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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수요일












축복의 시 Poema de los dones




    호주에 계신 한 화가께서 거미줄 잔뜩 쳐져 있는 나의 미술 블로그에 들러 6년 만에 댓글을 남겨주셨다. 반가웠다. 점심밥을 제대로 씹어 삼켰는지 모를 만큼. 하루 종일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나는 네이버 미술 블로그 <탕기의 아틀리에>의 주인이었다. 화가, 저자, 미술 애호가, 학생 등 여러 이웃들께서 들러주셨고,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그분들에게 정말 많은 응원과 도움을 받았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나를 돋우어주는 분도 있다.


    블로그. 소심하고 성질 급하기 짝이 없는 ‘나’라는 20대 청년이 한 일이었다. 가끔 분수 모르는 생각도 한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내가 한 일 치고는 근사했잖아?’ 어학연수, 대학, 군복무, 휴학, 복학, 아카데미 수료, 졸업… 엇나가도 한참 엇나가고 느리기는 또 그렇게나 느릴 수가 없었던 내 삶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탕기의 아틀리에>와 함께 한 시간처럼 알차게 보낸 적은 없었다. 마냥 바쁜 것과 스스로 충실감을 느끼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까. 인생의 선배들께서는 이 마음 잘 알아주시겠지.


    그런데 그건 나 혼자만이 한 ‘근사한 일’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분들께서 나를 근사하게 만들어주신 것이었다. 독일, 브라질, 호주에서도 들러주셨고, 아주 가까운 곳에도 계셨다. 잊지 못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블로그를 열어놓았는데, 그 화가께서 6년 만에 댓글을 남겨주신 것이었다.


    나는 하루를 미소의 얼굴로 지냈다. 치과 담당의가 무슨 좋은 일 있었냐고 물었다. ‘좋은 일’이라는 건 말로 쉽게 설명 못하지요. 그렇게 머뭇거리는 틈을 타 마취주사가 잇몸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눈물이 찔끔 났지만, 미소는 눈물의 수면 위에 둥둥 떠서 이리저리 내 얼굴을 돌아다녔다. 잠시 일렁이는 호수로 사는 척 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는 한동안 옛 블로그 포스트들을 읽어봤다. (그래서 책 한 권 들춰보지 않은 날이었다!) 한글 텍스트 파일과 이미지 파일로 떠놓은 것들이 있는데, A4 300여 장을 한 권으로 치면 다섯 권이 조금 넘는 분량이라, 한참을 읽어야 했다. 화가들께서 보내주신 작품 이미지 파일들도 다시 들여다봤다. 그렇게 추억에 빠져 있다 보니 어둠이 내렸다. ‘아직은 목성이 보이지 않는구나. 새벽녘 우주의 얼굴이여.’ 늦은 택배로 신간평가단 책 두 권이 왔다. 고생하시는 그분께는 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400여 쪽 안팎의 얇은 책들이라 이번 달에는 서재의 두꺼운 책 한 권은 더 읽을 수 있겠거니, 해서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 문학 코너 쪽으로 갔는데, 그때 눈이 마주치고 만 것이다. 나는 꼬깃꼬깃한 시집 한 권을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   *   *



    그 시집은 보르헤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원제 : El Hacedor)다. 6년 전에 처음 읽은 시집. 그 봄에 나는 캠퍼스의 벚꽃봉오리들이 너무 참을 수 없이 예쁘기에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에 가서 한 권의 시집을 사들고 도서관에 앉았다. 내 기억에 그 무렵 읽은 시는 김선우와 정호승이었다. (시집 이름에도 꽃이 들어가 있었다.) 보르헤스는 시의 수면 위에서 간신히 숨만 쉬던 그 시절 나의 감수성에 푸른 달빛의 물감을 발라놓았다. 그렇다. 생각해보건대, 보르헤스는 달빛이었다. 뜨거운 네루다는 오후에 읽고, 나는 새벽마다 보르헤스를 읽었던 것이다.


    기억에 남은 그의 시라고 하면 「장님의 자리(Blind Pew)」와 「거울(Los Espejos)」, 그리고 「모래시계(El Reloj de Arena)」가 가장 먼저 이미지로 떠오르지만(내게 있어 저 세 편의 시가 지닌 이미지는 바다, 달빛, 그리고 레테이다.), 미진(迷津)의 생각으로나마 한 편의 시에 매달려 장문을 써본 것은 「축복의 시(Poema de Los Dones)가 유일했다. 제목은 ‘축복’이지만, 나에게 밀려왔던 공포, 그걸 나는 잊지 못했다.


    나에게 책은, 그리하여 <책읽기>라는 건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게 세상은 우물이다. 나는 세상이 넓은 것이 아니라 깊은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우물 자체의 어둠이 무서웠고, 우물 바닥(그곳은 어디일까?)에서 상층으로 엄습해오는 냉랭한 바람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서재에 꽂아둔 수많은 세상들. ‘저 책을 쓴 이들은 모두 우물에 직접 들어갔었겠지.’ 요컨대, ‘우물’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보르헤스가 영예와 장애(시력상실)를 한 해 걸러 차례로 얻게 되고 쓴 「축복의 시」에서, 나는 그에 대한 연민보다는 나에 대한 연민에 빠지고 말았다. 나라는 사람이 대낮의 도서관에서 어둠에 갇히게 된다면, “도서관에서 으레 /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 텅 빈 어스름을 탐문”(보르헤스, 우석균 옮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14쪽)하게 된다면, 나는 죽어버리려고 하지는 않을까?


    6년 전, 나는 보르헤스의 대시(大詩)를 향해 하나의 졸문을 바쳤다. (나는 보르헤스가 세상을 떠난 세 달 후 반대편 반구에서 태어났다.) 서문은 이렇다. 여섯 해 전의 글이라 옮겨놓기 창피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시인 옮김, 『충만한 힘』, 11쪽)한다는 걸 도무지 모르던, 요란한 빈 수레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 글은 추억의 자리.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끈은 다시 오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하니까. 다행이도 나는 허투루 기억을 상대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니다.


    나는 어둠을 모른다. 어둠은 새카만 것이 아니다. 한밤 중 눈을 감아 이불 속에 눕힌 나의 몸과 심장소리를 느끼며 알아볼 수 있는 컴컴한 세계가 아니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빛의 어둠 역시 어둠이 아니다. 어둠이란, 없음이다. 유와 무의 오묘한 우주 속에서 대체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볼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어둠으로 남아 있는 것들은 내가 알 수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눈을 감으면 나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없음의 끄트머리나 초미에서 몸을 더 눕히면 그때서야 나는 잠이 든다. 그리고 때론 그림과 같은 꿈을 꾼다. 만약 내가 어둠을 꿈꾼다면, 나는 죽은 것이다.


    어른들은 어둠을 무서워할까? 어린 나는 그것이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하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나는 어둠이 무섭다. <없음>이라는 것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상상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어둠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렇다. 6년 전 나의 저 서문에서 비어 있는 영혼이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 내가 너무나도 무서워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서문에서 몰래 도망친 까닭일 것이다. 정말 무섭다면, 저런 글을 쓰지도 못했겠지.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의 기만적인 성격을 활용한다. 무섭다는 문장 자체는 거짓이다. 두려움을 물리기 위한 부적과도 같다. 의례이며, 징표다.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어둠을 두려워한다.


    혹 보르헤스도 그런 이유로 「축복의 시」를 썼을까? 이제 와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눈이 먼 건 1956년의 일이었고, 그보다 한 해 전에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에 취임했다.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페론이 실각하자 보르헤스는 문학의 공간에서 승리를 손에 넣게 됐다.) 쉰이 넘은 보르헤스에게 두 해에 걸쳐 영예와 절망이 연이어 찾아왔다. 이제 막 두 단편집과 보르헤스 특유의 환상적 사실주의가 전 세계로 명성을 떨칠 것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그는 나락을 맛봐야만 했다. 그를 기억하기 시작한 역사 앞에서, 정작 그 주인공은 눈이 멀어버렸다. 국가의 대문호가 눈이 멀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술렁였고, 문인들은 통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펜을 들고 시를 썼다. 「축복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하 모든 번역은 우석균 교수의 것이다.)


    누구도 눈물이나 비난쯤으로 깎아 내리지 말기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 그 오묘함에 대한

    나의 허심탄회한 심경을.


     Nadie rebaje a lágrima o reproche 

     esta declaración de la maestría 

     de Dios, que con magnífica ironía 

     me dio a la vez los libros y la noche.


    읽고 쓰는 자에게 ‘시력상실’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보르헤스는 그것을 ‘밤’, 즉 noche라 했다. 그의 단편에는 신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나는 박식한 그가 무수한 정보들을 짜깁기해서 신에게로 향하는 하나의 (실은 전혀 하나가 아닌) 미로를 만드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니 그는 신을 허투루 말하는 자가 아니다. 어떻게 이겨낸 것일까? 보이지 않는 눈에서 흘리는 눈물(lágrima)도, 신을 향한 비난(reproche)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허심탄회하게 이 시를 썼다. 그것은 신의 아이러니였다.


    장서의 주인이, 즉 도서관의 주인이 된 보르헤스는 그 영예를 고스란히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볼 수 없음>이 그를 도서관에서 헤매는 방랑자로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샘물과 정원 사이에서

    어느 한 왕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갔네.

    높고도 깊은 눈먼 도서관 구석구석을

    나도 정치 없이 헤매이네.


     De hambre y de sed (narra una historia griega) 

     muere un rey entre fuentes y jardines; 

     yo fatigo sin rumbo los confines 

     de esta alta y honda biblioteca ciega.


    열매를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했던 저 왕. 누가 봐도 그는 탄탈로스. 보르헤스는 탄탈로스처럼 ‘신들의 음식’을 어딘가에서 훔쳤던 것일까. 하기야 시인이란 모름지기 그런 환상의 야욕을 지니고 있어야 전 세계를 흔들 수 있는 법… 하지만 그 벌로 보르헤스는 따먹으려고 하면 머리를 올리는 나뭇가지처럼 높은, 그리고 마시려고 하면 줄어들어버리는 물처럼 깊은, 그리하여 그에게 ‘눈먼 도서관(biblioteca ciega)’을 헤매게 됐다. 눈먼 도서관이라니! 나는 상상해볼 수조차 없다. (이 밑줄 그어진 문장들은 필자가 '미다스 왕'을 '탄탈로스'로 잘못 받아들여 경험한 시적 감응에 지나지 않는다. '정원(jardín)'이라는 단어는 분명 지옥의 탄탈로스가 아닌, 화려한 황금정원의 미다스 왕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는 보르헤스의 처지를 지옥으로 너무 쉽게 연상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거의 즉각적으로 탄탈로스만을 떠올려버린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그 왕은 Oren님께서 알베르토 망겔의 <독서가와 시력>을 인용하여 지적해주신 바대로 미다스 왕이다. Oren님께 감사드린다.) 책 앞에서 눈을 감으면, 그 책은 아무 의미도 없다. 보르헤스에게 ‘국립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무슨 의미였을까.


    도서관에서 으레

    낙원을 연상했던 내가,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하네.


     Lento en mi sombra, la penumbra hueca 

     exploro con el báculo indeciso, 

     yo, que me figuraba el Paraíso 

     bajo la especie de una biblioteca.


    그에게 도서관이란 ‘텅 빈 어스름(la penumbra hueca)’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저 구절을 잊지 못한다. “천천히 나의 그림자에 싸여(lento en mi sombra) 지팡이를 두드리며 홀로 장서들 사이를 거니는 보르헤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는 6년 전, 이 구절에서 화살표 하나를 끌어다가 “얼마나 아름답고 쓸쓸한 묘사인가.”라고 적었다. 첫 번째 반응, 기만, 얕은 감응, 뭐 이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지금 와서 나는 여섯 해 전의 그 낙서에 공감한다. 세상이 낙원인 줄만 알았던 때가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적이 있었고… 낙원의 자리가 사리지고 나면, 세상에 남는 건 자신의 그림자뿐이다. 일순간 찾아오는 고독을 저마다 어떻게든 견디고 살지만, 저마다의 지팡이는 다르다.


    그런데 보르헤스는 “더듬거리는 지팡이로 / 텅 빈 어스름을 탐문”한 자가 또 있었다고 술회한다. 보르헤스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우연이라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필시 이를 지배하리니.

    어떤 이가 또 다른 희뿌연 오후에

    이미 수많은 책과 어둠을 얻었지.


     Algo, que ciertamente no se nombra

     con la palabra azar, rige estas cosas; 

     otro ya recibió en otras borrosas 

     tardes los muchos libros y la sombra.


    그의 이름은 폴 그루삭(Paul Groussac). 보르헤스보다는 몇 세대 앞서 활동한 문인으로, 무려 4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폴의 본명은 ‘폴-프랑수아 그루삭’이다. 스페인어권 작가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쳤다고 전해질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었다. 보르헤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멕시코의 알폰소 레예스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보르헤스는 잠시 ‘국립도서관장’이라는 자리와 시력상실의 저주를 엇갈리며 생각해봤으리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폴 그루삭이라고 상상도 해봤으리라.


    느릿한 복도를 헤매일 때,

    막연하고 성스러운 공포로 나는,

    똑같은 나날, 똑같은 걸음걸음을 옮겼을

    아마 죽고 없는 그라고 느낀다.


     Al errar por las lentas galerías 

     suelo sentir con vago horror sagrado 

     que soy el otro, el muerto, que habrá dado 

     los mismos pasos en los mismos días.


    보르헤스의 단편 「죽지 않는 사람들(El inmortal)」에는 전설의 호메로스이기도 했고, 로마의 군단장 마르코이기도 했으며, 그 후 수많은 (한편으로는 호메로스와 관련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인이기도 했던) 삶을 살고 끝내 ‘조셉 카르타필루스’라는 이름으로 죽은 한 기이한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조셉은 이후 또 다른 누군가로 태어날 것이고, 그 자신이 호메로스이기도 했고, 마르코이기도 했으며, 조셉 카르타필루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 보르헤스는 이런 돌고 도는 것, 바퀴, 윤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Tat twam asi”. 네가 바로 그것이다. 일체성. (이 구절을 보르헤스와 함께 되짚어보게 해주신 Oren님께 감사드린다.) 그 자신을 폴 그루삭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건 환상의 일만은 아니었다.


    여럿인 나, 하나의 그림자인 나,

    둘 중 누가 이 시를 쓰는 것일까?

    저주가 같을지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무엇이 중요하랴?


     ¿Cuál de los dos escribe este poema

     de un yo plural y de una sola sombra? 

     ¿Qué importa la palabra que me nombra 

     si es indiviso y uno el anatema?


    그리하여 ‘시력상실’이라는 저주의 단어 안에서, 이미 세상에 없는 폴 그루삭과 지금 시를 쓰는 보르헤스는 하나가 된다. 아니, 하나가 된다는 표현보다는 둘의 구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그 무경계 속에서 단 하나의 진리를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한다. 나는 그의 집요함을 안다. 모든 지식을 일순간 하나의 점으로 쏟아 붓는 어마어마한 힘에 대해서도 안다. 그런 그가 바라보는 곳은,


    그루삭이든 보르헤스이든,

    나는 이 정겨운 세상이

    꿈과 망각을 닮아 모호하고 창백한 재로

    일그러져 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


     Groussac o Borges, miro este querido 

     mundo que se deforma y que se apaga 

     en una pálida ceniza vaga 

     que se parece al sueño y al olvido.


    아, 그는 제목을 ‘축복의 시’라고 했으나, 시의 말미에서 우리 독자들이 느끼는 허무와 이 세계의 불확실성과, 그리하여… 잠깐. 하지만 나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보르헤스는 시력을 잃고 나서 과연 삶을 포기했는가? 아니다. 무려 30여 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무수한 글을 썼고, 또한 읽었다. 혼자 책을 쓰기 버거우면 공동 저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옥타비오 파스, 이사야 벌린, 쿳시, 쿤데라, 손택, 하루키 등이 받은) 예루살렘 상을, 1979년에는 스페인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받았다.


    단편과 시를 읽으며, 나는 그가 어떤 것들을 바라보려고 했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보르헤스는 “일그러져 꺼져가는 것을” 바라봤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이 아니다. “바라본다.”가 주가 된다. 본래 세계의 불확실성을, 그리고 현실과 꿈의 무경계를 바라보던 그에게, 어두워진 세계는 밝은 세계와 그 본위(本位)가 다르지 않다. 보르헤스는 그걸 깨달았던 것이다.


    다만, 보이는 세상이 더 정겨웠을 뿐. 그래서 이 시는 슬프다. 그 어떤 환상적인 작품들보다, 가장 보르헤스에 가깝다. 눈 먼 아르헨티나 시인에게는 정겨움을 상상 속에 묶어두고 어둠으로 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 딱 죽음까지만 이어지는 앞날이 놓여 있었다.



*   *   *



    “나는 나 자신의 환상을 선택했고, / 얼어붙은 소금에서 그것과 닮은 걸 만들었다 ― / 나는 큰비에다 내 시간의 기초를 만들었고 /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시인 옮김, 『충만한 힘』, 30쪽) 내가 파블로의 「건축가(El Constructor)」라는 시의 첫 번째 연을 굳이 떠올린 건, 아니, 떠올리게 된 건 보르헤스가 장님의 삶을 살면서도 말 그대로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네루다적 열정’과 닿아 있는 것 같아서였다. 이 시는 No tengo más remedio que vivir“나는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라는 마지막 연의 공명으로 시 읽는 우리 독자들 사이에 유명하다.


    그렇다. 나는 보르헤스가 건축가였다고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미로를 설계한 건축가. 다이달로스. 「죽지 않는 사람들」 식으로 말해보자면, 어쩌면 그는 다이달로스였던 보르헤스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는 내가 언젠가 전생의 보르헤스였다는 식의 깨달음을 말년에 하게 되진 않을까,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보르헤스가 만든 미로에 이미 갇혀버린 한 명의 독자로서.


    한 화가의 댓글에서 나는 6년 전으로 돌아갔고, 운명인지 우연인지 도무지 판단할 수 없는 어떤 하나의 눈길에서 보르헤스의 옛 시집을 다시 들춰봤다. 그리고 「축복의 시」를 읽고 헌화할 마음에 썼던 6년 전의 장문도 복기해봤다.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끊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많진 않지만, 그래서 소중하다.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해 거듭 생각해본다. 이런 글은 두어 시간이면 쓴다. 그러니 이것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친 글이란 말인가. 우리의 삶에서 별로 많지도 않은 소중한 것들을 누군가가 온전히 써내려고 한다면, 그런 욕심에 책상으로 몸을 한 번 기울였다가는 그녀/그들은 죽을 때까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쓰고, 그래서 우리는 읽는다.






≫ Jorge Lo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1921년 울뜨라이스모 강령을 발표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개척했다.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영역은 보르헤스로 대표된다. 1923년 첫 시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를 발표했고, 1944년에는 단편집 『픽션들』을, 1949년에는 『알렙』을 발간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페론 정부와 맞서면서도 아르헨티나 문인 협회 회장직에 있었고, 페론 실각 후인 1955년부터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듬해 실명했다.

    1961년 사무엘 베케트와 함께 포멘터 상을, 1971년에는 예루살렘 상을, 1979년에는 헤라르도 디에고와 함께 세르반테스 상을 받았다. 하지만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패하자 (그해의 수상자는 윌리엄 골딩이다.) 비(非) 유럽-미국권 작가들에 대한 스웨덴 한림원의 저평가 논란이 도마에 다시 올랐다. 당시까지만 놓고 보면 유럽-미국 출생이 아닌 작가 중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들은 딱 여섯 명 밖에 없었다. (1913년 영국령 인도의 시인 타고르, 1945년 칠레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1967년 과테말라의 미구엘 앙헬 아스투리아스, 1968년 일본의 가와바타 야쓰나리, 1971년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1982년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전부다.) 보르헤스도 출신 문제를 거론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성향 탓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보르헤스는 3년 뒤인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타계했다.





p.s 스페인어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이들이 나는 부럽다. 이 시는 보르헤스가 만년에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라 밝힌 시다. 이 시를 스페인어로 들어보고 싶은 이들의 2분 40초를 위하여, 나는 하나의 선물을 이 글의 밑에 달아놓는다. 스페인어 원문을 따라 스페인어 음성을 들어보길 권한다. 보르헤스는 말년에 이를수록 정형시를 추구했다. 1행과 4행, 그리고 2행과 3행의 마지막 모음으로 짝지어진 압운을 신경 쓰면서 들어보면 스페인어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스페인어 음성으로 듣기 : http://www.poesi.as/reci0213.htm

      ※ 주의 : 클릭하자마자 시작한다.


POEMA DE LOS DONES
A Mária Esther Vázquez

- Jorge Luis Borges



Nadie rebaje a lágrima o reproche 
esta declaración de la maestría 
de Dios, que con magnífica ironía 
me dio a la vez los libros y la noche.

De esta ciudad de libros hizo dueños 
a unos ojos sin luz, que sólo pueden 
leer en las bibliotecas de los sueños 
los insensatos párrafos que ceden

las albas a su afán. En vano el día 
les prodiga sus libros infinitos, 
arduos como los arduos manuscritos 
que perecieron en Alejandría.

De hambre y de sed (narra una historia griega) 
muere un rey entre fuentes y jardines; 
yo fatigo sin rumbo los confines 
de esta alta y honda biblioteca ciega.

Enciclopedias, atlas, el Oriente 
y el Occidente, siglos, dinastías, 
símbolos, cosmos y cosmogonías 
brindan los muros, pero inútilmente.

Lento en mi sombra, la penumbra hueca 
exploro con el báculo indeciso, 
yo, que me figuraba el Paraíso 
bajo la especie de una biblioteca.

Algo, que ciertamente no se nombra 
con la palabra azar, rige estas cosas; 
otro ya recibió en otras borrosas 
tardes los muchos libros y la sombra.

Al errar por las lentas galerías 
suelo sentir con vago horror sagrado 
que soy el otro, el muerto, que habrá dado 
los mismos pasos en los mismos días.

¿Cuál de los dos escribe este poema 
de un yo plural y de una sola sombra? 
¿Qué importa la palabra que me nombra 
si es indiviso y uno el anatema?

Groussac o Borges, miro este querido 
mundo que se deforma y que se apaga 
en una pálida ceniza vaga 
que se parece al sueño y al olv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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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3-0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가 노벨상 수상을 놓친 때가 1983년이었군요. 저는 그때 막 `입대`해서 그 이듬해엔가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따끈따끈한 신간 `노벨상 수상작`으로 읽었더랬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이 글에 담긴 보르헤스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신화 속 인물`이 `미다스 왕`이겠거니 했었는데, 탕기 님께서는 <니오베의 신화>에 얽힌 `저승에 붙잡힌 탄탈로스`를 떠올리셨던 모양입니다. 맹인이 된 보르헤스를 (알바생처럼 임시직으로 일하던)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던 알베르토 망겔이 `독서가와 시력`에 대해 쓴 글을 참고(?)삼아 덧붙여 봅니다. 거기에도 보르헤스의 시가 조금 남아 있거든요...

* * *

독서가와 시력

인류의 1/6이 근시인데 독서가 중에는 그 비율이 월등히 높아 24%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 루터, 새뮤얼 피프스, 쇼펜하우어, 괴테, 쉴러, 키츠, 테니슨, 존슨 박사, 앨릭잰더 포프, 케베도, 워즈워스, 단테, 개브리얼 로세티,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키플링, 에드워드 리어, 도로시 L. 세이어스, 예이츠, 우나무노, 타고르, 제임스 조이스, 이들은 모두 시력이 약했다. 많은 경우 사정이 더욱 나빠 호머에서 밀턴, 그리고 제임스 서버와 보르헤스까지 유명한 독서가 중 상당수는 만년에는 맹인이 되기도 했다. 30대 초반에 시력을 잃기 시작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던 1955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도서관 관장에 임명되었던 보르헤스는 한때 자신에게 허용되었던 책을 빼앗겨 버린 실패한 독서가의 기이한 운명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그 누구도 눈물을 뿌리거나 책망하지 말자
하느님의 권능의 선언을
이처럼 장엄한 아이러니로
나에게 암흑과 책을 동시에 내리셨나니.

`망각과 잠을 닮은 창백하고 모호한 재`의 흐릿한 세계에 파묻혀 사는 이런 독서가의 운명을 보르헤스는 양식과 마실 것으로 둘러싸인 채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가야 했던 미다스 왕의 그것과 비교했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

탕기 2016-03-09 22:0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는 읽자마자 탄탈로스 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말이죠! 보르헤스의 처지에서 어두운 지옥이 연상된 까닭이었을까요? 왜 `정원`이라는 단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지옥`으로 읽어버린 걸까요... 너무 어둠에 사로 잡혀 황금손을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인용해주신 망겔의 글을 읽고 나니 저건 여지 없는 미다스 왕이었군요. 곧 수정하겠습니다.^^

호메로스가 장님이 되었다는 건 전설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렇게 망겔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죽지 않는 사람들」을 또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호메로스와 보르헤스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음, 제가 알기로 망겔이 언급한 이들 중 상당수의 대가들이 필사 훈련 때문에 시력이 나빠진 걸로 알고 있는데, 저도 오래 책 읽으려면 모니터와 백지에서 멀리 떨어지는 습관을 빨리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 운동을 하니 망정이지, 이러다가 등 굽고 안경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겠어요. <독서가와 시력>. 남의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늘도 인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정 감사드립니다!

oren 2016-03-09 23:53   좋아요 0 | URL
탕기 님의 댓글을 읽으니 마침 어젯밤에 필사한 내용이 `니체의 말`이 떠오르네요... 무얼 하든 오래 죽치고 앉아 계속 버티고 지내는 일들은 여러모로 해로운 일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 * *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말라 ;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말라 ㅡ 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말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ㅡ 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 ㅡ 이것에 대해 나는 이미 한 번 말했었다 ㅡ 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라고.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1절

탕기 2016-03-10 15:36   좋아요 1 | URL
이제 꽃샘추위 물러가면 ˝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새싹처럼 돋아나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16년 3월 5일 토요일




몇 달 전, 나는 글쓰기 내규를 만들었다. 그 내규란 다음과 같다.


    첫째, 불특정한 집단에 여성과 남성이 섞여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면 ‘그녀/그(들)’이라는 혼합 인칭을 사용해야 한다. 이를 ‘그/그녀(들)’이라고 표기해서는 안 된다.

    둘째, 양성을 동시에 언급해야 하는 구절에서는 반드시 여성이 남성보다 앞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셋째, ‘여성예술가’, ‘여성작가’, ‘여배우’ 등의 단어는 지양하되, ‘남성예술가’, ‘남성작가’, ‘남배우’ 등의 단어를 하나의 글 안에 병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다.

    위 내규는 모든 글쓰기에서 실천하도록 강제한다. 단, 부모(父母), 자녀(子女), 남녀(男女)와 같이 이미 굳어져서 순서를 바꾸면 어색한 단어들은 소통을 위해 표준어법을 그대로 지켜 사용한다. 글의 성격 상 순서의 해체를 강행해야 할 경우에는 대괄호 속에 단어를 집어넣어 그 인위성을 밝힌다.


    글은 생각의 수를 놓는 것이다. 생각이 항상 글에 앞선다. 그래서 글쓰기에 실천적 내규를 두면 생각이 글로 나오지 않게 되며,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 내규가 생각에 스며들어 하나의 생각 습관이 된다. 그런 취지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남자다. (이런 표현이 가당하다면) ‘남자처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여성을 예술의 뮤즈로 보는 시각에 별다른 저항 없이 살아온 지도 이십여 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동서고금과 현대의 사상을 배우려고만 했지, 그 안에 들어 있는 차별의 시각, 무시의 시각, 혹은 (그녀/그들조차 도무지 생각하지 못한 경우도 있으므로) 논외의 시각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대학을 다녔으니, 굳이 푸코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담론의 함정’이란 건 들어봤다. 맞은편의 담론도 들어서 되도록 객관화시키는,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조정을 권유받았다. 솔직히 나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대학(大學)적 사고’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추를 저울에 올리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전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고, 인문학으로 생각하고, 예술에서 눈을 얻었다. 나 같은 남자는 전적으로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의 20대였다. 그러나 어떤 계기였는지 도통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대의 분위기였을 수도 있고, 동생의 권유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진리를 갈구하는 여린 마음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관문 때문이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추하고 일그러진 20세기 중반의 페미니즘 계열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


    나의 옛 미술 블로그를 찾아주시던 분들과 함께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그곳에 ‘여성현대미술가’ 100인의 프로필과 작품을 짤막하게 연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카페지기’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미술 공부처럼 솔직히 순전한 호기심에 한 일이었다.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금방 시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녀들의 파격이 궁금해진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 몇 년 사이 내가 조우하게 되는 것들, 즉 새로운 것들은 대체로 충격적인 외양이나 내용을 갖고 있다. 왜 사라 루카스는 오징어 다리처럼 생긴 여성의 하반신 봉제 인형을 의자에 걸쳐 놓은 것일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투명한 플라스틱 집게에 파묻혀 있는데, 왜 그런 가학을 감행한 것일까? 로나 심슨은 하얀 가운을 입은, 양손을 등 뒤로 돌린 여성 흑인의 뒷모습을 그려놓고 왜 <Guarded Condition>이라는 문구를 작품에 그려놓은 것일까? 신디 셔먼과 프리다 칼로는 또 어떠한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를 ‘추를 통한 직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내게 무언가를 직시하도록 하고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가 『추의 역사』에서 한 모든 말에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가 한 말, “우리에게 추를 인간적 비극으로 이해하도록 권유”(움베르토 에코, 오숙은 옮김, 『추의 역사』, 436~437쪽)하는 작품들이 있다는 주장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그녀들은 어떤 “인간적 비극”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예술이 그토록 사모하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뭉개지고 일그러진 얼굴, 혹은 신체를 드러내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작업. 그녀들에게서 대체 어떤 비극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이 바로 <성차별에 대한 저항>임을 어렵지 않게 안다. 알 수 있다. 저항이다. 나는 이따금 대중들이 현대미술이 어렵다며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오프/온라인 여기저기서 본다. 쉬운 걸 추구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그녀/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외침이지만,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으면 현대예술은 고전예술에서 떨어져 나온 20세기 ‘조상’들의 기치에서 한참을 벗어나게 된다! 요컨대 그건 ‘저항하는 예술’이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며, 그 충격이 세상을 직시하도록 한다. 우리가 1차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즉, 문제는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발을 빼거나 싫어하는 척하면서) 충격을 두려워한다는 것에 있다. 사실 ‘낯섦’ 자체를 길들일 수는 없다. 본성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의 곁에는 그 ‘낯섦’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







점점 글의 온도를 높이겠다.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화들짝 놀라 금세 도망가는 이들도 있으니.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아래의 이유 때문이다. 전말을 밝혀본다.


    아침에 일어나 온라인으로 신문 기사 하나를 읽었다. 옐로우 페이퍼들을 걸러내느라 쉽게 지치곤 하는 내 눈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예비한 기사. 분당 조회 수를 쏠쏠히 올릴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단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롭거나 신선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운동, 여성 혐오 발언과 사과, 근래 화두에 오른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 ‘스타파워’로 페미니즘의 선봉에 선 할리우드 배우들…… 그래도 기사를 자세히 보면, 우리 사회에 저항의 움직임이 지속되길 앙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 좋은 세태들은 대부분 우리의 것이고 (단 하나 예외로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이자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인 정희진이 언급되었을 뿐) 잘 팔리는 페미니즘 도서의 8할은 외국도서의 번역본들인 까닭이다. 여성단체 회원과 후원금, 고민상담의 증가 정도만이 최근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순방향 피드백이다.


    기사의 댓글을 읽었다. 나는 온라인의 정서가 오프라인의 정서와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만은, 자신은 온라인에 뛰어들어도 ‘저들’과 전혀 다른 오프라인적 인간이라는 믿음을 고수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은 그저 숨기고 사는, 가면의 무대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든 폭탄이 될 수 있다. 제발 아렌트를 기억하자. ‘촉발(觸發)’의 계기와 순간이 현실의 우리에게 드물 뿐이다. 자만하지 말자. 현인의 말을 듣자.


    여하튼 댓글들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이분법을 존숭한다. 여기서 ‘이분법’이라 함은 ‘몇 등분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나누고 마는 그런 행동을 일컫는다. 이에 대한 존숭은 가상의 맞은편을 무시한다. 가장 나쁜 경우 상대방이나 집단을 인간 이하로 보도록 우리의 눈을 변질시킨다. 동패, 편, 혹은 끼리를 나누는 못된 병폐 역시 여전히 실하고 튼튼하다. 정치의 선동이 널리 효과를 본다. 우리는 정치 후진국이나 사상 후진국의 멍에를 쓰고 있다. 그런 문화는 세상을, 삶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참 쉽게 가르고 본다. 쉽게 가른 뒤, 감정으로 본다. 판단은 뒷전이다.


    그자들도 가명의 힘을 빌렸을 테니, 그 가명과 함께 댓글들을 통째로 옮겨본다. 모두 상당수의 ‘좋아요’를 얻은 것들이다.


    rnrj**** : 권리와 의무도 평등으로...여군 징병제 찬성합니다

    shak**** : 여자가 집해와라 여자가 돈벌어와라. 남자인 내가 혼수해오고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육아까지 독박으로 다 해주고 조신하게 가정살림 맡을께.

    line**** : 네 여자들이 집사고 남잔들이 혼수하는세상이 오길바랄께요

    siyo**** : 주로 여자가 바깥일하고 남자는 집안일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여자는 사회에서 자기 능력에따라 평가받고 남자들은 능력있는 여자에게 선택받기위해 여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있는가로 가치를 평가받는 사회. 여기서 여자들이 요즘 남자들 너무 편하게 산다며 역차별이라고 빼액대기만 하면 딱 지금 사회의 성별 반전판인데 ㅋㅋ


    띄어쓰기나 맞춤법 모르는 건 둘째 치자. 폰으로 황급히 댓글을 달기도 할 테니. 그런 건 너그럽게 봐주자. 그런데 저 즉각적이면서도 질 낮은 감정의 대응은 앞서 말한 것처럼 ‘좋아요’ 부문의 상위에 올라 있다. 여성 차별의 사고에 젖어 있는 남성들이 유독 이 기사에 기다렸다는 듯, 먹잇감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 한해 특히 이 차별은 현실적인 의무(국가가 준 의무)에서 무한의 양분을 얻는다. 기나긴 역사를 거치며 남성 권력이 설정한 전쟁과 대립의 역사에 오늘날의 여성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논리다.


    저들은 역사 공부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한 것일까? 같은 ‘수컷’으로서, 나는 창피보다는 수치를, 그리고 치욕을 느낀다. 그들은 스베틀라나의 글을 읽으면 뭐라 생각할까? 노벨문학상이 그녀의 이름을 영예로이 해준 까닭을, 그들은 알기는 할까?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7쪽)


    군복무를 흡족할 만한 추억으로, 전쟁을 영화와 게임 속에서 웅장한 영상과 음향으로 기억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부장의 권리와 피해를 앞뒤로 훈장처럼 달고 사는 이 시대의 수많은 ‘수컷’들에게 위 댓글과 같은 차별적 발언의 함정에 빠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아니라고? 솔직해지자. 나 역시 한때 여성들 역시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저 바다 건너의 이스라엘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성의 목소리’를 동아줄 삼아 저 더러운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구원을 누릴 수 있었다. 정신의 목숨을 살려줬으니, 평생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말 나온 김에 함정 하나를 더 살펴보자.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30~50대를 겨냥해서 남녀차별의 상황을 거의 여과 없이 내보내는 원색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난다. 저급한 ‘떼 토크’의 포맷을 빌린 이 프로그램에서 방청객들은 시나리오대로 공감의 감탄사나 웃음을 연발한다. 아카데미에서 방송을 배우고 나니 그 모습이 더욱 가증스럽다. 숫자에 연연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의 숨 막힘 속에서 ‘대중 공감’이라는 권위에 천착하는 분야. 아무 의미 없어도 재밌으면 된다. 그걸 저들이 쓰는 방송용어로, 즉 일본어로 뭐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을 쓰지 않기로 했으니 굳이 밝혀놓진 않겠다.


    저들이 하는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여성과 남성의 편에서 오고 가는 공방이, 그리고 그 구도가 온라인의 것과 꼭 닮았다. 시청률을 올리려면 어쩔 수 없다는, TV 관계자들이 하는 그런 핑계는 수십 년 간 이어져 오고 있으니 이제 지겨울 법도 하다. 그건 양호한 편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저 토크의 디지털 공간에서는 우리의 사상적 질, 인간 권리, 이런 것들의 상향을 도모할 만한 대화나 논의, 심지어는 반론조차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나도 안다. 그냥 보고 듣고 공감하고 웃으면 끝인 프로그램임을. 더 이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음을. 그러나 어쩌랴. 그런 영상과 음향과 공감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프로그램은 ‘고착화’의 수단이다. 또한 그 영향이란 차별을 극복하려는 이론과 실천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재밌어서 다수의 대중에게 잘 먹힌다. (Oren님께서 나의 한 졸문에 달아주신) 쇼펜하우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공범들의 요란한 소동’이다.


    “대중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과 동질인 불합리한 것과 범속한 것에 기울어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대중은 생산보다는 향유하려는 수준에 머문다. 단순한 재단(裁斷)과 적대화의 술수는 비단 정치의 것만은 아니다. 우리 곁에는 두뇌가 잘 돌아가는 이들이 많으며, 우리의 즉각적인 감정과 반응은 그녀/그들의 돈줄이 된다. 이걸 모르고 지갑을 여는 어른은 없겠지.






내가 ‘들어보자’고 한 현인의 말이란 참으로 많아서, 어디서나 맞을 수 있는 비, 혹은 맛 좋은 열매들을 지천으로 맺는 과수의 동산을 떠올릴 수 있을 지경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의 척박한 땅에서 살아간다. 우리의 모습은 실로 그러한데, 열매를 먹지도 않고도 이렇게나 많은 배변을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궁금하다. 왜 질 좋은 양분을 갈구하며 사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가? 그 중에서 또 실천하는 이들의 수는 왜 그만큼이나 적을 수밖에 없는가? 왜 개인은 대중으로 살길 포기하지 않는 것인가?


    나의 질문은 ‘실생활’이라는 단어의 실체가 갖는 무시무시한 위력에 대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함정에 빠져 사니까. 살고 있으니 벗어날 수가 없다! 다만 함정에서 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싶었다. 여태 현인의 말을 좇은 건, 순전히 그 때문이다. 아래에서 그 말들을 만나기 전에 잠깐 어딜 들렀다 가야 할 것 같다. 인위적 장치, joker, 그리고 역사의 도박장을. 일부는 내가 급구한 말이고, 또 일부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과학과 제도를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차별은 차등에서 왔다.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게 된다. 인간은 차등적 존재다. (어폐가 있긴 하다. 자연에는 ‘등급’이라는 단어가 없다. 자연이 아는 단어가 하나 있다면 그건 ‘적응’ 밖에 없을 것이다.) 평등은 자연에 없는 단어다. 얼마 전 읽은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에서 우생학을 들여다봤다. 그 이론이 차별 의식으로 옮아가는 정치의 역사는 마땅히 비판하고 싶지만, 우생학의 근거는 부정할 수가 없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선천의 한계다. 노력을 강조하는 감동적인 설교들이 있지만 그건 ‘마음의 벽’을 허물라는 가르침이다. 과학적이진 않다. 인간은 차등의 성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철저한 생물적 존재. 다시 말하지만 (홉스의 ‘자연 상태’에 대해서는 분명 할 말이 많겠으나, 굳이 개념만 살짝 빌려 쓰자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차등적이다.


    하지만 한 인간에게 있어 어떤 불가능함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가능함으로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다 그렇게 산다. 봉사, 거래, 선물 등 인간이 구상한 제도의 구원성 덕분에 대부분의 것들이 일상에서는 가능하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이기심을 발휘하여 ‘도움을 주는 주체’의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에, 자연의 차등이 인간의 사회에서는 ‘계급’이라는 값으로 변했다. 그 계급 우월의 거의 모든 수혜자가 바로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집단을 이끄는 폭력적 카리스마와 전쟁이 반복되는 인간사의 인위적 결과였다.


    반면 폭력적이지 않은 카리스마가 민중에게 깨달음을 설파하고 다닐 때마다 찾아온 시련과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라. 또한 그 깨달음이 폭력적 카리스마와 결부되어 지금의 종교 행태를 이루고 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남성이 ‘여성적’이라고 부른 거의 모든 것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고, 여성의 역할과 생각, 그리고 기능은 그 제한된 환경 속에서 한 발자국도 쉽게 밖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뒤에 인용할 메리 울스턴크레프트도 그렇게 봤다. 일보 전진을 달성한 여성, 혹은 ‘여성적 개체’는 집단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단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다수에게 대단히 낯선 존재였기 때문이다.


    차등이 존재한다. 그것이 자연이다. 하지만 인간 제도 안에서 차등이 차별로 변질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인위적인 결과였다. 위대한 철학자 중에도 그 인위성을 무시한 이들은 수없이 많다. 문학적으로 비유해보자면, 그 인위성이란 것은 한 번 달콤한 맛을 본 자들이 대대손손 성찬을 영위하고자 만든 하나의 식탁인 것이다. 고착화된 의례. 수 천 년 간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그런 현상들이 있었고, 때때로 그런 현상들은 인류 보편의 것으로 취급되었으므로 차별은 공인되었다. 사사키 아타루 식대로 표현하자면, 그건 분명 ‘역사의 도박장’에서 써온 카드였다. 그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해보건대, 카드의 대부분은 대체로 joker 정도의 위력을 지녔던 것 같다.


    차별을 극복하려는 후손인 우리에게 있어 조상의 대부분은 차별의 공범이다. 도박의 무대에서 joker를 쥐어봤거나, joker를 가진 자들을 동경한 이들이다. 가정에서든, 그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든. 아니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당수가 타성의 사생아들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녀/그들을 체포할 수가 없다. 이미 세상에 없으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허무맹랑한 농담 따윈 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우리의 정신이 과연 공범의 심리에서 감정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겠냐는 질문 앞에 우리를 나체로 세워두자. 다시 말해, 훨씬 더 인위적인 장치를 개발하고 그 장치의 시퀀스 안에 우리를 “위치시킬 수 있는가”를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발적 테제에 감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는가? 또 우리 중에는?


    우리 이전에 살았던 소수의 선각자들은 계급 차별의 억압에서 대중들을 해방시켰다. 가진 자와 있는 자들은 흠칫 했겠지만, 결국 별로 상관하진 않았다. 역사의 게임에서 활용할 만한 카드가 그녀/그들이 지닌 권력과 재산의 수만큼이나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의 사회에서 누가 주인이냐는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일정의 승리를 거뒀다. 속된 말로 ‘꿀릴’ 경우에는 민주의 감정에 호소하여 굉장한 수의 대중을 소집해 분명한 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즉, 제도가 보장하거나 대중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안전장치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뜻이다. (규모의 문제를 생각해보자면 사실상 민주에는 완성이 없으므로) 불완전한 모양새이긴 하나, 우리나라의 선배들이 바로 그 증인들이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로도 도무지 극복하지 못한 억압들이 있었고, 차별 철폐의 목소리가 나온 지 어언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의 도박장에서는 joker 카드를 내밀며 절대적 위협을 가하는 이들을, 즉 ‘갑질’하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혐오하고 증오해야 하는 이들은 외양이 그렇게 생긴 이들이 아니라, 바로 저자들이다.


    내가 여기서 ‘300여 년’이라고 한 건 아무래도 18세기의 선구적인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의 옹호(원제 :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고려했기 때문이며, 그보다 훨씬 앞선 주장과 실천들이 있었음을 그 표현에 덧대어 굳이 밝혀두어야겠다. 하지만 우리가 읽어야 하는 시대의 문제작들이 대체로 유럽 계몽주의의 발아와 함께 등장했다는 역사의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유럽을 휩쓴 자유와 평등의 이념 속에 여성이 쉽게 동참할 수 없었다는 사실 역시 곱씹어야 한다. 여성은 거의 철저한 의미로서의 타자, 즉 l'autre personne였던 것이다.


    메리의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어떤 해당 종파든 상관없이 여성의 ‘창조설’에 대한 확답을 내려야 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자.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믿으세요?” 나를 이상하게 보리라. 道를 설파하려고 다니는 사람인가? 기가 세다며 어디 가서 좀 풀지 않겠냐고 손을 잡아끌 사람처럼 쳐다보리라. 그런 반응이 반갑다. 사람들은 좀처럼 저런 창조 설화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은 굉장하며, 놀랍게도 그 신자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여성 사제와 여성 교황을 배출하지 못하는 그 보수성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메리의 시대에 그 문제는 더 절박했다.


    그녀는 거대한 싸움을 했다. 아니, 그건 싸움이라기보다는 정말이지 도박에 가까웠다. 훗날 니체가 사상과 종교를 무너뜨렸을 때보다도 더 고독했다. 니체는 어쨌든 남자였으니까. 굉장히 많이 아는 남자. 나는 그를 존경하기에, 젊었을 때의 그가 프란치스카(어머니)와 엘리자베트(여동생)를 ‘천민’이라고 부르며 신랄하게 비하했었다는 일화를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다. 마음으로는.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사실인데. 하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가 메리의 말을 들어보자. 왜 그녀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을까?


    “여성이 단순히 남성을 기쁘게 하고 남성에게 복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결론은 오로지, 그녀가 자신을 남성에게 적합하게 만들고자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중략) 전체적으로 볼 때, 인생의 목적이 이처럼 저열한 토대에 근거한 현실의 원칙들에 의해서 전도되었다는 것을 내 생각처럼 증명할 수 있다면, 여성이 남성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문수현 옮김, 『여성 권리의 옹호』, 74쪽)


    메리는 이 발언에 이어 당시 여성을 억누르고 있는 거대한 담론에 대한 저항심과 공포를 동시에 드러낸다. “종교적이지 못하다거나, 혹은 심지어 무신론적이라는 비난”(메리의 책, 같은 쪽)이 뒤따를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메리가 요목조목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권장도서의 철학자로 흔히 언급되는 장 자크 루소다. (페미니즘을 두고 너무 요목조목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타성을 비판하려면 요목조목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유치한 수준의 불평일 뿐이다. 그런 불평은 생각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이미지에 가해지는 것이기에 맹목적이다. 편승하기에도 쉽다. 이런 것들에 속지 말자.)


    그러나 만약 메리가 쇼펜하우어와 동시대를 살았거나 그보다 후대의 사람이었다면, 나는 저 비난의 화살이 당연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돌아갔으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권기철 교수가 옮긴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방법』은 니체에게 향할 나의 정신을 예비할 요량으로 매일 펼쳐보며 곱씹는 책. 아무래도 나는 이 철학자를 “위대하다.”는 말 이외로는 표현할 길이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메리의 눈으로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으면 격렬한 불꽃이 일며 날카로운 폭발음을 내는 한 지점이 있다. 예컨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비록 어떤 여성이 부자연스러운 위치에서 독립해 있어도(참조 : 이건 귀부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귀부인'이라는 위치는 쓸모 없는 것으로 봤다.) 한 남성에게 의지하여 지도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컨대 여성에게는 주인이 필요하다. 젊어서 그 주인은 남성 애인이 되고, 늙으면 그 주인은 고해 신부가 된다.”(아르투르 쇼펜하우어, 권기철 옮김, 『세상을 보는 방법』, 164쪽)


    이건 쇼펜하우어가 어리석어서 (아니, 적어도 메리가 생각한 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메리보다 후대 사람이다.) 한 말이 아니라, 남성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계몽주의의 우산 아래에서 그가 태어나 교육을 받고 사고를 펼쳤기 때문에 한 말이다. 위대한 철학자도 담론 앞에서는 타성적일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밝혀지는 담론의 절대성. ‘이들은 알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가져보지만 워낙 글을 잘 쓰고 거대한 논리와 생각의 틀을 지닌 철학자들이라, 그들이 그걸 숨겼다 할지라도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위대함조차도 그들이 차별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때 쓸 만한 동아줄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18세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메리의 정신은 “굉장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어떤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걸 ‘대상화’하고 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행동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대단히 버거운 과제가 되고 말이지만, 적어도 메리는 우리가 함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시대를 일갈한다.


    나는 메리가 이 시대로 살아 돌아온다면 차별을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열변과 응원을 토하고 다닐지, 그런 상상을 해본다. 그녀의 시대보다 나아진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겉으로 보면 제도로 다듬어진 면도 많고, 가정에서 실제로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거나 이성(異性)을 항상 존중하려는 정직하고도 의로운 이들이 있다.


    하지만 만연해 있는 의식의 수준은 여전히 적대적이다. 차별을 가운데 두고 공방을 벌이는 이들 사이도 적대적이며, 자기 자신을 ‘갑’의 지위에 올려놓는 (굳이 표현하자면) pseudo-갑들이 ‘갑’의 담론에 의지해 살아간다. 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지지한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지만. 타성에 젖은 우리에게 훨씬 인위적일 수밖에 없는 ‘평등’이라는 장치가 차별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낯섦을 멀리하려는 우리는 익숙한 차별 속에서 그냥 살아간다. 불특정한 대중으로 남는다. 목소리는 있는데, 듣는 이들은 별로 없다.


    목소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솔직히 묻고 싶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선언운동이, 그것이 과연 그녀/그들에게 강력한 테제로 언제까지 남을 수 있는가? 아니, 이건 무시의 발언이 아니다. 그런 운동을 SNS 선에서라도 실천한 이들은 그나마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자각이 있는 이들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응원할 일이다. 또한 나는 ‘저것도 하나의 대중 행동에서 그칠 것이다’라는 의구심을 정말이지 물리고 싶다.


    하지만 불안하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등의 단어가 이미 혐오의 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 괴상한 우리 사회에서, 저 선언은 그저 하나의 저항, 반대에 대한 타격, 혹은 저항의 공감 정도에 그쳐버리는 건 아닐까? 선언의 문제는 그 이후에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즐겨 쓰는 회한의 표현처럼, 그것은 다리 아래로 또 하루의 강물이 흘러가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러기엔 온갖 오욕과 비난을 감수하며 시대의 가치를 설파하고, 그리하여 물에 곱디고운 종이배 하나를 띄워놓은 이들의 노력과 역사가 너무나도 아깝고 또 아까운 것이다.


    오전에 읽은 기사의 댓글에서, 나는 그 종이배를 쉽게 찢어버리는 이들의 폭력적인 손길을 느꼈다. 인간 가치와 정신에 대한 반달리즘이라고 할까? 아니, 반달리즘이라고 하자. 그렇게밖에 부를 수가 없다.






“한국 사회를 성(젠더)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실천하는 것은, 단지 ‘여성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 일상, 개인들 사이의 관계의 민주화 없이, ‘정치’ 개혁이나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겠는가? 일상의 정치학의 핵심은 성별 관계, 즉 젠더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에 저항하는 여성주의는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대립시키지 않은 사유 방식이다. 나의 변태는 곧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와 나는 연속선상의 한 몸인데, 어느 지점에서 그 몸을 자를 수 있단 말인가?”(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290~291쪽)


    나는 저 분홍색 겉표지의 책을 덮으면서, 나의 이런 졸문도 미미하나 하나의 실천이 될 수 있겠다는 위안을 얻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푸코는 자신이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고 믿었기에, 흔히 철학에서 말하곤 하는 ‘전회(轉回)’한다고 믿었기에 그토록 많은 글들을 남겼다. 사사키의 책에서 그 이로를 따라가면서 나 역시 푸코가 겪은 여러 차례의 전회들을 직접 추적할 수 있었다. 실천은 전회를 낳는다. 이것이 진리다. 정희진은 그런 실천이 자신에게는 가당치 않음을 겸손하게 밝혔지만, 나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글로써 여성주의를 수호하고 실천하는, 이 사회와 사투를 벌이는 인물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기대한다. 역사도 전회하지 않을까? 남성이 자의적으로 세워놓은 가치가 무너지지 않을까? 그런 날에는 joker 카드는 쓸모가 없어질 테니, 결국 역사의 도박장은 사라지고 우리에게는 어떤 일원(一元)의 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너무 허무맹랑한가? 지나친 판티지인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건 인정하다. 그러나 메리에게도 그런 ‘상상불가’의 공간이 있었고, 그녀는 엄연히 그 공간을 갈구하며 외쳤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달성된 것들이 있다. 역사를 바로 보면 그것이 불가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다. 완성되지 않을 일도 있다. 인간의 선천적 불가능이 존재하듯, 우리는 인위의 장을 만들어 봉사와 거래와 선물과, 그런 제도들을 통해 가능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메리가 말한 정의로움을 좇을 수밖에 없다. 대단한 수준의 일갈이자 비꼼이다.


    “지성을 갖춘 남성들이여, 정의로우라! 그리고 당신들이 먹이는 말이나 당나귀들의 잔꾀와 여성들의 실수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말라. 그리고 당신들이 이성의 권리를 부정한 여성에게 무지의 특권을 허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자연이 지성을 부여하지 않은 곳에서 미덕을 기대했던 이집트의 십장들보다 더 나쁜 사람일 것이다!”(메리의 책, 195쪽)


    나는 남자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는 SNS적 선언에는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여 차마 동참하진 못하지만, 현명한 여성들이 차별의 타성에 젖어 무지에 빠진 남성(과 여성들)을 깨우치려고 쓴 글과 그 역사를 들여다본다. 머리로는 이론을 읽고 배우며, 가슴으로는 모든 타인에 대한 존중에 정성을 들인다. 그리고 이 사회의 정의를 기대한다. 아직 멀다. 더 가야 한다. 대부분의 것들이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채로 그냥 향유된다.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것들에 대해서는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메리를 둘러싼 채 그녀를 방관했던 무수한 이들을 우리는 쉽게 비판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후손이 우리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되도록 그런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일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존중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그 운동은 무수한 잔향을 남긴다. 메아리가 오래도록 퍼졌으면 한다. 적어도 자신을 ‘독자’라고 부르는 모든 그녀/그들이 하나의 의무와 그리하여 찾아오는 더 넓고 자유로워지는 권리를 생각하게 할 수 있도록.






p.s 여기까지 먼 이로를 따라오신 분들을 위해 이 졸문에 나온 책들과 더불어 열두 권의 양서들을 링크로 달아둔다. 이 외에도 많은 책들을 찾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온도가 높은 글들에 호응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순전히 독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그 점에서 모두 훌륭하다. 따라서 여타의 추천은 별도로 해드리지 않는다. 나보다 더 많은 양서들을 읽으신 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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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악의 저편』에 담긴 니체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
    from Value Investing 2016-03-06 16:38 
    '페미니즘'에 대한 깊이있는 책들을 전혀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글을 읽으니 쉽게 댓글을 달기가 어렵군요. 그나마 탕기 님의 글 속에서 제게 익숙한 철학자들의 이름이나마 겨우 몇몇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이 글을 읽는 데 일말의 위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조금도 과장은 아닐 듯합니다. 그 두 사람의 철학자들 가운데 좀 더 후대의 사람이 쓴 한 권의 책을 통해 -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책 가운데 특히 <제7장, 우리의 덕>을 통해
 
 
비로그인 2016-03-06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글솜씨가 엄청난 텍스트의 힘이었군요. 대단하네요. ;^^

마태우스 2016-03-08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저도 페미니즘 관심이 많구요 여혐 댓글들에 대해 언젠가 한번 글을 쓰고싶어 열심히 캡쳐하고 있어요. 인용하신 댓글 비슷한 것들이 인터넷을 휘젓고 있더라고요. 암튼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이런 멋진 글을 쓰신 분이라면, 장차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책으로 내주심 좋겠네요. 여기서 한번보고 지나가긴 아깝네요

탕기 2016-03-08 11:33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마태우스 님. 여혐 댓글 현상에 대해서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군요. 그냥 지나치기에는 요즘 그 현상이 유독 강해서 10대 아이들이 그런 것에 자주 노출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평등`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고 인위적이긴 해도 기존 담론에 저항하기 위해서 꼭 들러야 하는 관문 같은 것일 테고요. 끝도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많은 부분 공감해주셨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p.s 중구난방이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칭찬으로만 듣겠습니다 ^^ 저는 <보통독자>가 되어야만 하는 불가능의 목표를 가진 평범한 청년일 뿐입니다. `책은 아무나 쓰나?` `아무나 쓰기도 하지.`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서, 양심 상 책을 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다음 날, 나는 그 순간을 잊어버린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는 몇 주, 글을 다 쓸 때까지는 며칠이 걸리지만, 강물 위에서 흩어지는 비누의 거품으로 모든 기억은 사라진다. 남는 건 시간이다. 시간이 전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모른다.


    “진짜로 존재한다는 느낌, 자신의 영혼이 실제 존재자임을 깨닫는 느낌, 그런 느낌을 그대로 묘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떤 인간의 어휘를 사용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열이 난다는 환각 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그동안 내내 열병처럼 달아오르던 내 일생의 잠이 드디어 사라지는 것인가. 나는 알지 못한다.”(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 『불안의 서』, 85쪽)


    페르난두는 진짜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신세를 한탄했다. 1930년 2월 21일. 그 날의 일기를 곱씹었다. 아니, 곱씹어볼 수밖에 없었다. 책 읽고 글 쓰는 나의 마음이 가서 부딪히는 문장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어딘가가 아리고, 혀끝에서 피 냄새를 낚아채는 새벽. 정신의 생채기에 드는 연고 같은 건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어제도 상처를 만졌던 손으로, 오늘 또 다른 아픔을 보듬는다. 페르난두의 ‘삶’을 나의 ‘독서’로 변환하지만, 그 결론의 값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   *   *



    지금껏 여러 글로 독서를 생각해보려 했으나, 결국 그 글들이란 창피한 흔적과 다름없었고,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서의 순간은 분명 있다. “존재한다.”고 못 박아 선언할 수 있다. 문자를 바라보며, 생각의 우물을 들여다보고, 질식과 돌파와, 아니 그보다는 미궁 속에서 아리아드네의 실낱을 제대로 손에 쥐고 있는지 두려움에 떠는 모든 과정, 순간, 그리고 수많은 자세. 독서의 순간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은 본래 낯설다. “기억을 상실한 채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페르난두의 책, 같은 쪽) 개체로 산다. 집중과 산만, 혹은 이해와 몰이해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독자의 발밑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나는 다리 한가운데서 정신이 들었고,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지금껏 나였던 그 다른 인간보다 지금의 내가 더 영속적인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다.”(페르난두의 책, 같은 쪽)


    독서와 작문은 어쩌면 페르난두가 말한 그 다리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독서토론이나 낭독이 아니라면 저 작업들은 고독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고독을 틈타 진리의 변경에서 저 높은 진리의 성벽을 넘어가기를, 혹은 어디 구멍이 없나 살폈다가 기어들어가기를 노린다. 한 번도 성공해보지 못했고, 성공의 소문조차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전설의 성도(聖都) 곁에 위치하는 작업은 그렇다. “글을 쓸 때처럼 혼자서 말없이 말하는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자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처럼 상쾌한 감각으로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지각하는 것이다.”(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이재만 옮김, 『공부하는 삶』, 289쪽) 이 성스럽고도 긍정적인 신학자의 조언에서, 나는 ‘진리에 귀 기울임’만 뽑아간다. 그리고 이 작업이야말로 과거의 나보다는 나를 훨씬 전면에 서게 하는 일이다. 아무리 어려운 글을 읽거나 써도, 그 순간만큼은 나와 확실히 대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독서의 보증인 작문과 그 작문의 보증인 독서가 분명한 관계라면, 게다가 그 둘 모두가 무엇보다도 선명한 나와의 조우라면, 왜 우리는 그 모든 작업과 과정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하게 풀어져버리는 비극을 맛봐야만 하는 것인가? 읽음의 확실함, 씀의 확실함, 그리고 조우의 굳건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이 졸문을 구태여 읽어 내려가는 당신에게도 현전한다. 때때로 그것은 심장 뛰는 소리만큼이나 친숙하다. 우리는 읽는 사람이고, 쓰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순간도 언젠가는 잊힐 것이며, 제아무리 강렬한 순간이라고 할지라도 애인의 스치는 살결, 새벽에 엄습하는 죽음의 막연한 공포, 가을의 낙엽과 한 몸으로 구르는 허무함 같은 순간보다는 빨리 잊힌다. 그 순간을 제대로 기억한다고 자랑하는 이들의 오만. 그건 제 혀와 마음을 허투루 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왜일까? 모든 독자들처럼 나 역시 매일 생각했다. 망각의 저주, 아니 망각을 망각하는 저주에서 나는 그것을 차라리 하나의 축복이라 믿기로 하고 거짓부렁의 글을 쓰기도 했다. 뇌와 심장의 용량이니 뭐니 떠들면서 나는 잊을 건 잊고 마는 것이 길게 보면 좋은 일이라고 술회하곤 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잊지 말아야 할 걸 잊거나, 잊고 싶은 걸 거의 영원토록 기억한다. 그것도 불안과 우울을 틈타 마음의 전신을 때리듯 내게 쏟아진다. 망각이 축복이라고? 우리의 여력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망각’이라는 것이 어떻게 축복일 수가 있는가? 그것은 그저 실수일 뿐이다. 그것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이며, 따라서 개개인마다 다른 국지성 호우일 뿐이다. 내가 맑은 날에도, 당신에게는 비가 내릴 수 있다. 망각의 구름은 저주다.


    독서와 작문에 한해 생각해보면 (그 외의 삶에 대해서는 도무지 말해볼 자신이 없다.) 망각의 비를 뿌리는 자연의 어떤 본성이 있으리라, ‘정신’이라는 자연의 특질이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미 한 결론에 이른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것임을 알고 있고, 그 결론을 알게 된 당신 역시 이 글이 하나의 졸문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말겠지만, 모르는 독자들이 너무 많다.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굉장한 것을 추구하고, 읽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술회하며, 자신의 생산력을 자랑 삼아 다량의 글을 쓰고 읽는 자들. 엉겁결에 책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사는 자들. 허무맹랑한 결론을 모르는 자들. 이 결론을 아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이들의 글을 안다. 첫 머리부터 안다. 그리고 읽지 않는다. 곁에 두지 않아도 되는 얄팍한 정신이다. 그렇지 않아도 들여다봐야 할 우물이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가. 페르난두가 86년 전에 한 결론을, 우리 독자의 정답을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도시를 모른다. 거리들은 낯설다. 이것은 치유될 수 없는 재앙이다.”(페르난두의 책, 같은 쪽) 낯선 정신의 도시. 페르난두는 혹 ‘전설의 성도’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가 부럽진 않다. 부러울 수가 없다. 익숙한 모든 것에서 마음을 해체하고 낯선 공간으로, 그것이 두꺼운 책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광활한 백지와 무수한 문자 사이로 자신을 떨어뜨리는 독자의 삶도 페르난두가 말한 그 ‘낯선 거리’이니까. 순간 자기 자신을 봤거나 혹은 본 것 같은 착각이 이어지고, 그런 순간들이 듬성듬성 하나의 독서와 하나의 작문을 이룬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 그것이 삶이다. 자신을 거의 모른다는 것, 그것은 생각이다.”(페르난두의 책, 86쪽) 그리고 혹 자신을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대단히 낯선 일일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을 제대로 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글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녀/그들의 글과 우리 독자는 단 한 번도 완벽한 조우를 해본 적이 없다. 다 낯설다.


    “지금 돌이켜보니 타고난 허황함, 숙명적인 멍청함, 엄청난 무식함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 나는 가히 형이상학적인 충격을 느낀다.”(페르난두의 책, 84쪽)


    낯섦은 불가해(不可解)다. 설명할 수 없도록 결정된 순간들이며, 우리를 (진정 그런 것을 묘사할 수 있다면) 자아의 중심부에서 철저하게 밀어내는 강력한 힘이다. 나는 ‘나’로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일 뿐이다. 당신 역시 ‘당신’임을 믿는 사람. 설명하려는 순간 낯설어지는 자기 자신을 구태여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나는 차라리 페르난두와 같은 솔직한 낙담에서 위안을 얻는다. 소음 같은 글들 사이에서 오롯이 정신을 집중해 바라볼 수 있는 어떤 공간에 그의 글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그와 같은 사람들 역시 그 공간을 공유한다.


    나는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질소 같은 것, 다시 말해 대부분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침묵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 말 없이 내뱉고, 귀 없이 들을 수 있다. 그 점에서 침묵은 공기와 닮았다. 호흡으로 전해진다. 그 침묵이 오래 전부터 녹아들어 여러 곳에서 화석을 드러내는, 나는 그런 사람들의 글을 읽고, 또한 갈구한다. 페르난두는 모르겠다며, 피곤하다며 글을 맺는다.


    “자기의 본질 속에 아직도 침묵이 존재하는 인간은 그 침묵으로부터 외부 세계로 움직여 나아간다. 침묵이 그 사람의 중심이다. 그때 그 움직임은 직접적으로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침묵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침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막스 피카르트, 최승자 시인 옮김, 『침묵의 세계』, 70쪽)


    나는 침묵으로 말하길 바란다. 당신의 ‘말없음’에 아무 말 없이 대답하며, 당신 역시 나와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이 문자와 문자 사이에는 낯섦과 침묵이 아니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으며, 다른 모든 것은 위선이요, 가짜 향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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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0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현력이 대단한 글입니다. 다소 현란하다는 느낌이지만, 잘 읽었습니다. ;^^

탕기 2016-03-05 23:58   좋아요 0 | URL
시인이시니 물론 문양에 속진 않으시겠지요. 건필하십시오 ^^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스카보로 장터에 가는 길이세요?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와 타임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거기 사는 이에게 소식 전해줘요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이었습니다    For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Scarborough Fair>, 이하 번역 필자


    세상은 사랑을 노래한다. 내가 시를 관둔 것은 사랑 때문이었지만, 세상은 정말로 사랑을 노래한다. 어쩌면, 노래하는 법을 몰라 작시(作詩)를 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온갖 음식 내음 맡고 다니는 장터의 객처럼 산다. 이 마을 저 마을 부단히 옮겨 다닌다. 어려운 시를 읽는 날이 있고, 수 백 년 전의, 아니, 수 천 년 전의 글귀를 읊는 날도 있다. 무명의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 지금까지 이어지는 노래도 있고, 마음 깊은 대가들의 펜촉 끝에서 항간에 한 방울의 잉크로 떨어진 노래도 있다. 아, 그 모든 것은 아프다. 곧 봄이 온다. 산에 올라 진달래 향을 맡겠지만, 꽃은 슬프다. 나는 왜 피어나는 것들을 두고, 봄의 노을을 먼저 생각하는가. 왜 별자리를 바라보며 무궁한 영원을 꿈꾸는가. 왜 대가들은 시를 쓰는가, 왜 사람들은 노래하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입술 언저리에서 맴도는, 장터의 채소들. 고등학생 때였다. 한창 눈 가리고 글 쓰던 무렵, <Scarborough Fair>를 처음 들었다. 부모님과 사이먼&가펑클을 이야기했고, 새벽에는 새러 브라이트만의 (여성의 시점으로 된) 개사를 들었다. (영국 배우 에이미 너틀의 2005년 앨범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17세기 무렵, 잉글랜드의 민중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노래. 이룰 수 없는 사랑, 불가능한 일. 어린 마음에는 선율만이 남아있을 수밖에.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듣는다. 나는 그 사이 사랑을 했었고, 사랑을 노래할 수 없음을 알았고, 그럼에도 세상은 무수한 사랑을 무수히 읊조리며 기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수한 것들을, 나는 모른다. 그런 까닭에 사랑과 시와 노래를 모아 모래의 성을 쌓고, 최후의 파도를 기다리며, 끝내 나의 모든 것이 부서져 사라지길 기다리며, 석양 속에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노래한다. “그이에게 삼베옷 한 벌을 만들어달라고 해줘요. 바느질로 실땀 하나 남기지 않는다면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일 테니.”(Tell her to make me a cambric shirt,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 Without any seam or needlework, / Then she shall be a true love of mine.) 이어지는 노래에서는 그 옷을 ‘물 한 번 솟지 않았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우물(Where never sprung water or rain ever fell)’에서 빨 수 있다면, 그이는 자신의 참된 사랑이 될 거라고 한다. 이렇게 여자는 세 개의 불가능한 과제를 받는다. 이에 여자는 “그이가 내게 일감 셋을 줬군요. 나의 참된 사랑이 되려면, 그이도 나만큼 많은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Now he has asked me questions three, /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I hope he'll answer as many for me, / Before he shall be a true lover of mine.) 하며 바란다. 남자도 과제를 받는다. 불가능함의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가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a true love of mine, 참된 사랑이다.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에 한 남자는 이런 노래를 남겼다. <Scarborough Fair>와는 달리 어떤 선율이 붙어있는지 알 수 없지만, 시공간을 넘은 인간은 사랑을 불가능에 빗대며 실로 그 ‘참됨’을 갈구한다.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된 정석가(鄭石歌)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대가들은 물론이고 재야의 원로들 사이에서도 이 노래를 둔 논쟁이 여전하나,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전공 세부를 열거하고 싶진 않다. 정체를 몰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이렇게 고스란히 느껴지니까. 바삭바삭한 잔모래가 있는 땅에, 그것도 그 땅의 벼랑에 밤을 심습니다. 모두 다섯 되가 되는 구운 밤입니다. 그 밤이 움 돋아 싹이 난다면 (명사어간 움[芽]은 뒤이어지는 ‘싹 나다’와 의미가 다르다. 앞의 것이 조짐이라면, 뒤의 것은 발아된 상태다.) 덕이 많으신 당신을 여읠 수 있겠습니다. 어찌 여읠 수 있을까. 이어지는 노래에도 가련한 아름다움이 있다. 옥으로 새긴 연꽃이 무려 삼백 송이가 피어야 하고, 철실로 주름 박은 융복(고관대작 의복)이 다 헐어야 하며, 무쇠 황소가 쇠나무 산의 모든 쇠풀을 먹어치워야 한다. 당신을 여읠 수 없다는 마음, 하지만 여읠 수밖에 없는 진실. 진실은 늘 마음을 배신하며, 마음은 늘 진실을 능가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당신을 여의고, 저는 천년을 삽니다. 이 마음이 못 살 것도 없지요.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끊어지겠습니까? 당신을 향한 마음은 옥으로 새긴 삼백 송이의 연꽃이요, 기필코 헐지 않을 철실로 된 융복이며, 이 세상에는 피지 않는 쇠풀과 이 세상에 없는 무쇠 황소, 그리고 쇠나무 산입니다.


    그이가 일감을 모두 끝냈다면              When he has done and finished his work.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와 타임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오, 내게 와서 삼베옷 받으라 전해줘요    Oh, tell him to come and he'll have his shirt,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일 겁니다.          And he shall be a true lover of mine.


    여자는 삼베옷을 만들었다. 바느질로 실땀 하나 남기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옷을 한 벌 지었다. 그리고 남자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 노래의 결말을 모른다. 400여 년이 지났어도 그 누구도 끝을 맺지 못한 노래다. 수많은 개사가 있었으나, 이는 노래를 옆으로만 살찌울 뿐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누구나 결말을 안다. 남자는 장터의 여자를 찾아갔을 것이다. 삼베옷을 받아든 그는 여자의 부탁으로 마련해둔, 바다의 소금물과 모래사장 사이 1 에이커의 땅으로 함께 갔을 것이다. 물과 뭍 사이, 틈이라고는 한 치도 없는 경계에 봐뒀다는 천 평이 넘는 땅으로. 그이는 나의 참된 사랑이니, 믿음이야 끊어지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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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눈물을 솟구치게 하는 허벅지. 크고, 엄청나게 크고, 뚜렷한 형체도 없고, 한여름밤처럼 광활하면서도 친근하고, 난롯가인 듯이 따스하며, 여성적인… 그곳 상상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좌절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사랑과, 어떤 끔찍한 공포가 불러일으킨 전율,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미래 공포에 대해…”(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불안의 서』, 171쪽)


    참으로 말다운 말이어서, 나는 새벽마다 뜯어읽는 페르난두의 마음을 접어 책상에 고아처럼, 아, 그가 슬퍼할 ‘고아’의 모양으로 덩그러니 놓아두고는 이불을 덮었다. 하필이면 내게 왜 모든 것은 이처럼 밤과 같은가. 밤이란 무엇이냐, 이렇게 묻는다면 “밀밭처럼 연한 금빛의 내 어린 머릿속”(페르난두의 책, 같은 쪽)에서는 “검은 안개요.”라는 대답만 협곡 반대 사면의 바위를 때리고 골짜기를 맴돌 것이다. 페르난두도 그랬다. 절망의 어조로 그는 ‘바람’을 찾고, ‘어머니’를 찾고, ‘고향’을 찾고, ‘침묵’과 ‘요람’과,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노래로, ‘자장가’로 들려달라고 애원한다. 끊임없이 불안하다. 작가이기에, 그와 동시에 譯者이자 독자이기에.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이 떠올리는 불행한 사람들. 불가역의 시간과, 밀려들어와서 빠져나가지 않는 비현실의 파도와, 그런 것들. 나는 지금 위로를 찾는다.



*   *   *



    나는 페르난두가 신에게의 귀의를 꿈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신의 안에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여러 일기에서 신을 찾으며 신을 말하고 신을 뭔가에 비유하지만, 그 모든 작업은 방 안의 홀로 된 시간 속에 있는 그와 세상의 거리만큼 다듬어져 있다. 더군다나 페르난두는 신은 침묵하니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차라리 聖人을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내가 페르난두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바로 나 자신이 神이라는 단어를 아주 작은 상자 안에 고의로 가둬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수많은 이들이 기복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 경전의 말씀처럼 신을 죽여 보는 전회 같은 건 체험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말의 뜻을 전혀 모른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붓다의 죽음을 운운한다. 하지만 그 놀라운 기예를 갖고도 버젓이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와불 속에 갇힌 한 깨달은 자가 너무나도 불쌍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그냥 웃겼다. 뭐 저런 신을 믿어? 이 정도가 딱 좋은 표현. 그 신들은 흡사 광대 같았다. 그래서 그런 신을 믿지 않는 대신, 내가 생각하는 신을 만들었다. 중세에 태어났다면 나는 불의 고온에서 만개했을 한 송이의 꽃 같은 고깃덩어리였으리라.


    여러 종교의 경전을 읽는다. 30대의 목표라며 올해부터 10년 간 실천코자 하는 건, 신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다. 일말도 성공하지 못하리라 확신한다. 건너지 못할 급류에 노 하나 없이, 엉덩이와 배를 마스트 삼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뛰어든 꼴이다. 아, 매일 미끄러진다. 그리하여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급류의 수면 아래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한 존재가 살고 있다고 믿어야만 했다. 덩치가 너무 커서 어디에서든 그녀/그의 어깨를 밟으면 수면 위로 콧구멍이나마 내밀 수 있어야 했다. 숨은 쉬어야지. 그녀/그는 반드시 거인이어야 했다. 급류와 협곡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거인이어야 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보고된 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치광이로 호도할 것을 두려워하여 (한편으로는 기꺼워하며) 책 속에 들어가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는 다름 아닌 거인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다닌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보고 다닌 건 사람이 아니라, “눈물을 솟구치게 하는 허벅지. 크고, 엄청나게 크고, 뚜렷한 형체도 없고, 한여름밤처럼 광활하면서도 친근하고, 난롯가인 듯이 따스하며, 여성적인…”(페르난두의 글, 재인용) 존재들이긴 했다. 어떻게 그녀/그들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최소의 생물학적 조건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이 세상에 없는 이들을. 내가 기억하고 숭배하려고 하는 한, 그녀/그들을 어쩔 수 없이 ‘거인’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죽을 것 같은데도 살고 있는 까닭은, 아무리 깊은 바다라 할지라도 그녀/그들의 어깨가 수면 위에서 파도를 맞으며 육지의 존재들을 보듬는 하나의 섬이기 때문이다. 육지를 밟으며 사는 까닭에 나는 선원(혹은 해적?)을 꿈꾸는 것일 테고.



*   *   *



    페르난두의 새벽을 보내는 당신에게, 굳이 어느 섬에 들렀고 그곳에선 또 얼마나 묵었는지 묻지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이 바다 밑에 가라앉은 이 행성에서 우리가 디딜 육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머지 않은 날에 또 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법. 똑같은 술집에서 만나 예의 저녁을 시켜놓고, 한 통의 웅성거림으로 거인들을 읊을 수밖에 없는 법. 물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을, 바다에 빠져죽은 이들에게는 위령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법.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당신과 나를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신에게 나는 묻는다. ‘왜 당신은 이토록 적은 수의 섬만 남기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 것입니까? 이 불완전한 창조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러면 신은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대답한다. 그 대답은 토시 하나 다른 것 없는 말의 갈피를 내일도 지닐 것이다. ‘이 세상은 원래 바다의 것이니라.’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내일도 다시 묻겠습니다. 신의 답변을 바꾸는 첫 인간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도무지 짜증이란 걸 낼 줄 모르시는군요. 저도 아예 그렇게 빚어주시지 그랬습니까.


    “우리 모두는 삶의 바람이 한번 휘몰아치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땅바닥에 내려앉는 먼지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단단한 지지대, 우리의 작은 손을 편안히 맡길 수 있는 어떤 다른 손을 간절히 바란다. 시간은 불확실하며, 하늘은 멀기만 하고, 인생은 언제나 낯설기 때문이다.”(페르난두의 책, 321쪽)



*   *   *



    그리하여 나는 독자로 산다. 마지막 단검을 빼든 것이다. 이 세상의 허구한 쓸모없는 것들에 일희일비하는 장난감 인형 같은 삶 속에서 한 권의 픽션과 한 권의 논픽션으로 사는 것이다. 거인의 어깨를 밟는 것이다. 가뭄 들지 않는 살갗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동물인 척 하는 사람들의 광기 사이에서 동물이 아닌 척 하는 광기를 부려보는 것이다. 영원을 읽고, 영원을 쓰며, 끝내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동물 같지 않은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지어 “apothanein thelo.”라는 말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폴론에게 빌었던 영원을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한 명의 선원으로, 바람과 별자리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노 젓지 못하는 무능한 선원으로 산다. 대가들의 책 틈에 한 장의 사람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한 권을 이룬 이들 사이에서 언젠가 마침표를 찍고 먼지 사이에 묻힐 때까지. 독자의 공간적 행위. 그건 이렇듯 인위의 작업이다. 책 쉽게 읽는 비법 아는 사람은 어디 나에게도 그 좋은 방법을 좀 알려 달라, 이 사기꾼아. 나는 오늘 한 글자라도 제대로 읽었을까. 그런데 뭘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일까. 내 힘으로는 마칠 수 없는 푸념이라 다시 페르난두의 새벽을 불러온다.


    “내 말을 듣고는 있지만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 당신은 이것이 얼마나 슬픈 비극인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페르난두의 책, 495쪽)


    당신에게도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한 사람의 마침표로 자신의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기를. 나는 항아리 속에서 애절하게 죽고 싶어 했던 고대의 마녀처럼 간절하게 바란다. 당신의 새벽을 위하여. 당신과 나는 섬의 술집에서 곧 다가올 밤을 예비하고 있다. 당신의 흔들리는 동공이 내게 다음 항해에 대해 묻는다. 술잔을 쥔 이 손의 냉증도 당신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항구에는 새벽이 내려온다. 내일의 출항을 위해 배들도 고이 바다 위에 누웠다. 다시 마지막 인삿말을. 당신의 새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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