 정복욕, 허영심, 파괴욕구 등이 이를 자극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일시적인 욕망이 식어버리면 속된 말로 ‘전철을 갈아타기도’ 하는 사랑이다. 또 분리는 느끼니까…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만나면서 성적 교섭을 갖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구한다. <참사랑>이라는 개념에서 한참을 벗어난 사랑이다.


    자기애는 이기심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받아온 모양이다. 에리히는 서양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지적한다. “만일 나의 이웃을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덕이라면, 나 역시 인간이므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어야 한다.”(에리히의 책, 83쪽) 앞서 살펴본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봐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나 자신에 대한 <참사랑>이라는 뜻에 한해서, 물론 에리히는 그런 의미로 ‘자기애’라는 단어를 썼다. 이기심은 공허, 좌절, (그리고 프로이트에 따르자면)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으며, 실상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에리히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신에 대한 사랑’을 분석한 이유는 <참사랑>의 모습을 <참종교>의 모습에 비유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토테미즘, 우상숭배, 신인동형 숭배의 단계를 무력한 애착인 어머니의 사랑에서 순종적 애착인 아버지의 사랑으로 변화하는 것과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종교의 한계를 도출한다. “신이 아버지인 한, 나는 어린아이다. 나는 전지전능에 대한 자폐적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중략) 내가 복종할 때 나를 좋아하고, 내가 찬미하면 기뻐하고, 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에리히의 책, 97쪽) 그러나 그는 종교, 특히 일신론 계열의 한계에서 오히려 성숙한 사랑을 씨앗을 발견했다.


    앞서 에리히는 성숙한 어머니와 성숙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어떤 <참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는지 역설했었다. 아이 스스로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한 명의 어머니와 한 명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사랑을 익히는 것. 이것이 바로 <참사랑>이었다. 그는 종교도 같다고 본다. 그래서 심리학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던 것이다. 어머니에서 아버지로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참종교>와 <참사랑>의 공통전제다. “그는 자기 자신 속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원리를 확립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에리히의 책, 108쪽)


    그리고 <참사랑>이 겸손의 태도로 발현되듯 <참종교>는 신에 대한 무지를 진리로 받아들여 겸손하다. 신에 대한 학문은 그녀/그들에게 별다른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녀/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신과의 합일. 카발라의 엔 소프(En sof), 혹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말한 ‘절대 무’이다. 에리히는 여기서 그 자신이 ‘인간개조’라고 표현한 명상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된 사상과 책을 접한 이들에게는 에리히가 어떠한 실천적 결론을 내릴지, 이미 저 앞에서부터 내다보였을 것이다. 현대인들의 ‘마음의 양서’가 된 법정 스님, 틱낫한 스님, 달라이 라마, 라마나 마하르쉬, 아니면 크리슈나무르티 등의 결론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실천의 진리.


    이에 실패한 현대사회. 에리히는 그걸 ‘현대서양사회’로 한정했지만 서양의 제도와 습관을 들여온 거의 모든 문화권이 그의 칼날을 면할 길은 없다. 자본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시장의 원리로 돌아간다. 단순한 구조다. 물품이 노동의 가치를 뛰어넘고, 집중화되었으며, “개인은 개성을 잃고 소모적인 기계의 톱니바퀴”(에리히의 책, 119쪽)로 산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은 집단적이며 표준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규격화를 통해 초월과 합일의 갈망을 못 느끼도록 한다. 자본주의가 외치는 건 이 말 뿐이다. “소비하라!” 굳이 마르크스를 이 자리에 소환할 필요도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피상에 그치며, 그렇게라도 잘 살라는 격언들이 넘친다. TV토크쇼에 나온 연애 상담사들이 하는 말들은 다 겉핥기다. “평생 동안 남남으로 남아 있고, 결코 ‘핵심적 관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서로 예의 바르게 대우하고 서로 더욱 호의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리히의 책, 122쪽)가 설파된다. 굳이 그런 패널과 성공한 저자들의 책을 언급하진 않겠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성적 쾌락의 소산이라고 보는, 기술적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굳이 표현해보자면 ‘19세기적 정신’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주 좋은 소리로 들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부터 ‘자본주의=인간의 자연적 욕구’라는 명제에 빠져 살았으니까.


    에리히는 일갈한다. 우상숭배적 사랑, 감상적 사랑, 시간에 의한 사랑의 추상화, 투사 메커니즘 활용, ‘사랑≠갈등’이라는 초보적 인식 모두를 일갈한다. 사랑은 우상화가 아니다. 환상 속에 있지도 않다. 고독에서 일순간 해방되려고 맞는 마취제도 아니다. 타인에게 투사할 사랑도 아니다. 피난처 역시 아니다. 에리히의 <참사랑>, 즉 ‘핵심적 경험의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그들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에리히의 책, 138쪽) 가능한 사랑이다. 그것은 도전이요, 움직임이며, 또한 성장이다. 따라서 이런 사랑이 넘치고 있는 오늘날 그와 비슷한 종교는 “중세의 종교적 문화보다는 오히려 우상 숭배를 하는 원시부족에 더 가깝다.”(에리히의 책, 140쪽) 나는 오늘도 신에게 기복하라는 광고를 들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를 누비는 확성기의 소음을, 연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우리에게 신이 동업자일 수가 있는가?



*   *   *



    우리는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다. <참사랑>을 추구하긴 하죠.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녹록치 않은 것, 그걸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에리히도 그 점을 인정한다. 사랑과 정상적 생활(이 단어에 에리히는 작은따옴표를 쳐놨다.)이 양립할 수 없다는 걸 그도 이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랑은 예외일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사회의 재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듯하면서도, 그것마저도 가능할 것이라고 보진 않았다. 다시 우리는 익숙한 답을 듣는다. 사랑은 개인의 경험이며, 전 생애에 걸쳐 훈련해야 하는 것. 익숙한 것을 제멋대로 녹여버리는 우리의 일상이, 사랑을 상실하게 만든다.


    에리히가 제목처럼 ‘The Art of Loving’이라 부른 건 세 가지다. 자기훈련, 정신집중, 그리고 인내. “인간의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의해 결정”(에리히의 책, 150쪽)되는 지금에 와서 시간이 금이라는 미덕은 미덕이 아니라 진리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혹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인내하는 훈련이라고 한다. 그는 뭐라고 했을까? 상념을 제거하고, 호흡을 집중하며, 편안한 상태를 마련하는 명상을 하라고 했다. 순수하지 못한 대화와 음울한 사람을 되도록 피하며, 타인을 경청하라고 했다. 자기 자신에게 민감하여 특히 정신적 상태에 재빠르게 반응하라고도 했다. 교육제도가 이런 능력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줘야 하지만 한참 부족하다고도 비판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우리의 일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으며, 그렇게 살게끔 적응하지도 못한다. 결국 에리히는 최후의 답을 내놓는다. 저 세 가지 ‘사랑의 기술’을 달성할 수 있게 우리를 이끄는 것은 ‘최고의 관심’ 뿐이다. 애호가로 사느냐, 명장(名匠)으로 사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결국 나는 『사랑의 기술』에서 그 제목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임을 확인한 것일 뿐일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단지 확인한 것에 지나진 않을 것이라, 나는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건 글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내가 거울 속의 또 다른 나에게 하나의 정확한 반사상이 되는 건 분명 읽고 쓰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읽고 씀은 불가피하게 지식과 닿아 있으므로, 그것은 에리히의 표현대로라면 딱 그 선까지만 나아간다. 하지만 이후 <참사랑>을 나의 ‘몸+정신’에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수많은 길을 다시 에둘러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의 기술』은 그런 의미의 책이다. 다시 말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것은 기초와 근본에 대한 책. 사랑의 화려함을 기대했다가는, 양서 앞에서 실망의 실례를 범하게 되는 책. 요컨대, 독자가 보듬어줘야 하는 벚 같은 책이다. 직접 그런 사랑을 실천한 에리히의 이야기가 뒤에 실려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분석가의 비판 저서가 아닌, 정신의 스승이 남긴 양서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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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3-1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대한 이렇게 자세한 리뷰라니!! 추천을 안 할 수가 없군요!

사실 전 이 책을 7번 읽었습니다. 학부 때 나를 지배한 3인 중 한 사상가로서 그의 전 저작을 모조리 읽었지요. 물론 번역본으로요..ㅎㅎ 세월이 지나고 2010년이 넘어 다시 <사랑의 기술>과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전혀 몰랐지만(그저 추종자의 한 사람이었다는..^^) 그때 알았지요. 왜 프롬이 잊혀진 사상가가 됐는지를요. 프롬의 한계를 극명히 깨달았다고나할까요.
프롬은 항상 건전한 상식에 기반하여 논의를 폅니다. 물론 그래서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철학적으로 엄밀히 논증을 요하는 개념을, 프롬은 은근슬쩍 넘아갑니다. 프롬은 대부분의 논의가 개인의 심리 형성이 어떻게 사회 심리로 확대 형성되는지 탐구합니다만, 중요한 개념적 연결고리의 치밀한 논증이 없습니다. 그게 하버마스와의 차이점이자 프롬만의 장점 인듯합니다.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철학서 중에 프롬의 저작처럼 평이한 책은 매우 드물거에요. 그게 저는 치밀한 논증 구조의 부재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프롬의 책을 학위 논문 쓰듯이 본 건 아니라서 개인적인 편견일 뿐입니다.

헌데 분명한 것은 <사랑의 기술>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한 전제로 계속 강조하고 있는 `주체적 자기(자아)`라는 게 도대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건전한 상식에 기반하고 있어, 라캉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논파당하는 거 같습니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프롬이 아닌 라캉의 이론을 공부하는 게 아마도 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안타깝게도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기술>은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명저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신을 위한 인간>을 보완하여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윤곽을 잡았다는 거에서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헛소릴 지껄였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탕기 2016-03-14 11:3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yamoo 님. 어서오세요^^

그렇군요. 치밀한 논증에 대해 비판해주신 점 때문인지, 저도 읽는 내내 에리히의 『사랑의 기술』을 철학서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이 와닿았다고 할까요.

에리히는 어떤 부분에서는 지면을 더 이상 할애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yamoo 님 말씀처럼 아예 개념들을 연결시키지 않고 `점프`를 하기도 하더군요! 본래『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의 취지이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고, 사실 그보다는 어쩌면 그런 사랑을 꾸준히 실천하고자 노력한 에리히의 삶에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논증을 제거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본인만 알겠지만요...^^

에리히의 `주체적 자기(자아)`라는 개념도, 생각해보면 정신분석학에서 유래한 개념이지만 그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훨씬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참사랑>과 <참종교>를 유난히 자주 비교하더라고요. 심리학적으로 같다고 하면서 말이죠. 혹시 보편의 자아라는 게 있다면, 그걸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봐도 얼마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본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실천에 있어서는 에리히도 위대한 정신의 스승들과 같은 궤도를 언급해야만 했었던 것일 테고요.

음. 저는 얼핏 라캉을 들여다본 적은 있지만, 라캉파가 얇은(?) 논증의 에리히 프롬을 논파한다는 그런 철학의 흐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역시 제 수준에서는 말이죠 ^^ 그래도 라캉 역시 여러 번의 전회 끝에 도달한 지점이 여성의 향락, jouissance de l`Autre(대타자 향락)이었죠. 정신분석의 임계점이라면서... 저는 이곳이 에리히가 실천적 의미에서의 사랑을 언급한 정신의 지점과 거의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리히에게서는 라캉과 같은 어마어마한 분석적 전개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역시 정신의 대가들은 통하는 바가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yamoo 님 댓글 덕분에 월요일 아침부터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번 한 주는 기온이 쭉쭉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월요일 기분 좋게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알렙 보르헤스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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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7일 월요일





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단점이 있다. 재 한 줌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결점으로, 나는 이런 말을 당신에게서도 똑같이 들을 수 있다. 당신이 그걸 ‘단점’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당신과 내가 왜 그런 단점을 지닌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우리는 눈을 두 개만 갖지 않아도, 그리고 그 두 눈이 모두 정면을 향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시력은 둘째 치자. 왜 우리는 한정된 공간만 상으로 맺히는 구조 속에 갇힌 것인가?


    이런 한탄을 하면 나의 왼편에 있는 누군가는 오른쪽으로 눈만 살짝 굴리면서 나를 안쓰럽게 흘낏 볼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걸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겨를도 없다. 거울의 도움을 받아 잘 살고 있고, 사물과 기계들은 정면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에 알맞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이따금 나는 ‘정면을 향한 두 눈’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듣거나 읽는다. 사방으로 눈이 나있는 신화 속 존재의 시각이라든지, 아무리 쳐다봐도 보이지 않는 이벤트 호라이즌이라든지, 동시에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단 하나의 구멍이라든지… 아무리 추상의 개념이라 해도, 예전부터 쭉 봐왔던 수많은 이미지들, 그것이 형태가 됐든 색이 됐든 간에, 그 중 일부를 활용해야만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신화와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은 (과학에서는 ‘인지불가’라고 말하겠지만) 말 그대로 전혀 그려볼 수가 없다. 눈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 새삼스런 자각.


    답답하다. 상징이 등장하고, 우리가 아는 예술사가 이어진 까닭이다. 인간은 기호와 예술이 없으면 태초에도, 진리에도, 그리고 사실 그 무엇에도 다가갈 수가 없다. 단, 아무리 다가가더라도 1/n 따위의 부분 접근 밖에는 할 수 없으므로, 결국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접근법을 격파하는 것을 우리는 ‘초월’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전혀 흡족해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과학에서 아주 근사한 문학적 표현 하나를 빌려오자면, 그건 quantum leap, 즉 양자도약이 될 것이다.


    보르헤스는 누군가의 집 지하실에 내려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아래부터 열아홉 번째까지 계단을 세고, 그곳에서 놀라운 세계를 봤다. 이제부터 말할 소설은 「알렙(El Aleph)이다. <알렙>은 근원, 시원, 진리 등에 닿아 있는 단어이며, 여러 언어권에 걸쳐 공통적으로 ‘제 1의 단어’로 여겨졌다. 이 제목은 또한 보르헤스의 전집 『알렙』을 대표한다.


    전집에 실린 다른 단편들은 대부분 이 조촐한 서재 공간의 ‘보르헤스’ 카테고리에 부족하게나마 (그러나 아주 들뜬 마음으로) 복기해뒀다. 글로 곱씹어보지 않은 단편들도 있다. 역량 부족으로 감응하지 못했거나, 이면지의 낙서를 복기로 이어가지 못한 탓에 기약 없는 유예의 상자에다 담아뒀다. 전집 『알렙』의 전체 복기는 동일 제목의 단편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하며, 나머지는 아래에 링크로 달아둔다. 생각해보니, 나는 다섯 단편, 즉 「죽지 않는 사람들(El inmortal)「아스테리온의 집(La casa de Asterión)「신학자들(Los teólogos)「자이르(El Zahir), 그리고 지금 복기할 「알렙」이 보르헤스 전집의 ‘강물’에서 건져 올린 가장 빛나는 보석이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2016년 3월 2일 : 「죽지 않는 사람들(El inmortal)

  2016년 2월 22일 : 「자이르(El Zahir)

  2016년 2월 19일 :「또 다른 죽음(La otra muerte)

  2016년 2월 28일 : 「신학자들(Los teólogos)

  2016년 2월 16일 : 「신의 글(La escritura del dios)

  2013년 9월 9일 : 「독일 진혼곡(Deutsches réquiem)

  2013년 9월 8일 : 「아스테리온의 집(La casa de Asterión)

  2013년 9월 6일 : 「엠마 순스(Emma Zu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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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아뜨리스 비떼브로가 죽었다. 「알렙」. 이건 그녀의 죽음에서 비롯된 이야기. 보르헤스에게 그 죽음은 중요하다. 찢어지는 아픔과 우주의 허황됨을 느꼈으니.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뒤이어지는 글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미망(未忘)의 통증을 우리는 단호히 무시하도록 하자. (다시 말해, 우리는 그걸 무시할 수 없다.) 그의 단편 「자이르」에서처럼 누군가의 죽음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상가(喪家)를 다녀온 보르헤스에게 은빛의 동전인 자이르가 굴러들어왔던 것을 상기해본다. 베아뜨리스가 죽고 없는 가라이 저택에 규칙적으로 들르던 그에게는 베아뜨리스의 사촌인 까를로스 아르헨티도 다네리와 가까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찾아왔다. 이 소설의 제목 <알렙>은 까를로스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까를로스. 출중한 용모에다 열정적이며, 말솜씨가 뛰어난 남자. 하지만 미천하며 무능하고, 맡고 있는 직책이란 한 기이한 도서관의 말단 정도다. 보르헤스는 그의 언변에 감탄하면서도 슬쩍 떠본다. 말 잘 하는 사람에게 갖게 되는 어떤 시기심이나 증오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 감정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 짙어지다가 나중에는 보르헤스 자신이 툭 털어놓는다.) 왜 그런 말들을 작품으로 쓰지 않았는가? 까를로스는 이미 썼다고 하면서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바로크, 데카당스 등이 언급된 자신의 서시를 자랑했다. 요컨대 그것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시인 마이클 드레이튼이 남긴, 무려 1만 5천행이나 되는 <폴리올비온(Polyolbion)>이라는 장시보다 더 지루하고, “<언어적 과장>이라는 부패한 원칙”(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알렙』, 219쪽)이 가득한, 운율적 결함이 있는 작품이었다. 도대체 까를로스는 무슨 작업을 하는 중일까? 그건 바로 “둥근 지구의 모든 것을 시로 표현”(보르헤스의 책, 215쪽)하는 것이다.


    사실 까를로스가 자신의 시에 대해 자화자찬하는 구절에는 별로 집중할 만한 가치가 없다. 작품보다 그 해석이 더 뛰어난 격이며, 배보다 배꼽이 몇 곱절은 큰 졸렬한 시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까를로스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고, 그의 자평을 기억하여 이렇게 종이에 옮겨 적었다. 단편의 분량을 허투루 늘리지 않는 그가, 물론 소설 속 ‘보르헤스’이긴 하지만, 까를로스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그 까닭을 ‘시기심’이라 생각했다. 여간 해서 그런 생각을 할 만한 꼬투리를 심어놓지 않는 대가이긴 해도. 그러나 심증은 의외로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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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까를로스는 2주 후 보르헤스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한 과자점에서 우유나 마시자고 약속을 했다. 까를로스는 자신의 장시 앞부분을 출간할 계획인데 보르헤스의 친척 중 명망 높은 한 인사(알바로 멜리안 라피누르)에게 추천사를 써주십사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선뜻 동의한 보르헤스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고, 그 중 후자를 택했다. 알바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이즈음에 이르면 보르헤스는 까를로스를 일컬어 “그치”(보르헤스의 책, 222쪽)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몇 차례 전화가 울렸다. 짜증 섞인 독촉은 아닐까, 보르헤스는 날카로워진다.


    그러던 10월 말이었다. 까를로스가 전화를 걸었는데, 매우 상기된 목소리였다. 제과점 주인(수니오와 숭그리)이 확장사업을 위해 자신의 집, 즉 가라이 저택을 철거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거의 위기에서 까를로스가 진정으로 걱정한 것은 자신의 장시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집 지하실 귀퉁이에 있는 <알렙>을 잃어버리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그 <알렙>이라는 건 무엇일까?


    “전혀 흐트러짐 없이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있는 곳이지.”(보르헤스의 책, 224쪽) 그리하여 “지상의 모든 장소들이 들어” 있으니, “모든 조명 기구들, 모든 등들, 모든 빛의 원천들”(보르헤스의 책, 225쪽) 역시 들어 있는 것.


    까를로스, 이자가 미쳤구나. 하긴 비떼르보 가(家)의 병력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지. 나의 사랑 베아뜨리스도 그러했고… 그래서 보르헤스는 <알렙>을 보러가겠다고 선언하고는 까를로스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를 향한 증오심이 “까를로스는 미친 자다.”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통쾌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리라. 바삐 떠날 채비를 하는 보르헤스에게는 <알렙>이라는 걸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따윈 전혀 없었다.


    가라이 저택에 도착하니 까를로스는 술을 주면서 <알렙> 보는 법을 설명해줬다. “판석이 깔려 있는 바닥에 누워 눈을 그 문제의 층계 19번째 계단에 고정시키게.”(보르헤스의 책, 226쪽) 그렇게 된다면 “연금술사들과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의 소우주요, <작지만 알차다!>라는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친숙한 금언”(보르헤스의 책, 같은 쪽)인 <알렙>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미쳤다. 자신은 지하실에서 나가겠다고 했으니, 혹시 나를 시기하여 이 지하실에 가둬 죽일 셈인가? 아니면 방금 마신 술에 독이라도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보르헤스는 “눈을 감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알렙>을 보았다.”(보르헤스의 책,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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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나는 한탄했었다. 기억하는가? “우리는 눈을 두 개만 갖지 않았어도, 그리고 그 두 눈이 모두 정면을 향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시력은 둘째 치자. 왜 우리는 한정된 공간만 상으로 맺히는 구조에 갇힌 것일까?” 이건 필연적으로 <알렙>이라는 것을,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을 염두에 둔 한탄이었다. 보르헤스도 같은 함정에 빠졌다.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보르헤스의 책, 같은 쪽)


    상징이 등장한다. “모든 새들이기도 한 한 마리의 새”“중심이 모든 곳에 있고, 원주는 그 어떤 곳에도 없는 어떤 구체”“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한 천사”(보르헤스의 책, 228~229쪽에 걸쳐) 보르헤스는 문학으로, 또한 그 허위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본 모든 것을 오염시켜버릴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자각한다. 동시적인 것을 보았는데, 연속적인 언어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보르헤스도 여러 것들을 언급했으니, 나도 하나를 보태어본다. “아뜨만은 / 움직이기도 움직이지 않기도 하며 / 멀리 있기도 아주 가까이 있기도 하며 / 이 세상 안에 그리고 이 세상 밖에도 존재하도다.”(이재숙 번역, 『우파니샤드』1권, 60쪽) 직경 2~3cm 정도의 <알렙>에서 보르헤스는 하나의 사물이자 무한한 사물들을 봤다. 그리하여 그가 본 수많은 것들. 우주. 열거의 마지막에 이를수록 보르헤스는 절망하는 듯하다. 경외와 회한은 닿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모든 지점들로부터 <알렙>을 보았고, 나는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다시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알렙>과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보았고, 나는 나의 얼굴과 내장들을 보았고, 나는 너의 얼굴을 보았고, 나는 현기증을 느꼈고, 그리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보르헤스의 책, 232쪽)


    보르헤스는 까를로스가 대단하지 않았냐며 촐싹거리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집이 허물어지는 걸 기회 삼아 시골에 내려가서 살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복수했다. 그렇게 된다면 까를로스도, <알렙>도, 어쩌면 베아뜨리스도 서서히 잊게 되겠지…


    모든 것을 보았다. <불가해한 우주>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가 문득 공포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세상 모든 것이 이제 낯설지 않으니, “나를 놀라게 할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르헤스의 책, 234쪽)이 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아, 망각은 축복이다!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의 서두에 새겨진 프랜시스 베이컨의 글귀. obtivion. 보르헤스는 모든 것을 보았으나, 하나씩 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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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라는 제목으로 덧붙여진 보르헤스의 글이 이어진다. 까를로스는 국가문학상을 받으며 보르헤스를 추월해버렸다. 보르헤스의 시기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마 그 마음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는 <알렙>의 본질과 그 이름에 대해 오랜 시간을 고찰한 모양이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나는 가라이 가에 있던 <알렙>은 가짜였다고 생각한다.”(보르헤스의 책, 236쪽) 하지만 우리는 속지 말자! 보르헤스는 독자들의 이로를 언제나 이런 식으로 꼬아버린다. 속지 말자. 그런데 대체 어디서부터 속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보르헤스는 버튼 대위(본명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으로, 내가 알기에 그는 굉장한 천재였다.)가 남긴 한 원고가 브라질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곳에 <알렙>과 유사한 여러 개의 물건들이 언급되어 있었다고 밝힌다. 속지 말자! 여러 개의 <알렙>이라니! 그렇다면 바로 내 방에도, 몇 평도 되지 않은 이 방에도 <알렙>이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방의 구석구석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거울도 있고, 구체도 있다. 그보다는 책이 훨씬 많긴 하지만… 혹시 나는 그 물건들을 다른 각도에서 봐야 했던 것일까? 까를로스는 <알렙>을 보려면 시선의 각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주기도 했다. 혹시 나도?


    아니, 그보다 내가 속지 말자고 단단히 벼렸던 이유는 보르헤스가 “우리들의 정신에는 망각으로 뚫려 있는 수많은 구멍들이 있다.”(보르헤스의 책, 239쪽)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알렙>을 봤을 수도 있다. 불가해의 우주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내 그 엄청난 것에 대한 경외와 회한 속에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르헤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베아뜨리스는 변질되어 갔다. 아, 내가 잊은 것들과 <알렙>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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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08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 ;^^

탕기 2016-03-08 11:34   좋아요 0 | URL
대가의 텍스트 중 쉬운 건 없죠 ^^ 건필하십시오.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3
염운옥 지음 / 책세상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기나긴 평화가 이어지고 있으며, 질병이 창궐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허나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게을러빠진 자들이 수천이나 되는데, 이 나라는 손쓸 길을 못 찾는다. 난국을 막지도 못하고, 대안을 찾지도 못한다. 어쨌든 우리 국민에게는 참으로 짐스러울 따름이다.”(Throughe our longe peace and seldome sickness... wee are growen more populous than ever heretofore;... many thousandes of idle persons are within this realme, which, havinge no way to be sett on worke, be either mutinous and seeke alteration in the state, or at leaste very burdensome to the commonwealthe.)


    영국 지리학의 상징인 리처드 해클루트가 남긴 글이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을 번역해 이곳에 옮겨봤다.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는 16세기였다. 거리가 대체 얼마나 군중들로 인산인해였기에 이 노학자는 경멸조의 글을 썼던 것일까. 심지어 잉여(surplus) 인구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 사람이다. 리처드는 인구가 줄어들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2년 후인 1618년, 영국은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제후동맹 편에 서서 신성 로마 제국과 싸웠다. 종교전쟁의 명목으로 시작해 패권전쟁으로 비화되며 무려 30년 동안 벌어진, 그래서 이름도 ‘30년’인 이 전쟁으로 영국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아니, 유럽 인구 자체가 현저히 줄었다. 리처드의 유령은 웃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유럽은 또다시 인구 급감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권력이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리처드만의 것은 아니다. 연원을 따지려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설교까지 들어야만 한다. 맬서스 이후 드디어 ‘인구’라는 거대한 집단을 직시하게 된 사람들은, 기계문명의 발전과는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역으로) 갈수록 피폐해지는 사회 속에서 국가가 타개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우생학(優生學)이다. ‘우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에는 이미 ‘루저’, ‘금수저’, ‘우월’ 등의 단어가 매체를 거쳐 급속도로 퍼져 있다. 들여다봐야 할 학문이라 생각했다. 우생학 비판의 첫 걸음을 위해 나는 한 주 간 염운옥의『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를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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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는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이다. 그렇다. 우생학, Eugenics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진화론을 생산해낸 나라가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다녀온 후 (그 전에도 그랬지만) 불안증 탓에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찰스 다윈 대신 진화론을 설파한 사람이 토머스 헉슬리였다. 토머스의 ‘과학적 자연주의’는 우생학 개념을 도입한 프랜시스 골턴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과학이 신앙을 대신하고 국가의 복지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 여기서 프랜시스의 우생학이 시작됐다. 1883년 출간된 『Inquir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에는 “정신과 육체의 양면에 있어 차세대 인류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용 요인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사회 통제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이라는 우생학의 정의가 실려 있다.


    바야흐로 19세기 말.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은 Pax Britanica의 명성을 잃어가는 중이라며 우울한 망상에 빠져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인종퇴화’를 떠들어댔고, 이러다가 제국에 하층 계급들만 넘쳐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스런 분위기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퍼져나갔다. 프랜시스는 ‘부적격자’라 명명된 이들이 늘어나는 건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 아닌 문명화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윈도 이러한 ‘역선택’의 문제를 알고 있긴 했다. 이를 Survival of the Unfit이라 한다.) 이어지는 주장은 안 봐도 뻔하다. 인간의 형질을 개량하여 ‘천재의 세상’을 만들자. 찰스는 이런 유토피아적 망상을 비판했지만, 인간 유전자 조작과 우월, 천재 생산 등을 꿈꾸는 자들은 오늘날에도 많다. 최근 중국에서는 과학계의 두뇌들이 모여 천재 유전자를 찾고 있다.


    영국이 당시 개방적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각 사회 계층의 유전적 소질을 향상시킨다. 그 중 능력을 지닌 타고난 형질의 사람들이 전문가 엘리트 집단으로, 즉 상위 계층으로 진입한다. 다분히 매력적인 생각이다. 우생학에 심취한 이들은 실제로 “전문가 엘리트 집단에 의한 과두제 지배”(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42쪽)를 꿈꿨다. 반면 라마르크주의, 즉 용불용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환경개혁을 통해 형질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개혁운동가들이 그 선상에 있었다. 사회진화론자로 명성을 떨친 허버트 스펜서가 공리주의 편에서 도덕을 외친 건 당연했다. 넓게 보자면, 우생학의 맞은편에는 환경론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개념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본인은 환경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우생학을 ‘부정적 우생학(negative eugenics)’의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은 프랜시스의 개념을 이어받은 개혁적 후발 주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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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운옥은 우생학의 세 갈래를 살펴본다. 그 첫 번째가 긍정적 우생학이다. 지원과 장려를 통해 인구의 질적 개선을 이룩한다는 취지에서 ‘긍정적’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당시 영국은 인구퇴화론(반멜서스주의)의 영향으로 인종쇠퇴를 “인종의 자살”이라는 선정적인 문구로 표현했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구를 무기로 활용했다. 대영제국도 국력의 감소를 두려워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출산율 감소가 나타났다. 각계 인사들이 사회의 개혁을 주장하며 다양한 논리들을 설파했다. 점진적 사회주의의 초석으로 평가받는 페이비언주의 진영에는 조지 버나드 쇼, H.G. 웰스, 버트런드 러셀, 존 케인즈 등 후대가 기억하는 명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모성수당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과 육아로 여성이 노동을 할 수 없으면 국가가 원조해줘야 한다. ‘헨리 하벤’이라는 사람은 독일이 출산 후 6주 간 75%의 임금을 지불하니 영국은 8주 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독립노동당은 자녀의 생활비까지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유명한 엘리노어 래스본, 메리 스톡스 등 페미니즘의 선구적 여성들은 가족수당협회를 설립해 여성의 특수성을 주장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서비스”(염운옥의 책, 73쪽)라는 것이었다. 훗날 이들은 모자(母子)를 포함한 가족수당을 제안했다. 당시 정부는 ‘평균가족’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최저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가족수당협회가 보기에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도였다. 이 선구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가족수당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의 임금을 보조하는 가족임금과는 다르다. 아내와 자녀에게 직접 수당을 지급하면 남성에게서 ‘부양’이라는 책무를 제거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임금이 같아질 수 있다. 상당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엘리노어의 노력으로 영국 우생협회는 가족수당협회와 손을 잡았다.


    시대의 화두는 두 개였다. 양육과 본성. 우생협회는 당연 후자였다. 하지만 우생협회의 여성 인사들이 우생학의 취지와 모자 복지를 함께 가져가려고 노력한 덕분에 양육과 본성의 조화를 역설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양육과 관련된 영국 최대의 행사는 National Baby Week였다. 포스터를 찾아봤다. 아테나를 연상케 하는 어머니가 낫을 든 해골을 오른팔로 막고 있고, 그 앞에는 두 아이가 몸을 움츠린 채 겁에 질려 있다. 포스터의 문구는 Save The Babies다. 또 다른 삽화에는 유아의 사망 원인들이 열거되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보자면, 가난(Poverty), 무관심(Ignorance), 알코올 중독(Drink), 불결(Dirt), 그리고 질병(Disease) 순이다. 우생학 관련자들이 모자 복지 확충에 왜 손을 들어줬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National Baby Week와 같은 전시회나 무료 교육, 검진 등에 참여하는, 즉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하며, 따라서 그 자녀도 우수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생학자들은 하층 계급에서도 우수한 자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물론 강경파들은 달랐다. 찰스 다윈의 넷째 아들인 래너드 다윈은 우생협회장을 18년 간 지낸 거물이었는데, 중간 계급의 돈으로 하층 계급의 출산율을 올리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유전의 법칙을 명심해야 한다.”(염운옥의 책, 87쪽)는 것이 래너드의 입장이었다. 우생교육협회도 신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려는 모성기금을 운영했었지만, 이는 다분히 차별적 접근이어서 설득력은 점점 떨어졌다. 연이은 인구 감소도 강경파의 위축에 한 몫 거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개혁적 인물들이 가입했다. UNESCO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줄리언 헉슬리는 강경론자들과는 달리 일단 모든 인간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유전 여부를 판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균등한 기회를 가족수당이 마련해줄 수 있을 거란 뜻이다.


    1930년대 말이 되자, 정부는 가족수당 정책으로 빈곤을 해결하고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앞서 페미니스트들이 높이 들었던 남녀평등의 깃발은 정부의 손에 없었다. 대신 열등처우에만 집중했다. 처우제한 원칙, 즉 빈민 구제를 받은 이들이 일반노동자보다 나아지면 안 된다는 1834년 영국 구빈법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긍정적 우생학의 개혁적 주장은 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스며들 수가 없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생학은 “이런 방식으로 오늘날 복지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모성 보호와 모자 복지, 출산 장려 정책을 지탱하는 담론 속에 얽혀 들어갔다.”(염운옥의 책,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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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 우생학’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단종법(斷種法), 즉 장애를 지닌 이의 생식 능력을 박탈하는 법은,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결과부터 말하겠는데, 영국 우생협회의 단종법 제정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이 개념이 대륙으로 건너가 나치즘과 만나 부정적 우생학의 ‘꽃’이 폈다. 나치는 신체장애,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공산주의자, 로만/집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유대인 등을 ‘육신이 나약한 자’로 규정, 혹독한 노동과 인체 실험, 고문의 늪에 빠뜨렸다. 나치가 세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들의 신체 한계를 측정하는 비인간적인 실험이 연일 계속됐다.


    영국 국민들은 섹슈얼리티와 결혼 등 사적인 문제를 공론화하는 걸 꺼렸다. 다소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 덕분에 대중은 우생학의 주장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우생협회의 선전 능력은 탁월했고, 10명 중 4명이나 되는 많은 여성 회원들이 박람회, 강연회, 영화 제작 등에 앞장섰다. 아이러니다.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과 우월한 인류를 탄생시키려는 우생학이 제휴했다. 따라서 염운옥은 이렇게 말한다. “우생학의 역사를 인신에 해를 가하는 ‘악’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획득하려는 산아 제한 운동을 ‘선’으로 그리는 이분법적 역사 서술은 가능하지 않다.”(염운옥의 책, 96쪽)


    우생협회의 단종법이 여성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영국 사회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여성협동조합 길드에서도 피임 보급을 주장했다. 지금 이를 논해보자면, 첨예한 윤리의 칼날을 피해갈 길은 없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여성의 심리. 우리는 개인의 선택(피임)에 대해 비난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여성들은 단종법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낳지 않을 권리’를 남녀 장애인의 ‘낳을 권리’를 부정하면서 주장한 셈이었다.”(염운옥의 책, 125쪽)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보다는 대중의 편견이 여러 방향으로 교정되고 있다는 걸 쓰라린 마음으로 복기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단종법은 실패했다. 허버트 스펜서를 위시한 환경론의 영향이 컸다. 유전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의사들의 직업윤리도 향상됐다. 강제 단종의 실시를 두고 비난 여론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한 인물은 의회에서 난타를 당했다. 노동당과 운동 진영에서는 계급 차별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자발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계층에게 단종은 강제와 같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영국은 특이하게도 계급 사회이지만 의회 민주주의가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우생협회는 자발적 단종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단종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은 단종을 통한 전체주의 노선을 걷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온건윤리에 우생학 운동이 흡수됐다.



*   *   *



    세 번째 우생학은 ‘예방적 우생학’이다. ‘예방’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우생학은 질병, 특히 성병과 싸운다. 그녀/그들은 성병을 “인종의 독”이라 불렀다.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에는 당시 런던 인구의 10%가 매독에 걸렸을 거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는 뜻이다. 그러자 우생학자들은 성병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면서 섹슈얼리티의 국가 차원 통제를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성병의 전염을 남성의 부도덕을 규탄할 기회로 삼아 과장된 전략을 사용했다. “Vote for Women and Chastity for Men!”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문구였다. 1890년대 이후 급감하던 출산율을 상쇄시키려면 어떻게든 국가가 성병을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든 성병의 예로 매독을 언급했었는데, 그 위력은 상당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이런 구절이 있어 번역해봤다. “유럽이 처음으로 매독을 명확하게 기록한 1495년, 매독 환자들은 머리에서 무릎까지 온통 고름으로 뒤덮였고, 얼굴에서는 살점이 떨어졌으며, 수개월 안에 목숨을 잃었다.”(제레드 다이아몬드, 필자 번역, 『Guns, Germs, and Steel』, 210쪽)


    예방적 우생학은 부모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강경파들이야 자연선택의 법칙이라며 “죽을 만한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칼렙 살리비로 대변되는 예방적 우생학 진영은 국가의 개입을 촉구했다. 여론도 그쪽 편이었던 모양이다. 정부는 여론에 밀려 국가 차원의 조사를 했고, 무료 진료소과 특효약 개발이 효과를 보면서 매독 감염자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빌 네빌 롤프’라는 우생주의자는 혼외아 중에도 적격인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법의 보호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생학에서 새로운 도덕이 탄생했던 것이다.


    예방적 우생학은 엄밀히 말해 정통 우생학이 아니었다.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쏟아낸 측도 우생협회였으니. 하지만 오히려 이런 온건한 분위기 덕분에 가톨릭교회의 공감을 살 수 있었으며, 유전과 환경 양쪽 모두를 고려하는 태도로 여성들의 지지로 받았다. 앞서 말한 칼렙 살리비는 여성 참정을 지지하고 (아서 코난 도일, 버트런드 러셀 등과 함께) 이혼 허용 사유 확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예방적 우생학의 최대 목표는 이렇다. “태아에게 있어서 외부 환경을 구성하는 모체를 매독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환경 요인을 배제하지 않는 ‘예방적 우생학’이 대처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염운옥의 책, 156~156쪽)


    성병 관리와 함께 우생주의가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성교육과 결혼 전 건강진단 계획 의무화다. 우생협회는 가정에서보다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그것도 전문가들의 통제 하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에게 우생학 원리를 교육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협회 측에서 보면 대단히 답답했겠지만 영국 정부의 입장 표명은 늘 소극적이었다. 결혼 전 건강진단 계획 의무화도 실패로 돌아갔다. 염운옥은 이 제도를 부정적 우생학이 아닌 건전한 일부일처제 문화 정착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우생협회의 법 제정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협회도 목소리를 많이 낮춘 편이었다. 원래 강제적으로 하자고 했다가 반박을 받자 자발적 검사를 권장한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우생협회가 사회 불안을 조성할 뿐이라고 되받아쳤다. 물론 이는 우생학에 대한 촌철살인이었다. “우생학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염운옥의 책, 164쪽)



*   *   *



    영국 우생학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생학 운동은 여성들의 활약으로 모성주의 페미니즘과 결합했다. 양육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녀들은 우생학 쪽에 서있었지만 프랜시스 골턴처럼 환경론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점이 오히려 우생학 논리를 무너뜨리는 모양새가 됐으나, 여성들의 적극적인 대외 활동으로 우생학은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모성수당, 가족수당 등의 긍정적 우생학 개혁 논의들은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복지제도 논의의 한 축이 되었고, 열등을 강제로 지워버리려는 부정적 우생학의 단종법은 영국 특유의 개인주의와 환경론, 노동당 진영의 반발에 밀려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생학 운동은 그치지 않았다. 이후 교육과 결혼제도에 개입한 우생학은 우생(優生)의 논리를 후대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1970년대에는 ‘자유방임주의’ 우생학이 등장해 개인이 선택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는 시대 분위기가 조성됐고, 1990년대에는 맞춤아기의 등장이 예견됐다. 이제 우생은 개인적 자발로 옮겨왔다. 여기서 질문해본다. 이 윤리적 난제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염운옥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인류에게 주어진 가치를 상기시킨다. 생명 평등의 수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쪽의 편에 설 것이다. 가장 본질에 가까운 도덕과 윤리의 가치는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기술자들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다행이다. 하지만 개인의 형편과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하면 장애아를 낳았거나 출산을 두려워하는 부모에게, 특히 “키우기 싫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양육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난은 받겠지만, 우생이 이미 개인적 자발의 단계로 옮겨온 오늘날 윤리적 난제에 대한 확답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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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2-2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프랜시스 골턴의 이름을 들어보는군요. 저는 그 사람을 스티븐 제이굴드가 쓴『인간에 대한 오해』라는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그가 `우생학`에 대해 그토록 확고부동한 신념과 놀라운 추진력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애썼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더군요. 그의 주장대로라면 `인종 사이의 차이` 뿐만 아니라 `인류와 다른 생물종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완전히 생각을 달리해야 되지 싶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오만`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탕기 2016-02-27 21: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 역시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전`이라는 개념이 인간평등의 가치가 지금보다 덜 했던 시기와 맞물려 그런 주장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환경을 고려해봐야겠지만 말이죠.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때보다는 지금 우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맹목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프랜시스가 우생 개념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대 핫이슈인 진화론의 엄청난 위력 때문이었겠죠.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진 않았으니, 프랜시스보다는 후대의 강경파 우생주의자들이 비난 받을 여지가 더 큰 것도 같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스티븐 제이굴드의 책을 구해서 읽어봐야겠군요. 근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원서와 번역본으로 비교해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그 사이 스티븐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 비가 온다고 하지만 마음은 풍족한 주말 보내십시오. 좋은 말씀 늘 고맙습니다.
 
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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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4일 수요일





    작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번역을 해야 한다. 좋은 작가는 우리의 문장을 바다 건너의 수많은 문장들과 비교하여 정신을 살찌운다.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말에 능통해야 한다. 우리말에 능통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번역이다. 사려 깊은 번역을 하는 이들은 외국의 문장을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꿀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한다. 그 고민이 우리의 말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언어를 수호하는 자여야 한다.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일본의 문학이 항상 정상의 고도에서 회자되는 까닭은 그 세계의 작가들이 번역으로 거대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열매가 아무리 저항해본들 비옥한 토양은 늘 풍작일 수밖에 없다. 충실한 보통독자가 되라는 어려운 과제를 내준 한 교수는 우리 문학의 한계가 번역의 부족에서 왔다고 했다. 번역하는 자와 문학하는 자의 분리, 직업화, 저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교수의 신랄함을 빌리자면) 보잘 것 없는 문학상들, 권위와 인기에의 천착, 어쨌든 극한 신자유주의인 우리의 빈약해진 풍토, 외면하는 독자들…… 그 외에도 계속 꼽을 수 있다. 인용할 책들은 서재에 많고도 겹겹이 쌓여 있다. 하지만 우선은 문학의 무궁한 영감이자 정신의 자궁인 번역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   *



    그러한 나는 어떤가? 발을 빼는 모양새이긴 하나, 다행이도 나는 작가가 아니다. 독자다. 그런 경지를 탐내는 건, 필사와 되새김질의 실천으로 내게 큰 공명을 일으켜주신 한 충실한 독자의 표현처럼 “북한산 인수봉도 올라가 보지 못한 주제에 감히 히말라야의 눈 덮인 고봉들을 쳐다보는” 것일 뿐이다. (이 표현은 원래 Oren 님의 것으로, 이 공간에 버무려놓은 것에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독자이고자 노력하는 나에게도 번역은 하나의 보람된 실천일 수밖에 없으며, 함량미달인 작가들을 골라 문학의 숲에서 베어내는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독자의 단련도 쉬운 일은 못 된다.


    미술과 철학 공부를 위한 단순한 번역이 내게 장편의 실천이 된 건 순전히 톨킨 때문이다. 나에게 그는 ‘절대적인’ 작가다. (내가 absolute, アブソリュート란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만의 번역으로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수년째 원서에 빌붙어 살고 있다. 톨킨을 둘러싼 여러 작가와 추종자들의 2차 창작물도 ‘번역 바구니’에 들어 있다. 그동안 매진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더욱 채찍질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다. 언젠가 톨킨을 이 자리에 복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 번역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원서와 2차 창작물 번역 덕분에 영문을 우리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바꾸는 고민이 몸에 뱄다.


    한창 번역하던 무렵 알게 된 책이지만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은 지금도 수시로 펼쳐본다. 물론 번역에 통달한 이들에게 별로 새로울 내용은 없고, 독자들 중에는 원서를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영어를 배웠으면서도 번역의 내공은 충분하지 않은, 그래도 좋아하는 원서를 꼭 한 번 날것으로 읽고자 하는 나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 본인의 실전 감각과 내공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책’이라는 심심한 문장만으로는 이 책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    *    *



    저자는 『번역의 탄생』에서 타원의 궤도를 보여준다. 직역에서 출발하여 그 맞은편에 있는 ‘우리말에 친숙한 번역’을 거친다. 두 지점을 돌고 돌면서 번역은 성장한다.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희재는 책의 말미에 이를수록 ‘우리말에 친숙한 번역’을 옹호하지만 직역이 한국어를 살찌운 비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지나치진 않는다. 영화와 시, 소설 번역 경험이 있는 이들, 그리고 외국어에 능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런 신선한 표현은 직역해서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각주를 달고 싶은 욕심을 참지 못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하지만 직역을 자주하면 할수록 원문을 지나치게 우러러보는 버릇에 복종할 수도 있다.


    국영의 방송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내가 몇 가지 실망스럽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문화였다. 차음어의 권위가 굉장히 높았다. 바꾸려고 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 말하는 습관인데, 그녀/그들은 선배들이 무분별하게 들여와 여과 없이 사용했던 용어들을 자랑스럽게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현장이 워낙 빨리 돌아가는 분야이고 그만큼 소통이 중요한 곳이라, 한편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말을 다루는 사람들인 만큼, 나는 그녀/그들에게 ‘뭔가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했던 것일지도. 그녀/그들만의 은어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요즘은 그 용어들이 개그의 콘셉트로 주요 방송에 여과 없이 나온다. 문제는 그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항간에 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정적인 공간에서는 번역의 대가들이 우리말을 수호하고 시대정신을 ‘낫우어’준다. (‘고치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낫우다’가 있다. 내가 이 말을 굳이 쓰는 건, 순전히 이윤기 선생 때문이다. 발음이 따뜻하여 혀에도 익었다.) 원문을 우리에게 친숙한 말, 혹은 우리가 기억하면 좋은 우리말로 풀이하는 번역은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하는 산행의 가역(苛役)이리라. 번역에 신경 쓰는 나에게 ‘전설의 레전드’로 기억되는 두 번역 사례가 있다. 하나는 톨킨의 방대한 『The Lord of the Rings』를 번역한 김번, 김보원, 이미애의 번역이며, 다른 하나는 거듭 읽어도 원래 우리말로 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드는 이윤기 선생의 번역이다.


    전자의 사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특히 국내의 톨킨 팬들은 지금까지도 고유명사 번역을 놓고 싸운다. 예컨대 주인공의 가문인 Baggins를 ‘배긴스’라 음역할 건지, 아니면 세 역자의 선례대로 ‘골목쟁이’라 받아들일 건지 하는 논란이 있다. 나는 후자의 편인데, 이 경우도 한계는 있다. 우리말로 도무지 풀이하지 못하는 The Water는 어떤가? 정관사가 붙어 있으니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건 강 이름이다. 호빗들의 고향인 샤이어를 동서방향으로 흐른다. 저걸 그냥 ‘물’이라 번역하는 역자는 평생 독자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말로 풀자니 마땅한 단어가 없다. ‘물 강’이라고 하는 것은 ‘강물’이라는 단어를 배신하는 일이며, 그런 식의 번역은 쓸모없다. 그 때문에 세 역자는 ‘워터 강’이라 음역했다. 이것이 우리말 풀이의 어려움이다. 대체 어디까지는 우리말로 풀 수 있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한 사려 깊은 역자들의 도움으로 우리말 풀이는 점점 그 경계를 넓힌다. 그렇게 보면 이윤기 선생의 훌륭한 번역들은 우리말 풀이의 확장에서 더 나아가 외국 소설을 우리네 정서에 녹인 경지에 이르렀다. 부끄러운 고백인데, 나는 선생께서 번역하셨던 예의 소설들을 두 번 이상 읽어야만 했다. 번역에 감탄하며 읽다보니 나중에 가서는 그 작품을 도무지 회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그렇다면 이희재가 제시하는 ‘우리말에 친숙한 번역’은 무엇일까? 번역을 하며 바라봐야 할 사각지대들이 400여 쪽에 걸쳐 소개되어 있으니, ‘번역’이라는 운전을 하는 사람이 사고 한 번 내지 않을 방법이란 애당초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운전 안내서’가 아니다. 언어와 문화를 향한 깊은 혜안이 들어 있어 “번역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의 책들과는 경중을 달리 한다. 그렇지만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다. 수많은 예시들이 나와 있으며, 사전에는 없는 저자만의 단어풀이들도 나중의 번역에 쏠쏠한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원문을 너무 우러러보지 말라는 충고로 시작하는 『번역의 탄생』은 한국어를 가운데에 둔 ‘우리말 중심’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세계 각지의 언어들이 한국어와 병치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어는 이러저러하나 다른 말은 이렇고 저렇다는 비교가 계속 이어지고 사례들이 덧붙여져 있지만, 그 사이 한국어는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논지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다. 번역은 바로 그런 행위이다. ‘외국어→한국어’의 방향이 아닌, ‘한국어→외국어’의 방향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반쪽짜리 번역에만 매달리던 나 같은 부족한 독자에게 다른 눈의 근육을 길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로 한국어와 영어가 엇갈린다. 저자는 ‘영어→한국어’ 번역인 경우, 목적어 자리에 있는 행동을 품은 명사는 동사로 풀어주고, 형용사는 부사로 풀어주는 번역 전략을 활용한다. 주어 자리에 “삼라만상이 다 올 수”(이희재의 책, 72쪽) 있는 영어를 우리말로 풀 때는 능동적 표현을 고려해야 하며, 과잉수동문도 지양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부사의 활용 부분에서는 고유어 공부를 부단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준다. 예컨대 completely를 ‘완전히’라고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감쪽같이’, ‘새카맣게’, ‘홀딱’, ‘쫄딱’, ‘흠뻑’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는 번역이 아닌 보통의 글쓰기에서도 실천으로 단련해야 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을 담은 명사에 접미사 ‘-적’이 많이 붙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이희재의 책, 137쪽) 하지만 그가 권하는 건 지양이다. 的. 부끄럽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글쓰기에서 고집하는 번역투다. 최후의 보루라고 본다. 남발하는지만 경계할 뿐이다. 인문학의 손길에 이렇게 저렇게 접힌 색종이 같은 삶을 내가 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알면서도 일부러 나는 的을 붙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떼어버리기도 한다. 제 8장에 이르면 나처럼 가슴 뜨끔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희재는 제 9~11장에 걸쳐 ‘간결한 번역’이라는 걸 제시한다. 물론 그도 지적했듯이 문체의 형식을 고집하는 일부 파격적 작가들의 글이 있긴 하나, 대부분은 내용 중심인 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자는 간결하게 번역할수록 좋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면 영어 원문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뻔히 아는 내용인데도 일일이 밝힌다는 것이 일종의 논리 강박증처럼 느껴져서 답답해집니다.”(이희재의 책, 186쪽) 번역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더부룩함을 안다. 이희재는 문장의 군살을 빼기 위해 the와 a/an을 번역하지 않는 방법을 여러 사례에 걸쳐 알려준다. 기지의 정보든 미지의 정보든, ‘그’, ‘어떤’, 혹은 ‘한’이라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우리말만의 장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섬세한 의미 표현을 살리는 번역이다. 친족어 번역은 물론이고 감정 표현의 결을 살리는 번역에까지, 역자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대단히 많다. 특히 전자의 경우 uncle, cousin, aunt 앞에서 족보 따지다가 눈물 흘린 경험 있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물어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도 잘 모르는 친족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의미 표현은 명사에도 적용된다. 고유명사는 암호와도 같다. 따라서 역자의 역량에 따라 설명의 문장을 뒤에 충분히 넣어 원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한 예로, “journey to Canossa.”가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겠다.”라는 문장으로 번역된 걸 보고 나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국어에 정통하여 속담들을 다수 알고 있는 역자들은 이런 의미 표현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여기서 이희재는 토박이말의 활용을 강조한다. 사전편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제 18장에 가까워질수록 글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저자의 어조가 가장 열정적인 제 18장은 사용빈도를 고려한, 그리하여 언어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전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보면 그가 백과사전형의 미국식 웹스터 영어사전보다는 언어의 변천을 담은 영국의 옥스퍼드식 영어사전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사전이 미국 현실에 기반을 두려는 의식에서 비롯됐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도 한다.) 그런 저자가 영한사전 편찬에 바라는 바는 많다.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이리라. 그는 일곱 가지로 나눴지만 실은 들여다보면 아홉 가지로 늘어나는데, 사전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의 번역가들이 어떤 번역을 꿈꾸고 있는지 우리 독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전편찬과 번역은 다르다. 그의 말마따나 번역가는 우리말 대응어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서 번역해야 한다. 개념을 찔러 사전의 틀을 넘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우리말 대응어는 말 그대로 ‘풀이말’다. 후자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말이 원어의 진입 장벽을 낮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풀이말 사전 편찬의 수준이 높다. 저자도 그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지금은 재야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 한 방언학 교수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보면 낯설고 촌스러우며 인위적인 것 같아도, 이런 작업을 실험적으로나마 시도해볼 가치는 다분하다. 사실 이는 번역의 과제만은 아니다.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장벽 낮추는 일, 흔히 말하는 ‘대중과 소통하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언어적으로 말이다.


    제 20장에 이르러, 드디어 시 번역이 나온다. 번역의 정수. 형식의 개량까지도 가능한 분야이며, 이를 잘 번역한 작가들은 흔히 대단한 정신의 경지에 오른 몇 안 되는 이들로 우리 독자들의 항간에 회자된다. 역량이 한참 모자란 나는 공부를 위해서는 논픽션을, 취미로는 픽션을 번역해봤지만, 시 번역은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어휘력은 둘째 치고, 영시의 경우 압운(rhyme)만 해도 골이 아프다. 톨킨 번역으로 수백 여 장을 써왔지만 그 사이 빈 칸들이 있으니, 그건 모두 시와 노래다. 하물며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는 대가들의 시를 번역한다는 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해낼 수 있는 것일까. 머리로는 짐작이 되지 않고, 마음으로는 그저 끝없이 좇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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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은 기계의 일이 아니다. 원문의 논리를 도입하는 일이다. 함부로 번역하는 건 위험한 일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즉물적’이고 ‘맹목적’이라고 표현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이제는 번역 문화에서 자취를 감춰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자기 눈으로 자기 현실을 분석하는 방정식”(이희재의 책 402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시대정신을 높이 쌓는 방법이므로. 번역이야말로 정신의 요람이요, 정신의 거울이다.


    노 교수께서 말씀하셨다. 말은 움직이는 생물이다. 입에서 기어 나와 귀로 들어가니, 말에 따라 마음과 몸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대학시절 노트 모퉁이에 적힌 이 구절에서, 나는 들여다볼 것이 무수한 들판의 향기를 맡는다. 어찌됐든 우리는 독자, 읽는 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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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from Value Investing 2016-02-24 22:06 
    탕기 님께서는 '번역 공부'까지도 일부러 따로 하시는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탕기 님의 이 글을 읽다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마주치게 된 '시 번역은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는 대목을 읽고 나서야 마침내(?)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제게도 약간이나마 '덧붙일 말들'이 몇몇 떠오르는 걸 느낍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정도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시는 '번역' 뿐만 아니라 애시당초에 '창작' 부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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